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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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내과 의사이자 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3년의 기록
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1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이기병

내과전문의이자의료인류학연구자.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교수.연세대학교원주의과대학졸업후세브란스에서내과수련을받고늦깎이로서울대학교에서인류학을공부했다.현재고려대학교에서의학교육학박사과정을밟는중이다.코로나19팬데믹시기에감염내과전임의를수료했으며AI패혈증예측스타트업기업AITRICS에서의료자문을겸하고있다.

‘고통받는것만실재’한다는견해에동의하는편이다.또한인간과비인간,몸과마음,삶과죽음등분리될수없으나분리된것들의경계,의학과사회과학등기반이다르다고여겨지는것들의경계를생각하고연구하는것에관심이많다.저서로『아프면보이는것들』(공저)이있으며,논문으로논문「조선족간병사들의돌봄낙인과생명정치」,「죽음과애도에대한고찰과교육가능성탐색」등이있다.

목차

추천의말
머리말-잊히지않아야할크고작은세계의기록

1갑상선호르몬의진실
:재현의목적은본질의장악에있다

2술과심부전
:돌아올수없는강은한번에건너는것이아니다

3어느HIV청년과약혼자
:낙인이치료에미치는영향

4옴과헤테로토피아
:그들에게쉼터는장소바깥에있는장소였다

5요통,변비그리고실신
:좋은의료란무엇인가

6질병이나죽음은형벌일까
:삶과죽음을관통하는유일한진실,고통에관하여

7고통의이분법
:몸과마음사이의간극과관계에대하여

맺음말-누군가는경계에서있어야한다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의사로서도인류학자로서도뛰어나지만,
그의가장빛나는부분은의사와인류학자의경계속에서탄생한다.”
-이현정,서울대학교인류학과교수

“현대의학이간과한돌봄의필요와쓸모를살뜰히발굴해낸다.”
-장일호,기자·『슬픔의방문』저자

“누군가는경계에서있어야한다”
내과의사이자인류학연구자이기병의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3년의기록

내과의사이기병은공중보건의시절,3년간서울구로구가리봉동의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외노의원)에서근무했다.전문의수련을막마치고나온의사로서그는그곳에서다양하고고유한아픈몸들을만나며언어의장벽,문화의장벽을실감한다.그때의그고단함과좌충우돌했던분투를그저‘미숙’의결과로만생각하기엔갑갑함이남아있었다.무언가더나은진료와돌봄을제공할수있지않았을까고민을안고있던그는마침내,인류학이라는새로운길을만난다.

의학의진단및치료체계는특정증상을보이면특정질병으로이어지는병인론에근거해정해진프로토콜에의해움직인다.의학은합리성과효율성을극대화하는방향으로발전하며인류전체의건강한삶을견인했으나한편으론환자개개인이겪는질병서사에서는점점멀어졌다.이야기보다는과학이,숨은맥락보다는눈에보이는확실한증거가중요했다.

『연결된고통』은현직내과전문의이자의료인류학연구자이기병이외노의원에서만났던환자들과씨름하며겪었던희로애락을담은책이다.건강과불건강,몸과마음,삶과죽음,나와너로구분되는이분법의시대에이책은의학이라는단일의카테고리에포섭될수없는아픈몸들을인류학적시각에서해석하고복원한다.코로나시대감염내과의사로일하며틈틈이옛기록을복원하는작업은지난하고외로운일이었으나,여러차례고쳐쓰고다듬어집필4년만에책을세상에내놓았다.이책은외노의원이이제폐원(2004-2017)하여역사로만남았다는사실을감안하면,외노의원과그곳에다녀간이국노동자의이야기를담은최초의,유일한기록물이라고할수있겠다.

