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무다 (이경순 디카시집)

쿠무다 (이경순 디카시집)

$14.33
Description
시집 『쿠무다』는 〈하늘정원〉, 〈응시〉, 〈헌다獻茶〉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이경순

부산대예술학박사
영광도서리갤러리대표
영광문화예술원원장
저서『나도연꽃을조금은닮고싶다』
『연옥의담』

목차

1부하늘정원

하늘정원
나들이
독서
안개꽃
수다
정오
대화
까마귀

소년과학자
저렇게

셀위댄스
조락의계절
오수
나이테
안인리
요가
PIPA



2부응시

극락조
꽃살문
보듬이
마음
인생

해탈
한마음
촉석루
두구동소류지
응시
어쩌나
소나기
추상
만추
행복
등대
윤슬



3부헌다獻茶

헌다獻茶
영광
한송이꽃

몸의시간
생일
회상
애기불상
불의솜씨
장안요
겨울서사
김장
혼자서
해맞이
미명
가사袈裟


4부기도祈禱

쿠무다
은하사
금강사
흥법사허공맞이
대원각사
성주사
축서사
다솔사
삼광사
혜성스님
길없는길
죽로지실
출입금지
기도
높은곳
만장
디카시해설_복효근

출판사 서평

구도의언어,고요한응시의미학

복효근(시인)

디지털카메라가개발되고스마트폰에카메라기능이내장되어보급되면서누구나가어디서나사진을찍는다.예술사진은물론기록을위한사진,추억을담기위한사진등다양한의도로사진을찍는다.이디지털카메라로시적인장면을포착해내고여기에짧은언술로그영상에담긴시적울림을표현하는디카시가생겨났다.
언어만으로표현하기어려운부분을사진이담당하고사진이담고있는시적인요소를사유로이끌어주는짧은언술이결합한형태다.여기서‘결합’이라는말은단순한물리적인조합만을의미하지않는다.사진과언술이비유의관계에놓이면서그둘이독자의뇌리에서화학반응을일으키게만드는고도의미학적융합이다.이제디카시는언어로만이루어진시와는또다른양식으로자리를잡게되었다.사진이라는구체적인시각적효과의도움을받기때문에보이지않는사유의세계를드러내는데쉬운점도있어빠른속도로대중화되어생활예술로자리를잡게되었다.
그렇다고디카시가쓰기쉽다는뜻은아니다.시적인모티프를포착한다는것도쉽지않지만,사진이가진이미지가언술에겹쳐나타나지않게시적으로드러낸다는것은더욱어렵다.다섯줄이내의언술이어서더욱압축적인언어사용으로사유를함축해야하는어려움도있다.
생활예술이라하지만시만큼이나깊고도독특한철학적,미학적울림을담고있는본격예술로손색이없는디카시작품들이속출하고있음을본다.이경순시인의이번디카시집은불교적사유를기본으로한빼어난디카시의전형을선보이고있다.사진자체로도작품적가치를지녔지만,여기에촌철살인의언술이결합하여울림과여운이오래남는다.불교적명상의세계로이끄는응시의눈빛이고요롭고고즈넉하게,따뜻하고맑게담겨있다.
다섯줄을넘지않는언술이라했으나이경순시인의이언술은매우간결하게응축되었다.따라서그짧은행간에함축된의미를상상하고추리하는독자의몫은더욱커진다.언술부분을읽으며사진을거듭거듭들여다보게만들고다시언술부분을곱씹게하는전략이다.

매일매일한획씩
아무렇게나
자연이그려놓은명작

「추상화」

붉은양배추단면을두고“매일매일한획씩/아무렇게나/자연이그려놓은명작”이라하였다.“아무렇게나”라는단어가예사롭지않다.인간은쪼고닦고색칠하고덧붙이는인위적인조작을통해작품을만들어낸다.하지만자연은어떤가?자연은말그대로‘스스로그러한것’이다.작위적조작이아니고무위의‘스스로그러함’에맡긴다.노장철학과도일맥상통한다.자연이그린그림은하루아침에완성되지않는다.자연은“매일매일한획씩”서두르지않고그러나건너뛰지않고그항상성으로,그성실함으로세상만물을빚어낸다.아무렇게나빚어놓은것같아도자연속에는그래서질서와섭리가자리하고있는것이다.
주부로서늘대하는그저식재료일뿐인데도순간삶의한단면을보아낸것이다.지,수,화,풍이빚어낸오묘한생명의섭리와아름다움이섬광처럼시인의눈에비쳤다.우연한발견이아니라시인의평소삶을관통하는세계관과철학이이장면을만난것이라해야옳겠다.

