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을엔 춘천에 있었고 겨울엔 강릉에 있었다.
어디에도 너는 없고 폭설만 내렸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
서늘한 무덤의 세계에서 기록한 사랑과 회한
어디에도 너는 없고 폭설만 내렸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
서늘한 무덤의 세계에서 기록한 사랑과 회한
걷는사람 시인선 72번째 작품으로 전윤호 시인의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이 출간되었다. 전윤호 시인은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그만의 서정적인 시세계를 일궈 왔다. 강원도 정선이 태생인 그는 주로 친근한 토속적 풍경을 농도 짙은 색채로 그려내며 “척박한 오지의 풍광과 풍습, 사람과 삶, 언어와 기억을 담아”내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그의 시집은 섬세한 붓으로 그려낸 풍속화의 도록이다. 여러 시편에서 그는 지역성에 담긴 공간과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만의 실존적 방식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전윤호 시인은 무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무덤 연작시에서 보이는 여러 행위와 언술은 시인이 현존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현대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더 좋은 묘지”를 만들 때 시인은 벽돌을 지고 벽을 칠한다. 그들이 무자비한 자본으로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그는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훔쳐도 훔쳐지지 않는/천 년 무덤”(「종이무덤」)을 “쓸” 뿐이다. “파라오도 천민도/평생 무덤을 만”(「무덤족」)드는 것처럼, 그는 본인의 존재 방식을 무덤의 세계로 펼쳐 보인다. 그가 천착하는 무덤의 실존적 사유는 삶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데, 시인은 일찍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이치를 깨달은 듯하다. 역설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은 이번 시집을 ‘실패한 연애의 형식’이라고 명명한다. 시인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 시편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만의 도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은 “오징어 내장이 산처럼 쌓이고/도루묵을 삽으로 퍼서 팔던 시절”(「거진」)에서부터 이제는 “오징어 배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누군가 등 돌리고 걸어”(「강릉에는 바다가 없었네」)가는, ‘바다가 없는’ 쓸쓸한 강릉까지 이어진다. 시인이 호명하는 여러 공간과 장소에는 상실된 주체들이 짙은 그리움으로 유유히 흐른다. 이 시집에서 “도원에 대한 탐구가 보이지 않”(해설, 우대식)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들이 소멸한 도원을 호명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강릉, 거진, 홍련암, 물치항 등의 공간”을 그리는 시인의 물기 어린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여전히 공간과 시간을, 세계와 내면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행자다. 그는 그저 시가 부는 방향으로 걷고, 시가 보이는 수평선을 따라 걷는다. 오직 시만이 자신을 자유로 인도하는 듯이 걷고 걷는다. “가장 간결하고 쉬운 언어”의 방식으로 “가장 멀리, 깊이 들어간다”(추천사, 고영민). 움푹한 발걸음마다 피어나는 시들로 그는 “날개에 힘을 붙여/동천을” 날아오를 것이다. 그만의 “또 다른 우주”(「비오리」)로 나아갈 것이다.
전윤호 시인은 무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무덤 연작시에서 보이는 여러 행위와 언술은 시인이 현존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현대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더 좋은 묘지”를 만들 때 시인은 벽돌을 지고 벽을 칠한다. 그들이 무자비한 자본으로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그는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훔쳐도 훔쳐지지 않는/천 년 무덤”(「종이무덤」)을 “쓸” 뿐이다. “파라오도 천민도/평생 무덤을 만”(「무덤족」)드는 것처럼, 그는 본인의 존재 방식을 무덤의 세계로 펼쳐 보인다. 그가 천착하는 무덤의 실존적 사유는 삶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데, 시인은 일찍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이치를 깨달은 듯하다. 역설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은 이번 시집을 ‘실패한 연애의 형식’이라고 명명한다. 시인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 시편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만의 도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은 “오징어 내장이 산처럼 쌓이고/도루묵을 삽으로 퍼서 팔던 시절”(「거진」)에서부터 이제는 “오징어 배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누군가 등 돌리고 걸어”(「강릉에는 바다가 없었네」)가는, ‘바다가 없는’ 쓸쓸한 강릉까지 이어진다. 시인이 호명하는 여러 공간과 장소에는 상실된 주체들이 짙은 그리움으로 유유히 흐른다. 이 시집에서 “도원에 대한 탐구가 보이지 않”(해설, 우대식)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들이 소멸한 도원을 호명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강릉, 거진, 홍련암, 물치항 등의 공간”을 그리는 시인의 물기 어린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여전히 공간과 시간을, 세계와 내면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행자다. 그는 그저 시가 부는 방향으로 걷고, 시가 보이는 수평선을 따라 걷는다. 오직 시만이 자신을 자유로 인도하는 듯이 걷고 걷는다. “가장 간결하고 쉬운 언어”의 방식으로 “가장 멀리, 깊이 들어간다”(추천사, 고영민). 움푹한 발걸음마다 피어나는 시들로 그는 “날개에 힘을 붙여/동천을” 날아오를 것이다. 그만의 “또 다른 우주”(「비오리」)로 나아갈 것이다.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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