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밑줄을 긋고 간 날 (오영효 시집)

고양이 밑줄을 긋고 간 날 (오영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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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와편견 서정시선 78권. 오영효 시집. 고요가 '아무 소리도 없음'으로 물리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적막은 물리적 의미를 넘어 심리적 풍경과 관련된 단어이다. 오영효 시인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온통 고요하다.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가 있고 "저녁 예불 목탁 소리"가 있고 "찌찌찌찌 찌리릭," 우는 동박새 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고요를 나타내는 소리다. 그 고요의 소리로 그려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은 끝 모를 깊이와 따스한 연민의 온도를 지녔다.
따라서 그의 시는 고요를 넘어선 적막의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 적막은 심장 근처를 두드리는 파동과 오래 귓가를 울리는 파장이 있다. 그 파동과 파장을 따라 적막의 깊이를 헤아리고 그 온도를 측정하는 일이 오영효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저자

오영효

2014년 《문학사계》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광명지부 회원
시집 『박꽃』

목차

1부 작은 물목을 만들며

꽃살
작설
한 모금의 삼월
파랑
동백이 웃다
篇篇한 숲
빗소리 명상
어디에 닿을까
표절
1호선 전철
투명한 편지
만취
말을 트다
새벽 詩
지우려 해도
닦지 마세요
한 권의 시집



2부 잠시 잠깐 개찰구가 열리는 계절

바람
빗소리 명상 2
수묵 산행
여백을 찾아
야옹이는 심심할 틈이 없어요
이름을 엮는 밤
꽃 단추
작은 별
저녁의 끝마디
가을 기차
해국
낮잠 속에 오셨네
알집을 놓는 순간
날개
길을 묻다
투명한 산책
떠나간 사람



3부 서로의 그늘

꽃 지다
곁으로
꽃이 없는 날들
꿈은 잠깐
느리게 가는 기차
어느 모서리
안개가 사라지듯
스무날의 일기
검은 비 한 가닥
스며들다
빗방울이 대신 울어요
이젠 여기 없어요
밥
발효된 그 이름
줄
어머니의 꽃 날
먼 길


4부 깜박이는 점멸등

아름다운 적멸
어제로 가는 기차
할머니의 시편
방전
종이 귀신
빈 집에 혼자
풍경이 다녀가다
앙숙과 친구 사이
소실점
허기
난감한 봄볕
남겨진 시간들
시 쓰는 고양이
출렁거리는 오후
흐르지 않는 밤
말言 무덤
詩를 묶으며
시집해설_ 복효근 시인

출판사 서평

[시집해설]

적막과 교감으로 빚어내는 시적 아우라

복효근 시인

1. 정밀한 적막의 미학

고요가 ‘아무 소리도 없음’으로 물리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적막은 물리적 의미를 넘어 심리적 풍경과 관련된 단어이다. 오영효 시인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온통 고요하다.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가 있고 “저녁 예불 목탁 소리”가 있고 “찌찌찌찌 찌리릭,” 우는 동박새 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고요를 나타내는 소리다. 그 고요의 소리로 그려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은 끝 모를 깊이와 따스한 연민의 온도를 지녔다. 따라서 그의 시는 고요를 넘어선 적막의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 적막은 심장 근처를 두드리는 파동과 오래 귓가를 울리는 파장이 있다. 그 파동과 파장을 따라 적막의 깊이를 헤아리고 그 온도를 측정하는 일이 오영효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시인의 시 전편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시가 「꽃살」이다. 그가 적막으로 길어내는 시 세계의 깊이가 잘 드러난 시다.


맑은 그늘에 이끌려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섰습니다

꽃잎의 무구한 민낯은
나지막이 읊는 독경을 닮았고

안으로 걸어 잠근 향기는
사미니의 아껴둔 눈물 같아서,

두 손의 여린 기도
부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저녁 예불 목탁 소리에
아미타불 노을이 피어납니다

