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신는 시간 (김미연 수필집)

신발 신는 시간 (김미연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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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미연 수필가는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한 지 7년 차로, 이 책이 첫 수필집이 된다. 수필에 앞서 일찍이 詩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무엇보다도 묘사가 뛰어나다. 어떤 대상을 만나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다채롭다. 상징과 은유가 기본이 되는 시인으로서 그 저력이 수필작품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번 책 《신발 신는 시간》은 1부 〈욕망의 동산〉에서부터 사유의 물꼬를 튼다. 수필에서 흔히 대하는 독백체의 문체를 뛰어넘어, 어떠한 현상에 비판의 잣대도 거침없이 대는 붓 끝을 세운다.

‘날아간 새’에서는 날아온 새를 다루는데, 결국 자유를 탐해 가두려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채고 새가 날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술회하는 마음씨가 순연하다. ‘문수보살’은 혼혈을 기울인 책을 지인에게 건네고 잘 읽힐지에 대해 일어나는 작가의 번민을 상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를 들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저자

김미연

2016년《한국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한국수필작가회,
진주문인협회,경남수필문학회
2019년《한국수필》올해의작가상
2019년공무원문예대전시부문동상
2019년경찰문화대전시부문특선
시집『빨간그물코스타킹』

목차

1부욕망의동산
욕망의동산-12
우둔의협곡을날다
날아간새
문수보살

회화의괴물
버티기

2부신발신는시간
조물주에게
신발신는시간
위안
대나무의바림질
태점
말의생명
붉은등
조산-조새미
그리운산

3부화석
사랑하는나의불완전
내몸순례기
내게로온한포기꽃을위하여
왼쪽귀의고백

화석
배암차즈기

4부생물선생울타리
생물선생울타리
물풀의계획
띠풀을만나다
들봄을기다리며
고사리유권자
첨단의도시

5부나를향해짖는다
나를향해짖는다
어느고양이의방랑기
국화
다음에오자
묏등에둘러앉아
알밤을주우며
얄미운봄
어느주걱의일생

6부황계폭포가는길
북천하고말해봐
사려니숲가는길
여수돌게
황계폭포가는길
만복대가는길

7부찹쌀떡과도서관
개천예술제의강물
아,소나무
백정,누가만드나
망건-남강
찹쌀떡과도서관

작품해설_金善化

출판사 서평

[작품해설]

시간과행위사이에서피워올리는문향(文香)

金善化(수필가ㆍ시인ㆍ한국수필편집장)


우리는작가개개인의문체를통해다양한점을유추해낸다.특히진솔함을바탕으로하는수필장르에서는더욱이점이두드러진다.작가마다의개성있는체험이각기다른향기로문장을살찌운다.김미연수필가의작품은첫인상이반가움으로다가왔다.필자와는먼거리에있음에도그의작품을살펴볼수있음에큰의미를두며,작가의문장속여행을했다.

김미연수필가는월간《한국수필》로등단한지7년차로,이책이첫수필집이된다.수필에앞서일찍이詩로등단해창작활동을해온작가는무엇보다도묘사가뛰어나다.어떤대상을만나천착해들어가는힘이다채롭다.상징과은유가기본이되는시인으로서그저력이수필작품도처에서빛을발한다.
전체7부로구성된이번책《신발신는시간》은1부〈욕망의동산〉에서부터사유의물꼬를튼다.수필에서흔히대하는독백체의문체를뛰어넘어,어떠한현상에비판의잣대도거침없이대는붓끝을세운다.
‘날아간새’에서는날아온새를다루는데,결국자유를탐해가두려는사람의본성을알아채고새가날아간것이아닐까하고술회하는마음씨가순연하다.‘문수보살’은혼혈을기울인책을지인에게건네고잘읽힐지에대해일어나는작가의번민을상세히표현한작품이다.글쓰는이라면누구나겪었음직한예를들어매우설득력이있다.

