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전태일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한권상진시인의시집『노을쪽에서온사람』이걷는사람시인선87번째작품으로출간되었다.권상진은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자연과사람사이의관계등‘관계’를섬세히살펴볼줄아는시인이다.그는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에대해“나를접었어야옳았다/이미읽은너의줄거리를다시들추는일보다/아직말하지못한내뒷장을슬쩍보여주는일/실마리는언제나내몫이었던거다”(「접는다는것」)라며남을기어이접게만들려는태도가아닌스스로를먼저접는것이옳았다는것을‘책을접는행위’에비유해보여주고있으며,자연과사람사이의관계를성찰하는시안도깊다.“보폭이같은사람들과웃고울다가누가걸음을멈추면그이를땅에심게되는데거기가바로별의입구/(중략)/그리운눈을하고가만히보면은하수까지가득찍힌발자국들”이라며사람사이의그리운마음과그거리를자연을통해비유하며아름다운언어로권상진만의시적세계관을펼쳐보인다.
또한이시집의표제작인「배웅」에서는“진료소견서를받아들고가는/4번국도는어느행성으로가는긴활주로같았다”라고표현하며“온통붉은서쪽을바라본다//노을쪽에서온사람처럼/노을쪽으로가는이처럼”이라고말한다.아픔속에서도피어나는절경의순간을포착하며,삶의숭고함을,신비로움을담아낸다.
추천사를쓴성윤석시인은“문장으로세상을샅샅이들춰보고그곳의시적인식과사람의태도를찍어올리는데고수인이시인의시집을읽어보라”며“걸어들어간사람들마다/눈사람이되어나왔지/더러들어가지않은사람들조차도”(「눈사람」)라는대목처럼“인간과인간을연결하면서대상과나,대상과세상,대상과타인을대할때어떤인간의태도가아름다워질수있는가를발견하게될것”이라고말한다.
정훈문학평론가는권상진의작품을“사람과말의표면에서어른거리는아지랑이같은사태들의문을열고기꺼이바라다보고자”하는시라며,이런그의시작법은“윤리나이념의자장(磁場)밖에서이루어지는순정한실천”이며“생명의가장자리에서복판으로뛰어들려는장엄한의식”이라고까지말할수있다고한다.그런데그의식은딱딱하거나형식적이지않고부드럽고내향적이며,안으로제몸과마음을접으려는것이아니라“그대를향해섬세하게기울어지려는방식”이라고한다.“느닷없이눈을부시게하는형광등이아니라구석진자리은은하게덥히는백열등의누런빛처럼천천히스며들고자”하는,그런시인의시를읽었다며이책을권한다.
시인의말
돌이켜보니
가장진절머리나는것도
눈물나게그리운것도
결국엔사람이었다
2023년4월
가짜시인
책속에서
가능한한입을다물기로했어
예와아니오만으로이루어진대답이
변질을지나창조에닿았다면
그건대답이아니라질문의문제
골목은사계절내내눈이내렸지
걸어들어간사람들마다
눈사람이되어나왔지
더러,들어가지않은사람들조차도
---「눈사람」중에서
잠시접어두라는말은
접어서경계를만드는게아니라
서로에게포개지라는말인줄을
읽던책을접으면서알았다
나를접었어야옳았다
이미읽은너의줄거리를다시들추는일보다
아직말하지못한내뒷장을슬쩍보여주는일
실마리는언제나내몫이었던거다
---「접는다는것」중에서
나는은유된다
빛의뒤편에서혹은너의시선너머에서
---「숨은그림찾기」중에서
지지않는법을배우기위해
장검처럼김수영을뽑아들었지만
비어가는쌀독,그빌어먹을먹이때문에
끝없이김수영을오독하는밤
끝내돌아눕지않는나를기다리던
네루다와체게바라가
지루한표정으로서로에기대어
졸고있다
---「김수영을읽는저녁」중에서
길가쉼터에차를세우자
코스모스화단에걸터앉던엄마
온통붉은서쪽을바라본다
노을쪽에서온사람처럼
노을쪽으로가는이처럼
노을처럼
사위어가는당신가슴에얼굴을묻는다
그러쥔옷섶에서구름의멍울들이잡히고
눈뜨면그속에가득한별들
하늘하나를통째로품고사는사람이있었다
몸속먹구름이어느기억을지나고있는지
내눈동자속으로뚝뚝떨어지던별
---「배웅」중에서
보폭이같은사람들과웃고울다가누가걸음을멈추면그이를땅에심게되는데거기가바로별의입구
일생딱한번축복처럼열리는작은문
함께걷던이들이눈망울에비친기억들을문앞에떨궈놓고이내총총흩어진다
그런밤은먼하늘에서배를한척보내와무덤과별들사이에환하게정박해있다가
그믐이되면그달무덤까지내려와멈춘걸음들을서쪽하늘로데려간다
그리운눈을하고가만히보면은하수까지가득찍힌발자국들
---「별의입구」중에서
평생모아놓은웃음몇개를밀어내며
내손은자꾸만눈물을만지작거린다
어때거긴?빈곳을향해물었을때
국화꽃틈에서누가씨익웃는다
눈이마주친나는,꺼내려던눈물을도로집어넣으며
예의처럼입꼬리를슬쩍들어올린다
---「꽃틈에서누가」중에서
집주인에게미안하다
펼쳐진노트에눌러쓴마지막줄은
종일문질러도지워지지않는다
그의전생을몇장의종량제봉투에나눠담고
오존살균기의전원을끄자
고독의냄새까지말끔히지워진빈방이완성된다
---「빈방이라는악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