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말
갈수록시집을내면서도마음이가볍지가않습니다.
그러나타고난궁수弓手는적중만을목적으로시위를당기지않을것입니다.
부끄러운마음으로,안부를여쭙듯이,살아있는날의소식을전하듯이,시를묶어냅니다.
2026년4월
硯池堂에서이향아
책속으로
아득함이나를길렀다그는멀고먼거리에걸려있는꿈,그는내정수리에떠있는별그가하도멀어서나는자유로웠다,나는그를점찍지않았고그를향해달리지않았으므로나는편안하였다,아득해도구속되지않고주눅들지않고,그앞에서나를부풀리거나보태기는커녕나를베어내었다
하릴없는내안창을들켰을까,헛간같은빈주먹을눈치챘을까,그아득한허무의간격을누가밤낮채색했는지,은하수아래뭇별이쏟아져도누가불을밝히랴,가당치않은것은순리가아니고몽매한바장임은어리석음일뿐,나는아득한거리경이로운그숲에무슨소식이오가는지무심하였다
해가지면달빛은너그러운태산목의시간,바람도모처럼평화로운한때,꽃들은버릇으로피는꽃이아니고잎들은꽃자리마다새로돋아숙성하는여름,도랑물은들판을질러바다로향하는데.문득떠오르는생각,우리는각기이름이다른한그루나무가아닐까,오가는길을지키는큰나무일거야
우리의시작은나약했지만결말은관대해졌을까어느날문득눈을들고유난히거대한가로수를바라보았을때아득하게아주아득하게마주친청보석같은시선,그가나의오랜아득함이었듯이나또한그의아득함이었음을,서로는서로의한평생허공이었다는것을조금씩조금씩깨달아가고있었다
---「아득함에대한성찰」중에서
그립던이름들은낡아서사라진다
부뚜막소금단지,살강밑에숟가락
쌀뒤주,물두멍,아궁이앞부지깽이
고샅길오르막에탱자나무울타리
탱자나무울타리에펄럭이던헝겊조각
내가사랑하는것은잃어버린시간
그끄저께내일모래영원보다아득한
남끝동,자주고름,삼회장저고리에
고쟁이단속곳스란치마떨쳐입고
버선발에비단신발,어디벗어던졌는가
지금찾고싶은것은사라진관계
그랬던가,그랬었지믿을수없는거리
고종사촌,이종언니,오촌당숙,육촌오빠
왁자지껄웃음소리귓가에화창한데
이시간그이름을어디가서불러볼까
---「사라지는것들」중에서
상수리나무잎사귀는낙하하지않는다
애초의그자리로돌아오는중이다
뿌리위로,큰둥치곁으로,너그러운흙으로
할수없는막바지에쫓겨오지않고
새들이해저물어둥지로모여들듯
산딸나무아가위생강나무산수유
꽃피우고열매맺고남은할일있어서
오색깃발자랑처럼흔들면서온다
피어나라,피어나라,연두잎피어나라
이른봄젖을물려새잎을피우던흙
흙의품깊숙이돌아오는중이다
어머니의시린발을덮어주려고
나풀나풀춤추며금의환향하는잎
가을나무잎사귀는낙하하지않는다
---「낙하하지않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