“아,잠시,책한권주려고가져왔는데.”
“다음에주세요.”
-‘문수보살’서두

문맥따라가는눈길을가로질러가슴이철렁한다.별일아니겠지하는바람으로다음문장을훑는다.마침내상대방에게책은전달되고,다음묘사가기가막히다.

후루룩!순식간에책장이넘어간다.생경하면서도익숙하다.표지의붉은꽃송이가바람에날아가겠다.책을펼칠때는너나없이희한하게식은국둘러마시듯후루룩넘길까.너무뜨거워식히는것일까.마음의삐죽한얼음조각이시비를건다.얼굴이달아오른다.엔진에열이올라서그런가.
-‘문수보살’중에서

엔진에열이올랐다고꼭얼굴이달아오르지는않을터인데,작가는굳이이문장을쓰고있다.에둘러놓는문장에서오히려그렇지는않다는말을하고있는것이다.그런점에독자가더욱공감하게되는이치를이미알고있는노련한장치이다.헌데잘읽었다고문자가왔단다.‘그녀는어쩌면책에갇힌나를풀어주려는문수보살의화신인지도모르겠다.’하는데덩달아고개가주억거려진다.맞다.문수보살!
이밖에도작가는타인에대한배려가깊다.‘홈’을살펴보면일반적인길을차용하여사람들사이에나는마음의길을이끌어낸다.배려의길,잘디뎌미끄러지거나넘어지지않도록흠집과홈을내자는메시지가가슴을울린다.
전체작품47편중원고지5매내외의단(短)수필이2할이나되는데,이는함축적인문장으로밀도를더한다는점을증명하는보기이다.앞의‘날아간새’나‘홈’에이어‘회화의괴물’에서그진수가나타난다.손이불편한여인의풀린운동화끈을정성들여매어주는남편을바라보며느낀단상이깊고넓다.프란시스베이컨의그림을연결하는솜씨가세련되어입이딱벌어진다.적소에척척배열하여의미를다지는구성에감탄하게된다.

죽비는따로있는게아니었다.알고보니내게크나큰장애가있음을알았다.남의입장은전혀살피지않는습성과얼마나내위주로사는가를.〈중략〉돌아간눈,튀어나온입,어디그뿐일까.정신상태마저뒤틀어진프란시스베이컨의그림‘회화의괴물’이아닐수없다.
-‘회화의괴물’말미부분

2부는첫작품‘조물주에게’에서상당한해학을낳고있다.여행중에화장실문제를겪으며펼쳐가는의미확장이실감난다.소피를참다가엉뚱하게도조물주에게항변을쏟아놓는다.그러면서기막힌상상력으로손목에서팔꿈치사이어디쯤에오줌길을만들어놨더라면얼마나좋았겠냐고투정을부린다.나아가복식업계의디자인에까지상상력을발휘하니,여간익살스러움이아니다.연약한듯살살엄살을부려강한효과를이끌어내는꾼중의꾼,글꾼이다.

그랬다면복식업계는팔목용팬티로호황을누릴것이고세금을더많이내어복지국가건설에도움을주겠지요.디자이너,염색업자,직물공장,특히상품안내자는아침방송에나와팔목용팬티를무려15개나준다며호호낭랑잠을깨우겠지요.아마도도기업체는팔목용요강을공공장소어딘가본보기로설치하여홍보에열을올리겠지요.늦게나마조물주의심도있는인간설계를촉구하며머리띠를두르는바입니다.
-‘조물주에게’중에서

‘신발싣는시간’은4년전,〈한국수필올해의작가상〉을수상한작품으로그문학성을널리인정받았으며상황묘사가탁월하다.유년기,버스에오를때신발을길에벗어놓고오른점이해학을부른다.

