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습기살균제,코로나19,이태원,오송지하차도…
다섯명의인류학자들이추적한일상적참사와정동의계보
세월호참사와코로나19확산과이태원참사.이들은각각의사건처럼보이지만우리기억속에서로뗄수없는일들로차곡차곡엉겨있다.지난10년간반복되어온사회적참사들은,그일을직접경험한사람은두말할나위없고티브이나포털을통해간접적으로목격한우리의몸과마음에깊은흔적을남겼다.참사는과연무엇을남겼으며,무엇을앗아갔을까.
덕성여대문화인류학과김관욱,경북대학교고고인류학과김희경,한림대학교의과대학춘천성심병원이기병,서울대학교인류학과이현정,전남대학교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정종민등‘의료인류학연구회’에소속된다섯명의인류학자가,《달라붙는감정들》에서일상을무대로연이어벌어진참사의궤적속에놓여있는우리의안부를묻는다.저자들은반복되는참사속에서,우리각자의삶에끈적하게엉겨달라붙는감정이나정서를‘정동(affect,情動)’이라명명하며이를추적한다.책에따르면정동은‘감정’과‘정서’를만들어내는원형적이고근원적인힘이다.즉‘슬프다’,‘기쁘다’,‘괴롭다’,‘우울하다’같은도드라진이름이붙기이전의원초적인감정적,정서적에너지다.
책에서짚은우리사회의공통적인‘정동’은‘무관심’과‘무기력’이다.지난10년간충분히애도되지못한사건들위에새로운비극이포개지고,피해자가가해자로내몰리며,진상규명이무산되는것을반복해서목격하는동안어느새각자도생의정신,무관심과무기력을학습해왔다는것이다.그렇게사회적참사는이제그만듣기싫은‘불편’하고‘골치아픈’일,어떻게해도해결되지않으며심지어내‘자원’을빼앗는일로전락한다.참사를관심에서치워버리는동안우리는슬프지도기쁘지도않은감정적진공상태로내몰린다.원치않는우울과불안,긴장과초조도얻는다.
우리는어느날갑자기이감정적진공상태,무기력과무관심의상황에놓인것이아니다.이책을기획하고엮은공동저자김관욱은책의맺음말에서‘우리가느끼는모든감각에도나름의역사가있음’을강조한다.저자들은각자의현장에서스스로가경험했거나,참여연구를통해발로뛰었거나,당사자들을인터뷰한이야기들을인류학과정동이론에대입해그역사를노련하게추적한다.그렇게탐구하고기록한참사속정동의계보를따라가다보면,우리에게누적된무관심과무기력의실체가조심스레모습을드러낸다.
코로나19와기다림의다양한얼굴들,
무심함은어떻게무자비함으로변하는가
책의저자들은의료인류학연구회소속의학자,연구자또는의사다.의료인류학연구회는2014년의료영역의다양한주제들을인류학의관점에서논의하기위한소규모월례세미나로출발해어느덧10주년을맞이했다.이책은‘의료인류학’이라는주제에걸맞게주로코로나19확산으로인한여파들을다룬다.
경북대학교고고인류학과김희경교수는코로나19가한창일무렵,응급실에제때이송되지못한아버지의이야기로첫장을연다.오미크론이대유행하면서재택치료가시작되고,방역체계가완전히재편되면서‘열이나는뇌졸중의심환자’인아버지는구급차를두차례돌려보내고응급실근처에가보지도못한채아침을맞는다.김희경교수는의료체계에서우리가맞닥뜨려야하는보편적인‘기다림’의미를당사자의보호자이자인류학자의관점에서재해석한다.다시는겪고싶지않은“의료체계에진입하지못해발을동동구르던지난밤”에깊은무력함을느끼는한편,그렇다면기다림이“무조건수정되어야할폐혜”일지에대해서는의문을제기한다.그렇게의료체계(를비롯한관료제적분류체계)속기다림의두가지측면을균형있게보여준다.
