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차 여행 (권오숙 시집)

밤차 여행 (권오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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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권오숙 시인은 ‘뒤늦게 시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나선 늦깎이 시인이다. 권 시인에게는 남들이 느끼지 못한 남다른 시대적 체험이 있는 것일까? 시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뛰어들긴 했는데 걱정이 많다.하지만 시인에게는 평생을 간직해 온 ‘감성 계좌’가 있다.
권 시인은 열쇠를 찾아낸 듯, 비밀번호를 찾아낸 듯 호기롭게 세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여다보며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물건들, 골동품들을 찾아낸다. 어눌한 것 같은 「솜씨」이지만 켜켜이 쌓인 물건들뿐만 아니라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숨겨진 곳간까지도 찾아낸다. 「물의 힘」을, 세상의 이치를 새로운 시선으로 깨치고 있다. 그것이 시인만이 지닌 자신만의 경험, 남다른 시대적 체험인 셈이다.
「감성 계좌」의 비밀번호를 기억해 낸 권오숙 시인은 원금은 남겨두고, 오랫동안 붙은 이자만으로도 넉넉히 살림을 꾸려나갈 여력이 있어 보인다. 권 시인의 시는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서정적인 단어의 배열로 장면을 묘사하거나, 여백餘白의 미학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취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 연과 연 사이에서 은은한 여백은 물론 팽팽한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다.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진공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이나 높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일반적 물질이 4.84%, 암흑물질이 약 25.8%, 암흑에너지가 약 69.2%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시에 대입해보면, 일반물질인 문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84%에 불과하므로 나머지 의미는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 연과 연 사이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이치다.
이런 시각으로 권 시인의 시를 접하면 시에서 여백이 암시하는 모든 것이 흥미롭다. 경험 또는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단어의 배열 혹은 언어의 구성이 생경하면서도 강렬한 시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특이한 단어 조합을 즐겨 사용한다. 권 시인 시는 언어의 독창성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암시를 지닌 듯한 문학적 기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시인이 고도의 기법을 터득했거나, 아니면 시인의 타고난 기질이 아닐까 싶다. 시는 경험이나 감정을 아주 적은 단어로 표현하는 장르이지만 그래서 어렵다. 시는 다양한 경험과 과정 감정을 몇 줄 또는 몇 연의 행간에 표현해야 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시인들이 있기에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것일 것이다.
저자

권오숙

2020년《문예춘추》등단

시연회,시사모동인

2022년시집『밤차여행』상재

목차

1부
달빛
장마
물의힘
풀잎에게
농사
갱년기
행복
장미
카페인
배꼽
밤1
반전
낚시
밤도둑
손톱

2부
부부1
부부2
부부3
부부4
부재중
방콕에서
다이어트
노안
변기의변비
도깨비시장
동짓날
잔소리
이순
단골손님

3부
성주참외
우기
빗물
통화
밤2
짝사랑
퇴고
대청소
홍매화
맛이없지
오늘이며칠입니까
김치냉장고
바퀴달린뚜껑
외줄타기
정지된화면

4부

내속에있는시
밤차여행

대파
백세시대
해물탕
우리가모르는너
밤3
솜씨
약속
고등어
소고기국
식당아줌마
원주나들이
감성계좌
시집해설_김용길시인
시집해설-복효근시인

출판사 서평

몸과마음의기쁨을위한시

김용길(시인)

시는태초부터이어져왔다.우리행성에서시는끊임없이자아를새롭게하고삶을노래하는예술로면면히이어져왔다.더러는흙속에묻히고바람속으로날아갔으나,5천년역사에서,수백만명의사람들이시를쓰려고노력했고많은작품을남겼다.
모든시대를막론하고시를쓰는전통은아주오래되었다.시인은자기자신이경험한것에대해서쓴다.하지만아무리상상력이뛰어난시인이라도그상상의근저에는자신의경험이나시대의경험이채록되어있다.
동시대의사람들은그경험을공유하고있는편이다.시인은별난사람이아니고그렇게이기적이지않다.시대가공유하는경험을대부분의다른사람들이놓치고있지만,시인은그경험을들추어내서반추하고제시할뿐이다.
영국의시인필립라킨PhilipArthurLarkin은자신의‘경험을보존하기위해시를썼다’라고말한바있으나,시인의시쓰기는자신을위한것이아니라,다른사람들을위한일기장이었다.말하자면시는인류의기억일부다.그러므로시는순전히개인적인것을초월해서그시대의산물이되는것이다.
사람들은눈앞에서일어나는큰시대의변화,진정으로영감을주는것을만날때마다,통찰력과활력을발휘해서시를쓰기시작한다.그래서‘시인은인정받지못한인류의입법자’라고시인셸리PercyByssheShelley는말했다.

