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롱지 설화 - 걷는사람 시인선 84

모롱지 설화 - 걷는사람 시인선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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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84
정동철 『모롱지 설화』 출간

“야! 이늠아! 구랭이는 업이여
업을 잡아서 묵으먼 벌받는 거여”

전라도 방언으로 생생하게 복원한
신화 같은 옛이야기에 깃든 해학과 미학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6년 광주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동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모롱지 설화』가 걷는사람 시인선 84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을 통해 “살아 숨 쉬는 것들에 대한 경배와 존엄”을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았던 시인은, 이번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고향 모롱지(현재 전주시 효자동 서곡지구)의 이야기와 언어를 기억하고 복원해낸다. ‘지금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쓸 수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절한 마음으로 이 시집은 시작되었다. 시집을 펼치면 가난 속에서도 자연을 향한 경외를 잃지 않았던, 하나의 공동체로서 마을을 일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한 구어체로 들려온다.
시집 『모롱지 설화』는 시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모롱지 말 읽는 재미가 있다. 어린이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인 ‘뽀로로’가 항간의 평가처럼 국적불명의 짜깁기된 언어가 아니라 ‘모롱지’라는 동네에서 흔히 쓰는 모롱지 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이다. 아마도 ‘뽀로로’를 표준어로 풀이한다면 ‘후다닥’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듯 시집 속에서 ‘가까스로’는 ‘포도시’, 모닥불은 ‘모더락불’, ‘목말’은 ‘꽃 받쳐 주기’, ‘실속 있다’는 ‘옹구락지다’, ‘헤엄’은 ‘시엄’이라는 모롱지 말로 발화(發話)되어 우리를 해학 넘치는 전라도의 옛 마을 한복판으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이름 기운이 세다는 이유로 이름을 팔고 ‘판니’로 불린 김강님 아주머니가 있고(「팥니」), 언챙이도 낫게 해 준다는 몽혼주사 한 방을 애타게 찾던 석찬이 형이 있고(「몽혼주사」), 쥐약을 잘못 먹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제동이가 있고(「제동이」), 모롱지의 안다니 박사 안수 삼촌(「요시롱 캥」 등)도 있다. 그런 한편, 집안에 우환이 들면 잔밥을 먹여 악귀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영험한 존재 잔밥각시(「잔밥각시」) 이야기는 인간의 신탁(神託) 의지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 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사유하게 한다. 독자들은 진짜인지 지어낸 것인지 헷갈리는, 미신인지 믿음인지 아리송한 이야기에 푹 빠져 웃음과 눈물을 교차하게 된다.
해설을 쓴 장예원 평론가의 표현대로 정동철 시인에게 『모롱지 설화』는 지나가 버린 사소한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고 보유하며 되살아나게 하는 작업이다. 이는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들의 삶이 죽은 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 우리는 개별자가 아니라 신비스런 방식으로 세계와 사물들과 교감하는 존재라는 본질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망각이라는 시간의 폭력에 그가 저항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모두가 ‘미래로 미래로!’를 외치는 이 시대에 정동철 시인은 안간힘을 다해 과거로 달음박질치며, 인간의 원초적 위안과 향기가 남아 있는 오래된 미래, 즉 과거로 갈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하상만 시인은 “새로움에 중독된 우리는 우리가 지워 가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부끄러워서 내가 지우고 있었던 사투리로 시인은 그때를 완벽히 복원한다.”고 얘기하며 이 시집이 ‘그 말과 그 억양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리움 가득 담아 그려냈다고 상찬한다.
저자

정동철

전북전주에서태어나2006년광주일보와전남일보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나타났다』를냈으며,미얀마민주화를지지하는연대시집『붉은꽃을내무덤에놓지마세요』를영문번역했다.‘작가의눈’작품상,‘불꽃문학상’(대표수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그놈똥구녁

말의탄생
도둑질
팥니
제동이
서울말
그놈똥구녁
개새끼들
복순이네집
무아로
뽀로로
먹구렁이업보
엄마는꽃등을달고

2부혼불

몽혼주사
늘매기
대한늬우스
혼불
모더락불
연옥분
옹구락진명길이
정지낭거리
샛밥
정지낭삼시랑
물외농사
장마

3부요시롱캥

요시롱캥
한물
장마씨서리
꽃받쳐줄게
송장시엄
물속을걷는새
뱀장소
별똥
황구렁이울음
수박똥
알먹고꿩?
구렁이비

4부잔밥각시

잔밥각시
긴양말의찬이
곱똥쇠할아버지
참게잡기
울력다짐
섶다리놓기
다리밟기
꿩고기뭇국
떼보수남이
토끼망태
뱅이
겨울밤
석찬이형

해설

과거로갈수있는미래를꿈꾸다
-장예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돌이켜보니
내어린시절이자리한모롱지는
설화와근대가공존하는공간이었다
이른바,‘희망의80년대’를바라보고
산업화를향해폭주하던시절
오지라는이름으로위리안치된모롱지에서
건방구진여우와낭군을잃은황구렁이와
잔밥각시를이웃하고살았다.
오래전잊힌연인처럼
다시는만날수없는.

2023년2월
정동철

추천사

지방에서올라와수도권에서사는나는햇수를세어보니고향에서산날보다이제고향을떠나산지가더오래되었다.그동안사투리를고치기위해애를썼는데단어는어찌어찌하여고치게되었으나억양만큼은아직어쩌지못하고있다.조심조심이야기하고있으나술에취하면그억양이제대로뻗어나온다.그말과그억양이아니면표현할수없는세계가있다.언어를잃어버리면사실그때를잃어버리는것이다.표준어라고일컬어지는이방의언어로는「몽혼주사」의석찬이성도,「혼불」의풍경도제대로보여줄길이없다.그때의사람들을그려보는방법은그때의언어가아니면안된다.

어디까지가가족이냐고물으면나는가족그림을그려보라고한다.거기에그릴수있는사람까지가가족이다.아이들에게그림을부탁하면할아버지,할머니를그리는아이가드물다.그때는할아버지,할머니가가족이었다.동네사는형들도가족이었다.「연옥분」의이야기를읽으면누군가의죽음이내꿈과연결되던시절이있었다.그렇게연결된사람은수십년간만나지못해도가족이었다.꿈속에찾아온성님을보러마침내초상에도착한연옥분씨가업어키우던뱅도가반백이되었다는것을발견한다.그렇게오래떨어져있어도가족이었다.상주보다더서러운울음이가족을증명한다.

현대사회는가족의범위가좁아져서내가족은나밖에남지않아서우리가외롭게사는것이아닌가,생각해보게된다.어떤시집은색다름을불러일으킨다.새로움에중독된우리는우리가지워가는세계가있다는것을모르고지낸다.부끄러워서내가지우고있었던사투리로시인은그때를완벽히복원한다.이시집은그리움을불러일으킨다.그리움을들여다보고싶은사람에게이시집은너무나소중하다.
-하상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