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과잉 사회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시선 과잉 사회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15.00
Description
데이터 중심 ㆍ 노출 중심 시대가 낳은 인간관계의 단절,
정체성 상실과 자유의 억압, 그리고 확증편향…
진실의 조종과 왜곡이 불러온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다

시선의 횡포 속, 당신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일대 철학과,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인 90년대생 젊은 철학도가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계의 회복’을 말하다

최근 사회문화적 갈등의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소통의 도구도 다양해지고 일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간편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은 물론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은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등장은 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수많은 시선만 난무하는 사회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선의 변화는 무궁무진해졌다.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선, 유튜브의 댓글 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환영하는 이 새로운 시선들 사이에서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다’의 의미는 걷잡을 수 없이 돌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저자는 책 《시선 과잉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관계는 곧 아이콘택트를 통해 얻는 ‘우리’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마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해법으로 자신이 안에서부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계와 진실. 이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개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시선’이다. 저자는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며, 나 한 사람의 시선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관계와 진실이 시작된다.
저자

정인규

1996년생으로미국예일대학교에서철학을전공했다.현재하버드로스쿨에재학중이다.일상언어철학을집중적으로공부하면서이를도덕심리학과정치철학에접목하여인터넷문화,프로파간다등의주제를연구했다.
예일대최고권위문예창작상인월리스상(WallacePrize)을수상했다(2020년).예일대학부철학에세이공모전공동1등(2019년)과서양인문학심화코스(DirectedStudiesProgram)철학에세이1등(2015년)을수상하기도했다.
철학자보다는철학도라는호칭이어울리는나이이기에젊은학생의때묻지않은시선으로쓸수있는글을쓰고자했다.당연하지않은것을당연하다고가르치는게배운사람의역할이라면,아직배워가는사람의역할은당연한것을당연하지않다고의심해보는게아닌가?생활의편리함이사유의수고마저덜어주고있는디지털시대에모두가한걸음멈춰서서스스로를돌아보면좋겠다는바람을갖고있다.무엇보다철학의변혁적힘과실천에대한열정이독자들에게전달되었으면한다.

목차

프롤로그

1장.아이콘택트
익숙하고도낯선만남
자유는눈으로부터
아이콘택트,인간의자연상태?
“눈깔아”
진심으로향하는문

2장.돌연변이시선
데이터와패션
진심은저너머에?
2인칭의소실

3장.관음의보편화
눈과손
탈에서얼굴로
칸다울리즘

4장.조명중독
빛의과잉
관례의붕괴
상호조율에서개인조율로

5장.뜯어보기
새로운시선
시스템,이론과문화
가루진실

6장.전문가의시선
전문성,언어의기둥
그럴싸한가루
프레임

7장.눈이닿지않는그곳
음지의잡담
머물러야배운다
심심함과지루함

에필로그
미주

출판사 서평

아이콘택트는인간관계의본질이다

태초에아이콘택트가있었다.눈과눈의만남으로써인간관계의광대한태피스트리를수놓은세가지시선,또는보기가탄생했다.첫째는알아보기다.아이콘택트이전의눈은세상의시야를독점한다.주체로서의상대방을알아보고객체로서의자신을돌아본두사람은서로마주함으로써관계를시작한다.아이콘택트의경우,서로를인정하고인정받을가장기본적인권리와의무가발생한다.시선의자유를가능케하는조건이형성되었음을의미한다.아이콘택트에서오고가는시선은‘보기’라는행위를통해서관계가수립된다.시선은모든인간관계에서필수적인본질이다.그래서시선과시선의접점은공동체의시작과성장을담고있다.아이콘택트에대한성찰은곧사회의DNA에대한성찰이다.아이콘택트는인간과계의본질이다.우리의심연으로부터서로를발견하고발현한다.
시선의자유는자연스럽게자기형성,또는정체성의자유로연결된다.네가나를누구로서보는것은내정체성에대한반응이아니라내정체성자체의구성요소다.정체성의자유는시선의자유에비해불안정하고역동적이다.타자의결정에서생성되는자유이기때문이다.우리가같은사물을볼때나는해석의자유를경험한다.해석의차이가가장노골적으로드러나는예로조셉자스트로의오리-토끼그림을떠올린다.누구는오리로,누구는토끼로그림을보는것이다.이그림은생활속에항시존재하는해석의차이를극대화했다.해석의자유로부터토론이라는삶의형태가피어난다.
눈은사람의정체성과직결되는신체부위다.눈은영혼의창,눈이진심과교감의상징을의미한다.진심은내용이아니라태도다.아이콘택트는무관계로부터의해방,사물화로부터의해방이다.그러나오늘날진심을열어주는아이콘택트는사라져가고있다.