권오숙시인은‘뒤늦게시농사를지어보겠다고’나선늦깎이시인이다.권시인에게는남들이느끼지못한남다른시대적체험이있는것일까?시농사를지어보겠다고뛰어들긴했는데걱정이많다.

때를놓쳐버린곳에
싹이제대로틀까
줄기와뿌리는
서로엉키지는않을까

「농사」부분

하지만시인에게는평생을간직해온‘감성계좌’가있다.

내감성계좌에
오래전에숨겨놓은
몽당연필을꺼내어
내숭을떨어볼까

많이늦었지만
지금아니면기회가
언제또있을까
한번도꺼내쓰지않았는데

확인해보면
감성에도
이자가붙었을건데
비밀번호가뭐였더라

「감성계좌」전문

권시인은열쇠를찾아낸듯,비밀번호를찾아낸듯호기롭게세상의틈새를비집고들여다보며한번도꺼내지않은물건들,골동품들을찾아낸다.어눌한것같은〈솜씨〉이지만켜켜이쌓인물건들뿐만아니라있을것같지않은곳에숨겨진곳간까지도찾아낸다.〈물의힘〉을,세상의이치를새로운시선으로깨치고있다.그것이시인만이지닌자신만의경험,남다른시대적체험인셈이다.
시는가장아름다운글쓰기형식중하나다.아름다운시는종종독자에게강력한영향을미치고지속적인인상을남길수있다.시를통해시인은산문에서는종종도달할수없는수준의언어를통해자신의감정을표현할수있다.
우리가시를읽거나해석할때가장먼저시작해야할일은다른것을읽는것보다더깊은수준에서읽는것이다.빨리읽는것보다시에대해주의를기울이고읽을때,우리는훨씬더깊이있고훨씬더오래지속되는이해를얻게된다.그래서미국시인로버트크리리RobertCreeley는시를읽는것은“주의를기울이는행위”라고말했다.사실시를읽고쓰는것은세상에관심을기울이는방법을배우는좋은방법이다.
「감성계좌」의비밀번호를기억해낸권오숙시인은원금은남겨두고,오랫동안붙은이자만으로도넉넉히살림을꾸려나갈여력이있어보인다.
권시인의시는생각을전달하는방식이독특하다.서정적인단어의배열로장면을묘사하거나,여백餘白의미학을활용해서이야기를집중적으로전달하는방식은취하고있다.
시의기본구성요소는연聯라고불리는단락이다.산문에서와는달리연은같은주제나생각과관련된행(行)의그룹이다.권오숙시인은단어사이에여분餘分의간격을두고행을만들고행과행사에여백을만들어내는행간行間의미학적구조를취하고있는데,거기서모두성공하고있는것은아니지만,눈에띄게독특한성취를이룸으로써앞날을기대해도좋겠다는느낌을준다.가령,

