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모래를 박차다

붉은 모래를 박차다

$13.80
Description
분노의 시간을 뒤로 하고
후회가 아닌 긍지로
두 여성이 함께 걷는 치유의 여정

*다자이 오사무의 손녀, 극작가 ‘이시하라 넨’의 첫 소설*
*2020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병마에 시달리던 엄마를 잃은 딸이 엄마의 친구와 브라질로 떠난다. 2020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선정됐던 『붉은 모래를 박차다』는 여행을 통해 붉은 모래처럼 뜨거운 아픔을 감싸 안는다는 설정으로 막을 올린다.
『인간실격』, 『달려라 메로스』등을 쓴 일본의 문호 다자이 오사무의 외손녀이자 한국에도 인기 있는 국제적인 작가 쓰시마 유코의 딸로 작가의 길을 이어받은 이시하라 넨은 노마드적 감성과 기존 소설 작법을 무너뜨리는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순간적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매력적 구성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주인공 지카와 엄마의 친구인 메이코 씨는 브라질에서 과거의 상처와 마주한다. 어린 시절의 지카는 자유로운 화가인 엄마와, 아버지가 다른 동생 다이키와 함께 산다. 지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이틀 전, 개인전을 준비하던 엄마가 집에 없는 사이 다이키가 심장발작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동생의 장례식에서 가정에 소홀하며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눈초리를 받는 엄마를 보며 지카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후, 지카는 엄마와 멀어지지만 전시회에서 다이키를 그린 중반기 작품을 보고 상처받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저자

이시하라넨

1972년도쿄출생.극작가.시대의부조리와젠더문제를응시하는날카로운시선을가졌다.일본식민통치시대의대만이야기인「프로모사!」와2011년원전사고직후도쿄의모습을그린「팔삭」등역사와사회문제를다룬작품을선보여왔다.NHK위안부방송정치외압변경사건을다룬연극「하얀꽃을숨기다」는2022년2월,우리나라에서도낭독공연되었다.소설가다자이오사무의손녀이며,쓰시마유코의딸이다.첫소설인「붉은모래를박차다」가아쿠타가와상후보작으로선정되었다.

출판사 서평

브라질의붉은모래속에서펼쳐지는두여성의로드무비

지카는브라질에서말년의엄마를돌봤던메이코씨와대화하며어린시절을회상한다.커리어에집중하고자유로운연애를하던엄마.다이키의장례식에서항의의표시로빨간립스틱을바르던엄마.편견에맞서는여성으로서의엄마를지지하기위해엄마의장례식에빨간장미를사용하며‘장례식답지않게’꾸민다.한편으로는다이키의아버지에게성추행당한사실을알면서도모른척했다는사실에혐오감을내비치며분노하기도한다.그모든순간을떨쳐내고그림자처럼따라다니던엄마와동생의죽음을인정하며,마침내자신의인생을긍정한다.메이코씨는남편과결혼하고브라질에서일본으로온것,아이를낳고시어머니를보살핀것등순탄치않던일본생활에대해후회하지않는다.‘자신의선택’에책임을지고긍지를가진다.브라질의붉은모래를박차며.