햇살이데워놓은긴아랫목

「안인리」

볕잘드는시골돌담길에고양이한마리앉아있는풍경이다.그림자가없는걸보니한낮이다.돌담아래,그리고돌담사이아직은풀이우북하게자라지않은걸로보아봄철이겠다.부드럽게내리쬐는이른봄햇살이따습게느껴진다.허술하게쌓인돌담이정겹다.겨우한줄짜리짧은언술이지만독자의마음에그려지는풍경은그렇게짧지만은않다.저돌담끝엔떠나온고향집이있고그따뜻한아랫목이떠오른다.물론아궁이에불을지펴구들장을데워놓은어머니도계실것이다.그기억아련하지만포근하다.
저골목을구들장이라표현한것에또주목한다.살펴보니돌담사이풀들도자라고풀꽃들도피었을것이다.거기엔작은곤충도살고있을것이다.여러생명과저고양이가앉아있는곳이구들장아랫목이겠다.제목이‘안인리’다.실제지명이지싶다.어쩐지편안할안(安)자를쓰고어질인(仁)이거나사람인(人)을쓸것만같다.제목과사진과짧은언술이끌어내는상상이끝이없다.이것이다카시의매력은아닐까?
저렇게뜨거운꽃이라며
한다발씩건네주고싶은

「안개꽃」

만두를쪄내는솥에서김이안개처럼뿜어져나온다.시인은그뜨거운김을“뜨거운꽃”이라표현한다.시인에게서만가능한표현이다.뜨거운꽃은없다.그러나여기순간포착한사진속에있다.배가고픈사람에게양식이되거나간식이되거나위로가되는만두라면그것은단순한음식에그치지않는다.사람의마음까지를뜨겁게데워줄영혼의양식일수있는것이다.정지된그림이지만그걸바라보는독자의눈엔안개처럼뿌연김이뭉게뭉게솟아오르는것으로느껴진다.채소만두,고기만두냄새도함께코에전해져오는느낌이다.그런데그꽃,안개꽃을“한다발씩안겨주고싶다”라고표현한다.거래되는상품이아니라마음이다.상처받은이에게안겨주는꽃다발이다.코로나시기를지나오면서주눅이들고상처받고힘든이가한둘일까?만두를찾는사람들대부분서민이다.생각같아서는한아름씩안겨주고싶을것이다.시가따습다못해뜨겁다.시인의마음이이렇게사진과비유적언술에함축되어있음을본다.
그비린내데리고
한평생살았다

「해탈」

번뇌와고뇌잡념과망상,고통에서벗어난탈속의경지를해탈이라고한다면이사진은무언가잘못되었다.시적언술또한뭔가잘못된것은아닐까?비린내속에서한평생산것이무슨해탈이란말인가?시인은독자들에게일부러거꾸로말한것은아닐까?반어법일까?시인의시적상상이대부분불교적사유를바탕으로한것에비추어볼때이러한시적진술은반어법이거나잘못말한것은아니다.한평생비린내속에살았다면그것은벗어나야할그어떤것이아니다.그비린내가밥을먹여주었고자식을낳아기르게했고교육을시켰을것이다.거기서옷이나오고거기서집이나왔을것이다.천직으로알고고맙게감사하게여기며‘여기가극락이지’하는생각없이는비린내속에못살았을것이다.해탈이고통을벗어나그어떤경지가아니라고통그자체이거나고통을내몸처럼받아들고사는것이,그래서고통을감사한존재로“데리고사는것”이해탈인지도모른다.

화려한추억

상처곳곳에서
환생기다리는
겨울의묵상

「두구동소류지」

화려함도이제추억으로밖에남지않았다.연꽃을피웠던나날,벌이날아들고사람들아름답다예쁘다탄성을질렀겠다.이제추운겨울그고운연분홍빛도자취없다.연꽃대도부러져쓰러지고연잎도물에잠겨얼음에갇혔다.연꽃을피워냈던연의몸곳곳에상처다.그러나눈에보이지않지만,저얼음아래물속흙엔굳건히뿌리가내려또한생을준비하고있다.그뿌리안엔연년세세꽃피울무궁한시간이내장되어있을것이다.그러니저상처투성이연잎의죽음을죽음이라할일이아니다.한생이끝나고다음생으로이어지는그윤회의고리를지금보고있는것이다.불교적세계관으로쓴시다.혹은그다음생을상상하지않는다고해도얼음얼은그상처투성이연잎과연꽃대도실은알고보면연꽃과연잎의후생그자체라해도무방하다.굳이이름붙여생물무생물로구분하고죽음과삶을이름붙여구분하지만,불교적세계관에비춰보면그런구분이인간의한갓분별심에서비롯된것이다.지수화풍이인연따라모여이런저런모습으로보이는것이지실은실체가있는것도없는것도아니라는것(色卽是空空卽是色)이불교적세계관이다.

