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구 10월항쟁 80주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946년 10월, 대구에서 시작된 거대한 격랑은 경북 곳곳으로 번져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총성이 울렸으며, 계엄이 선포되고 밤마다 사람들이 끌려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날의 사람들은 하나둘 이름을 잃어갔다. 사건은 기록되었지만, 그 사건 속에서 울고, 두려워하고, 서로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다.
유재연의 장편소설 《10월 ― 우리는 대구에서 왔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 소설은 1946년 대구 10월항쟁을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며 묻는다.
“우리는 그때의 사람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현재의 한지훈은 포항 성모수녀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세상을 떠난 아녜스 수녀가 남긴 노트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노트를 받아든 어머니 김현숙은 그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끝내 남겨놓았구나.”
노트에는 해방 직후의 혼란과 1946년 가을의 굶주림, 콜레라와 계엄, 총성과 체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역사책이 사건을 기록한다면, 이 노트는 그 사건 속에 있었던 사람을 기록했다.
소설의 중심에는 스물여덟 살의 한도영이 있다. 그는 거대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보다 눈앞의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 다친 사람을 돌보고, 끌려간 사람을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도영의 선택은 때때로 시대의 흐름과 충돌한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오히려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였다.
소설은 계엄과 진압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지도 세밀하게 보여준다. 군홧발 소리가 골목을 울리고, 밤이면 체포의 두려움이 번진다. 가족들은 묻는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데려가는 겁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의 폭력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저항하고, 누군가는 침묵하며,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한다.
한도영의 동생 한규영은 군복을 입는 길을 택한다. 한도영은 동생에게 묻는다.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누구를 마주하고 있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이 대목에서 소설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한복판에서 인간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유재연은 《10월》에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전모를 모두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선택, 두려움과 연대, 그리고 끝까지 사람을 바라보려 했던 마음을 따라간다.
그렇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우리는 대구에서 왔다”라는 말은 단순한 출신지를 의미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기억에 대한 약속이 된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 이름을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 역사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다.
한도영은 스물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쳤지만, 소설은 그의 죽음보다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음을 기억한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 했던 마음.
80년이 지난 오늘, 《10월 ― 우리는 대구에서 왔다》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역사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사건의 이름인가, 숫자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름인가.
이름은 지워질 수 있어도, 사람은 끝내 기억 속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진실도 사람에게 돌아온다. 유재연의 《10월 ― 우리는 대구에서 왔다》는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며, 1946년 대구의 가을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한다.
2026년, 대구 10월항쟁 80주년.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것은 사건만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