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나를위해쓴책인가?’라는착각을불러일으켰다.”
엄지혜_에세이스트,『돌봄과작업』(공저)저자
“자신을돌본기록이자그돌봄의언어가그림이었다는고백같은책이다.”
박재연_아주대교수,『두번째미술사』저자
돌봄의무게에소리없이닳아가던한사람이
그림과마주하며스스로를지켜낸다정한회복의기록
“그곳은굳이무언가를설명하지않아도되는시간이었다”
깊은우울에빠져있던모네,
조카가고단한제삶을닮을까두려웠던고흐,
자신만의방이없어식탁한구석에서책을읽어야했던루시에셀까지.
19~20세기위대한예술가들이캔버스위에남겨둔
인간적인아픔과자신의삶을정교하게교차시킨내밀한고백
대한민국은지금‘돌봄노동’과‘번아웃’이라는소리없는성장통을앓고있다.아이를돌보고,아픈가족의곁을지키고,끝없는집안일을감당하는일은숭고하지만,그과정에서정작‘나자신’은조금씩닳아없어지기마련이다.자신의이름대신‘누구의엄마’‘누구의보호자’라는명찰을단채스스로걸어잠근문뒤에서외로워하고있다.
장애도비장애도아닌경계에서부유하는삶을살아온오희승은첫책『적절한고통의언어를찾아가는중입니다』(2022년출간)를통해삶을향한짙은애착과용기,질병과사회적돌봄의문제,장애를가진몸에대한논의등다양한관점을아우르며독자의마음을두드렸다.그치열한고백을통과해온저자가이번에는소리없이마모되던자신을온전히지켜내기위해‘미술관’이라는안식처를선택한이야기『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로우리곁에다시돌아왔다.
저자는말초신경이서서히소실되는유전질환을안고태어났다.아이를낳고나서야자신의병을알게되었고,발달이또래보다느린아이를키우며언어치료실을전전했다.지팡이를짚기시작한뒤로는곱은손으로장갑끼기가어려워지자,아이가손가락하나하나를끼워주는날들이이어졌다.엄마로서,주부로서,환자로서,한사람으로서균형을잡는일이너무어려워무너지던날,그런날이면그녀는미술관으로향했다.‘그곳은굳이무언가를설명하지않아도되는시간이었다.그저가만히서있는것만으로도마음속엉킨매듭이천천히풀리는것같았다.’이책은그자리에서시작된기록이다.
19세기후반에서20세기초반에걸쳐그려진28점의그림과함께,엄마라는역할과나라는존재사이에서흔들리던이야기,불편한몸으로일상을버텨온이야기,그안에서발견한사랑과고요와상실의이야기가펼쳐진다.그시기의화가들역시거대한역사나신화대신눈앞의순간과개인의내밀한감각을붙잡으려했던이들이기때문이다.어린시절뇌전증때문에가족에게버려졌다는상처를오래안고살았던르동,건강문제로한순간에파혼을통보받았던셰르브베크,아들을끌어안은채끝내돌이킬수없는회한에잠긴이반뇌제를그린레핀,그리고우울증을앓던시기에베네치아의풍경을화폭에담았던모네까지.저자는위대한예술가들역시우리처럼서툴고아파하며삶을살아낸한사람이라는사실을발견하고,그들의캔버스위에서지금의나를비추는비밀스러운주파수를찾아내어치유의문장으로길어올렸다.
이책은그림을해설하거나화가의생애를나열하는대신,그림앞에서있던자신의감각과기억을써내려간다.뷔야르가그린실내장면앞에서‘마치엄마가늘우리집의배경이었던것처럼’공간에녹아든여인의모습에서자신의엄마를발견하고,파울라모더존베커의자화상앞에서예술가와여성사이에서갈등하다‘아쉽다’는한마디를남기고세상을떠난삶을읽어낸다.고흐가요양원에서밀레의판화를바탕으로〈첫걸음〉을그렸던이야기를돌잔치날아이가처음걸음을뗐던복잡한감사함과나란히놓고,함메르쇠이의텅빈응접실앞에서는‘고요는쟁취하는것이아니라허용하고협상하는대상’임을깨닫는다.그림을해석하는것이아니라그림과삶이포개지는순간,독자역시자신의기억과다시마주하게된다.저자의말처럼“예술이주는위안은거창한의미나비평적인정에서오는것이아니라자신의삶을비춰주는거울로부터오는것”임을28편의에세이에걸쳐조용히증명한다.
“그저가만히서있는것만으로도
마음속엉킨매듭이천천히풀리는것같았다”
_돌봄의무게를내려놓고온전한나로숨쉬는시간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에담긴메시지는과거의기억에서건져올린것만이아니다.현재를살아가는저자가바라보는삶의관점과태도를에세이곳곳에가득담았다.모임마다“저는··엄마예요”라는말이먼저튀어나오던순간에서는‘나에게소속된다는것’이무엇을의미하는지묻고,아이가학습지에적어낸“생명줄”이라는단어앞에서는‘가족이라는무거운생명줄’을어떻게조율할수있을지들여다본다.그리고잘될것같다가도한없이무너져내리는날엔,거창한해법대신물을틀고몸을씻는가장사소한일상의의식을붙잡는다.“감정은통제되지않지만행동은조절할수있다는믿음”으로,그렇게무너진하루를다시일으켜세운다.이밖에도여러질문에대한답을탐구하는여정을뒤따르다보면그간많은독자가귀기울여온저자만의속깊은통찰을확인할수있다.
