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제2차 진주성전투 430주년 기획, 절개를 논하다
촉석루가 명승 누각으로 인정받는 것은 임진왜란 역사의 증인인 논개와 삼장사의 충절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개의 시문은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고, 또 삼장사 시문은 단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었다. 촉석루 문학의 역사적 변모를 살피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논개와 삼장사의 역대 시문을 한자리에 모아 번역해 연구자나 대중들에게 제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이 책은 임진왜란 후 논개와 삼장사를 제재로 지은 한시나 한문 산문을 최초로 집성하고 그것을 번역함으로써 진주 충절의 문학 전통과 전개 실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영예로운 이름을 남겼다.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의 의열과 충절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부패한 현실 세계와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질타하는 표상이 되어 문학 주제로 깊숙이 들어앉았다. 특히 논개의 상징성은 작가에게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시나 소설, 연극 등의 예술로 재해석되고 있다.
문화적 기억이 저장된 매체, 즉 세대 간 공유와 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심상 공간을 주된 제재로 삼아 시문을 짓고 두루 향유했다. 논개는 예나 지금이나 기억이 저장된 매체가 있음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준다. 촉석루와 더불어 의암, 의암사적비, 의기사가 한 공간에 존재해 창작 욕구를 유발했다.
단일 주제로 20년 넘게 연구한 결과, 이 책에서 수록한 논개 시의 작가는 104명이고, 작품은 100편이 넘는다. 17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출생한 작가의 한시를 모았다. 이 중 변영로와 한용운의 시는 한글 형식이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특별히 포함했다. 다음으로 논개 사적 산문의 작가는 37명이고, 작품은 43편이다. 근현대 논개 화소가 집중적으로 부풀려지거나 만들어진 사실을 고려해 국한혼용체의 글도 포함했다.
이 책에는 1621년부터 1965년까지 약 350년 동안 창작된 시문을 수록했다. 한시를 통해 전통 시인들이 역사 인물 논개와 심상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산문은 논개 사화의 문헌 정착 과정, 일화의 생성과 변이, 지역 정체성의 연계 등을 파악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한 삼장사 시 작가는 80명이고, 작품은 100편이 넘는다. 사실 충신 사적이라면 진주성 함락 때 순국 장소인 촉석루가 단연코 제일 비중이 높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산문 작가는 35명이고, 작품은 40편이다. 정충단, 창렬사는 충혼을 기리는 시설물이기에 경영 책임자인 우병사는 관리에 정성을 쏟아야 했다. 또 사당에 봉안된 순국 인물에 대한 합당한 대우, 즉 증직과 포상은 당대 진주인들이 간절히 염원하던 현안이었다. 우병사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현했는지, 임란 기억이 문헌에 어떻게 저장되었는지, 삼장사 실체를 둘러싸고 지역과 문중 사이에 논변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의문점들은 여러 산문을 짚어봄으로써 이해도를 높여나갈 수 있다.
이렇게 작가와 작품이 총량 면에서 적지 않음에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논개의 경우, 사적이나 한시 형식의 측면에서 천착한 성과가 있으나 대부분 구비 설화를 중심으로 논개의 출생과 신분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삼장사 또한 촉석루 삼장사 시의 창작설에 모든 논의가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본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연구 시각에 따른 것이겠지만 본서에 수록한 작품들이 미처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논개와 삼장사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쟁점 요소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지역문화콘텐츠를 정치하게 다듬어나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논개와 최경회, 임란 사적이 진주나 장수의 읍지류에 들어앉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원전과 함께 제시했다.
부록에서 본문 이해와 진주학(晉州學)의 기초가 되는 목민관을 처음으로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진주목사는 조선 개국부터 갑오개혁까지 총 336명이다. 또 경상우병사는 진주와의 친연성이 강화된 임란 이후로 총 231명이 재직했고, 병영이 창원에서 진주성으로 이전된 1603년 8월부터 1635년 10월까지 총 23명의 우병사가 목사를 겸했다. 이들의 가계와 행적은 촉석루 시문과 진주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영예로운 이름을 남겼다.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의 의열과 충절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부패한 현실 세계와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질타하는 표상이 되어 문학 주제로 깊숙이 들어앉았다. 특히 논개의 상징성은 작가에게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시나 소설, 연극 등의 예술로 재해석되고 있다.
문화적 기억이 저장된 매체, 즉 세대 간 공유와 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심상 공간을 주된 제재로 삼아 시문을 짓고 두루 향유했다. 논개는 예나 지금이나 기억이 저장된 매체가 있음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준다. 촉석루와 더불어 의암, 의암사적비, 의기사가 한 공간에 존재해 창작 욕구를 유발했다.
단일 주제로 20년 넘게 연구한 결과, 이 책에서 수록한 논개 시의 작가는 104명이고, 작품은 100편이 넘는다. 17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출생한 작가의 한시를 모았다. 이 중 변영로와 한용운의 시는 한글 형식이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특별히 포함했다. 다음으로 논개 사적 산문의 작가는 37명이고, 작품은 43편이다. 근현대 논개 화소가 집중적으로 부풀려지거나 만들어진 사실을 고려해 국한혼용체의 글도 포함했다.
이 책에는 1621년부터 1965년까지 약 350년 동안 창작된 시문을 수록했다. 한시를 통해 전통 시인들이 역사 인물 논개와 심상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산문은 논개 사화의 문헌 정착 과정, 일화의 생성과 변이, 지역 정체성의 연계 등을 파악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한 삼장사 시 작가는 80명이고, 작품은 100편이 넘는다. 사실 충신 사적이라면 진주성 함락 때 순국 장소인 촉석루가 단연코 제일 비중이 높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산문 작가는 35명이고, 작품은 40편이다. 정충단, 창렬사는 충혼을 기리는 시설물이기에 경영 책임자인 우병사는 관리에 정성을 쏟아야 했다. 또 사당에 봉안된 순국 인물에 대한 합당한 대우, 즉 증직과 포상은 당대 진주인들이 간절히 염원하던 현안이었다. 우병사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현했는지, 임란 기억이 문헌에 어떻게 저장되었는지, 삼장사 실체를 둘러싸고 지역과 문중 사이에 논변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의문점들은 여러 산문을 짚어봄으로써 이해도를 높여나갈 수 있다.
이렇게 작가와 작품이 총량 면에서 적지 않음에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논개의 경우, 사적이나 한시 형식의 측면에서 천착한 성과가 있으나 대부분 구비 설화를 중심으로 논개의 출생과 신분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삼장사 또한 촉석루 삼장사 시의 창작설에 모든 논의가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본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연구 시각에 따른 것이겠지만 본서에 수록한 작품들이 미처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논개와 삼장사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쟁점 요소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지역문화콘텐츠를 정치하게 다듬어나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논개와 최경회, 임란 사적이 진주나 장수의 읍지류에 들어앉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원전과 함께 제시했다.
부록에서 본문 이해와 진주학(晉州學)의 기초가 되는 목민관을 처음으로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진주목사는 조선 개국부터 갑오개혁까지 총 336명이다. 또 경상우병사는 진주와의 친연성이 강화된 임란 이후로 총 231명이 재직했고, 병영이 창원에서 진주성으로 이전된 1603년 8월부터 1635년 10월까지 총 23명의 우병사가 목사를 겸했다. 이들의 가계와 행적은 촉석루 시문과 진주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역주해 논개 삼장사 시문 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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