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슬하 (양장본 Hardcover)

구름의 슬하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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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의 언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 아닌 언어는 죽은 언어다. 물론 흥미로운 것은 시의 언어와 시 아닌 죽은 언어의 차이가 얼핏 보면 크지 않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인들은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서 대체로 시 아닌 죽은 언어 근처에는 되도록 얼씬거리지 않으려 한다. 대신 당연하게도 우리가 시의 언어라고 흔히 믿고 있는 그런 자리의 언어를 가리고 뽑아 직조한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굳이 시 아닌 죽은 언어 가까이로 다가가 그 언어들 속에 숨은 시의 언어를 들추어 찾아내 오곤 한다. 이를테면 이영란 시인이 바로 그런 시인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존재는 구름의 슬하에 있다. 머리 위를 걱정하는 일들이며 난처한 일들 모두가 구름 아래서의 일이다. 이영란의 시는 세상의 존재에 대한 기대나 환상 같은 것을 거절한다. 인식되는 그 자체로서 살아있음을 증언한다. 우리 시는 흔히 대상에 대한 온정,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다림,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희망 등을 노래한다. 이는 이영란 시에 없는 것들이다. 이영란은 그 없는 것 사이에 진짜 살아있는 것들, 그래서 생생한 것들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시인이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단국대 명예교수)
저자

이영란

저자:이영란
전북김제출생.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문예창작전문가과정수료.
2015년『서정시학』으로등단.
시집『망와의귀면을쓰고오는날들』.
매일신문사시니어문학상,한국해양재단해양문학상수상.
서정시학회원으로활동중.

목차


시인의말|5

1부나무들은굴뚝냄새를기억하고

나무들은굴뚝냄새를기억하고|13
구름의슬하|15
여름잠|17
착각은착한,|19
서서죽는나무들|21
시간을뜨다|23
충직한책상|25
공기의종류|27
그곳과저곳의차이|28
변환무게|30
필루에트pirouette|32
보퉁이|34
염기성의나날들|36
장마의갈기|38
동풍이분다|40

2부저녁의입구

저녁의입구|45
둥근말을들었다|47
물의뼈|49
유리의성분|51
필기구들|53
돌이살아나는시간|54
봄밤|56
격자무늬|57
나중에,라는말|58
손때|60
어느날에대해|62
파동|63
백서향|65
솜리|66
모루의전쟁|68
모래무늬등뼈|70

3부결

결|73
씨앗우물거리는사람|74
낙하|76
벌레물린저녁|77
얕은공중과놀기|79
숨쉬는추위|81
우렛소리,기습하다|82
착각의힘|84
높은곳|86
바람세수|88
밖에갇히는일|90
자작나무|92
빗치개|93
노루잠을자다|95
도선사봄꽃을바라보며|97

4부놀이터풍경

놀이터풍경|101
물의방향|103
비의길이|105
비스듬해지는때|107
별건축가|109
쓸모들의경직|111
말을재는사람|113
모퉁이들|115
갈무리하다|117
배태의시간|119
세모들은고단하다|121
고민의방향|122
무모의자세|124
종점|126
유전流轉,무시무종無始無終|128

해설┃낯선영역에서얻은둥근언어|박덕규|130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꽃눈이번지는듯하다가
하르르지는저가벼움너머
무심히떠나는발자국소리들로부산하다
저문하늘엔바람소리만가득해서하염없는데
일월의풍상風霜들이
이젠가시만남아허름한잔상殘像들
어루러기진흐릿한시각을
되살리는과정의연속이었다
자기동일성을지속하는의식의작용과반작용사이
꼭지가남아있는언어와
꼭지가없는언어를놓고아직도고민한다
2025년여름
이영란

책속에서

누군가그곳이라고말할때
한번도본적없고
생각해보지않은
장소하나가막태어난다
그곳은거쳐왔거나
거쳐가야할곳이므로
누구도선뜻,행보行步든횡보橫步든걷는
일에서제외할수없다

모르고와서알게되었고
다시모르는척가야할곳
우리는두곳의그곳을공유하고있다
수많은이정표를지나
잠시동선을멈추고되돌아보았을때
그곳은이미되돌아갈수없다
생각끄트머리까지몰려가있고
두개의선이만나는한계시점을두고
나이가많은사람은저곳
적은사람은그곳이라고지칭한다
저곳은현재의턱짓끝이거나
손가락끝에있다

불현듯누군가나를그곳혹은
저곳이라고가리킨다
-「그곳과저곳의차이」전문

겨울샛강에나가보면
세상어느곳이기울어졌는지
평소물의성격이어땠는지알수있다

물은가장차가운뼈를갖고있다제깊이를무게에내어주는일,물고기들의잔뼈를키우는일을도맡지만자신의뼈는물이가장차가워지는그극점까지참은다음에야드러내보인다

묵묵했던순리의방향이
뒤틀어지고부딪친일이었다는것은
얼음이언뒤에야알게된다

이때쯤엔사람과짐승들의뼈도
고요한소강상태에이른다
물은본연의흐름을멈추고
추위가한결누그러질때까지휴지休止에든다

겨울강에나가
물이돌보는버드나무를보았다
봄,기미마다솜털을입혀놓고
천천히물소리를걷고있었다
-「물의뼈」전문

충직한책상하나를갖는꿈을꾼다
어느모서리이거나벌판일지라도
반듯한받침이되어주고
때론내가쓰고싶은것은
울퉁불퉁하거나구겨진내용일지라도
평평하게펴주는한평이면좋겠다

나를거쳐간
날뛰는짐승의잔등같은
송곳니끝같이날카로웠던책상들
직각의책상에글자들을붙여놓고
그것들이떨어질까전전긍긍지켰다

인고는늘묵직하다
어떤요설도없이
한귀를닫아걸고오롯한집중을요구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실천하라한다
요행을모르던책상은
어느이삿짐에서스스로뛰어내렸다

어느쪽으로도넘어지지않을
중심이되어줄수있는책상
손닿지않는,별을닮은문장을얻어내고
내가나와타협하고
약정서를쓰고교환할수있는
충직한책상을갖고싶다
-「충직한책상」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