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내리는 저녁 : 당신에게 부치는 32봉지 시 이야기

책갈피에 내리는 저녁 : 당신에게 부치는 32봉지 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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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에게 부치는 32봉지 시 이야기!
“햇빛이 오래 머물다 간 자리마다 꽃이 피어납니다.”
“이기철 시인의 시와 글도 그러합니다!”

여기에 있는 글들과 여기에 있는 시들이 당신의 슬픔과 아픔을 잠시라도 씻어주는 이슬비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손에 잡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하루, 그 분의 낮과 밤이 아침 햇빛에 머리를 감은 풀잎처럼 신선하고 향기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저녁이 와서 햇빛이 몸을 감추면 별빛이 그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이 시간을 하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침을 지나 저녁에 닿습니다. 우리가 낮 동안 걸어온 발자국에 빛이 스러지고 풀들이 머금은 향기가 산과 강물과 들판에 남습니다. 나는 이러한 시간들이 누구의 가슴에 닿아 슬픔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이 한없이 즐겁기만 한 사람도 없지만 삶이 그만 내려놓고 싶어 한숨짓는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으로 돌아가 이슬에 손을 씻는 사람의 마음을 한 줄의 시로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맙게도 그 바람이 제 시의 바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더할 수 없이 고맙겠습니다. 글 읽는 시간이 여러분의 마음 챙김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자

이기철

저자:이기철
1943년경남거창출생
1972년『현대문학』에「오월에들른고향」외3편으로등단
1976년부터「자유시」동인
1993~4년대구시인협회회장
2007년학술단체인한국어문학회회장,한민족어문학회회장
[저서로시집]
『청산행』『우수의이불을덮고』『지상에서부르고싶은노래』『열하를향하여』『유리의나날』『내가만난사람은모두아름다웠다』『나무,나의모국어』『가장따뜻한책』『흰꽃만지는시
간』『영원아래서잠시』등21권과영역시집『BirdsFlowersandMen』,에세이집『쓸쓸한곳에는시인이있다』,비평집『인간주의비평을위하여』,학술서『시학』『분단기문학사의시각』등이있다.
아림예술상,후광문학상,김수영문학상,시와시학상,최계락문학상,문덕수문학상,박목월문학상등수상.현재영남대명예교수로'여향예원,시가꾸는마을'을운영하면서'서정시삼천리''동서공감'등의문학단체를지도하고있다.접기

목차

책머리에5

제1부아름다움은진실

시가내개로걸어오는시간13
아름다움은진실20
연애하듯시를쓰라30
무슨가슴으로세상을사랑하랴36
시가어렵습니까?42
시쓰는괴로움,시쓰는즐거움54
독자는천의눈을가졌습니다60
시는웰비잉의한방식입니다70
명시앞에서생각나는일들77
시의고향을찾아서89
시를읽으면행복해집니다99
음악이영혼을깨운다106
문화의수준을생각한다113
시인의이력서121
시인은무얼먹고살까요?126
장자도에서의하룻밤132
인공지는알파고가시를쓸수있을까요?142
그말이내가슴에들어왔다149
시인과이름155
시인의목소리,그음악친구160
시와에세이문학의나아갈방향168
하모니카의추억178

제2부어떻게읽을까요?

여러종류의착각185
진지한시와재미있는시192
상큼하고짭짤한서정시의맛203
암시의시학208
시를읽는두가지눈213

제3부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우정에대하여219
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전쟁에대하여234
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연애에대하여244
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돈에대하여254
파르나시앙의저녁산책
-밀턴의『실락원』264

작품색인268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햇빛이오래머물다간자리마다꽃이피어납니다.저녁이와서햇빛이몸을감추면별빛이그빛을받아반짝입니다.이시간을하루라고부르는사람들이아침을지나저녁에닿습니다.

우리가낮동안걸어온발자국에빛이스러지고풀들이머금은향기가산과강물과들판에남습니다.

나는이러한시간들이누구의가슴에닿아슬픔이되지않기를바랍니다.삶이한없이즐겁기만한사람도없지만삶이그만내려놓고싶어한숨짓는사람도없기를바랍니다.하루일을마치고저녁으로돌아가이슬에손을씻는사람의마음을한줄의시로쓰는이유가여기있습니다.

