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 걷는사람 시인선 77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 걷는사람 시인선 77

$12.00
Description
“연밭에 발목 빠진 낮달이 등 토닥여 주는 오후,
그사이 눈물 봉지 같은 연꽃이 또 터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전하는 심심한 애도
‘모티(모퉁이)’에서 발동하는 해학과 풍자의 받개질
걷는사람 시인선 77번째 시집으로 서하 시인의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가 출간되었다. 1999년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시집『아주 작은 아침』 『저 환한 어둠』 『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을 냈으며 제33회 대구문학상, 제1회 이윤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서하 시인은 우뚝하고 씩씩하게 지난날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얘기를 펼쳐내는가 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생, 팬데믹이 불러온 미증유의 시대 상황을 예리하고도 환상적인 장면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꿈에 마스크를 쓴 아이를 낳았다 하면 믿겠니”(「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라는 표현은 섬뜩한 인류의 오늘을 초상화처럼 그려내고, “죽음도 숨을 쉬는지/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혼자 쓰는 죽음이 점점 빼곡해집니다”(「부고를 받고」)라는 대목은 팬데믹이 가져온 병과 죽음의 일상화를 상기하며 ‘쓰는 일’의 사명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그런 한편 서하 시인이 불러내는 옛이야기는 애잔한 눈물과 천진한 웃음으로 뒤범벅돼 있다. 수학여행 갈 형편이 안 되어 어른들 심부름으로 하루를 보내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내 머리칼 잡아당기는 동생을 엉덩이 받치고 있던 손으로 한 대 쥐어박았더니 버려진 오후가 앙앙 울었”(「Cut-in」)던 장면을 소환하는가 하면, “소여물 써는 작두를 옮긴 한 모티”에서 태어나 “본적도, 현주소도 다 모티”(「이름·1」)로 살아왔던,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구석에서의 삶을 강요당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퍽 담담하게, 구성지고도 위트 있게 그려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굳건한 남성우월주의를 향해 대찬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벌레가 되더라도 수놈이 되겠다던 고모, 주야장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불알교의 탱탱한 신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불알교」)라는 구절에서는 통쾌함과 쓴웃음이 교차한다.
서하 시인의 위트는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현한 「눈 내리는 날」이 절창이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시적 화자가 불현듯 찾아온 실연에 낙망하며 “부글거리는 내 속을 확 디비시 놓은 담임 샘이 엄청시리 미깔시럽었다 (…) 코바늘로 콕콕 찌리고 싶었다”라고 하는 것이나 “찔룩거리던 그날맹크로 배긑에는 아작아작 눈이 온다”, “수학 샘도 담임 샘도 인자는 갱죽거치 다 늙어뿌껬다” 같은 시구를 읽노라면 따뜻하면서도 촉촉한 감성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삶 도처에 널린 죽음의 상징과 의미를 재해석한 시들도 눈에 띈다. 그는 대놓고 “다정다감하지 않지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지 않는 해골이 나는 좋다”(「죽은 소의 뿔을 만지다」)고 얘기한다. 소나 고양이 같은 죽어 있는 생명체가 등장하는 시에서는 죽음과 삶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그려내고, 생명체끼리의 존중과 애도를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해설을 쓴 이성혁 평론가는 “서하의 시는 삶에서 죽음을 찾아내고 죽음에서 생명을 이끌어내면서 써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 쓰기는 결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일로 나아갔다. 이렇게 써진 시에는 전도된 시간, 거꾸로 매달린 시간이 응축되어 있을 터였다. 거꾸로 매달린 저 고드름처럼 말이다.”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서하의 시학을 ‘거꾸리 시학’이라고 일컫는다.
장옥관 시인이 ‘추천사’에서 밝힌 것처럼 “해학과 풍자의 겨드랑이에 슬쩍 끼워 넣는 아련하고 아릿한 슬픔의 기미”를 이 한 권의 시집에서 읽을 수 있다.
저자

서하

경북영천에서태어나1999년《시안》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아주작은아침』『저환한어둠』『먼곳부터그리워지는안부처럼』을냈으며33회대구문학상,1회이윤수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본적도현주소도모티이다
오랜만에걸려온전화
이름·1
이름·2
삶은,계란입니다
한신발이있었습니다
테니스공과정수리
끝은끝이라말하지않는
바람이비닐봉지를펄럭이게하듯
파란하늘에흰구름이
나무칼로귀를베어가도모를
한숨푹울고나면
고드름
바닥을열어바다를꺼내다

