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비누 (김은미 시집)

물고기 비누 (김은미 시집)

$13.44
Description
김은미의 『물고기 비누』는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김은미

대전거주
2024년《시와편견》등단
첫시집『물고기비누』출간
동인지『붉은하늘』외다수공저

목차

제1부

봄을꽂다
오는가
너를기다리며
혼자노는법
자매
퇴비
딸기농장
빈방
지구를쓸다가
공간예약
고해
그리마
미담을찾습니다
팝업북
햇빛샤워
히비스커스
산속에서헤매다

2부

알수없는한가지
물고기비누
가을상자
시인이랍시고앉아있는내게
그냥날내버려두세요
숨은뿔이솟아났어요
이잔을들겠느냐
서성이는정물화
바운드,바운스
탁구판타지
공동의적
토이스토리
사이시옷
오래된안녕
3월의화살나무
레옹마틸다
착지의자세

3부

촌로기행
꽃의비말
뉴스를맛보다
코로나유감
달의위상
별을세다
꽃댕강나무
시든사과
크로노스를위한변명
츤데레
거리에서
오작교
옥상토끼풀
쓸데없는짓
매미의노래
불면의구조
어라운드Around

4부

나약해지기위한독서
공중부양매달린
반팔을입고
모감주나무열매부딪히는
나비이야기를읽고
백일홍서시
한떨기꽃같은
귀여운여인
마늘밭
몸빼바지
시절연가
나무의자
해바라기
열폭병풍을펼치다
융점
클릭하다
현기증
김은미시집해설

출판사 서평

희망이사라진시대의희망찾기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출산율저하가우리사회가장큰문제로떠오르고있다.젊은이들이결혼도출산도모두기피하고있다.국가와지자체는많은대책을세우지만나아질기미는전혀보이지않는다.내놓는대책이전혀효과를발휘하지못하고있다.몇몇제도나경제적지원만으로는근본원인을해소하지못하기때문이다.사람들이아이를낳지않는가장근본적원인은앞날에대한희망이없기때문이다.더좋은세상이올거라는기대가없이아이를낳고기른다는것은너무나무모한일이라고생각하기에이제사람들은아이낳기를주저하는것이다.출산율이낮아우리사회의미래에희망이없는것이아니라반대로희망이없어출산율이낮아지고있다.이렇듯희망이사라지면사회를유지할동력이사라진다.지금우리사회에가장필요한것은바로이희망이다.
김은미시인의시들은이희망에대해노래하고있다.그렇다고희망의필요성을강조하기위해절망을과장하거나반대로근거없는낙관으로쉽게희망찬미래를내세우지않는다.그의시들은우리에게무엇이꿈과행복을가져오고희망을품게하는지찬찬히우리의삶을되돌아보게한다.
일단,그의시를읽다보면희망을위해가장필요한것은그리움이라는것을알게된다.

창너머스물네시간
사선으로서있었을까
정지된시간처럼보이는
노란카카오ㅡTㅡ바이크

뜨거운커피앞에두고
빠르고잔잔한기교
음악듣고있으면
추웠던몸속으로스미는위로

키오스크앞에서당황한여자
무인카페유리창에비친내표정처럼

식어가는종이컵
홀더틈에서
내가달그락거린다
-「너를기다리며」전문

지금은기다림이사라진시대이다.모든것을즉각적으로해결하고충족해야한다.이런즉각적욕망실현을위해세상은빠르게발전해오고있다.이시에등장하는“카카오ㅡTㅡ바이크”도“키오스크도”다그것을위해생겨난신문물이다.하지만시인은이물건들에서기다림을생각한다.좀더빨리움직여기다림을줄이기위해만들어진공용자전거의모습을보고반대로그것이기다린시간을생각한다.시인이아니면쉽게가질수없는시선이다.시인은또한,무인카페에서누군가를기다린다.기다린다는것은기다리는대상에대한그리움의시간을갖는것이기도하다.그런데지금우리가사는세상은이기다림도기다림을만들어내는그리움도모두없애고있다.문명의이기들이그그리움의간극을지우기때문이다.하지만시인은애써그기다림의시간을음악을들으며즐기고있다.누군가를기다리는그그리움을다시느끼기위해서이다.“내가달그락거린다”는말은이그리움의정서가자신의마음을흔드는그순간의느낌을감각적으로보여주고있다.
희망이기다림에서온다는것은다음시에서도잘나타나있다