눈감고누웠는데
알록달록별사탕이
머리위로쏟아진다

하나둘수를놓듯
줄줄이꿰면
달큼한시가되겠다

「밤1」부분

캄캄한밤중
이리저리뒤척이다
빛나는별을외상으로사고

그외푸성귀는
몇푼어치안되어떨이로사들고
파장이될때까지바닥을휩쓸고돌아다닌다/〈도깨비시장〉부분

더슬피울지않게
비행간에프라이펜을걸쳐
빈대떡이라도부쳐주자
냄새맡고안으로들어와
마른눈물닦을지

하늘은실컷울고
땅은배가불러야조용해
나도비오면
슬픈지고픈지
국시삶아한행두행리듬을타

「빗물」부분

저녁먹은설거지를하고뒤돌아보니
2홉들이소주한병이
소파에서삐딱하게누워잔다

아직초저녁인데
코를골던알코올이
간이휴게소도들리지않고

방으로들어가더니
시속백킬론지
정식으로달린다

「밤2」부분

바닥을짚고일어나
간신히
물한모금입에물고

거실에서주방으로
주방에서안방으로

밤새접혔던관절과
근육을늘려가며
오늘도외줄타기

무난히지나갈수있으리라
믿으며
중심을잡아보는

「외줄타기」전문

단어와단어사이,행간과행간사이,연과연사이에서은은한여백은물론팽팽한에너지가느껴질정도다.우주에는우리가모르는진공에너지가차지하는비중이무척이나높다고한다.현재까지의관측결과에따르면우주는일반적물질이4.84%,암흑물질이약25.8%,암흑에너지가약69.2%의비율을차지하고있다고한다.이를시에대입해보면,일반물질인문자가차지하는비중은4.84%에불과하므로나머지의미는단어와단어사이,행간과행간사이,연과연사이에서찾아내야한다는이치다.
이런시각으로권시인의시를접하면시에서여백이암시하는모든것이흥미롭다.경험또는아이디어를전달하기위해고안된단어의배열혹은언어의구성이생경하면서도강렬한시적특성을보여주고있기때문이다.
시인은특이한단어조합을즐겨사용한다.권시인시는언어의독창성때문에우리에게새로운시각으로충격을주고있다.거기에는어떤암시를지닌듯한문학적기법이느껴지기도한다.이는시인이고도의기법을터득했거나,아니면시인의타고난기질이아닐까싶다.

시는경험이나감정을아주적은단어로표현하는장르이지만그래서어렵다.시는다양한경험과과정감정을몇줄또는몇연의행간에표현해야하는예술이다.그래서어렵다.그어려운일을해내는시인들이있기에아직도세상은살만한것일것이다.
17세기철학자토머스홉스ThomasHobbes는인간의삶을‘고독하고,가난하고,추악하고,잔인하고,짧다’라고설파해서섬뜩한분위기를자아낸바있다.그런데도대부분시인은우리가살만한세상을위해시를쓴다.
시는모든사람을위한것이다.시를쓰는행위는더욱유연하고창의적인사고를일으키고지각을넓히는것은물론상징적사고를개발한다.시는감각을발달시키고감수성을정제한다.
어쨌거나늦깎이시인은평범한일상을비범한방식으로표현하고있다.많은시편에서녹록지않은삶을살아온연륜과삶의향기가느껴진다.
시를쓰는일은내면의나를찾아가는여정의시작이다.그럴뿐만아니라주변사람들과의소통의장으로나아가는길이기도하다.
‘환갑진갑다지난’권시인의부부애는남달라보인다.‘작년재작년에도그랬듯이/올해도어김없이/김칫소를넣어주는남’편이있고,‘안방극장에모로누워/사과가먹고싶다고/화면보고말했는데//몇분후/머리맡에우두커니/포크에꽂힌사과’가있다.‘맛있다’

자식들다나가고
식구라곤달랑둘

메인을한가운데놓고
이것저것가져다먹으려니
허접하고
팔도아프다

찬은간이맞는지
밥은알맞게잘지어졌는지
굳이말은안해도
코를박고먹는소리에
미각으로끄덕끄덕

중간쯤먹었을까
식탁모서리옆
물병사이로손짓을하니
냅킨을쓱빼서
말도하지않고건네주는

「부부1」전문

부부애가절로느껴지는풍경,‘안봐도비디오’다.
시는시인의마음을반영한다.시를읽는재미는시인이마음을잃고나아가서예술적의도를감지하고그어떤메시지를읽는영혼의일일것이다.경험이나상상력이풍부한시인의시세계를접하게되면독자는자신의곳간이넉넉해진기분에사로잡히게된다.

아침먹은후에약은먹었는지
약봉지가있는쪽으로가보니
커피마셨던컵에앙금이그대로있다
약도안먹었다
약과물을마시면서시계를힐끔쳐다보니
정오가다되어가는데
지금까지한일이없다
그럼내정신은그동안
어디에다녀온건가

「부재중」전문

나이를먹으면누구나깜빡깜빡하는데약을먹었는지안먹었는지기억이나지않을때는참난감하다.그러나어쩌랴.그것이자연의이치인것을.받아들일것은받아들이고넉넉한아량으로이세상을건너가야할일이다.
권시인의시에는음식패키지시가많은데그중〈시요리〉는절창이다.권오숙시인이감성계좌〉에서거듭자금을인출해서‘시요리’의대가의반열에오르기를기원한다,

시요리를하려면
제목이좋아야하는데
아니야

시의생명은


간이야

일류요리사가
특등급소고기로국을끓여도
삼박자가맞지않으면
제목이없지

같은재료로
며느리는부엌에서
시어머니는안방에서
시요리를시작한다

안방에선
제목만보고도
혀끝의미각으로
입맛을다시는데

부엌에선
같은제목을받아놓고
안방전문가의눈치를살피며
물불조절이서툴러서
애를먹는다

「시요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