2부하다만기도
Cut-in
눈내리는날
불알교
통학길
삼천리자전거
두손을포개어
죽은소의뿔을만지다
맨발

시계초

천축잉어
어느날

3부비는누구의팔에이끌려여기까지왔을까요
풍경
반반
풍각소머리국밥집
숨쉬는전화
우산고로쇠나무
느닷없이
호스피스병동역
시도때도없이굿모닝!굿모닝!
반은보이고반은보이지않았네
플라타너스는얼마나좋을까요
부고를받고
불량과반칙과변덕을
단풍이옷갈아입을때

4부맨발의물총새처럼
로드킬
미끄럼틀은미끄러지지않고
지슬못
구간단속중
거꾸리
정말그럴까
말할수있는비밀
입추
정기사는버스를몬다
탁족
추분
웃는수레
지금거신번호는없는번호입니다

해설
삶과죽음의공존과‘거꾸리시학’
―이성혁(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걷는사람시인선77서하『외등은외로워서환할까』출간

“연밭에발목빠진낮달이등토닥여주는오후,
그사이눈물봉지같은연꽃이또터진다“

죽음과삶의경계에서전하는심심한애도
‘모티(모퉁이)’에서발동하는해학과풍자의받개질

걷는사람시인선77번째시집으로서하시인의『외등은외로워서환할까』가출간되었다.1999년《시안》신인상을받으며등단한시인은그동안시집『아주작은아침』『저환한어둠』『먼곳부터그리워지는안부처럼』을냈으며제33회대구문학상,제1회이윤수문학상을수상했다.
서하시인은우뚝하고씩씩하게지난날의상처를딛고새로운이름으로살아가는자신의얘기를펼쳐내는가하면,삶과죽음이공존하는인생,팬데믹이불러온미증유의시대상황을예리하고도환상적인장면으로보여주기도한다.
“꿈에마스크를쓴아이를낳았다하면믿겠니”(「오랜만에걸려온전화」)라는표현은섬뜩한인류의오늘을초상화처럼그려내고,“죽음도숨을쉬는지/추깃물이뽀글거립니다//혼자쓰는죽음이점점빼곡해집니다”(「부고를받고」)라는대목은팬데믹이가져온병과죽음의일상화를상기하며‘쓰는일’의사명을다시금환기시킨다.

그런한편서하시인이불러내는옛이야기는애잔한눈물과천진한웃음으로뒤범벅돼있다.수학여행갈형편이안되어어른들심부름으로하루를보내던어린날을떠올리며“내머리칼잡아당기는동생을엉덩이받치고있던손으로한대쥐어박았더니버려진오후가앙앙울었”(「Cut-in」)던장면을소환하는가하면,“소여물써는작두를옮긴한모티”에서태어나“본적도,현주소도다모티”(「이름·1」)로살아왔던,그저딸이라는이유로구석에서의삶을강요당했던자신의이야기를퍽담담하게,구성지고도위트있게그려낸다.그는여기서그치지않는다.여전히굳건한남성우월주의를향해대찬쓴소리도마다하지않는다.“다시태어나면벌레가되더라도수놈이되겠다던고모,주야장천대를이어내려오는불알교의탱탱한신심은도대체어디서나오는지”(「불알교」)라는구절에서는통쾌함과쓴웃음이교차한다.
서하시인의위트는시집곳곳에서발견되는데특히경상도사투리를맛깔나게구현한「눈내리는날」이절창이다.담임선생님을짝사랑하던시적화자가불현듯찾아온실연에낙망하며“부글거리는내속을확디비시놓은담임샘이엄청시리미깔시럽었다(…)코바늘로콕콕찌리고싶었다”라고하는것이나“찔룩거리던그날맹크로배긑에는아작아작눈이온다”,“수학샘도담임샘도인자는갱죽거치다늙어뿌껬다”같은시구를읽노라면따뜻하면서도촉촉한감성으로마음이충만해진다.

삶도처에널린죽음의상징과의미를재해석한시들도눈에띈다.그는대놓고“다정다감하지않지만이래라저래라훈수두지않는해골이나는좋다”(「죽은소의뿔을만지다」)고얘기한다.소나고양이같은죽어있는생명체가등장하는시에서는죽음과삶이어떻게공존하고있는지를그려내고,생명체끼리의존중과애도를처연하고도아름답게그려낸다.
해설을쓴이성혁평론가는“서하의시는삶에서죽음을찾아내고죽음에서생명을이끌어내면서써지는것이었다.그리고그시쓰기는결국시간을거슬러올라가잃어버린기억을되찾는일로나아갔다.이렇게써진시에는전도된시간,거꾸로매달린시간이응축되어있을터였다.거꾸로매달린저고드름처럼말이다.”라고강조하며,이러한서하의시학을‘거꾸리시학’이라고일컫는다.
장옥관시인이‘추천사’에서밝힌것처럼“해학과풍자의겨드랑이에슬쩍끼워넣는아련하고아릿한슬픔의기미”를이한권의시집에서읽을수있다.