남동생도오빠처럼직장생활끝내고영농후계자
신지식인대열에합류해
논과퇴직금을합쳐비닐하우스지었다

후회없다는부부가딸기모종심고
겉잎따주며꽃피기를기다린다

반지빠지는줄모르고잎따주는데
뒤꽁무니졸졸따라다니며
형님딸기옷다벗기지말라고걱정이다

꽃피면호박벌넣어수정시키고
사진찍어보내준다고하니
하얀눈덮인12월
하얀딸기꽃피기를
꿈이딸기처럼빨갛게매달리기를
-「딸기농장」전문

빨간딸기의탐스러운모습과희망의느낌을잘연결한작품이다.시인은아주담담하게동생네농장에서체험한일을서술하고있다.하지만그짧은경험중문득떠오른생각을딸기의이미지로포착해낸다.지금여기의먹음직스러운딸기가아닌,앞으로“빨갛게매달리기를”꿈꾸는딸기가훨씬큰행복감을준다는사실을알게된다.그행복은희망에서온다.그리고그희망을위해기다림의시간이필요한것이다.
하지만세상은이기다림을쉽게허락하지않는다.

신탄진재래시장가시면양살구나무도괜찮아요
한그루사다주세요
화분에심었다가당신내게땅한뼘내밀면옮겨심으려구요

...(중략)...

울타리넘어지고반듯한단열재위시멘트가부어지면큐브건물이올라가는군요

더기다릴수없어요
옥상텃밭으로위로받을수없어살구나무한그루심으려구요
-「공간예약」부분

시인은살구나무를심을땅을꿈꾸고있다.하지만그것을쉽게얻을수없다.“시멘트가부어지”고“건물이올라가”며나무를심을땅은점점사라지고있다.그래서시인은화분에라도살구나무를심어그꿈을잊지않으려고한다.어쩌면시를쓴다는것은,이화분에심은살구나무를키우는것인지도모른다.당장실현될수없는기다림을끝없이연기하면서도포기하지않으려고헛된희망의언어를만들어내는시인의노력은화분에살구나무를심어나중에얻게될땅에당당하게큰뿌리를내릴살구나무를꿈꾸는행위와닮았다.
희망은관계의복원과그것을통한진정한소통에서만들어지기도한다.지금우리가사는사회는수많은사람이함께모여복잡한관계망을형성한다.하지만그런복잡성이관계의피상성을만들고사람들은각각뿔뿔이혼자가된군중속의고독을경험하고살고있다.김은미시인은사람들사이의이단절을넘어서는희망을꿈꾼다.

관계를맺기위해
사이시옷글자한개
더갖고있었으면

맺어진뒤에도
허전함느낄때
떠오를수있도록

나뭇가지ㅅ받침
정원사가잘랐어도

나무가지
꽃을피우고
잎도잘자라지

잘려나온사이ㅅ
옷걸이에꽂혔다가
빠져도
단절은아니야
잇는본분을잃지않으니

글자아래
존재감없는듯보이지만
받침이없었다면세상에

세상은얼마나헐거워졌을까
-「사이시옷」전문

시인은그자체로는아무것도아닌“사이시옷”을생각한다.잘린나뭇가지에서도옷걸이에서도사이시옷을본다.이사이시옷이없는“나무가지”도잘자라겠지만,그러나이사이시옷이없는세상은너무도허전하리라고생각한다.사이시옷은글자와글자를잇고의미와의미를잇고나아가존재와존재를잇는바로그런글자이다.이글자가없다면세상은“헐거워”지고사람들과사람들의관계는소원해지고사람들의외로움과슬픔은더커졌을거라고시인은상상하고있다.이것이희망을위해관계를확인하고소통을복원해야할이유이다.
다음시는시인의이런소망을좀더강조해보여주고있다.