_ 「꽃살」 전문

여기서 꽃살은 사찰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을 가리킨다. 대웅전 큰 문의 나무문살이 온통 연꽃, 모란, 국화 등 꽃무늬로 새겨져 있다. 청정도량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애초 단청이 입혀졌었는지는 모르나 낡고 퇴색하여 고색창연하고 고졸한 멋으로 유명한 문살이다. 그 꽃문살, 단청을 입지 않고 시간에 풍화되어가는 꽃잎의 무구한 민낯을 시인은 비유를 통해 청각적 심상으로 그려낸다. 즉 민낯의 ‘꽃살’이 “나지막이 읊는 독경”과 같다는 것이다. 꽃문살이 독경 같다니,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 같다니! 빼어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 독경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을 통해 꽃의 형상으로 듣는다. 고요의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문은 안으로 잠겨있다. 걸어 잠근 문 안 대웅전엔 가득 향기가 차 있을진대 꽃문살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그 향기를 시인은 “사미니의 아껴둔 눈물 같”다고 표현한다. 역시 후각을 시각화시키는 놀라운 비유를 구사하고 있음을 본다. 향기를 시각으로 맡는 것이다. 사미니는 출가를 하여 사미니 10계를 받았으나 아직 정식 비구니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예비 스님을 가리킨다. 세속과 절연하고 불도를 이루어 성불하겠다는 염원이 간절할수록 그 정진의 길은 고행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일까. 그러나 함부로 울 수도 없어 눈물을 아낄 수밖에 없다. 그 염원도 향기롭지만 그 인욕의 자세 또한 향기롭지 않을 수 없다. “안으로 걸어 잠근 향기”는 그래서 대웅보전에 가득한 향기와 함께 사미니의 내면 풍경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향기 = 눈물’의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두 손의 여린 기도”라는 표현을 보면 기도의 주체가 누구인지 모호하다. 사미니의 기도인지 혹은 시적 화자의 기도인 분명하지 않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시인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부처로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구원불이다. 사미니의 기도이든 시적 화자의 기도이든 이 고해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눈물의 기도가 아미타불에게 바쳐질 때 그 기도에 응답하듯 저녁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린다. 그와 함께 서해의 노을이 장엄하게 비친다.
꽃살을 통해 짧게 그려낸 한 폭의 풍경이지만 독자가 펼치는 상상 속의 풍경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서사가 그려진다. 그리고 “맑은 그늘”, “나지막이 읊는 독경”, “안으로 걸어 잠근”, “아껴둔 눈물”, “여린 기도”, “저녁 예불”과 같은 표현은 모두 차분하고 고요하며 정적이며 하강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표현들이다. 독경과 목탁 소리가 등장하지만, 이 시에서 ‘소리’는 오히려 고요보다 깊은 적막의 경지를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맞춰 ‘-습니다’체의 어미 처리가 더 시의 분위기를 적막으로 이끄는 데 이바지하고 있음을 본다. 이처럼 오영효 시인의 시는 적막의 언어로 그 시적 비의를 드러내는 데 하나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다음에 인용되는 사도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겠다.


