세리의 크레이터

세리의 크레이터

$9.09
Description
“나는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

우연한 기적과 예감으로 마주한 당신이라는 결정적 순간
2017년 영남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정남일의 첫 소설집 『세리의 크레이터』가 출간되었다. 등단 5년 만에 첫 소설집을 펴내는 작가는 생업에 종사하는 틈틈이 소설을 쓰며 그동안 두 권의 의미 있는 앤솔러지 소설집에 참여했고, 작년에는 단편 「냉장고의 미래」로 천강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소설집에는 운석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표제작 「세리의 크레이터」, 밀도감 있고 개성 넘치는 문장으로 쓰인 「옆집에 행크가 산다」가 수록되어 있다. 두 작품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다. 작가는 우연을 필연으로, 나아가 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연인들과, 환대와 혐오, 구별 짓기의 논리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의 갈등을 통해 함께 살아가기의 문제, 관계에 대한 성찰을 정교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저자

정남일

1988년경기도성남에서태어났다.2017년단편「라스트장용영」으로〈영남일보〉문학상을,2021년단편「냉장고의미래」로천강문학상우수상을받았다.

목차

세리의크레이터
옆집에행크가산다
해설:낯선이와우연히_(황현경)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시리즈
한국문학의눈부신결산
소설집9종,앤솔러지시집1종출간

이책은경기문화재단주관‘2022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으로,경기도에거주하는문인들에게창작지원금을지원,그들의작품을시리즈로출간하는기획의결과물이기도하다.올해출간되는시리즈는9명의소설가들이참여한소설집9권,13명의시인들의신작시를묶은앤솔러지시집1권으로구성돼있다.온몸으로건져올린발칙하고싱싱한언어들,시대를감싸안는빛나는감수성이오늘의소설,시의면면을보여주기에전혀부족함이없다.올한해우리문학의눈부신결산중하나로보아도좋을것이다.


우리가함께한모든순간이우연이었다-「세리의크레이터」

『세리의크레이터』는우연의연쇄를그들의만남이라는결과의원인으로이해해보려는연인들의이야기이다.친구의전여자친구세리와급속도로가까워지고그녀의오피스텔에들어가살게된‘나’는,한달쯤됐을무렵세리의임신사실을알게된다.배속의그아이가친구와의사이에서잉태된아이임을확인한두사람은곤혹스러운순간을맞닥뜨린다.

이제세리는어느정도결심이선모습이었다.자신의배위에손을올리고조금전에했던말을반복했다.
“운석이떨어지는걸보고서엄마는생각을바꾼거였어.”
나는설마,하는생각으로세리를쳐다보며물었다.
“그래서너도운석이라도봤다는거야?”
“아니,그건아닌데한번봐야겠어.(중략)운석이떨어지기까지기다릴수는없으니까,대신운석이떨어진곳이라도가보려고.”_14쪽

세리는미혼모였던어머니가하늘에서운석이떨어진것을보고서자신을낳기로결심했음을거듭상기한다.이러지도저러지도못하는상황에처한‘나’는네가옆에있어줬으면좋겠다는세리의말에오만년전에거대한운석이떨어졌던초계분지로함께향한다.

세리는운석대부분이화성과목성사이의소행성대에서온다고알려주었다.소행성대는수많은소행성으로이루어져있는데그중하나가우연히목성의인력에이끌려소행성대를이탈한뒤,다시태양의인력에이끌려태양을향해날아오다가또다시지구의인력에우연히이끌려지구로떨어져야운석이된다는거였다.쉽게말해소행성이목성,태양,지구순으로인력에이끌려떨어져야한다는얘기였다._22~23쪽

하지만“세리,오와세리사이에서낳은아이,그리고내가함께서있는모습”이‘나’에게쉽게받아들여질리없다.그러니세리에게는이여행이자신의결심을‘나’에게이해시키기위한,차라리전염시키기위한여정의의미를띤다.다시말해그녀가바라는바는‘자신,오와자기사이에서낳은아이’라는그가족안으로‘나’가기꺼이걸어들어오는것이고,그러한가족의탄생을맞이하려면‘나’에게필요한것은더도덜도말고단한번의결정적순간이다.결심을해야할당사자가바뀌는것이다.

곧이어나는말그대로하늘을날고있었다.긴장한탓에몸이뻣뻣하게굳어있었지만시간이조금지나자점차적응되는듯했다.비행사역시나를배려하며비행하고있다는게느껴졌다.비행사가비행방향을천천히초계분지쪽으로틀었다.초계분지는대암산정상에서보는것과는또달랐다.아마도세리는이광경을보여주고싶어나를이곳까지끌고온것같았다.자신의어머니가그날운석을보고생각을바꿨던것처럼,나도그러기를바라면서._34쪽

우연은필연이,필연은기적이될수있을까.배속의아이라는우연과맞닥뜨린두연인은과연어떤선택을하게될까.

온전한타인과마주하기-「옆집에행크가산다」

「옆집에행크가산다」는주인공‘나’가낯선이와우연히마주치는장면에서시작한다.그는어쩌면‘행크’다.‘나’와아내민정이한때열광했던‘링위의야수’.그시절‘나’가아내와함께관전했던시합에서어깨부상을입고도버티다결국판정패를받아들고,사실상선수생명이끝난상태로일년만에다시오른링에서기대이하의모습으로광대가되어버렸으며,그러고도시답잖은시합들을수십회나이어가다수순처럼은퇴한비운의파이터.그런행크가스물네평아파트옆집으로이사를와서,플라스틱과일반쓰레기가잔뜩실린카트와함께엘리베이터안에서있는것이다.

어쨌든나는옆집남자가아무리아니라고부정을해도행크라는생각이들었고,재빨리휴대폰을들어행크의이미지를찾아보았고,결국그가행크라는걸의심치않게되었다._40쪽

소설의화자인‘나’는내내천연덕스러운태도를유지하며,옆집남자가행크일리없다는생각과그래도혹시모르는일이라는생각사이를바삐오락가락한다.어찌보면해프닝에불과할이이야기는,그러나‘나’와민정이사는그곳에공공임대아파트건설이예정되어있다는맥락이더해지면서새로운의미를획득한다.그리하여민정은그가행크든아니든함께사진을찍어SNS에올리는짓은절대로하지말라며다음과같이덧붙인다.

“흑인이잖아.우리집값떨어져.”_50쪽

민정은그렇게말한뒤에도속에있는무언가가풀리지않는지숨을거칠게내쉬었다.민정이한말은모두옳았다.그럼에도나는민정이나에게화를내고있다기보다자기자신을설득하고있다는느낌을지울수없었다._64~65쪽

‘우리’의범주에포함시킬누군가를직접택하겠다는,구별짓기를통한배제를꿈꾸는욕망이타인에대한혐오로이어지는장면이다.요컨대‘나’의환대는‘내가아는’그를향해서만,그를‘내가아는’만큼만조건부로작동해왔던것이다.행크를닮았지만,행크가아닐수도있는이옆집남자를‘나’는어떻게마주하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