처음으로버스를타는데너무깨끗해방에들어가듯신을길바닥에벗고올랐다.자갈길을흔들며가는중간중간사람들을태우니어느덧만원이었다.어른들다리사이에서안절부절못할때하얀종아리두개가보였다.그종아리의맨발은못위에올려진게아닌가.자꾸밀려가면나도저못위에맨발이얹힐것같아조마조마했다.〈중략〉신발은웃음과울음과고단함과씁쓸함이오롯한한채의집이다,먼길을동행한나룻배다.삶의색깔과냄새와영혼을사려놓은삼광주리다.그러기에마지막가는길에꼭챙기는유품이다.링컨기념관에서는링컨이암살되었을때벗겨진부츠를거액을주고사들였다고한다.우리도임의신발을챙겨빈소에모신다.
-‘신발싣는시간’중에서

이런저런신발을신으며생활하는속에서작가는이부분에대해사유의지평이넓어달관의경지에이르러있다.허리숙여신발신는시간에겸허를배운다는의미심장한메시지를이끌어내는데함께공감하게된다.신발을신고어떤출발선에선느낌으로바짝긴장하게도된다.하물며마지막가는길에꼭챙기는물건이신발임에랴.
‘대나무의바림질’과‘태점’역시은유와형상화에능하다.집앞대숲의모습을청곰이라놓고시작한다,놀라운발상이다.

대숲에바람이인다.한무리청곰이산기슭을간다.앞서거니뒤서거니이리저리뒤섞인다.낭떠러지를만나자어미는새끼를안쪽으로몬다.서로끌어안고머리를맞대며포효하는곰이다.새빛과묵은빛이섞바뀌며털의바림질이인다.〈중략〉흐린날은무슨걱정거리라도있는지우두커니서있다.사람사는모습을그대로보는듯하다.
-‘대나무의바림질’중에서

흔히나어릴적에이랬어요.하는식의화법이아니다.과감한생략과함축속에서의미화에주력한다.결국은인생무상에이르러뒤돌아보는마음가짐을유도해낸다.빛의무수한계단이펼쳐지는데,‘빛은어쩌면인간영혼의집합일지도모른다.’는말미에숙연해진다.

문인화에서고목이나바위에찍는점을태점(苔点)이라한다.한자뜻풀이로이끼의점이다.고목의옹이,난초뿌리를덮는돌부스러기,낭떠러지에서떨어지는흙더미,수풀같은것도다태점으로일컫는다.〈중략〉나는태점(胎点)이라쓰고우주의시작점으로해석하고싶다.난자와정자가만나한점인간이태어나듯그림의생명점이태점이라여겨진다.
-‘태점’중에서

그림에대해조예가깊지않으면다룰수없는대목이다.지성을겸비한김미연수필가는어느한가지대상을만나면그것을원초적으로파고들거나재해석에박차를가하는점이매력있다.‘태점’에서두가지의미를창출해내는데,이는동음이의어를제대로활용하고있다는증거다.섣부른차용이야금세그바닥이드러나기마련이지만,의미화에주력한한단어한어절이문학성을확보하여문장씹는맛을안겨준다.

‘말의생명’에서는고향마을유래를더듬어가며음운변화등에의해달라지는말에생명력을부여한다.이어서“말도자란다.”는표현에무릎을치게한다.소문이무성하여자라는그런의미가아닌,차원높은세계에서말을성장시킨다.아주개성강한표현이다.‘붉은등’은홍수지던날의단상을원고지6매내외의단수필로그려냈다.짧은글에서사가함축되어있고인정스런고향사람들이살아나꿈틀댄다.학교옆낮은돌담에무대를만들어연극을보여주며아이나어른이정서적으로어우러지는데서향기를내고,업어서개울을건너주던아저씨의등이붉은등으로뜨끈하게형상화된다.