2인칭의소실,시선의자유를빼앗다

데이터의기억에는관계성이결여돼있다.데이터는저장할뿐이다.데이터의시대에는시야의한계는무색해진다.데이터는시야의범위만확장시키는게아니라시선의새로운패러다임을제시하고있다.스마트폰의얼굴인식기능이얼굴이아닌얼굴의수치를보는것처럼,모든것이수량화되는오늘우리의눈은데이터를보도록훈련받고있다.지금은사람의데이터를보는것이곧그사람을보는것으로간주된다.데이터의시대가낳은돌연변이시선은사람을인정하기보다는인식한다.
소셜미디어,웹상프로필에출신학교,직업,취미,사진등이데이터가된다.그는언제나인스타그램속에존재하기때문에나는이제그를기억할필요가없다.존재에대한책임,불안도느낄필요가없다.우리는타자를볼자유가없다.오로지데이터로만타자를접하기때문이다.타자는내시선의객체에불과하다.소셜미디어는얼굴을보지않은채새로운사람과관계를수립하는것이가능하다.이것은관계의수림이아니라정보의소비다.아이콘택트에서존재했던무궁무진한관계발전가능성은없고,끝없는소비만남을뿐이다.
디지털패션은개인의정체성을박제해버린다.그때문에타자는나와인간적인관계를맺을수없다.우리의돌연변이시선은서로의패션을향해있다.서로의눈을바라보지않는다.따라서누군가의진심을알기란쉽지않다.더군다나자신을알기더어려워졌다.커뮤니케이션의과잉때문이다.스피치의패션화,이패션에는진심이없다.내말이어떻게보일것이라는것만남는다.진심이패션에밀려난것이다.소셜미디어는진심을지우는게아니라진심을침묵하게한다.우리의시선에서‘너’와‘진심’이점점멀어져가는것이다.
아이콘택트의소실은2인칭의소실과밀접한연관이있다.커뮤니케이션은2인칭에서시작했다.아이콘택트가깨진이후네가나의시선에서사라진것이다.따라서새로운사람과3인칭으로먼저접한후2인칭으로대면하게된다.데이터로그를먼저접하게되는것이다.그를앎의과정에서2인칭은생략된다.우리는누구에대해이야기할뿐,누구에게이야기하지않는다.2인칭이3인칭으로대체됨에따라깊이,해석,그리고성찰은사라지게되었다.