고요가보이느냐

번뇌가보이느냐

널보며나를보는

「응시」

시인은고양이를보고있다.고양이는무엇인가를골똘하게응시하고있다.그리고시인은그고양이를보고있는자신을보고있다.삼중의‘응시’다.고양이는그래서시인자신을응시하는도구다.무언가집중하여살피는그내면까지꿰뚫어보겠다고눈을빛내고있는고양이는시인자신이다.성찰의눈이다.시인의눈은깨달음을향해열려있는눈이다.시인이쓴시가선의화두처럼모두참선활구라하겠다.“너를보면서나를보는”것이다.대상이아니라대상을통해나를보는것이다.비춰보는것이다.그래서모든사물이거울이고또한나자신이다.내가대상과다르지않다는것을알아간다.거기서삶을배우고죽음을배우고우주와자연을배운다.시인은응시하는자이다.

아름다웠지
예뻤지
위험했지

「저렇게」

슬픔과안도가느껴지는디카시다.저이슬을머금고막피어나는동백꽃처럼아름다운,예쁜,빛나는시절이있었다.젊은날을회상하는것이다.사진속의꽃은생동감이넘친다.맺힌물방울도그촉감도온도도전해질것만같다.노란꽃술은꽃가루가묻어날것만같고꽃은그질감이촉각으로느껴질것만같다.젊음이란그런것이다.그런것이었다.그러나과거의이야기다.누구도젊음속에만머물수는없다.과거형으로진술하는그문장이서글프다.그러나그젊음그아름다움과예쁨은또얼마나위험한가?아름다움에비례하여누군가를위험하게하고자신도꺾일위험에처할수있다.아름다웠지만지나가버린것에대해감사할일이다.지나가버려서더욱아름답게회상되는지도모른다.아무튼다행이다.서글픔과회한과안도가느껴지는동시에생에대한긍정의시선을읽을수있다.

파도소리바람소리
쿠무다해수관음
햇살설법듣는아침

「쿠무다」

〈화엄경〉「보살명난품」에이런구절이있다.“듣는것만으로는부처님의가르침을알수없다.행하는것,그것이도를구하는,진리를구하는진실한모습이다”.이러한진리를구하는수행처인문화예술사단법인쿠쿠다(이사장주석스님)가있다.사진은그곳의하늘법당안명상센터의해수관음좌상이다.‘쿠무다’는산스크리트어로‘하얀연꽃’이라는말이며진흙속에서도청정함을잃지않는연꽃의모습에서교훈을얻는다는의미를담고있다.
시인은‘파도소리/바람소리’를들으며해가서서히몸의기운을데워주는가운데깊은명상에잠긴다.“눈을감으면혼을일깨워주고새로운영감을불어넣어주는해수관음의말씀을‘설법’으로듣는(聞)수행을하고있다.”라고한다.시인구도의자세를표현한디카시라하겠다.

절마당지나가는공허

「성주사」

늦가을이다.화분의국화는시들고마당을쓰는거사님의옷도오늘아침한겹더껴입었다.코로나시절이라마스크도잊지않았다.절마당이야늘깨끗하기만한데노거사님은또빗자루를들고낙엽하나라도머물지못하게깨끗하게쓴다.수행으로알고마음을닦듯이마당을깨끗하게쓰는것이다.곧겨울이올것이다.인생도어느덧황혼길에접어든다.무상하다.쓸고닦고비운다했지만,연륜만쌓이고번뇌는아직도무성하다.깨달음을위한마음이간절할수록,생이무상하고덧없다는생각이가끔가슴을훑고간다.공허하다.노거사님은내일도쓸것이다.눈이오면눈을쓸것이다.티끌하나없는그자리를공허함이채우더라도그공허함과하나가될때까지쓸어야함을알고있는것이다.그것이수행이고죽음까지도그수행의일부라는것을알기때문이다.

저렇게혼자미소짓는푸른부처

「애기불상」

법당이아니다.표고목을기대어놓은느티나무아래에비바람맞는곳에조그만석불이놓여있다.섬세하게조성해놓은석불도아니다.합장을하고있는모습이라는것말고는투박하게불상이라는형태만갖추고있다.뛰어난장인의솜씨로보이지는않는다.그래서인지햇볕이잘들지않는곳에놓여있어이끼가옷처럼불상을둘렀다.그러나시인은이보잘것없는석상에서부처를본다.금장을입힌불상만이아니다.보관을쓰고법당에높이모셔진부처만이부처가아니라저렇게버림받듯한데에놓인석상에서도부처를보는것이다.
맞다.그가진정부처라면저를대하는이들이어떤대우를하더라도,누가뭐라고해도,어디에있어도부처는그‘혼자’스스로부처이다.제몸을이끼가뿌리내리고갉아먹어도제몸을온통다내어주는저돌이부처가아닐것인가?한덩이둘에서부처를본다.깨달음에대해생각한다.보시에대해생각한다.보이지않는깨달음의미소를한덩이돌에서꺼낸다.한데에놓인볼품없는불상을찍어놓고그의깊은사유와철학을펼쳐놓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