기다림은국가가제공하는보편적의료서비스를받을권리를누리기위해‘시민’으로서거쳐야할절차다.하지만다른관점에서보면,관료주의적무심함으로무장한구조의처분을무력하게기다릴수밖에없는‘순응적주체’가되는과정이다.즉,기다림은그자체로시민으로서의권리향유와순응이라는양극을모두포함한다.(41쪽)
의료체계의기다림은때론무심함을넘어무자비해진다.덕성여대문화인류학과김관욱교수는코로나19시절부실한대응이초래한죽음을다룬다.코로나감염자로끝까지의심을받으며발열6일만인2020년3월18일홀로사망한고등학교1학년남학생정유엽군이야기다.처음열이날때‘3~4일기다리며경과를지켜보라’는방역지침을철저히따랐던정군을떠나보낸정군의부모는“차라리욕을하고난리를쳤더라면,우리아들이살지않았을까”하는자책의날을보낸다.김관욱교수는‘규범을따르고,지침을준수하면사회도나를지켜줄것’이라는원칙의배신은‘도덕적상처’를남긴다고짚는다.또이렇게누적된배신을경험하고목격한사람이늘수록개인의트라우마가집단적트라우마,‘문화적트라우마’로이어질수있음을경고한다.
미국사회학자닐스멜서(NeilSmelser)는문화적트라우마를“부정적정동으로가득한집단의기억”으로정의내리며이것이“문화적예측의근간자체를파괴한다”고설명한다.연이은참사로생명과안전이위협받는상황,수많은죽음에누구도책임지지않는사회분위기,일부동료시민의무관심과무시는모두의트라우마가되어문화의근간인도덕마저뒤흔들지모른다.(62쪽)
애도를잃어버린시절,돌봄의가치가벼랑끝에내몰린사회
우리가복원해야할애도와돌봄은무엇인가
한림대학교의과대학춘천성심병원내과전문의이기병은팬데믹의절정기에코로나19중환자실에서근무했다.그는방호복이감염원으로부터의료진을보호하는효과를냈으나,의사-환자사이에있어왔던보편적이고필수적인치료과정의단절을가져왔다는점에주목한다.또한어쩔수없이수많은죽음과유가족의모습을목격한그는우리가‘애도의감각’을잃어버렸다며,이를“단적으로말해나와관계를맺는사람의죽어감을곁에서바라보는이가가질수있는근원적인감각의부재”이자“애도의결락”이라호명한다.그가코로나19가확산되기바로이전해에,아버지를보내드린과정을소상히적은대목은,이애도의결락이그저‘장례절차’의문제가아님을정확히보여준다.이기병전문의는미처해결하지못한집합적고통과분노가터져나오기전에,이제라도증발된애도의시간과상실의경험을복원해야한다고제언한다.
코로나19팬데믹이지나간의료현장으로돌아가서우리가던져볼만한질문은이것이아닐까한다.우리가회복해야할‘좋은애도’란무엇인가.이질문은필연적으로좋은죽음이란무엇인가와연결되어있다.그러나죽음을조정할수는없어도애도의방식과내용은조정할수있다.죽음자체를막을수는없더라도죽음을이해하는방식을수정할수는있으며,죽어가는이를살려낼수는없더라도그에게반응하는방식은개선할수있기때문이다.(110쪽)
전남대학교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정종민연구원은지난3년간코로나19시절인지증당사자들을돌보던돌봄노동자30여명을인터뷰했다.그중돌봄노동자이정희와그가돌보던인지증당사자김순례의사례를통해돌봄현장의핍진한일상을생생한목소리로들려준다.돌봄노동자들은팬데믹시절사회적거리두기로돌봄가능인원이최소한으로제한되면서,“1초도못쉬는”,“일폭탄”을감당해야했다.정종민은지금의돌봄위기,돌봄참사는2008년장기요양보험제도가시작되면서이미예견된일이었다며,돌봄노동자에게독박돌봄의부담을안기는대신,새로운차원의돌봄의가능성을모색할것을주문한다.그방법으로‘돌봄이관계적’이라는점을인정하고,인지증과인지증당사자에접근하는방식을전환해야한다고부연한다.