개울은시장을갈때도,출생,사망신고를할때도반드시건너냐했던곳이요,논물을퍼올리기위해만나는곳이며,상여가쉬고종구쟁이소리에노잣돈이놓이는곳이다.삶의근간이며별리의건널목이다.
-‘붉은등’중에서

결국위와같은건너가다의의미를이끌어냄에가슴이더워진다.
‘조산-조새미’는동화처럼재미있고위트로반짝여,작은아이시절의작가와그마을길을자박자박함께걸어보고싶은충동을느끼게한다.어느땅,어느마을이나그지명을파고들면무수한이야깃거리가드러나기마련인데작가는고향마을의근원을찾아의미화한다.이어지는‘그리운산’에서는쓰라린역사속의이야기로할아버지가살다간시대의대서사시같은수필이다.우리가문학을한다는것은있는그대로의기록이아닌제3의발견이며원래소재로다가온것에대한재해석일때가치가있는바,작가는이를성실히갖추어가며흡인작용을한다.3부의‘왼쪽귀의고백’은귀로하여금말하게하는수사법이뭉클하다.어떠한현상을만났을때천착해들어가는힘이무게감으로작용한다.
김미연수필가의작품중과감하게비판의잣대를들이대는작품을몇편들수있는데,4부의‘생물선생울타리’와‘고사리유권자’,7부의‘백정,누가만드나’등이다.겉으로번드레한명성과너무도대치되는환경훼손하는인물앞에서필치를세워꼬집고,선거철표밭에비유한고사리밭이그럴싸하다.그리고장편수필에해당하는‘백정,누가만드나’는가슴을여미고경건히읽어나가야할곧은소리가도처에깔려있다.

다시서정속으로들어가보자.띠풀,들봄등등의잔잔한언어에서꿈틀거리는희망의가락이너울댄다.띠풀을찾아다닐때는어릴때이고,어리다는곧희망으로환치된다.살기곤곤했던시절엔식솔들과겨울을견디기가더욱어려워봄을기다리기마련,기나긴겨울을나고훈기도는봄을우리들은얼마나기다렸던가.여기서작가는2월을들봄달이라고정보전달효과를보여준다.그러면서도펼쳐지는상황에서사람살이의정겨움이물씬묻어난다.

설이나대보름의이쪽저쪽에입춘이든다.동지와춘분의한가운데놓이는입춘(立春)은한자말이다.우리에겐오래전부터들봄이란말이있다.토박이말박사이신염시열님은2월을들봄달로쓴다.듣기도좋고부르기에얼마나좋은가.
들봄하고소리하면입에서새그러운침이돈다.‘들’은들어간다는말로써곳의옮김이요때의바뀜이다.‘봄’은본다는이름씨다.즉,들어오는것을본다는말이다.
-‘들봄을기다리며’서두

이번책에서가장가슴서늘한글을꼽으라면단연‘묏등에둘러앉아’라하겠다.제목이제시하는대로삶의의미와허무가범벅되어가슴을누른다.누구라도이런서사가있을것이요,이런느낌이있을것이다.그러나입밖으로내어실천에옮기기가어려운일이다.헌데작가는부분부분을뚝뚝끊어내휴지(休止)를두며내면의복잡미묘한감정을드러내공감대를형성한다.그만큼주제면에서다루기어려운글을툭툭건드렸다는증거가된다.

뒤처져서내려온내가고요를흔들었다.“사진한판찍읍시다.한장씩빼서거실에걸어둡시다!”
말이없다.아무도뒤돌아보지도않는다.새봉분인듯바위인듯명상으로조용하다.묏등역시흙이부슬부슬내려앉으며묵언이다.오래지않아봉분은평지로돌아갈것이다.
노인들은서로아무런인연도없는사람들이다.다만마을뒷산을오르내리다가산중턱의한묏등에약속도없이둘러앉은것이다.젊은시절세상일에설레고부딪고상처받다가또다른세상의이편으로건너온사람들이다.
가끔자기생일을맞아자식들이다녀가면소박한음식을사며소소한즐거움을나눈다.어쩌면자신의헛헛함을깊숙이숨기는일인지도모른다.
-‘묏등에둘러앉아’서두

피차감추려해야감춰지지않는노년의모습이다.수필의수미(首尾)에서할말다나왔다.그저보여주기식의회화적수사로이끌어간다하더라도의미가크고깊게전달되면성공한수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