뜨겁지 않게 식힌 물을
쪼르르 마른 입술에
적셔주었는데

삼켰던 울음 꺼내듯
검푸른 부리를 조금씩
달싹거렸다

작고 여린 혀들이
따스한 찻종 속에
풀어놓은 노래는

참 맑았다

_ 「작설」 전문

작설은 ‘참새의 혀’라는 뜻으로 여린 찻잎의 형상을 가리킨다. 이 여린 잎으로 만든 차가 작설차다. 구증구포라 하여 여러 번 덖고 말려서 차를 제조한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차를 만드는 것이다. 시인은 찻잎을 다관에 넣고 조심스럽게 물을 붓는다. 너무 뜨겁지 않게 약간 그 열기를 다스려 물을 붓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마른 입술을 적시는 것으로 표현한다. 작설차를 찻잎이면서 차의 입이면서 참새의 입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찻잎이 살아난다. 새가 살아난다. “삼켰던 울음 꺼내듯/ 검푸른 부리를 조금씩 /달싹거렸다” 그리고 새는 “작고 여린 혀”로 따스한 찻종 속에 노래를 풀어놓는다. 그 노래는 맑다. 찻물 따르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 물에 풀리는 찻잎이 새가 노래하듯 노래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들이다. 적막의 소리다. 시인이 그려내는 소리는 이처럼 깊고 깊은 적막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다. 그 소리는 그래서 참 맑다. 이 맑음마저 적막의 깊이를 드러내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들리는 소리마저 적막으로 침잠시키고 들리지 않은 소리를 적막의 빛깔로 드러낸다. 찻잎은 삼켰던 울음을 참 맑은 노래로 풀어낸다. 그 찻잎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근본적 이유를 사유하며 삶의 의미를 음미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는 말도 있는 것처럼 차를 마시는 행위가 이 적막의 언어로 말미암아 선적인 명상의 경지로 승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동백이 웃다」라는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향긋한 심장을 달고/ 한 생을 건너와// 꽃봉오리에 내려놓는 노래/ 찌찌찌찌 찌리릭,// 부리 닿은 가지마다/ 꽃 문 여는 하얀 동백”에서 들리는 동박새의 노래도 차라리 적막에 가깝다. ‘향긋한’, ‘내려놓는’, ‘꽃문을 여는’ 이와 같은 표현은 적막을 그려내는 침묵의 언어다. 여기에 “찌찌찌찌 찌리릭‘하는 동박새 새소리는 소리가 될 수 없다. 적막의 깊이를 더해주는 소리 없는 소리로 한없이 풍경을 깊어지게 한다. 그 끝에 피는 하얀 동백이다. 개화이면서 개벽이면서 개안이다. 하나의 세계가 고요를 넘어서 적막 속에 펼쳐진다.
“상현달이 내려앉은 양평 단월/ 백동 저수지에서” “깊은 하늘에 닿을 만큼/봉돌을 던져놓고,”낚싯대를 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보아 물고기를 낚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시적 화자는 “여린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낚시를 던지고 별을 기다리는 행위는 명상에 가깝다. 그 고요한 밤에 명상을 하는 시적 화자의 주위엔 “소쩍새는 간간히/ 멀리 울고 있었다.”(「흐르지 않는 밤」) 멀리서 우는 소쩍새 울음은 밤과 수심과 명상의 깊이를 돋구워 주는 적막의 소리이다.
다른 작품의 예를 들어본다. 시인은 어둠에 덮인 산을 오른다. “밤은/ 산을 삼키고/ 나는 한 걸음씩 번져갑니다” “축축한 바위에 앉아” 시인은 자문한다. “산 아래 아득히/ 깜박이는 불빛 거기/ 두고 온 나는/ 누구입니까” 자아성찰의 시간이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자아의 정체성을 묻는 시간이다. 그 행위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인은 다시 적막을 동원한다. “부엉이가 먼 데서 깊숙이 울고/ 멈칫 돌아보지만 기척 없는,//먹물 같은 적막”(「수묵 산행」)이 바로 그것이다. 예에서 보듯이 오영효 시인의 시적 언어는 적막의 언어라 명명할 수 있으며 이는 그의 시가 갖고 있는 주제와 사유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확보해주고 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아들이 “저 큰 교회의 목사가 되었어요/ 어머니도 기쁘시지요/ 늘 바라시던 일이잖아요/ 스며들지 않는 말을/ 기도처럼 되뇌”인다. “소리 죽여 우는 아들”, “꺼져가는 불씨의 눈길”, “잦아드는 숨길”, 어룽거리는 “검은 그림자” 유리벽 넘어 눈 내리는 “목동병원 2층 중환자실”이 그려내는 것은 무엇인가? “아득히 먼 풍경”(「어느 모서리」)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적막을 마주하여 적막의 진면모를 그려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같이 오영효의 시는 고요하고 침묵에 가까운 적막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로 하여 시 전편엔 적막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시 세계의 깊이와 울림을 확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시인의 시에서 적막은 단순히 배경적 의미, 혹은 장식적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시에서 적막은 곧 주제, 시 세계와 같은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2. 내밀한 교감의 시학
시인의 시적 사유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명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다 보면 명상적 사유가 소리 없는 파동으로 가슴에 스미는 걸 알 수 있다. 이 명상적 사유를 교감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묵묵히 오래 견디면
구름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비를 맞고 숲 속에
꼼짝없이 서서
빗방울을 꽉 끌어안으면,

나무처럼
마음의 여기저기 곁가지에
잎이 돋아날까요

솔바람이 찾아와
정수리에 고인 비의 소리를
읽어줄까요

자욱한 안갯속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줄까요

빗소리를 틀어놓은 오후
나는 벌써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