이정희의인지증돌봄은의료의언어나철학의언어가아니라실천의언어이자삶의언어로다가온다.당연히인지증과산다는것은아픈몸에서건강한몸으로혹은소위‘비정상’에서‘정상’으로의회복에강조점이있는것이아니라아픈몸과사는삶그자체에서차이를발견하고또다른사회적삶의가능성을만들어간다는데있다.그래서인지증은불치병이아니라함께살아가야할또하나의삶의조건이된다.(148~149쪽)
세월호에서이태원까지참사가일상이된우리사회의정동,
그너머의희망에관하여
책에는코로나19의료참사에관한이야기뿐아니라세월호참사,이태원참사에관한이야기도실려있다.앞서정유엽군과부모의이야기를다룬덕성여대문화인류학과김관욱교수가,이태원참사1주기무렵유가족과인터뷰한내용을기반으로이태원참사가남긴우리사회의정동을살펴봤다.김관욱교수는세월호때와달리이태원참사의경우국가가나서서애도의시공간을통제,제한하면서유가족에게서제대로애도할기회를빼앗았다고지적한다.또참사원인을입증해야할정부가,되레유가족에게피해자임을입증할것을요구하며가해자와피해자의위치가‘거꾸로’뒤바뀐상황이특정감정(분노와원망과무기력)만을느끼도록내몰았다고도덧붙인다.
유가족들과생존자들은평생슬픔과분노,무력감과죄책감만을느끼며살아가는것이아니다.그럼에도마치‘진짜’피해자다움(victimhood)이라는것이존재한다는듯,또한그것에애도의시간은흘러가지않고반복된다.걸맞는감정이존재한다는듯기쁜일이있어도마음껏웃지도못하는일상이강요되기도한다.실제로많은유가족이참사후‘가만히앉아만있어도힘든감정의상태’에빠져있었다.그이외의감정은허락되지않은듯했다.(168~169쪽)
안산,광화문,팽목항,목포등현장을앞장서찾아다니며재난을연구해온인류학자,서울대학교인류학과이현정교수는세월호참사이후지금까지10년간우리사회에길게드리워진정동을살펴본다.이현정교수는세월호참사이후국민은싸워도문제가해결되지않는것을학습했으며국가는반대자의싸움을원천봉쇄해야한다는것을영리하게익혔다며,‘무력감과우울은오늘날한국사회를지배하는가장강력한정동’이라고진단한다.그렇다면,무관심과냉소의긴동굴을빠져나올방법은없는걸까?이교수는,무관심과책임중어느것을선택할지에달렸다는말로답을대신한다.그러면서둘중무엇을선택할것인가는‘내가나의자유를어떻게사용할것인가’를넘어궁극적으로‘내삶을어떻게만들어나갈것인가’와도정확히같은질문이라고지적한다.
내앞에고통받는존재가있다.나는무엇을할것인가?나는‘쿨’한태도로고개를돌리고,그사람이폭력을당하고죽어가는것을묵묵히방관할것인가?아니면,그가죽기전에손을내밀어내집으로일단피신하라고말할것인가?(…)이것은고통이가득한이시대에,내가실존하는인간으로서어떻게살아갈것인가와직접적으로관련된과제다.(204쪽)
책의머리말에따르면“의료인류학자는고통을겪는이의곁에서그가온몸으로토해내는부서진언어를이어붙여모두가함께머물수있는자리를만들기위해애쓰는사람”이다.이책은고통곁에선다섯명의의료인류학자가일상적으로벌어지는참사에속절없이무너지지않기위해,또한참사당사자만의이야기가아닌‘우리’에게도영향을미치는참사의흔적들을함께들여다보기위해쓰였다.그리하여이책을읽는일은머리말을쓴김희경의말대로,“고통으로헐린우리몸과마음”을돌아보고,“참사가휩쓸고간자리에서도보듬어앞으로나아갈힘”을보태는일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