이책은결코재능있는누군가의특별한미술이야기가아니다.저자는방황하고지쳐있는여느보통의양육자,혹은보호자들과마찬가지로역할의무게에허덕이고,놓친꿈을아쉬워하고,떠나간이들을그리워한다.그래서그는말한다.“그저어느날스스로를지키고싶었던사람이라면이글들이낯설지않게느껴지리라믿는다.”그의말처럼진정한제모습을탐색하고자신을지켜내려는이들이라면누구나이책에서나도할수있다는용기와따뜻한응원을얻을수있다.‘누구의엄마’,‘누구의보호자’라는이름뒤에서조금씩닳아가던사람들에게이책은미술관이라는작은문하나를열어보인다.그문턱을넘는순간,닳아가던‘나’는다시자기자신으로돌아올자리를찾게된다.
책속으로
제시윌콕스스미스의일러스트들을보며나는고고한예술도좋지만,보는것만으로마음이즐거워지는그림의효용에대해서도다시생각하게되었다.이렇게정면으로돌격해서보는이의감수성을건드리는장르를어떻게피할수있단말인가.사랑스럽고,아기자기하고,예쁘고,따뜻해서한번시선을주고나면그냥반해버리게되니말이다.기억저편을두드려서바로현재로소환시키는이야기의힘은너무나강력하다.이제나는왜엄마가그런작품들을좋아했는지알것같다.예술이주는위안은거창한의미나비평적인정에서오는것이아니라자신의삶을비춰주는거울로부터오는것이었다.
---p.20,본문〈내가모르던세상이열렸다〉중에서
버지니아울프는“여성이글을쓰기위해필요한것은자기만의방과약간의돈”이라고말했다.나에게도그런방이필요하다.이때의방은물리적인공간일수도있지만꼭그렇지않아도된다.조용히침묵할수있는시간,누구의소리도아닌내안의소리에귀를기울일수있게허락하는여백이간절하다.돌봄의시간속에서는자기만의고요를얻기란쉽지않다.가족안의내가아니라,‘쓰는나’,‘느끼는나’,‘멈추는나’가되어야만하는순간이있다.함메르쇠이의방은바로그런자리에깔린침묵이다.
---p.69-70,본문〈자기만의고요를얻는법〉중에서
생명줄은일방적이지않다.깊은바다에서잠수부를지상과연결해주는생명줄처럼,부모와자식사이의관계도서로를살리는상호적연결고리다.아이는부모로부터물리적·정서적생명력을얻고,부모는아이로부터존재의의미와사랑의에너지를얻는다.셰르브베크의그림에서엄마가아이를끌어안는장면은단지위로의행위가아니라서로를살리는생명력의교환이다.아이는엄마의품에서안전을확인하고,엄마는아이를품으면서자신의모성을실현한다.이런주고받음의균형이관계를더욱단단하게만든다.
---p.82,본문〈아이의세계〉중에서
하얀설원위에서뛰노는아이들과강아지,아이를번쩍들어올리는엄마의모습이담긴켄트의그림을보면,우리가족의한때가떠오른다.삶은멀리서보면희극이지만,가까이에서들여다보면각자의고단함을품고있다.이그림속인물들역시따스한빛속에서있으나,역광의그림자가길게드리워져있다.행복의습성도그와닮았다.찬란한한순간이지나면언제그랬냐는듯어둠속으로침잠한다.그러나때때로절망적인상황에서도좋은일이찾아올수있다는믿음이나를버티게했다.
---p.121-122,본문〈우리는그저사랑하는수밖에〉중에서
멀리서보면누구나비슷해보이는인생도,가까이에서조용한시선으로들여다보면특별해진다.어쩌면우리모두에게그런시선이,말없이머물러주는위로가필요한게아닐까.
---p.127,본문〈가까이에서조용한시선으로〉중에서
모네는건초더미처럼누가관심이나줄까싶은평범하고사사로운대상에서다양한면모를발견하는작업을했다.찰나를붙잡으려는긴노력,절망적인상황속에서도끈질기게붙잡고놓지않는신념과열정,그리고그분투가포장되지않은상태로드러났을때의숙연함같은것이한장의그림을통해전해졌다.빛을잃고점멸하는순간조차그의손끝에서되살려냈다.어쩌면내가하고싶은일은그런게아닐까.일상의작은틈과균열사이에서생의의미를발견해쓰는것부터시작해야하지않을까.
---p.194,본문〈함께보는아름다움은힘이세다〉중에서
나의욕실도특별한의미를지닌다.내게욕실은견디기위해피신하는공간,삶의에너지를느끼기위한공간,나를회복시키는공간이다.욕실에들어가서문을닫고물로몸을씻어내고나면딱히문제를해결한것이아닌데도무엇인가정리된기분이든다.목욕은다시살아갈수있게나를일으켜세우는의식이다.무엇보다도지치고비어버린상태그대로쓰러지지않고,그대신수고했다고나를잘다듬고채워돌보는느낌이든다.
---p.209-210,본문〈나를일으켜세우는의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