당신은고독의허물벗고
홀로타인이되어가는중
되돌아오는메아리

이명인가
상상일까
집착을부르는떼창
-「매미의노래」부분

시인은매미들의“떼창”에서사람들이함께하는어떤세상을상상한다.그것은고독속에서모두가“홀로타인이되어가는”그런현실을자각했기때문이다.그런소통의부재속에매미의떼창은공동체의복원을향한희망의노래로들렸을것이다.그게이명이건상상이건시인은이런꿈을포기할생각이없다.매미처럼노래를불러사람들의의식을깨우치고자한다.김은미시인은이매미의노래를통해,희망을꿈꾸는자로서의시인의사명을생각하고있다.
또한,희망을위해서는무엇보다도다른것이될수있는자유가필요하다.

성형틀에서비늘굳어진시간
나이테가지고태어난물고기한마리
작아보인다고요
한세월보냈어요

미끄러운점액질글리세린
조금더먹었더라면
손안에서빠져나와달아났을텐데
목욕탕거울앞에서
동면에들까요

달아나는유일한방법은
미끄러져거품으로흘러가는것
가까이다가가작아지게도와주는것

풍경처럼흔들린다면
향기라도나눠줄텐데
다시태어나고싶을까요

하트나장미
풍뎅이나나비
네모나동그라미

비오는날
비린내난다고환풍기를돌려요
밖에선향기가난대요
-「물고기비누」전문

시인은물고기모양의세숫비누를보면서다른것되기를꿈꾼다.비록물고기가되어다시바다로가거나풍경이되어처마끝에매달리지못하더라도거품으로사라져향기로남기를바란다.그렇게사라지고달아나자유를얻어야집안에서갇혀,상해비린내를풍기는그런존재를벗어날수있다고시인은생각한다.세상은우리를사회조직에편입하여법과질서와제도로구속한다.이편안함속에서우리는세숫비누처럼점점자신의존재를잃고사라져간다.시인은상상속에서나마이런억압에저항하고자한다.그것은미끄러운물고기가되어세상의손안에서빠져나가거나거품으로자신의존재를바꾸어세상에향기를전하며사라지는것이다.시인이된다는것은어쩌면후자의삶을선택하는것인지모른다.
다른것이되는삶을꿈꾸는것은세상의질서와가치에서조금씩어긋나는것이다.시인은이것을아주재미있게표현하고있다.

완료를누르고아차
삭제를했는데제마음읽었나요

습관대로살고싶어
당신을클릭하면짠나타나는꿈을꾸었어요

번호를누르고종료를누르면
내가읽히나요
내전부를떠올려주기를바랍니다

왼쪽신호를주어야하는
마지막통과선

오른쪽을눌러방향을바꿨더니
알면서모른척해준귀여운당신

훈련되지않은손끝의터치
마구자란풀꽃처럼피어서
거칠게뽑힌다해도괜찮아요

이미머뭇거리는손길의
감촉마저알아버렸습니다
-「클릭하다」전문

시인은약속된기호를“클릭”해야하는손동작이오작동했을때의의외의상황을즐기고있다.완료를눌러야할때삭제를눌러지우고싶은자신의진정한마음을표현하고,왼쪽깜빡이를넣어야하는데오른쪽깜빡이를넣었지만이와상관없이마음이전달된순간을경험한다.이“훈련되지않은손끝의터치”가“마구자란풀꽃처럼피어서”새로운세상을만들수있다는꿈을꾼다.잘못찾아든길이지도를만들듯잘못한“클릭”이“당신을클릭하면짠나타나는꿈”이라는희망을만들수있다는즐거운상상을시인은하고있다.
시인은희망을이야기하고제시하는사람은아니다.희망을말하는것은종교지도자나정치지도자의몫이다.그들은이것으로사람들을이끌고또지배한다.그러나그들이말하는희망이실현된적은거의없다.시인은반대로사라진희망을찾아가는사람이다.희망을제시하는대신무엇이희망을가로막고있는지또무엇으로희망을만들수있는지생각하게만드는존재가시인이다.시인의언어는사람들사이의소통을꿈꾸고우리를일상의구속에서해방하고아련한꿈에대한그리움을제공한다.그것이시인이우리에게보여주는희망의약속이다.김은미시인의이시집에서그아름다운희망의언어를만날수있어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