여기에있는글들과여기에있는시들이당신의슬픔과아픔을잠시라도씻어주는이슬비가된다면좋겠습니다.

이책의제1부는이와같은마음으로제가여러곳에서독자들과대화하거나강연한내용입니다.제가그분들보다많이알아서단壇에오른것은아닙니다.작고소담한이야기이지만그분들과함께,그분들의표정을읽고그분들과대화를나누는시간을갖는것이좋아서행한말의봉지입니다.제2부는제가시를읽다가생각한몇분의시에대한‘생각주머니’이고제3부는오래전에『시로여는세상』이라는잡지에연재한저의소심록(素心錄)의일부입니다.‘파르나시앙’은유럽낭만주의다음에온규범적이고도덕적인경향을가진시의유파를이르는명칭입니다.흔히들‘고답파(高踏派)’라부르는데조금은고전적인규범을준수하려는유럽시파의별칭입니다.저도갈수만있으면고답파의길을가고싶어택한글의제목입니다.

고맙게도이책을손에잡는분이있다면,그분의하루,그분의낮과밤이아침햇빛에머리를감은풀잎처럼신선하고향기로워지기를바랍니다.그바람이제시의바람이라고생각해주면더할수없이고맙겠습니다.글읽는시간이여러분의마음챙김의시간이될수있기를기원합니다.

책속에서

시가내게로걸어오는시간
꽃이처음꽃잎을열때무슨말을할까요?
나비가햇살아래로날아나오면서무슨생각을할까요?
방울새가나뭇가지에날아와앉으면서무슨마음을노래할까요?
이런생각들을하고그대답을글로써보는것이시의출발입니다.시에쓰이는말이반드시멋지고유식한말들이어야하는건아닙니다.반드시아름답고화려한문장의옷을입어야하는건아닙니다.

무지개를보면내가슴은뛰누나

이같이너무도단순하고어린아이다운생각으로시인은시를출발하고있지않습니까.이단순하고어린아이다운말이윌리엄워즈워드의그유명한「무지개」의첫구절입니다.
---pp.13-14

저는저의시「눈오는밤에는연필로시를쓴다」라는시의후반부에서‘조르주상드니버지니어울프샬롯브론테니앨프렛테니슨’의이름을불렀습니다.

눈오는밤에는옛날의책들
조르주상드니버지니아울프
샬럿브론테니앨프리드테니슨,
읽으면금방한숨이고눈물인
김소월이니백석이니
그런이름을A4용지다섯장에
덧없이끄적거리고싶다

이시인들은모두낭만주의시대에뛰어난작품들을남긴작가,시인들입니다.그가운데서도조르주상드는(1804~1876)는이세상에와서일흔두살을살면서많은작품을썼고많은예술가들과사랑을했던작가입니다.
---p.104

저는몇년전에「시인이되어암소를타고」라는시를발표한적이있습니다.그때쓴시를다시한번인용하겠습니다.

시인이되어암소를타고가면보인다
태어나그동네밖엔아무데도못가본나비가
세상바깥은알려고도않는도랑물의송사리가
제날개닿는하늘만세상전부인줄아는잠자리떼가
암소를타고짚신을신고가면보인다
아직도옛날옷그대로입고봄마중나온꽃다지가
엉덩이에똥을묻히고도부끄러운줄모르는암소가
이제는서있기도힘겨워그만누워도괜찮을뒷동산소나무의생애가…

이쯤이면여러분은제가산골출신,조금은가난하고순박했던아이,남다른감수성과궁금증이많았던소년이었음을짐작할것입니다.그런만큼저는소년시절,풀꽃과나무,새와곤충을좋아했고나뭇잎지는소리,도랑물흐르는소리,빗방울이처마에떨어지는소리,갈대잎서걱이는소리를좋아했습니다.나생이와꽃다지,씀바귀와냉이,비비새와종달새,때까치와곤줄박이를좋아했습니다.
---pp.123-124

저는매일시를읽습니다.아마도시를읽지않고지나가는날은하루도없을것입니다.
고려시대백운(白雲)이규보(李奎報)도그의산문집『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이렇게썼습니다.

