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좋은 곳에서 만나요

$16.00
Description
달콤한 꿈과 서늘한 현실 사이
서러움과 반짝임을 모두 머금은 아지랑이 같은 빛의 세계
찰나의 순간, 생의 끝에 새겨지는 깊은 사랑의 흔적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자고 말하는 이 이야기들을,
나 역시 결국은 열렬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_김초엽(소설가)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작품 〈빨간 열매〉가 당선되며 등단한 이후 발표작마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게 된다’는 평을 받아온 이유리 작가가 두 권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와 《모든 것들의 세계》에 이어 첫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를 안온북스에서 펴냈다. 앞서 발표된 작품들에서 불가해한 현실을 초월적 상상으로 맞서며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덤덤하게 특유의 낙관을 고유의 섬세한 묘사들로 납득시켜온 이유리 작가는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서 한층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꿰어나간다. 작가는 고되고 고약하며 잔혹하기까지 한 인생에, 자신만의 위트와 세련된 문장으로 이유리식 희망을 새겨넣으며 마침내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서로 스쳐 지나는 찰나의 만남으로 얽힌 인물들이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며 비로소 진정한 무無 세계에 이르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다. 한 생 한 생,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없듯, 그 죽음들 하나하나가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죽음의 순간이 전하는 애통함을 작가는 지독하고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직한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생기 어리고 리듬감마저 띠고 있어 그 울림은 상당하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이유리 소설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유를 다시금 알게 한다. “즐거울 일도 슬플 일도 없는, 오직 살아 있기에만 바쁜 나날”(〈아홉 번의 생〉)을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맞닥뜨린 죽음에서 느끼는 회의와 허망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희망을 길어 올리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이 생의 끝에서 기어이 사랑하고 사랑받았음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인생의 사라짐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회한과 그리움, 애틋함의 감정을 추스르며 우리는 이유리식 존재론적 성찰을 읽는다. 영원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생의 뒤안길을 사색하며 이유리 소설만의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함께하길 기대한다.

저자

이유리

잘달리지못하지만달리기를좋아하는사람.2020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브로콜리펀치』『모든것들의세계』,연작소설『좋은곳에서만나요』가있다.

목차

오리배
심야의질주
세상의끝
아홉번의생
영원의소녀
이세계의개발자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사라지는존재가남기는사라짐의순간들

나는무엇보다이소설이죽음과삶을말하면서도섣불리위로하거나토닥이지않는소설이어서좋았다.이유리는단지찰랑이는물결위에부서지는수만가지빛의조각들을보여줄뿐이다.이렇게잠시반짝였다사라지는것들처럼우리의삶도그런것이라고.영원한것은없다고._김초엽(소설가)

이유리첫연작소설《좋은곳에서만나요》를꿰는주제는죽음이다.여기모아진작품들은어느날,갑작스럽게찾아온죽음을남겨진자의시선이아닌오롯이죽은자의시선으로응시하게한다.
〈오리배〉의신지영은어느날갑자기아빠의납골당에가기위해택시를탔다가빗길에서갑작스런사고로죽게된뒤,가족이늘이런저런핑계로찾던한강의오리배선착장에머물며남겨진엄마와동생이오기만을기다린다.아버지의죽음이후,“산사람에게있어죽음이란타인에게일어나는일이지온전히자신의것은아니므로,시간이오래지나면언젠가는그것을버릴수도있게된다는걸”알면서도몇계절을지나도록떠나지못하고기다린다.〈심야의질주〉의택시기사해남은가족을등지고홀로고독한생을살다어느날갑자기사고사한다.자신이무엇이된것인지몰라도죽어서도무언가를인지하며지루하고무의미한나날을지속해야한다는사실에절망할뿐이다.〈세상의끝〉의혜수와지우는유해한세상으로부터서로에게안식처가되어준다.혜수는지우와함께더무해한곳으로가닿고싶어하고지우는그런혜수의슬픔을다품지못해영혼이되어서도마음이아프다.〈아홉번의생〉은아홉번까지다시살수있는고양이의전생을보여주며몇생을거듭해진정한사랑을찾는과정을보여준다.〈영원의소녀〉는‘영원’을증명해보이겠다던연인정민이떠난후남겨진수정이‘영원은없음’을증명하기위해벌이는죽음의사투를그렸다.〈이세계의개발자〉에서는과로사한뒤,귀신의몸으로일어난게임개발자예은이개발자의시선,즉창조주의시선으로‘왜이렇게되었을까’의해답을찾고자한다.여섯작품을이어가는동안작가는여러인물의안타까운생을엇갈리게하는가운데망연히맞게되는죽음과허망함을뿌려놓고는마지막작품에이르러이세계의개발자,신의존재를향해묻는다.‘누구의어떤의도일까.’

