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춤

이방인의 춤

$15.00
Description
무수한 타자의 귓속말을 듣기 위해 떠나는 여행
시인 김수우가 들려주는 치유와 사색의 길

“전설은 전설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전설을 선물하지”
시인 김수우의 에세이 『이방인의 춤』이 걷는사람 에세이 2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우는 시집 『뿌리주의자』, 산문집 『쿠바, 춤추는 악어』등을 내며 삶의 근원과 생명의 뿌리를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이번 에세이는 공존과 환대, 타자성의 회복을 기원하며 써 내려갔으며, 한 편의 서사시 혹은 여행기처럼 독자의 눈을 이끈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자전적 요소를 담아 세계의 단면을 그려낸다. 쪽거울 같은 단면들이 산마루가 되기도 계곡이 되기도 하면서 작가에게 일상의 겹을 이루었다. 이 책은 그 겹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능선을 따라 걷는 겸허한 산책이다.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부산 영도 산복도로 골목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데, 부산 영도뿐 아니라 서부아프리카의 사하라, 스페인 카나리아 섬에서 10여 년을 머물다 돌아온 시인의 파란만장한 발걸음이 향이, 솔이, 단이, 강이 등과 같은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재현된다. 여성 화자들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성성을 은유한다. 여성성이란 성별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르는 모든 신성 곧 물빛 머금은 영원성을 대변하며, 보이지 않는 데서 모든 기도를 숙성시키는 존재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에세이 속 화자는 때로 오래된 골목의 고양이 ‘검은 순이’나, 물방울로서 먼지로서 거품으로서 온 세계를 부유하는 인어공주가 되어 흥미롭고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유년을 보내고 지금도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단순하고 성실하게 걸으며 삶에 대한 응시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영도 바다와 헌책방 골목과 영도다리 아래 점집들, 사하라 사막과 라다크 천년 사원과 다람살라 등지를 떠돌면서 ‘오래된’ 존재들이 들려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척박한 삶 가운데서 비죽이 솟아나는 생명의 숭고함을 받아 적는다.

“세상은 내게 탄생 이전에 주어진 거대한 선물이었다. 멋있게 살아내진 못했지만 알맞게 행복했고 알맞게 가난했다. 모든 불평에도 불구하고 삶은 내게 찬란했고, 아름다운 인드라망이었음을 고백한다. 내 안에 겹을 이루고 있는 모든 타자에게 절한다. 이 책 속의 화자들처럼 의심을 벗고 깨달으려는 어떤 몰입, 그 골똘한 불안, 매일 곱씹는 출발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고민한다. 문학에 발톱이라도 들여놓았다면 양심은 어떤 언어여야 할까.”
−「작가의 말」 중에서

“이방인이 되고 나서야 혼도 정신도 명료해졌다. 홀로 되고서야 집 주소가 생각났다. 나그네가 되고 나서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불편해지고 나서야 진짜 내 자리가 보인다.”
−「환(幻)을 향하여」 중에서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지구의 ‘이방인’이며,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껴입는 일이라는 자각.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 없이는 밥알 하나 먹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인류가 진화해 왔다는 깨달음. 김수우는 이 시대에 절실한 영성(靈性)도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빛을 발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시인 김수우에게 신의 이름은 ‘질문’이다. 사랑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방인을 위한 춤이다.
저자

김수우

저자:김수우

부산에서태어나1995년《시와시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붉은사하라』『몰락경전』『뿌리주의자』외다수,산문집『쿠바,춤추는악어』『어리석은여행자』『호세마르티평전』외다수,번역시집『호세마르티시전집』등을펴냈다.부산원도심에글쓰기공동체‘백년어서원’을열고너그러운사람들과공존과환대를공부하며타자성의회복을꿈꾼다.끝까지이상이현실을바꾼다고믿는이상주의자.

목차

작가의말
프롤로그

1부나의영도,나의제의
때려부술수있는어느하루를위해
두개의천국
돌복숭나무의꿈
그네
할매바위
깡통자동차와바람개비
영도다리아래에서물어보라

2부나는이방인입니다
깊이의진화
노을을믿다
환(幻)을향하여
라마유루,라마유루
국경
민들레도나의어머니였으니
영원의바깥
그들만의대항해

3부촉수의기억을살다
그후의인어공주
칠성전당포
찐빵과나팔꽃씨앗
물고기가된집
책의연대기
나선의춤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중략)
모두한사람인이책속화자들은영도라는섬을원점으로하면서도유목을선택한다.이산책자들은부산영도에서태어나성장했고,대지를여행하며순례를익힌다.끊임없이흐르면서멈춤을시도한다고할까.순례란타자를향하여걷는발길이다.긴만행도타자를향한손길이다.이시대에절실한영성도모든존재의간절한미래도‘타자’에게있다.타자성회복은구름여행을닮았다.끊임없이우리의근원을불러낸다.모든소외와고독은잔잔히그러나여울을만들며흘러야한다.타자의통증을향하여.

