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사람은언제든
쓰는사람이될수있다
‘시인’이나‘작가’보다는‘산책자’,‘도보여행가’쯤으로불리는것이마음편하다는저자는걷는게좋아서걸었고,그러다보니문장들이찾아왔다고말한다.그가글쓰기를시작한것은‘디카시’라는장르의문학을만나고부터였다.디카시는디지털카메라와시의합성어로,사진을찍고그사진에어울리는재치와위트가담긴짧은글을쓰는것이다.그는디카시덕분에걷기의여정에서무엇도허투루바라보지않게되었다고한다.어디서든쉽게멈춰자연과사물을오랫동안응시하고사유하며숨겨진의미를찾는다.책의제목처럼걸음이모여문장이된것이다.
저자는‘걷는사람은언제든쓰는사람이될수있다’고말한다.자연이나사물이말을걸어올때못본체하지말고대답을하는것이글쓰기라고….그렇게걷기와글쓰기를즐기다보면어느순간시시한하루가시같은순간으로바뀌는경험을하게될것이라고말이다.
책속에서
걷고글을쓰면서힘들었던순간들을잘버텨낼수있었다.구멍났던마음이치유되기도했고앞으로다시발걸음을옮길수도있었다.무엇보다,주말휴일하루는반드시어딘가를걸었고,동네단골카페에서무엇인가를쓰는게루틴이되었다.걷다가우연히발견했던동네책방이나재래시장,멋진카페나빵집,미술관,사위가붉은색으로번지는해질녘이나담장위에서이글거리는덩굴장미들을마주쳤던순간….만약걷지않았다면이런기억에남을공간과순간들을쉽게만나지못했을것이다.
-6쪽
걷는동안은집이나카페,사무실등폐쇄된공간을벗어나열린세상속으로들어가는기분이다.길에서만나는자연과사람,사물을보며앞으로발걸음을내딛는것은내가살아있다고선언하는적극적인표현행위다.지구의한모퉁이에발걸음을쿵쿵내딛음으로써수동적으로살고있는것이
아니라능동적으로세상속에내가존재하고있음을느낀다.
-19쪽
삶이란세상을떠날때까지끊임없이걷는것이다.걷는이유나목적은달라도길에서떠오른생각,읽은책들,만난사람,몸소겪은일들이모여인생이된다.목적지에반드시행복이나를기다리고있을거라기대하지않는다.길을걷는여정속에있다고믿으니까.고난이옆에있는것처럼행복을느낄수있는안목이없다면그냥지나칠수도있을것이다.앞으로걸어야하는인생길에서무엇을보게되고,어떤인연을만들어가고,무슨일들이기다리고있을지상상하면발걸음이즐거워진다.
-75쪽
섬은시적인공간이다.섬주위를날아오르는갈매기,산정상에서내려다보이는마을,아슬아슬하게절벽위에서몸을지탱하고서있는진달래…이모든것이흑산도로유배된정약전처럼세상에서격리된유배자로보이기도하고,때로는세상과불화하여자발적으로뭍을떠난자유로운영혼들처럼느껴졌다.섬에대한트라우마가있으면서도나역시자발적인유배자의심정으로다시섬을찾는게아닌가싶다.섬에서머무르는시간이길지않아도뭍으로돌아가면섬에서보낸시간을그리워하니까.
-111쪽
글을쓰는일은언제나어렵다.남에게보여주기위한글이라면글을쓰기도전에생각은이미포화상태다.독자들에게읽는기쁨이라도주려면가독성있는글이되어야하는데그게만만치않다.볼거리가넘쳐나는세상에서굳이뻔하디뻔한글을읽어줄만큼독자들은더이상관대하지않다.글을쓰는과정은정신뿐만아니라몸의에너지까지고갈시킨다.대개글은엉덩이로쓴다지만엉덩이로도쓰고,다리로도쓰고,때로는온몸으로쓴다.그래서생각이벽에부딪히면주저없이자리를박차고일어난다.앉아서죄없는시간만죽이기때문이다.글은생각자체이므로.
-224쪽
인생에서주어진시간을대부분의자에앉아책을읽고스마트폰화면을보면서채우기에는너무아깝다.머리를쓰는만큼몸도단련이필요하다.몸을단련하는데는등산이나걷기,자전거라이딩등무엇을하든상관없지만풀코스마라톤만큼짜릿한운동은아직경험하지못했다.완주후마
치죽었다다시살아난기분을어디서느낄수있단말인가.죽음앞에서모든고민은하찮은지라달리면서세상의고민으로부터해방감을느낀다.그렇다고고민이사라지는것은아니지만,몸을한번흔들어놓고새로운기분으로다시생을시작하는맛은어디서도느낄수없는마라톤만의매력이다.
-251쪽
기차는내힘들었던시기,방황의시작과끝을함께했다.기차가없었다면규정된노선을벗어나어디로튈지도몰랐고그시기를잘버텨내지못했을것이다.정해진노선을따라정해진시간에나를태우고내려주고원래의자리로데려다주었다.어린시절뿐만아니라어려운시기에도내곁을지켜준친구,기차는어머니와함께한추억이었고믿음이었다.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