추천사를쓴소설가김초엽의말처럼이소설은섣불리위로하지않으며,한생을보여주고는마침내원하는한가지,사금파리같이빛나는작은한조각을얻고떠나는과정을찬찬히그린다.“잠시반짝였다사라지는것들처럼우리의삶도그런것이라고”사라지는존재자가사라짐의존재를증명해보여준다.

다채롭고복잡하고아름다운,단한번뿐인생을위해

누군가를사랑하는이가해야할일은사랑을확인하는일이아니었다.그저수천만의행운이겹쳐만들어낸오늘을최대한즐기고많은이야기를나누는것뿐._〈아홉번의생〉

한사람의죽음으로부터비롯되는삶과죽음의경계,그곳을떠나지못하는혼들의이야기를그리며작가는이세계에대한사랑을고백한다.“사람은죽어서무엇이되며어디로갈까.[……]세상이너무나다채롭고복잡하고아름다워서,한번머물다가기에는아무래도아까운곳이라서.그런의문은이세계에대한사랑,그리고그세계를이루는사람들에대한사랑으로이어졌다.”사랑하는사람들과나눈하나하나의기쁨과그충만함을가지고“내삶에서얻은황금모래알을작품속에사르르뿌려넣으며이것이소설가가누릴수있는최고의사치이자즐거움이아닐까생각했을만큼재미있었다”(〈작가의말〉)는말을통해이유리의소설이,죽음을말하는이소설들이아름답게느껴지는이유를새삼깨닫는다.

크고넓은세상에서세계는무한히반복되며우리는아주짧은찰나만을겹친뒤다시헤어진다.그러한생에서원하는것을찾기는어렵고,이세계를계획한창조주들이남긴버그로인해죽어서도떠나지못하는사람들,영들의세계가펼쳐진다.그러나이들은“이상하게도어떤방식으로든그걸해내고나서야떠”나게된다.이소설을통해우리는“불완전함속에서완전해지려고안간힘을쓰는이들을다만애정어린눈으로끝까지지켜”보게된다.《좋은곳에서만나요》가다채롭고복잡하고아름다운,단한번뿐인생을위해꼭필요한이유이다.

책속에서

끔찍하기로따지자면물론몰골이지지않겠지만정말로끔찍하다싶었던것은그게아니었다.내가지금무엇이된건지는모르겠으나어쨌든움직이거나생각할수있는것으로보아적어도지상에존재하고있는것은맞는듯했고그렇다면이것이야말로끔찍하지않은가.이지루하고무의미한목숨이죽어서도끝나지않았다니,또다시무엇인가로존재해야한다니.(p.68)

당신은어떻습니까.지금당장죽어도상관없다는표정으로앉아있는강산당신은요.당신도가끔후회합니까.그때떠나보냈던이들을,되돌릴수도있었던실수들을생각하나요.그렇다면,제가이렇게말해도될지모르겠습니다만,아직기회가있어요.당신은저보다나은인간이잖아요.여러가지면에서요.
그러니제발,일어나보세요.(pp.97~98)

혜수가나를제외한모든인간을유해하다고여긴다는사실은내게별위안이되지않았다.내가되기를원한것은그게아니었으니까.
나는벌써저만치멀어진혜수를향해빠른걸음으로걸었다.이런몸이되어도여전히마음은아프구나,마음의고통을느낄수가있구나,새삼깨달으면서.(p.145)

나는이렇게말했었다.사랑이란매일함께있고싶은것,모든것을알고싶은것,끊임없이생각나는것이라고.물론어느부분에선옳았지만,그것들은사랑이라는거대한우주의아주작은별하나에불과했다.별하나가없다고해서우주가우주가아닌것이되지않듯이사랑도그랬다.사랑을무엇이라고정의해버리는순간,사랑은순식간에작아지고납작해진다.누군가를사랑하는이가해야할일은사랑을확인하는일이아니었다.그저수천만의행운이겹쳐만들어낸오늘을최대한즐기고많은이야기를나누는것뿐.(p.205)

세상의개발자는어떤마음으로이것을만들었을까.왜만들었고어떻게구동했을까.세계의구성원들은저마다어떤역할을맡아움직이고있을까.신이이세계를짓고부순방법,그리고결국사랑한방법은뭐였을까.그것을안다면나도이불완전한세계를완전한세계로만들수있을것같았다.
그리고이제조금은알것같았다.그해답은내버려두는일,다만그것뿐이었다는사실을.세계에일어나는일들을한발물러나서즐거운마음으로바라보는것.불완전함속에서완전해지려고안간힘을쓰는이들을다만애정어린눈으로끝까지지켜보는것.(pp.29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