(중략)
우리는전지구적고통속에있다.크고작은위기들은거대한우주의약속을기억하라는당부이며,회복을위해소비적편리를줄이라는지구의부탁이다.이쯤서우리는새로운방향을만들수있을까.결국삶은양도질도아닌,방향이우선이다.그렇게방향이길을만든다.내재와초월을하나로엮는큰기다림과어떤흐름을믿는다.겹을여행한다.영도를중심으로도는,타자를찾아가는나선의아름다운소용돌이를믿는다.겹에서쏟아지는저눈부신빛들.춤이될수있을까.

2023년가을,감천수우헌에서
김수우

책속에서

삶은어느순간훅,낯설어지면서사람을황야에내던진다.하지만그슬픔과삭막함과고독은모두그네를타는일이다.삐걱거리며흔들리며바람을꿈꾸기시작하는것이다.풀과꽃과별이그네였고,사람이그네였다.분이가꾸는모든것은그네가꾸는은유였다.새벽달은그네를타면서동쪽으로가고있었다.어쩌면잠든사람들도꿈이라는그네를타고삶으로돌아오고있는중이리라.세상의모든것이그네를타고있었다.나는바람이다,나는바람이다.망가진것들이그네를타고있었다.
---「그네」중에서

첨부터점쟁인줄알어?난점쟁이가아니야.스물여덟에…다리에도착했지.피난에나선지…거의열달만이었제.목소리는느리게,뜨문뜨문이어졌다.영도다리에서만나자는,약속때문에…온갖죽을고생에도영도다리만생각했지.얼마나기다릴까매일…마음졸였지.그래,정말천신만고끝에닿은데야,이집이.없었지…아무리찾아도아무리기다려도,그사람오지않았어.그렇다고다리를떠날수도없고,이렇게영영못볼줄알았으면그렇게기를쓰고…이먼델오지도않았지.첨부터점쟁인줄알어?아니야…너무배가고파점집에서심부름이나하다가곁눈질로배웠지.그점쟁이가아픈바람에대신말해주기시작했고…그사람이죽자,떠나지도못하고고대로,물려받았지.뭘알겄어.내입이말한건…모두기다림이가르쳐준것이지.
---「영도다리아래에서물어보라」중에서

사막을가로지르면서,머물면서,되돌아오면서영이는시간의심연에,진화하는깊이에조금씩익숙해졌다.겨우모래를뚫고돌아오면집에도모래들이기다리고있었다.영이는그예자신이모래한알임을깨닫고야말았다.
---「깊이의진화」중에서

아바나에서출발해파나마시티와리마를거치는여정은꼬박하루가걸렸다.공항을나서자호텔에서보내준택시가기다리고있었다.낯선택시가도심모퉁이낯선호텔앞에내려주는순간,연이는택시로부터버려진,손잡이가떨어져나간낡은가방같은느낌을받았다.선택해놓고서도혼자가되면늘잊힌느낌.동시에버려짐에묻어나는어떤안도감과평안.여행이란스스로를낯선어딘가에내다놓는일이었다.유리컵이나돌멩이처럼낡은가방처럼사물이되는것.그렇게무심해지는연습이여행이었다.
---「환(幻)을향하여」중에서

인간은척박한땅에태어나면제일먼저기도를배운다.경외를배우는것이다.그것이답이었다.송이가세상에던진,모든고통과슬픔에게던진질문에대한답.바깥엔사막같은고원이이어지고저만치높은설산들이계속따라오고있었다.가없는척박함속에서납작한집이한채씩나타나곤했다.버스를향해집앞에서손을흔드는아이가없었으면그집들은하나의모래더미로여겨졌을것이다.사람이살거라고생각되지않는곳에서살아가는사람들.그들은무엇을꿈꾸고있을까.
---「국경」중에서

인어공주가목소리와사랑을잃고소멸한줄알지만,실은그소멸이모든시작이었던거지요.나는한방울물알갱이가되어,한잎거품이되어,한점먼지가되어,한덩이얼음이되어,한줄기물관이되어,점점사랑을배워갔답니다.미완성이진짜완성임을깨달았죠.사랑을연습하고,사랑을전달하고.그래서우주가사랑으로그득해지는것을상상했답니다.그어디까지흐르면서,부드럽고강인하고눈부시게성장했지요.그러면서바다왕궁에서인어공주로태어난나의아름다운DNA를이해하게되었지요.
---「그후의인어공주」중에서

세상이얼마나아름다운마법으로가득한지잘모르지?잘모를거야.인간은제가잃어버린게뭔지몰라.계시와신비와경외는다잃었지.기계에길들여지면서.지금은그저무언가를사고팔고축적하는데몰두하지.그것이인생인줄알아.그러면서마구앞으로달려나가지.거긴아무것도없는데말야.죽음직전에그공허를알고두려워하지.
---「칠성전당포」중에서

인간은끊임없이주변과혼을교류해야한다.그것이‘본래’였다.강이는배속깊은데서치미는바늘끝같은슬픔을감지했다.인간은모든미지의것들,그이질적이고소외된것들에게빚지고있다.흙과물과공기에함께어우러져야만비로소생명을유지했던그본래를왜잃었던걸까.끊임없이상호작용하던아름다운춤을잊었다.문명은인간중심으로모든것을단절시켰다.울고싶었다.지구시스템전체를작동시키는막대한문명도우주앞에서사실얼마나미세한먼지인가.
---「나선의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