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말
살면서
언어의사찰로출가한
시인이다
읽을수록감칠맛나는
서정시의행간에녹아든
상징과암시를찾아보는
재미로읽고싶다
시의힘은짜임새있는
언어이다
책속에서
마리아상앞에서묵주기도를올리듯
누군가를위한애틋한사랑으로
그렇게쓰고싶어라
쓸쓸한세상한귀퉁이
불꺼진창에유령처럼서있던
잠못드는그사람에게
한편의시詩가되게하소서
저세상밖으로눈[眼]을떠보아라
적막한강물에발을씻고있던산山이
어디로흘러가고있더냐
하늘에떠있는구름한점으로
나도떠나고싶어라
무엇이되어다시만나기위해
험하고외로운길을탓하지말아라
어디쯤표표히떠도는혼을
무릎꿇고애타게불러보아라
문밖에서종일너를기다리며
살아있는돌부처가되고싶어라
떠도는자者여오너라
내게와서한편의시詩가되어라
네가있음에
새벽까지내목숨의불꽃을태우며
향긋한포도주로
그대타는목을적셔주마
내사타구니를내보이며
신명나게춤을추고싶어라
오너라모두모여앉아
한해의가장아름다운잔칫상을차려보자꾸나
한편의시詩를위하여…
-「한편의시詩를위하여」
숫처녀눈부신알몸으로
과물果物이풋풋하게익어가는과원
산비탈쪽으로쫓겨가는땡볕이
불시에밀어닥치는가을의
은근한배냇짓에잠시황홀해지는한때
방금따온과일몇깎아보라
가을의싱싱한살점을베어내어
은쟁반에담아보라
차린것은없어도풍성해지는가을식탁에
귓불붉힌소녀처럼부끄러운아내여
오랜만에잡아보는손으로감사기도를드린다
가을에
-「가을에」
각각의바람으로싸돌아다니다가
입맛이서로틀려버린식탁에앉아
인스턴트음식으로길들여진자식들은
아버지를동네북처럼두들겨패고있구나
거친싸움판에등이휘도록버티던
완강한힘은어디로갔나
흔들거리는이빨처럼슬며시빠져나와서
자식들에게무슨말로변명할수있나
비바람치던날은수양버들로흔들리고
무성한이파리를갉아먹던자벌레는
눈부신나비가되어날아가고
앙상한줄기만남아
이제가야할길은어딜까
얘들아,못난아버지의살과피를
각각의그릇에나누어주면서
함께등을기댈집한채를위해
함께기도드리자
-「저녁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