NHK위안부방송정치외압변경사건을다룬연극「하얀꽃을숨기다」의작가

“자신의아픔에둔감한사람은다른사람의아픔에도둔감해질뿐만아니라폭력에대해무방비가된다.그리고더욱심한상처를입고점점더둔감해진다.”
이소설에서주인공지카는이렇게말한다.중학교시절에이미폭력이생활의일부로존재했고,의붓아버지로부터성추행까지당했다.지카가일본사회에뿌리처럼젖어있는가부장적폭력을예리하게응시하면서이에당당하게맞서는모습을그려낸다.성폭력근절시위등에서앞장서서발언하던작가다운묘사다.
2001년,일본의방송국NHK에서다큐멘터리‘전쟁을어떻게심판할것인가’의2부인‘전시성폭력을말한다’가방송되었다.프로그램은‘일본군성노예제도를심판하는여성국제전범법정’을다루고있었다.그러나위안부와전일본군의증언같은중요한장면은삭제되어제작에참여한관계자와시민단체는분노했다.이들은정치권의개입을주장하며소송을제기했고,7년공방끝에원고패소판결을받았다.이‘NHK위안부방송정치외압변경사건’을바탕으로연극‘하얀꽃을숨기다’가만들어졌고,작품은2022년2월‘제10회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을통해한국에서도공연되었다.이작품의작가가바로이시하라넨이다.그는시대의부조리와젠더문제를응시하는날카로운눈을가졌다.일본식민통치시대의대만을그린「프로모사!」와2011년원전사고직후도쿄의모습을보여주는「팔삭」,낙태를주제로한「그녀들의단편」,성폭력피해생존자인남성의이야기「되살아난물고기들」등일본사회의부끄러운얼굴을낱낱이폭로했다.

자전적이야기로
성폭력,가정폭력을고발하며
일본사회를저격하다

작가는작품의주제가사회적인문제가된것이2011년의동일본대지진과원전사고때문이었다고인터뷰했다.이전에는본인이피해당사자가될것이라는생각을하지못했던것이다.그런그가자신의오만을자성한뒤,당사자를지지하기위해당사자로서의이야기를쓰기로했다.미투집회에참여하며페미니즘과만난그는,페미니즘으로주제를확장했다.성폭력,낙태,일본군위안부문제를무대에올렸다.그리고무대에서한발나아가더많은이가볼수있게작품으로승화시켰다.작가본인의이야기이자여성의이야기,싱글맘인엄마와의이야기를주제로.

책속에서

p.19
그날은아침부터눈이내렸다.국립병원로비에서정산을하고엄마를그대로벤치에서기다리게한후약국으로향했다.축축한눈이지면에쌓이고있었다.약국까지는겨우5분정도였지만역앞이라사람이많았고눈때문에바닥이미끄러워실제보다멀게느껴진다.우산이부딪치지않도록좌우로피하면서,만약내가없었다면엄마가직접여기까지와야한다고생각하니부아가치밀었다.처방전을약국창구에제출한후기다리는동안메이코씨에게전화했다.절망적인검사결과와일주일동안집에서폐렴치료를하게되었다는말을전하고싶었다.엄마앞에서그이야기를다시꺼내기싫어서병원에돌아가기전에이야기해두고싶기도했고,무엇보다누군가와불안을공유하고싶었다.

p.27
“난말이지,사실부모님의친딸이아니야.사생아야.”메이코씨에게그말을들었던게언제였더라.진짜엄마는차녀인가나코씨이고남자는엄마의임신사실을알고는도망가버렸다고했다.메이코씨를키워준부모가사실은조부모였던것이다.따라서요이치씨도사실은오빠가아니라숙부인셈이다.미혼의딸이임신했을때몰래출산시킨후자신들의막내로키우는일은옛날일본에서자주있었다고들었다.태어난아이를위해서라기보다아직젊은딸이사생아를키우다가결혼도못하게되지는않을까걱정해서였을것이다.

p.37
마사나오씨는주변에들릴정도로괴성을지르기시작하고용변도가리지못하게되면서부터는메이코씨에게폭언을일삼았다.메이코씨가전철역에서집으로향하는언덕길을오르다보면마사나오씨의목소리가들렸다고한다.길에서주변사람들과마주치면묻기도전에‘저양반이알코올중독이라서’하며웃어보였다.메이코씨는“어차피알게될텐데숨겨봐야소용없어.”라고조금화난목소리로말했다.마사나오씨가폭발하는이유는예측불가였다.장을보고오겠다고했더니고함을지르기도했고가만히식사를하다가갑자기폭언을내뱉기도했다.그렇게잘해줬는데내뒷바라지도똑바로못해.브라질로돌아가,한자도제대로못쓰는주제에건방지게.메이코,넌최악이야,태생이글러먹었어.