추천사

뿔은우뚝하다.씩씩하다,튼튼하다.단어와단어,행과행사이를성큼성큼건너뛰는시의보폭이경쾌하다.누가소의걸음이느릿하다고했던가,개구쟁이딱지뒤집듯이말의의미를뒤집는시원시원한솜씨가있다.해학과풍자의겨드랑이에슬쩍끼워넣는아련하고아릿한슬픔의기미도얼핏감지된다.‘정례’라는이쁜이름뒤에서한낱‘모티’로불리던성장사,“주야장천대를이어내려오는불알교”를향해“온힘다해받개질”을꿈꾼걸까.“참간절히,/최선을다해”뛰엄뛰엄속엣말꺼낸게이번시집이다.어둡고축축한어제의골짜기를온전히견뎌냈기때문일까.“결코끝은끝이라말하지않는”삶의이슥함을보듬을줄아는시선의곡진함이따스하고눈물겹다.일상의작고여린것들에게눈길던지며그사연에다정함을버무려내놓은가정식백반.신축년소띠해에영천땅에서태어나생의징검다리를우직하게내딛는우보牛步가참으로믿음직하다.
장옥관시인

책속에서

같은해에한지붕아래두아이받아내면삼신할미토라진다는할머니말씀,된똥누듯쏟은첫딸,아버지는예수님과동창이라며뜰정庭,예도례禮,‘정례’라이름지었지하나할머니는이름조차아까웠던지그저“모티야”로불렀다제몸에서나온실로저를가두는누에고치처럼큰동서피해외양간모티에서몸풀었던엄마,모티는간도쓸개도면목도없었다
그래,나는본적도,현주소도다모티이다
-「이름·1」부분

천적만난장끼는덤불에머리처박고
엉덩이를하늘쪽으로높이올려숨는다지
숨어도다숨지못하는꿩처럼

외면이먼저인사를하는자리

훌훌걷어낼수없는저외면을여백이라할수있을까?
이해관계로얽힌법정도아닌데,
불편한마음둘데가없다

그래,외등은외로워서환할까
-「어느날」부분

‘이OO시인별세,코로나로조문사절’

펑펑내리는저눈발에뛰어든
부고는
그이의유고遺稿였을까요
도무지믿기지않은그부음,
떫은땡감베어문듯생목올라

‘서하시인사망,코로나로조문사절’

나의유작을중얼거려봅니다
이승을벗듯이옷가지벗고
뚜껑없는관곽으로들어가누우니
죽음이빙둘러쌉니다

(중략)

죽음도숨을쉬는지
추깃물이뽀글거립니다
-「부고를받고」부분

검은고양이한마리가버려진걸레처럼누웠다

저죽음,날것이다

가족인지연인인지흰고양이한마리다가오더니
코를연신킁킁댄다

언제부음이갔는지
몇마리의고양이가와서
코로주검을어루만진다

맨발로뛰어나온
울음이부글부글부푼다

어둠이파도치는
입관과하관사이
주검이길을꽉물고있다
-「로드킬」전문

불꺼진윗목,콩나물시루에흘러내리는물소리처럼

밥물끓는것처럼

맨발의물총새처럼

쉼없이안달난강물처럼

산이늘푸른파도로출렁이는것처럼

늙은여치소리가파래지는것처럼

벼자라는소리듣고매미가우는것처럼

낮달이손수건을꺼내흔드는것처럼

머리풀던저녁연기가잠시망설이는것처럼

더운데덥지않은것처럼

단추를채우는입추다
-「입추」전문

매일아침저녁으로전화하던엄마의부지런함이하늘나라에간다고해서달라질까?

혹시나해서엄마를삭제하지않았다아침저녁은아니더라도이틀에한번,아니일주일에한번,그도아니면한달에한번이라도걸어주겠지했는데무소식이다

(중략)

“지금거신번호는없는번호입니다다시확인하신후걸어주십시오”

아주새파란목소리다그새젊어지셨나?
빤히있는데없단다있는게있는게아니고없는게없는것아닐까불퇴전의허기만남고사라져버린단골식당처럼아득하다하늘나라에빨간공중전화하루빨리설치하라고재촉이라도해야겠다
-「지금거신번호는없는번호입니다」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