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9.07
Description
“분명히 파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야수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사실적 허구와 환상적 현실 사이에 표류하는 진실
세상에는 엄청난 집필 속도로 끊임없이 새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과작(寡作) 작가들이 있다. 백건우 소설가 이야기다. 1988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가 첫 소설집 『검은 고양이』로 돌아왔다. ‘사이버소설을 본격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획기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던 첫 장편 『사이버제국의 해커들』(1998) 이후 24년 만의 단행본 출간이다. 현실과 허구를 교차하며 소설적 진실을 좇는 단편 「검은 고양이」와 「쥐의 미로」 두 편의 소설이 담겼다. 두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모종의 비밀과 마주하고 진실의 심연에 가닿으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저자

백건우

1988년제1회전태일문학상에중편소설이당선되며데뷔했습니다.1997년〈문학사상〉신인상을받아장편소설『사이버제국의해커들』을펴냈습니다.소설보다컴퓨터책을더많이썼고,IT기업에서몇년일했으며,시골에서이십년째살고있습니다.소설을쓰는한편,만화평론도합니다.해마다겨울에서봄까지칩거하며장편소설한편씩을쓰고있는데,누군가봐주리라기대하지않고,오로지쓰는즐거움으로시간을보냅니다.

목차

검은고양이
쥐의미로

해설:소설과고문헌,그리고오이디푸스의눈(임정균)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시골에서이십년째생활하며만화평론가로도활동하고있는그는책날개에서“해마다겨울부터봄까지칩거하며장편소설한편씩을쓰고있는데,누군가봐주리라기대하지않고,오로지쓰는즐거움으로시간을보냅니다”라고자신을소개하고있다.워낙과작인작가의유독더딘걸음이지만그발자국은여전히깊고단단하다.긴시간차곡차곡눌러담은그의웅숭깊은이야기가수줍게말을걸어온다.

문단말석에서선배,동료작가들의이름을부끄럽게하는건아닐까늘걱정하며,발표할지면이없어하드디스크속에파일로쌓아둔원고를가끔뒤적이며,내가‘소설가’라는사실을의심하면서서있는자리가어색해주춤거렸다.
경기문화재단의배려로써놓은소설가운데두편을세상에드러내면서,내작품을읽을독자들을생각하면기쁘면서불안하다.그래도좋다.원고가하드디스크속에갇혀있는것보다,욕을먹는편이백배,천배는더기분좋은일이지않은가._「작가의말」에서


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시리즈
한국문학의눈부신결산
소설집9종,앤솔러지시집1종출간

이책은경기문화재단주관‘2022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으로,경기도에거주하는문인들에게창작지원금을지원,그들의작품을시리즈로출간하는기획의결과물이기도하다.올해출간되는시리즈는9명의소설가들이참여한소설집9권,13명의시인들의신작시를묶은앤솔러지시집1권으로구성돼있다.온몸으로건져올린발칙하고싱싱한언어들,시대를감싸안는빛나는감수성이오늘의소설,시의면면을보여주기에전혀부족함이없다.올한해우리문학의눈부신결산중하나로보아도좋을것이다.


모든것은고양이그림에서시작됐다!
사실과허구가교차하는순간-「검은고양이」

「검은고양이」는문헌학자로보이는작중화자가마치살아있는듯한착각을불러일으키는그림속고양이의비밀을추적하는이야기로,텍스트바깥의역사적사실과허구적역사가교차하는과정을흥미롭게보여준다.평소고서적과골동품을모으는취미가있는‘나’는자신이모은헌책들가운데조선총독부에서발행한『홍문원』이라는문헌에대한설명으로이야기를시작한다.그책을읽던‘나’는아편밀매자들이만주에서조선으로아편을운반하기위해사용한기상천외한수법중하나,가령“편지나액자속에마약을넣어서운반했다”는기록을접하고벽면에걸려있는그림을바라보며호기심을느낀다.

편지나액자속에마약을넣어서운반했다는말이다.나는그글을읽으면서벽에걸려있는그림을보았다.믿기지않았지만그그림의뒷면에‘一九四一年’이라는숫자가적혀있었기때문이다.
반드시마약때문은아니었지만,나는액자를뜯어보고싶었다.그림이방에걸리고나서생긴일련의일들에대한미신적인의심도있었고,무엇보다도호기심이앞섰기때문이었다._12~13쪽

청계천벼룩시장에서어느노인에게서산그그림에는베르나르뷔페풍의고양이그림이그려져있고,서명도낙관도없을뿐아니라액자의뒤편에는연필로“一九四一年”이라고쓴글씨가희미하게남아있어‘나’의호기심을자극하기에충분하다.비범해보이는그림을단돈팔천원에구입한‘나’는매우흡족한기분으로집에돌아와액자를벽에걸어둔다.그리고얼마뒤기묘한일이벌어진다.어느날그림속고양이가마치살아있는듯‘나’를응시하는느낌을받은것이다.

