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못해늘혼나던친구가그날도벌을서고
풍금멜로디는경쾌해도조선어노랫말은애달팠다
소년이어령의영혼에조각된,경계의엇갈리는풍경들
책은식민지교실에서아이들을지배하려고노력하던각각의국가주의적상징체계들을면밀히살펴본다.붉은색일장기나‘황국신민의서사’,대동아공영권등의노골적인슬로건은물론,홍백전의붉고하얀색깔이나교과서의‘꽃’같은언뜻말랑말랑한소품들도모두국가주의적동원에이용되는재료다.여기서저자이어령이주목했던일제의선전수단이노래다.“책은읽다가멈춰서자기를되돌아보고,쓰인텍스트를되새김질할수있다.하지만음악은즉시귀로흘러들어와마음을자극한다.”죽음을집요하게찬미하는일본군가들을그렇게아이들을전방향에서에워싼다.
이렇게식민지시절겪었던체험담과일제군국주의분석에많은부분을할애하고있지만,이책은단지일본에대한원망으로만끝나지는않는다.한·중·일이공유하던동아시아의전통적질서를,이를테면한자문화나그것과결부된중세적가치체계들을파괴하며벌이는일본군국주의의악업은한국인들에게만미쳤던것은아니다.중국인들은물론,일본인또한그피해자이기도하다.그것은한편으로‘보자기’가아닌‘상자’처럼자리를구획하여사물과사태를나누는서구적사고의귀결이다.다시말해일본에서구를이식했던‘탈아입구’,즉일본의근대화에서일제군국주의의문제성이이미파생되고있었다는문제의식이책에는깃들어있다.따라서이책은제국주의비판서인동시에근대비평서이기도하다.
·군국주의가개인의삶에남긴상처를당대의체험으로기록하다
·바다건너온근대의문물,그이면의무자비한속성을짚어내다
·식민지아이들을지배한군국주의의작동과상징을해부하다
물론식민지아이들이야말로군국주의의진정한희생양이고피해자였지만,단지피해의식에사로잡혀서는안된다는것을저자이어령은아울러밝히고있다.나팔소리에맞춰‘중국인들모두모두죽이자’라는말을무작정따라하면서도,한편으로아이들은군가를“어젯밤에산고양이가내긴타마(남성의심볼)를떼어갔다네”라는익살스러운내용으로개사해부르기도했다.또한선생의지시대로한국어사용자를찾아다니는것도잠시,‘국어전용’딱지를몽당연필과바꾸거나일본어도한국어도아닌엉뚱한소리를외치고다니며체제에대한조롱에가담하기도했다.
그리고일본인들가운데에도군국주의를비판하고대안적인질서와문화를상상하던사람들이있었다.스즈키미에키치등의순수아동문학운동,아쿠타가와류노스케의반전주의소설,한때유명했던요사노아키코의반전시등,군국주의의물결과다른일본인의모습도있다.일본어를통해이어령이알게된일본의그모습들은,‘파랑새는부정의파랑새만있지않다’는통찰의좋은증거가되어준다.일본어로번역된문학작품들을기반으로작가이어령은세계시민으로서의교양을마련할수있었다.또한수신과근면을강조하는창가〈니노미야긴지로〉도분명일본의국가주의적텍스트지만,아이들은그것을평화적텍스트로바꾸어읽는능력이있었다.“어둡고괴로운기억도재산이되고,불행도상상력과창조력을더하면행복이되기도”하며,“식민지에서당한것도어떻게든거름으로삼아뭔가결실을맺을수있다”는것이책에서밝히는저자의생각이다.
2020년대동아시아각국이다시군사팽창의길로들어서는이시점에서,이책의의미는한층부각된다.가령근대일본국가주의와군국주의의선생격인요시다쇼인은오늘날한국인에게다소생소한사람이지만,아베전총리가가장존경하는인물로꼽았던만큼더이상과거의인물만도아니다.군사로일어나면결국군사로몰락하며,이는반복하는역사를통해수없이증명되어온결론이다.그런의미에서이책의제목《너어디로가니》는한국뿐만이아닌,동아시아이웃들에게던지는화두로도정확히현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