p.51
엄마가유카와씨와동거를시작했을때,좋은사람같다거나이번에는잘됐으면좋겠다는식으로말했던기억은있었다.별다른의미는없었다.조금배려해준것뿐이었다.그말을엄마가그렇게까지마음에두고있을줄은몰랐다.엄마가자신의애인에대해의견을물은적도없었고,유카와씨이전에만났던애인은소개조차해주지않았다.비록자신의애인이라고해도자식에게는아버지로서의관계를강요하지않겠다는엄마나름의철학이었을터이다.그렇기때문에나는그남자와의관계에대해고민할필요가없었고좋은사람같다고편하게말했던것이다.그랬는데이제와서내반응에마음을썼다니당황할수밖에없었다.

p.60
다이키가죽은후살짝미소만지었을뿐인데도아이를잃은엄마답지않다는말을듣자항의의표시로엄마는일부러빨간립스틱을발랐다.그래서형식에서벗어날수록엄마가기뻐할것같은생각이들었다.장례식답지않은방에서장례식답지않은옷차림을한나와메이코씨는분명히동지였다.아버지가없다는이유하나로동일시할수는없다.하지만뭔가같은상대를대상으로싸우고있다는그런느낌.

p.61
“하지만지독하다는의미에서는다이키의아버지도만만치않아.내가자고있을때몸을만지려고한적도있는걸.”스테이크를입에넣으면서별일아니라는듯말해보았다.메이코씨가손을멈추고눈을크게뜬다.“그거기요코씨도알아?”“모를걸?말안했어.”나는빠르게대답했다.“그랬다면다행이네.그말을들었으면기요코씨충격받았을거야.”그렇게말하고메이코씨는다시손을움직이기시작했다.팽팽한긴장감이메이코씨의몸에서전해졌다.“다행이라고?”메이코씨가당황하며그런뜻이아니라고변명한다.나는오로지입속의고기만씹고있었다.맛은느껴지지않았다.꿈속엄마의팔에서느꼈던감촉을떠올린다.하얗고부드러운팔.그팔을만지는것에혐오감을느낀시기가있었다는사실을다시멍하니떠올린다.

p.82
남자의숨소리가귓가에서울린다.소녀는계속피아노를친다.여성이눈물을흘리기시작한다.여성은몸을뻣뻣하게긴장시킨채똑바로악보를노려보지만눈물은여성의의지와무관하게흘러내리는듯하다.남자는가볍게혀를차고는밖으로나간다.소녀는피아노를계속친다.여성이울음을멈출때까지힘껏건반을두들겼다.분노가담긴피아노소리가언제까지고울린다.

p.104
“일본에가면콤플렉스를느끼지않고살수있을것같았거든.내가일본인이라고생각했으니까.일본어는자유롭게할수있고,어머니도엄격한분이셔서일본인으로서의소양을충분히배웠다고생각했거든.하지만아니었어.일본에도착해서남편이나를시어머니에게인사시킬때뭐라고했는지알아?이쪽은일본어가조금거칠지만너그럽게봐달라고.존경어를모른다고.그순간이미자신감은산산이부서졌지.”

p.162
“엄마가돌아가시지않았으면했어.하지만만약엄마가살아계셨다면메이코씨랑이렇게가까워질수없었을테고,브라질에도오지않았을거야.아직일년반밖에지나지않았는데도내인생은이미엄마의죽음없이는생각할수없게됐어.다이키도그래.다이키가살아있다면어떠했을지이제는상상도안돼.두사람의죽음은슬퍼.그런데도그죽음을부정할수도없어.그건분명나자신의인생을부정하고싶지않기때문이라고생각해.둘의존재를배제한나의인생은생각할수없으니까.두사람의존재를긍정하기위해서는죽음까지도긍정해야한다고생각해.”

p.163
“나는후회하는게아니야.그사람과결혼하고이나라에온것.그사람과결혼해서유리를낳고시어머니를보살핀일.그사람이움직일수없게된후로는내가그사람을부양했어.그일들에긍지를갖고있어.그사람과결혼하고일본에왔다는그선택을나는긍정하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