어느날인가일찍잠자리에들어새벽녘에잠이깨었다.주위는고요했고,창문으로들어오는희미한불빛만이방안에있는사물의윤곽을보여주고있을뿐이었다.그때,무심결에바라본그림속에서고양이의눈이파랗게빛나고있는것을보았다.
그때의심정이란.분명히파란빛을내뿜고있었다.야수에게서볼수있는그런눈빛이었다._19쪽

처음엔원고마감에쫓기며신경이쇠약해진탓이라여겼으나,이웃으로부터고양이울음소리를들었다며누가고양이를키우는것같다는말을전해들은뒤‘나’는그것이단순한환영이아님을깨닫는다.이윽고액자를뜯어보고일제강점기에쓰였던“朝鮮光州府本町1丁目湖南書院電話350番”이라는주소를발견한다.모종의비밀과마주하게된‘나’는뜻밖에도거리가멀다는이유로주소지의호남서원을찾는일을뒤로미룬다.미스터리장르의외양을한이소설이조금다른결을갖게되는것은바로이지점이다.이제‘검은고양이’그림은우연한사건을계기로허구와현실을잇는장치가되어새로운전개를불러낸다.수십년동안감춰져있던안타까운역사적진실이마침내얼굴을드러낸다.

그일이일어나지않았다면나는그림의비밀을알수없었을것이다.지난역사의갈피를확인한다는것은흥미로우면서도고통스러운일이었다.그것도아주우연히맞닥뜨린사건속에서._24쪽


일거수일투족은물론감정까지감시당하는시대의비극
현실과환상의경계가허물어지는순간-「쥐의미로」

「쥐의미로」는화자인‘나’가불면증을겪으며쥐의환각을보게되면서소설속현실과인물의환상사이의경계가허물어지는이야기로,카프카적인부조리극을연상케하며우리시대의실존적공허감을묘파해낸다.

시간강사를전전하던‘나’는결혼을한뒤생활이빠듯해지자,강사월급의네배에달하는월급을준다며지인이소개한CCTV모니터링일을시작한다.업무는단순하다.전국에설치된약이천만대의감시카메라가운데‘나’에게할당된서른여섯개의화면을매일열두시간이교대로관찰하는것이다.그런데수상쩍은점이한두가지가아니다.보안유지를위해관리자인김부장을제외하면감시자들은고유의일련번호로불리고서로만나지못하도록통제된다.

김부장이앉아있는책상앞쪽으로는영화관의스크린처럼넓은벽면에수백개의모니터가달려있고,화면이스스로움직이고있었다.그곳은말하자면종합상황실이었다.조금전에얼굴이클로즈업된소년은컴퓨터의자동인식프로그램에의해얼굴의윤곽,형태,특징,옷의형태와색상,신발의모양과특징등외모에관한모든것이자동으로입력되고저장된다.그소년이어느곳으로가든,카메라에걸리기만하면카메라는자동으로그소년의행동을추적하게되는것이다._44쪽

감시자들은서른여섯개의모니터와책상,필기구,물한병등업무에필요한것외에는아무것도없는방에서화면속인물의표정을보고감정을수기로기록한다.컴퓨터가인물의동선은자동으로추적해주지만,감정까지는분석하지못하기때문이다.이소설은독자에게다음과같은수수께끼를제기한다.시민의일거수일투족을감시하고감정까지기록하는이기관의정체는무엇인가.감시의대상은누구이며,감시의목적은무엇인가.

꽤많은인물들이이카메라에나타났다사라졌지만,때로자신이감시당하고있음을눈치챈사람들이있었다.그들은늘카메라가있을만한곳을쳐다보기때문에나와눈이마주치는일이잦았다.그렇다고그들이어떻게할수있는방법은없었다.다만,카메라가없을만한곳을찾아다녀야하는데,외딴산골이아닌다음에는어디를가든카메라의눈길을피할수없었다._48쪽

주목할것은일을시작한지십여년이흐르는동안‘나’는이기관의조직적인감시에아무런의문을갖지않았다는점이다.그러나‘나’의무의식은자신이실험실속한마리쥐라는사실을감지한듯기이한꿈을꾼다.꿈과현실을분간하기어려운지경에이르렀을때‘나’는혼몽한상태로쥐의환영을보게된다.쥐는도처에나타난다.급기야는며칠간감시해온화면속여성의주변에서도우글거리는쥐떼를보게된다.

순간,나는너무놀라의자에앉은채뒤로벌렁자빠지고말았다.입은벌어져다물어지지않았지만,목소리는나오지않았다.충격이었다.보면서도믿을수없는일이었다.눈을비비고다시봐도,화장실안에는쥐들이우글거렸다._56쪽

그런데꿈과현실,모니터화면을넘나드는쥐의환영보다‘나’를더충격에빠트리는것은따로있다.화면속여성의뒤편으로아내가의문의남성과만나는장면이찍힌것이다.불륜의정황을포착한‘나’는처음으로감시자의규율을깨고방을나서종합상황실로향한다.나는과연모종의음모들속에서진실을찾을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