‘나는시를좋아해서매일시를읽는다.병이나서몸이아프면안아픈날보다시를더많이읽는다’(詩酷好病中倍於平日)

그러니시를좋아하는사람은시병(詩病)에걸립니다.시를너무좋아하는것도일종의시병이니이병에걸리면나을방도가없습니다.아니아예나으려하지도않습니다.

1930년대시인이상(李箱)은친구김기림(金起林)에게보낸편지에서,그런병을‘고황(膏?)에든병’이라했지요.어떤약을써도낫지않는병이‘고황에든병’입니다.저도고황에든병을갖고있나봅니다.
저는요즘젊은시인들의새로운감각을시로맛보는즐거움을가지고있습니다.이즐거움은잘키운채소를한입베어무는것같은느낌에비길수있습니다.황인찬이나박준의시가그런시들입니다.

쌀을씻다가
창밖을봤다

숲으로이어지는길이었다

아침에는
아침을먹고

밤에는눈을감았다
사랑해도혼나지않는꿈이었다

황인찬「무화과숲」전문

---pp.185-187

어려운말로는정동(情動,affectus)이라는용어가해당되겠는데스피노자가했고들뢰즈라는철학자가다시한이말을여기서굳이끌고올필요도없이이시를쓰는시인의정서의움직임,감정의이동상태를가감없이,아무런삭제없이,의식의흐름에아무런간섭을받지않고,생각나는대로나열해놓은것이라보면됩니다.

‘나에게는어떤충동말고는아무것도없다’라고쓴시인의말을참고하면도움이될것같네요.‘내용없는아름다움’대신‘내용없는’시읽기의재미를느낄수있다면그런시는그나름대로유효한것입니다.

예쁜시는예쁘고깜찍한시는깜찍하고정겨운시는정겹고아름다운시는아름답습니다.그만하면시가제몫을다한것입니다.
---pp.201-202

인류의역사는전쟁이그려놓은거대한벽화입니다.거기엔사랑이있고이별이있고싸움이있고패배가있습니다.죽음이있고눈물이있는가하면승리가있고환희가있습니다.그러기에영국의철학자허브트스펜서는‘전쟁은인류의진보와발전에공헌한다’는역설을내놓기까지하지않았습니까.

나는그많은전쟁가운데오직하나,6?25전쟁을겪었습니다.6?25전쟁은내소년의기억속에많은것을심어준추억의흑백사진입니다.1950년6월25일새벽5시,북한인민군이보병20만과전차포대를이끌고남한을침공한6?25.내기억의흑백사진속에투영되어있는그들의실루엣은먹구름같고파도같고소낙비같고홍수같습니다.기록에의하면1953년7월27일휴전협정이체결될때까지전쟁에서희생된사람은남한에서만도50만을넘는다고합니다.인류역사상가장짧은시간에가장많은희생자를낸전쟁이한국전쟁이라합니다.전쟁이일어난그해나는여덟살,초등학교2학년이었습니다.
---pp.237-238

세월이흐를수록대중문화의힘은강해지고순수문화의힘은약화되는시대에나는시인들이모두멀리하고기피하는소재인‘돈’에대해서한편의시를썼습니다.아마도제가돈에대해서시를쓰게된일은이번이처음이아닌가합니다.

돈은살아서거지처럼떠돌며
세상의목마른자를희롱한다
장님도귀머거리도그에게손벌리며허리굽힌다
고집센돈은아무리전언해도대답하지않고
제몸을팔며사며하얀가난같이꽃핀다
저자에서는쑥미나리돌미역파래들도
몇다발의돈이되어팔려나간다
인플루엔자처럼독감처럼옮아다니는창녀여
돈이여
누구든일생을걸어너의문간에닿아
비로소편안과일락을얻는다고굳게믿지만
저순금햇빛이그의입김으로더워진적없다
물소리가그의부름으로노래한적없다
돌고돌아서돈이라이름했다는익살속에서
너와내가자리하고누울곳은돈아닌온돌
수챗물과거지의손에서도반짝이는돈이여
너없이도튼튼한저상수리나무를보라
너에게구걸하지않아도아름다운
청호반새를보라

「돈」전문(미발표)

『시로여는세상』(2006년겨울호)
---pp.262-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