“연구와진료에힘겨웠던내머릿속의학의영토위에인류학적세계관이새로이거주하고경합하면서,비로소그진통에힘입어접근불가의영역과도같았던외노의원3년의시간을재해석하고재현해볼수있었다.이제보니그3년은고통스럽게반성하고망설이며좌절했던기억이면서삶이때때로보여주는것처럼간혹기쁘고감사한나날이기도했음을고백한다.”-머리말중에서

고통과통증은개인적인것이라기보다
역사와문화와사회의층위에서상연되는것이다

저자는2011년부터3년간,외노의원에서아프리카대륙의에티오피아에서부터동남아시아,중국조선족에이르기까지10개국에이르는다양한문화권의환자들을진료했다.그과정에서그는내국인환자들에게서경험하지못한일련의난관에봉착한다.첫째는소통의문제였다.타국의진료실에환자로앉아있는자신의모습을상상해보라.그곳언어를할줄알아도진땀이나는건어쩔수없다.언어가능통하지않다면더욱곤란하고당혹스러울것이다.책에는실제로말이전혀통하지않았던,코트디부아르청년의사례가등장한다.(7장고통의이분법)진료실을찾은그는한국어도,영어도그리고불어도(코트디부아르는프랑스령이었다)할줄몰랐다.결과적으로자기가살던지역의토착어만할줄알았던그를진료하는과정에서빚어지는여러가지‘오해’는왠지낯이익다.비록극단적이긴해도,진료실에서내이야기를충분히전달하기란얼마나어려운지를정확하게보여주는사례이기때문이다.같은언어를쓴다고해도소통은충분하지않다.(배경지식이)동등하지않은‘의사와환자’같은관계에서는특히그렇다.

둘째는국내와는다른환경에서태동한다양한질병을감별해야하는어려움이었다.저자는“어디가아파서오셨어요?”라는문진에한두가지주요증상이아닌여덟아홉가지의증상을토로하는조선족의(한결같은)사례에서황망함을느꼈다.특정증상을증상의원인인장기와질병으로좁혀들어가마침내진단에이르는‘생의학’의훈련만받아왔기에이런상황에쉽게적응할수없었던것이다.그러나어느인류학문헌을통해이들이고통을호소하는원인이다분히역사적이고문화적이며사회적일수도있음을확인한저자는,일말의해방감과동시에무거운‘의미’를느끼기시작한다.환자들의질환에단지진단명하나로압축되지않는‘서사’가있고,더나은진단과진료를위해들어야하는서사가무엇인지알려면‘역사적·사회적·문화적’배경을이해할필요가있음을깨달았기때문이다.저자는“고통과통증은오직개인적인것이라고상상하지만실제로는그가속한문화와사회와역사의층위위에서상연되는것일가능성이높다”는것을비로소알게된다.

“질환서사는현대의학의거대한패러다임과코드화된카테고리속에갇혀버린몸의목소리를환자에게되돌려주는‘재현(representation)’과같다.동시에그것은주변에,그리고치료자나의사에게그고통의의미를전달하고해석하게함으로써본질에새롭게접근하도록돕는우리몸의가장오래된레토릭이다.”-52쪽

의학과인류학의경계에서바라본고통의얼굴들
목소리를잃은,잊히지않아야할크고작은세계의기록

외노의원을거쳐이후의사로살아가면서‘진료실내의료’의한계에회의를느낀저자는인류학에입문한다.그는“공부를하고학위를받았다고해서의학(과인류학)을감히안다거나할수는없”다면서도의학과인류학의경계에서는데는주저함이없다.그경계에서바라본이야기들은때로는뭉클하고,때로는즐겁고,또때로는가슴아프다.현대의학은보편적질병범주와함께이를진단,치료하는체계를고안해냈다.의학의진단체계가정교해질수록,치료법이더발전할수록인간의수명은늘고,고통의범위는줄어들었다.효과적이고효율적으로.그러나그렇게정확도와속도,효율과효과가강조될수록인간의삶은‘질병코드’로암호화되면서고통이나증상을통해아픈몸이말하고자했던역사적·문화적·사회적목소리가검열,절삭되어일개디지털부호로납작해진다.그목소리는다른말로하면,환자의‘서사’다.책에는환자의몸이의학의진단체계보다더정확히‘말’했던사례가등장한다.(1장갑상선호르몬의진실)

알코올성확장성심근병증,즉술에의한심부전을겪던환자의이야기(2장술과심부전)는어떤상황이나결과가한사람의책임이라고말하기에앞서먼저생각해야할것이있음을짚는다.일상을‘건강’과‘불건강’의의료적언어로재편하는의료화시대에는,질병과은유가서로유착된다.예를들어‘외국인노동자’인환자에게주어진진단명‘알코올중독’에모종의경계와위협,나태한일상,잠재적폭력등이상상되는것처럼.이런차별적시선과낙인이어쩌면그의병을더악화하는요인으로작동할수있음을,따라서‘돌아올수없는강은한번에(혼자서)건너는것이아님’을촘촘하게보여준다.