관음과탈의시대,
서로를흡수하는액세서리로전락하다

2인칭관계의불안과책임을회피해스크린뒤에서관음하고관음당하는것,이것이디지털시대의신종사회계약이다.시선강간,음흉한시선으로상대방에게성적수치심이나모욕감을느끼게한다.인간의원초적본능은관음을원한다.관음의성찰은인간관계의이해를위해중요한시선,즉훔쳐보기에대한성찰로이어진다.관음은보는즐거움이아니다.관음의다른이름은훔쳐보기다.보는대상의무언가를훔치는시선이다.모든훔쳐보기는기본적으로보는대상의프라이버시를훔친다.훔쳐보기를당하는사람은자신의비밀을지킬권리,타자의판단으로부터자유로울기회를빼앗긴다.훔쳐보기는금지된시선이다.훔쳐보는이에게시선을되돌려줄수없다.
디지털시선에는흔적이남긴다.좋아요,유튜브영상,웹주소,광고알고리즘과빅데이터에저장되는것이다.네가나를보고있음이아닌,그가나를보고있음을아는것이다.소셜미디어의유저들은서로훔쳐봄으로써서로를쓰다듬는다.인간은훔쳐보기를실현하기위해탈을발명했다.탈의기능은착용한사람을향한시선의차단이다.탈을쓴자의시선은일방통행을보장받는다.아이콘택트를절단하는셈이다.사람간의관계형성에는상호인지라는기본조건,즉나를향한시선의정체를파악할수있어야한다는조건이다.알아보기의약속이다.탈은그약속을거부하고,인간을캐릭터로만든다.
탈의시대는곧관음의시대를뜻한다.현대인의탈을쓴자기자신의캐릭터로전시한다.디지털패션은많이입으면입을수록노출된다.많은패션을걸치고있을수록다양한무리에소속될수록더많이노출될수있다.현대사회에만연한타인의액세서리화,더많은친구와팔로워를축적할수록나는인맥부자가된다.탈의패션의시대에는왜지인을수집하는가.네트워킹의규모자체가내자산이자정체성이된다.내가축적한지인은내존재감의성장을과시하는도구가되기때문이다.누군가를알아가는가장쉬운방법중의하나는그에게내가익숙한정보를입히는것이다.


조명중독사회
조명이눈을대체함으로써아이콘택트는사라진다

좋아요,클릭,조회수로흔적을남긴시선은그대상을더욱노출시킨다.시선은조명이되어대상을밝히고더많은시선,더강한조명을유도한다.조명은인간의캐릭터화를가속화하는요소중의하나다.조명아래의사람은정체성의자유를잃는다.따라서개인은타인의시선에점점중독된다.시선이조명으로대체되는순간이다.노출의목적은진심이아니라관심이다.진실도유행을탄다.더많이보여질수록더진실하고더존재하는것이다.노출은진실과존재를구성하는데,시선이그관계와진실을구성하는것이다.
누구든지노출을통해서부와명예를얻을수있다는‘유튜브드림’의그림자에는적자생존이아닌흥(興)자생존,즉재미있는사람의생존이라는새로운경쟁원칙이가동된다.재미없는채널은조회수를올릴수없고,조회수가없는채널은존재할수가없다.유튜브의시선이자본과직결되는것이다.많이보여지는것이많이버는것이다.관음,노출은새로운형태의소비,생산활동으로인정된다.서로에게3자로남으며서로를소비한다.유튜브생태계에서는조명이많이비춰지는곳이곧비옥한땅이다.노출은선택이아닌필수다.
현대문화는조명이곧생명임을자각한다.현대인은인기와성공을위해조명을원하기도하지만근본적으로생존을위해조명을필요로한다.우리는서로를소비하고나스스로도소비당하고자한다.오늘날개인은타자의시선에중독된다.이는곧빛에중독됨을의미한다.더진실되고더가치있고더존재하기위해끝없이조명을갈구한다.조명에는끝이없다.나와다른패션보다더많은빛을받아야나의존재가안전해진다.패션화된이념은다름을욕할지언정틀림을비난하지않는다.나와다른사람의눈을들여다보는법을망각한다.무한한조명경쟁속에서모든것은가시성의범위안으로들어온다.빛의과다속에서나는내기호에맞는현실을조작할권리를남용하게되며,이와동시에그림자속에숨을권리를잃게된다.조명아래의나는내패션,내캐릭터에의해대체된다.내가애용하는커뮤니티와자주보는사이트는곧나에대한조명이되어돌아와나를어떠어떠한사람이라고결정해버린다.내가자각하고있지않더라도나는나를보는군중의액세서리역할에충실해야하는것이다.
포스트모던사회는이해에는박하고관용에는관대하다.2인칭의부정성이소실된가운데이해는흡수의의미로전락했다.다름은이해할필요없이무시하면그만이다.타자의눈을들여다보기보다는동일자에게조명을비춰주고흡수한다.그렇기때문에포스트모던사회는모든것을관용하고자한다.조명전쟁은다름을인정하는데그치지않고다름의고립을적극적으로권장한다.개인은타자를해석하고이해해야할책임감으로부터해방된다.개인은각각의가치와기준을지닐수있다는면에서는평등할지몰라도,노출되는정도에있어서는평등하지않다.조명이눈을대체함으로써아이콘택트는사라진다.


