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종묘의궤」에 수록된 황실의례와 종묘 신실 제구
신이 된 조선왕의 거처 종묘 신실!
향후 종묘 소장 제구의 원형 보존 및 복원 복제 방향 등에 크게 기여!
대한제국황실 부묘의례의 변화양상, 현존 종묘 소장 제구 양식에 끼친 영향,
제구의 소재 등의 과학적 분석 규명!
종묘는 국가의례로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사회질서 구현을 위한 통치방법으로 정한 최고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종묘 의례를 길례로 규정하여 왕실의 조상신을 신격화하고, 제향 의례를 예제에 해당하는 대사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라 종묘의 위계도 승격되고, 유교적 보편적인 질서 속에 갖추어진 국가 사당으로 왕실의 권위와 신성성을 담보하고 있다. 고종은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한 지 34년 만에 국가체제를 바꾸어 황제로 등극하였다. 황제국의 위상과 역할을 다변적으로 대변하고, 조선과의 종통적(宗統的) 계승을 유지하기 위해 황제국에 관련된 의례는 고례(古禮)를 쓰지 말고 조선의 의례를 우선적으로 참작하여 보탤 것을 더하여 간편한 것을 취하도록 하였다.
“국가에 처음 있는 전례(典禮)인 만큼 의절(儀節)을 행할 때 반드시 고례(古禮)만을 순전히 따를 필요는 없으니, 우리의 예에서 손익(損益)을 참작하여 간편한 것을 취하도록 하라.”(且國家初有之典禮也 基於儀節之問 不必純用古禮 而斟酌損益於我禮 取其簡便可也) 『승정원일기』 고종 36년 9월 8일 갑년 종묘 신실은 신실 한 칸을 기본으로 신주의 위계를 서상제에 입각하여 서쪽을 상위로 하여 태조를 제1실에 순종을 19실에 모시고, 영녕전 16개 신실에 선왕과 선후의 위폐를 모시고 있다. 종묘 신실에는 선왕과 선후의 신주를 봉안하고 이를 봉심하는데 필요한 일체의 의례용 제구를 구비(構備)하였다. 신실의 내부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주이다. 신실은 신실을 모시는 방으로 내부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신주를 봉안하고 의례를 설행하기 위해 의절에 따라 내부 공간에 진설되는 제구의 위계가 정해졌다.
“천자는 칠묘 3소3목으로 하고. 제후는 2소2목으로 오묘로 한다. 신위는 독립된 묘를 갖추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天子七廟 三昭三穆 興大祖之廟而七諸侯五廟) 『禮記』卷5 「王制」
“건물은 같이 쓰고 그 안에서 실만 따로 하고, 서쪽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차례로 이하의 신위를 모신다.”(同堂異室 以西爲上) 『종묘의궤』제2책 「종묘제도」
종묘 신실 제구는 국상 마지막 과정인 부묘를 통해 최종적으로 갖추어졌다. 국상을 당하면 도감을 설치하고, 도감 내에 각 공방을 통해 수보할 것과 개비할 것을 구분하여 종묘에 부묘할 때 최종적으로 마련하였다. 여기에 새롭게 제작하는 품목을 제외하고는 빈전과 혼전에서 마련하여 소용하였던 것을 전배잉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신이 된 조선왕의 거처 종묘 신실!
향후 종묘 소장 제구의 원형 보존 및 복원 복제 방향 등에 크게 기여!
대한제국황실 부묘의례의 변화양상, 현존 종묘 소장 제구 양식에 끼친 영향,
제구의 소재 등의 과학적 분석 규명!
종묘는 국가의례로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사회질서 구현을 위한 통치방법으로 정한 최고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종묘 의례를 길례로 규정하여 왕실의 조상신을 신격화하고, 제향 의례를 예제에 해당하는 대사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라 종묘의 위계도 승격되고, 유교적 보편적인 질서 속에 갖추어진 국가 사당으로 왕실의 권위와 신성성을 담보하고 있다. 고종은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한 지 34년 만에 국가체제를 바꾸어 황제로 등극하였다. 황제국의 위상과 역할을 다변적으로 대변하고, 조선과의 종통적(宗統的) 계승을 유지하기 위해 황제국에 관련된 의례는 고례(古禮)를 쓰지 말고 조선의 의례를 우선적으로 참작하여 보탤 것을 더하여 간편한 것을 취하도록 하였다.
“국가에 처음 있는 전례(典禮)인 만큼 의절(儀節)을 행할 때 반드시 고례(古禮)만을 순전히 따를 필요는 없으니, 우리의 예에서 손익(損益)을 참작하여 간편한 것을 취하도록 하라.”(且國家初有之典禮也 基於儀節之問 不必純用古禮 而斟酌損益於我禮 取其簡便可也) 『승정원일기』 고종 36년 9월 8일 갑년 종묘 신실은 신실 한 칸을 기본으로 신주의 위계를 서상제에 입각하여 서쪽을 상위로 하여 태조를 제1실에 순종을 19실에 모시고, 영녕전 16개 신실에 선왕과 선후의 위폐를 모시고 있다. 종묘 신실에는 선왕과 선후의 신주를 봉안하고 이를 봉심하는데 필요한 일체의 의례용 제구를 구비(構備)하였다. 신실의 내부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주이다. 신실은 신실을 모시는 방으로 내부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신주를 봉안하고 의례를 설행하기 위해 의절에 따라 내부 공간에 진설되는 제구의 위계가 정해졌다.
“천자는 칠묘 3소3목으로 하고. 제후는 2소2목으로 오묘로 한다. 신위는 독립된 묘를 갖추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天子七廟 三昭三穆 興大祖之廟而七諸侯五廟) 『禮記』卷5 「王制」
“건물은 같이 쓰고 그 안에서 실만 따로 하고, 서쪽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차례로 이하의 신위를 모신다.”(同堂異室 以西爲上) 『종묘의궤』제2책 「종묘제도」
종묘 신실 제구는 국상 마지막 과정인 부묘를 통해 최종적으로 갖추어졌다. 국상을 당하면 도감을 설치하고, 도감 내에 각 공방을 통해 수보할 것과 개비할 것을 구분하여 종묘에 부묘할 때 최종적으로 마련하였다. 여기에 새롭게 제작하는 품목을 제외하고는 빈전과 혼전에서 마련하여 소용하였던 것을 전배잉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신이 된 조선왕의 거처 종묘 신실 (「종묘의궤」에 수록된 황실의례와 종묘 신실 제구 | 양장본 Hardcover)
$3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