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개척민들이 도끼 하나로 침엽수림을 밀어버리던 위스콘신 북부의 숲에는 폴 버니언이라는 거인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한 걸음에 골짜기 하나를 만들고, 도끼질 한 번으로 강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는 이 벌목꾼 거인의 설화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태어난 이야기였다.
『거인 가브리엘』이 그 오래된 숲의 후예 격인 위스콘신의 시골 마을, 라코타에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럭 짐칸 위에서 몸무게 8.2킬로그램의 아기가 태어나고, 그 순간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첫 장면부터 이 소설은 오래된 설화의 문법, 즉, ‘거대함과 상실이 함께 태어난다는 것’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그 문법을 소설 맨 앞에 새겨 넣은 것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다.
Life, and Death, and Giants―
Such as These―are still―
Minor―Apparatus―
Hopper of the Mill―
Beetle at the Candle―
Or a Fife's Fame―
Maintain―by Accident that they proclaim―
삶과, 죽음, 그리고 거대한 것들
이런 것들은 여전히 고요하다.
사소한 장치들,
방앗간의 깔때기나,
촛불에 뛰어드는 딱정벌레나,
혹은 작은 피리 하나의 명성이,
우연히도 그들이 선포하는 것을 떠받치고 있을 뿐.
디킨슨 특유의 압축된 구문이라 여러 갈래로 읽히지만, 뼈대는 분명하다. 삶과 죽음과 거인처럼 거대하고 장엄한 것들은, 사실 방앗간의 깔때기나 촛불에 뛰어드는 딱정벌레처럼 하찮고 사소한 장치들에 의해, 그것도 우연히, 간신히 떠받쳐지고 있다는 것. 위대함은 스스로 서지 못하며 그 위대함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
작가는 이 한 편의 시를 소설 전체의 설계도로 삼는다. 가브리엘은 문자 그대로 거인이지만, 그를 떠받치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장치들이다. 산고에 쓰인 수의사의 새끼줄과 나무 손잡이, 아이가 자랄 때마다 부엌 벽에 그어 넣은 연필 자국, 할머니가 서랍에 넣어둔 빗 하나, 그 빗에 아직 붙어 있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 책갈피 사이에 눌러 말린 하얀 꽃 한 송이. 소설은 세상이 가브리엘을 '거인'이라는 이름의 사건으로, 신화로, 구경거리로 만들려 할 때마다, 카메라 대신 이런 사소한 사물들 쪽으로 조용히 시선을 돌린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두 글자를 실제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런 '방앗간의 깔때기'들이라고, 소설은 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흥미롭게도 토마토출판사의 한국어판은 원제의 그 장엄한 시적 문장 『Life, and Death, and Giants』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거인 가브리엘』이라는 이름 하나로 제목을 응축시켰다. 거대한 명제를 이름 하나로, 시 한 편을 고유명사 하나로 줄인 이 선택은 어쩌면 디킨슨의 시가 말하는 바를 번역 그 자체로 한 번 더 실연한 셈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추상은, 결국 가브리엘이라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만 온전히 감당될 수 있다는 것.
보통 동화 속 거인들은 대개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맞는다. 세상에 붙잡혀 구경거리가 되거나,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 홀로 사라지거나. 『거인 가브리엘』은 그 두 운명 사이에서,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묻는다. 거인을 곁에 두고 그저 사랑하기로 한 사람들, 수의사와, 침묵하는 할머니와, 이름 없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면, 그 운명은 조금 달라질 수 있는가?
이 소설이 끝내 도달하는 자리는 스펙터클도 신화도 아닌, 디킨슨이 말한 '사소한 장치들'의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삶과 죽음과 거인이라는 세 단어가 마침내 나란히 놓인다.
책 속에서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살기를 택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느냐가 정착할 곳을 결정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라코타는 일종의 피난처였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익명성을, 즉,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귀한 자유를 소중히 여겼다. 평생 모진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온 그들은, 그래서 서로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13p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세상을 뒤흔들게 되면서, ‘가브리엘 피셔’의 탄생 설화는 훗날 진실이 빛바랠 때까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수없이 재생산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어머니가 아기를 배 속에 품은 채 숨을 거두자, 가브리엘이 스스로 엄지손톱 날로 어미의 배를 직접 가르고 나왔다고 믿었다. 또 다른 이들은 가브리엘이 무려 열다섯 달 동안 배 속에 있었는데 산모 레이첼 피셔가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은 아이 아버지에게 친자임을 인정받으려고 순전히 의지의 힘으로 출산을 미뤘다고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열성적인 확신에 가득 차, 가브리엘이 태어났을 때 이미 키가 90센티미터였으며,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한 시간 만에 제 발로 일어나 걸었다고 떠들었다.
24p
그 애가 들어왔을 때 나는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아미쉬 옷차림이 아니었으니까. 처음 보는 남자애와 함께였다. 녀석은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 차림으로 그 애 뒤를 졸졸 따라 들어왔는데, 가슴팍엔 그 롤링 스톤스 혀 모양 로고가 박혀 있었다. 레이첼은 그 고운 머리를 풀어 내렸고, 민소매 흰 블라우스에 목엔 큼직한 은 십자가 목걸이를 걸었으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었다. 야하다고 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48p
“안녕하세요, 어머니.” 그 애가 나직이 말했다.
“레이첼!” 하고 싶은 말이 그토록 많았는데, 그토록 많았는데!
벅찬 눈물이 두 눈에 차올라,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저랑 재스퍼는 잘 지내요.” 레이첼이 내가 묻기도 전에 내 물음을 다 아는 듯 말했다.
62p
“저 풀을 깎아야 하는데, 보이질 않으니 깎을 수가 있어야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풀이라니, 별일이지? 짐승들은 볼 수 있어서 뜯어 먹는데, 우리는 못 보거든.”
“무슨 색깔일 것 같으세요?” 가브리엘이 물었다.
“글쎄다. 고양이가 파랗다고 말하긴 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근데 고양이는 거짓말쟁이거든, 얘. 어찌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몰라.”
“그럼 파란색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분홍일 수도, 보라일 수도 있지. 비 색깔에 따라 다르니까.”
114p
내가 잘못 본 걸까? 아이들은 140미터나 18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마차가 다음 건초 더미로 굴러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키 큰 아이가 다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일어나는 한 동작으로 그 건초 더미를 공중으로 던졌다. 이번에는 각도가 잘못됐다. 건초 더미는 천천히 회전하며 마차를 완전히 넘어 반대편 땅으로 떨어졌고, 묶어 둔 노끈이 끊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또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아이는 18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쯤 되는 건초 더미를 8미터, 9미터씩 공중으로 던지고 있었다.
191p
이사벨라는 벤치 위에 올라가 가브리엘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그런 다음 작은 두 손으로 그의 거대한 귀를 감싸 쥐고, 그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끌어내려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은 따뜻하고 달콤했으며 오래 이어졌다. 가브리엘은 나중에 내게 이렇게 썼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그리고 짧고 잠 못 든 그 밤의 남은 시간 내내, 그 입맞춤만 생각했다고.
2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