뜯어보기를강요하는포스트모던사회

장난감로봇을가지고놀던아이는언젠가로봇을분해하게된다.그순간장난감을향한아이의시선은불가역적인변화를거친다.로봇을가지고노는아이에게로봇은개체성을지닌다.부품을잃어버리면로봇도불안해진다.부품더미와로봇은분명어떤의미에서동일하다.분석을하기위해서는분석대상의가분성을인지해야한다.분석의시작은개체의가분성을보는시선,즉뜯어보기다.
오늘날뜯어보기는중요한시선이되었다.포스트모더니즘은뜯어보기를권하는데그치지않고강요한다.조명중독사회에서는타인이나를보도록강제하는것은어렵지만내가나와같은패션의무리를비춰줌으로써나에대한시선을유도하는것은쉽다.오늘날인터넷커뮤니티와조명전쟁의시대를경험하지못한사르트르는그가생각한관념의사실성이얼마나물렁해질지예견하지못했다.개인의형상은관례라는사실성의벽에둘러싸여있다.이관례의벽은사회전반적으로통용되는상식,가치관,기대치등을아우른다.그러나뜯어보기를강요하는포스트모던사회에서객관적사실성은커뮤니티의기호에따라뜯기고뜯겨가루가된다.인터넷커뮤니티는사실성의벽을초월하고,오히려벽을가루더미처럼주물럭거린다.
인터넷에서는음모론자들이너무나도쉽게군집한다.그들은숫자를통해스스로에게정당성을부여한다.또한타자로부터보호된밀폐된공간을형성함으로써만장일치의환각을구현한다.오프라인에서와는달리진실의사실성에구애받지않는것이다.그들은모래가가루를원하는모양으로만들어내듯이그들만의사실성,즉‘가루진실’을제조해낸다.오늘날우리는진실을쇼핑한다.문화는진실의의미를가루처럼주물럭거린다.소셜미디어유저는자연스럽게사실성의가루화에일조한다.이는모두가자발적으로자신의정체성을디지털패션으로공개하고모두가서로를감시할수있는세상이도래했기때문이다.개인의디지털패션에는자신이세상을뜯어보는시선에대한정보도포함되어있다.비슷한패션의사람들은서로를유인한다.아이콘택트의관계수립을생략하고데이터대데이터로서만나는온라인프로필의관계에서는유상성이곧친밀함의척도가된다.나는본능적으로나와같은시선의사람들을물색하게된다.
호감은진실의척도가된다.소셜미디어의그룹은동종성을띤다.애초에비슷한사람들끼리서로를SNS친구나팔로워로추가했을가능성,가치관이확연히다른사람은그런글에아예반응자체를안하기때문이다.의견은섞이지않고분리된다.알고리즘의발전은이러한현상을부추긴다.온라인상의시선은갈수록정밀한흔적을남긴다.내가무엇을보고있다는정보자체가데이터로서기록된다.유저입장에서는알고리즘의손을거친시야가곧현실그자체가된다.내가진실로보는것이곧진실이된다.진실은자신에대한시선을느끼고그시선을닮아간다.


포스트모던양치기소년의
진실스러움과그럴싸함

전문가의시선으로바라본너도밤나무와느릅나무는확연히다르다.전문가의시선은전문적인맥락에서비전문적인맥락으로유통된다.뜯어보기의시선에따라그시선을공유하는구성원들의언어가달라진다.일반인은전문가의뜯어보는시선을닮고자노력한다.포스트모던사회에서는어떨까?뜯어보기는제역할을톡톡히했다.더군다나뜯어보기는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