HIV를보유한청년의치료를끈질기고집요하게설득하려시도한경험(3장어느HIV청년과약혼자)은,낙인이치료에미치는영향을전방위적으로다시검토하게만든다.저자는의사로서환자를‘치료의대상’으로만보았던것을반성하는한편,치료현장에서‘사회적’관점이언제나잉여의논의가되기십상이라는점을솔직하게고백한다.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위층쉼터에전염병‘옴’이번진이야기(4장옴과헤테로토피아)에인류학자마르크오제의‘비장소’와미셸푸코의‘헤테로토피아’를연결시키는대목은,이책에서가장철학적인장면이다.저자가책에서심혈을기울여문제를제기하고자한개념은‘이분법’이다.저자는근대적사유의핵심인‘이분법’이우리가사는세상을삶과죽음,몸과마음,주체와객체,개인과사회등으로간편하게나누지만,실제삶은그렇게나뉘지않으며이분법적도해가인지부조화를일으키거나문제해결을어렵게만드는경우가적지않다고지적한다.

저자는특히의학이지닌어쩔수없는이분법적관념에끊임없이의문을제기한다.예컨대의학에서죽음은삶을위해몰아내야할,적어도지연시켜야할적으로간주된다.그러나삶과죽음은따로떼어서생각하기에는완전히연속적인시계열상에위치한다고꼬집는다.저자는죽음앞에서초연한듯보이는어느환자의이야기(6장질병이나죽음은형벌일까)를통해삶과죽음이연결되어있음을알려주는유일한의제가‘고통’이라고말한다.또한만성염증과우울증을동시에겪던환자의사례(7장고통의이분법)를통해서는몸의고통과마음의고통을분리하려는이분법에사로잡혔던시간을비판적으로재구성한다.

“우리삶과질병을재단해온‘이분법’이고통을줄이는지아니면되레부추기는지는끈질기게응시해야한다.이책에서면면히이야기한것처럼우리의고통은겹겹이연결되어있기때문이다.몸과마음,삶과죽음,자아와타자,개인과사회의고통이모두그러하다.”-251쪽

친절한의료지식과치열한인류학적해석
이제,그들의고통에나의고통을맞대어본다

책에실린얼굴들과마주하다보면자연스럽게이런질문들이떠오르게된다.몸이하는이야기를듣는능력이란무엇인가.몸과마음,삶과죽음은완전히분리할수있는가.질병과죽음은온전히개인의책임인가.돌봄이란무엇이며,좋은돌봄은가능한가.어느하나가벼이다룰수없는묵직한질문들에이책은명쾌하게답을제시하는대신,독자로하여금새로운가능성을상상하고검토하게만든다.

이책은친절한의료지식과치열한인류학적해석을넘나들며,그동안쉽게접할수없던새로운이야기의세계에우리를데려다놓는다.책을읽다보면가리봉동의어느좁다란진료실한편에슬그머니앉아있는듯한착각이든다.때로는의사의마음이되어환자와연락이닿지않아연신전화를해대며노파심과불안을느끼고,때로는환자가되어내말을성의껏들어주지않는의사의무심함에서럽고속상하다.외국인노동자‘환자’로서의삶은우리와별반다르지않다.책을읽으며우리는그들의고통에나의고통을맞대어보게된다.

국내외에서터져나오는다양한고통의목소리들이하루도끊이지않은시대.누군가에의해함부로재단되어목소리를잃은고통이언젠가나의것일수도있음을,이책은말한다.그런의미에서이책『연결된고통』은고통의시대를함께건너는징검다리다.누군가의고통을해석하고줄여보고자하는작은노력이결국은우리자신을위한것이라는단순한사실을한걸음한걸음알려주는단단한징검다리말이다.

“이기록이우리가사는세상에존재하는거대한고통의일부를조금더이해하게되거나적으나마해석의여지를늘려주었기를소망한다.그래서누군가가그고통에개입하거나고통을완화시키기에수월하기를,또다른누군가의문화적,심리적,사회적,신체적고통이잠시나마줄어들수있기를희망한다.”-맺음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