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수업

음악 수업

$16.00
Description
잃어버린 목소리를 소리쳐 부르는 악곡,
혹은 불가능해진 목소리를 기획하는 악곡
다양한 예술을 소재로 새로운 사고를 열어온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밑그림이 되는 작품 《음악 수업》이 최초로 국내에 소개된다. 작가의 ‘음악과 글’에 대한 개괄적 생각과 지향점(존재의 변환을 이루는 재-탄생re-naissance, 즉 ‘제2의 출생’)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책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1991)과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2017)의 기원이 되는 작품으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키냐르의 글은 음악이라는 영혼의 몸체에 닿기 위한 다각적 모색으로, 때로는 논리를 따르는 예술론으로, 때로는 각종 신화와 문헌에서 가져온 조합형 소설로, 때로는 충만한 감성을 담은 시적 문장으로 변환되는 종합 예술이다. 이 책에서는 마랭 마레라는 음악가가 변성을 겪으며 성가대에서 쫓겨난 후 몸으로는 불가능한 고음으로의 변환을 비올을 사용하여 이룰 뿐 아니라, 연주 기량을 극도로 벼려서 인간 목소리의 한계마저 넘어서는 과정과 마케도니아의 청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비극이 담고 있는 극적 전환과 탈태를 통해 새로운 삶, 제2의 출생을 깨닫는 과정, 그리고 중국 고대의 연주자 백아가 스승 성련으로부터 받는 음악 수업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철학적 에세이와 설화의 형식을 빌려서 이어나간다.
마레가 변성이라는 ‘빼앗김/좌절’을 딛고 연주의 기량을 통해 목소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백아가 전수 불가능한 음악을 찾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연주가로 거듭나는 것. 이들의 스승은 과연 어떤 수업을 남겼을까. 모든 예술이 그렇든 이것은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마레를 차갑게 내쳤던 생트콜롱브도 대자연으로 떠나버린 성련도 이 훌륭한 제자들을 위해 한 일은 깨우침의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스스로 (대가로) 태어나게 하는 것뿐이었는지 모른다.

저자

파스칼키냐르

저자:파스칼키냐르(PascalQuignard)
1948년노르망디지방베르뇌유쉬르아브르에서태어나,음악가집안의아버지와언어학자집안의어머니슬하에서다양한악기와여러언어를익혔다.유년기에두차례자폐증을앓았고,늘외따로지내기를즐겼다.1968년에마뉘엘레비나스의문하에서철학을공부했으나,68혁명을경험하고교수의꿈을접는다.갈리마르출판사의기획위원과작가생활을겸하다가1994년부터집필에만전념했다.음악과미술등다양한예술을소재삼아새로운사고를여는자신만의작품세계를이어가고있다.2002년《떠도는그림자들》로공쿠르상을수상했으며,그외에《세상의모든아침》,《은밀한생》,《음악혐오》,《하룻낮의행복》등많은작품을발표했고,‘마지막왕국’시리즈의작품들,즉2002년Ⅰ,Ⅱ,Ⅲ권의출간에이어2020년XI권인《세글자로불리는사람》을출간했다.

역자:송의경
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프랑스엑상프로방스대학박사과정을수료했으며,이화여자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이화여자대학교와덕성여자대학교에출강했다.키냐르의작품《은밀한생》,《로마의테라스》,《떠도는그림자들》,《혀끝에서맴도는이름》,《섹스와공포》,《옛날에대하여》,《빌라아말리아》,《신비한결속》,《부테스》,《눈물들》,《하룻낮의행복》,《우리가사랑했던정원에서》,《세글자로불리는사람》과그외다수의문학작품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마랭마레의생애에서가져온일화
마케도니아청년이피레아스항구에내리다
성련의마지막음악수업

옮긴이의말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허물벗기와다시태어나기mue
그리고불가능을극복하기

갑작스럽게찾아온변성으로성가대에서쫓겨난마랭마레는두번째가능성을자신의소명으로받아들여변성이라는불행한사건을기악과기악곡의발명및연주기량으로극복해나아간다.마레의스승생트콜롱브는6개월만에제자가자신을능가할수있다는것을알아채고는더가르칠게없노라고매몰차게내친다.하지만마레는스승의연주를더전수받고싶은욕심에연습실(통나무집)아래로숨어들어태아처럼몸을웅크린자세로귀를바싹대고연주를엿들으며스승의기법을전수받는다.백아의귀한거문고와비파를박살내며진정한음악을찾으라호통하던성련역시백아에게더가르칠게없다며자신의스승을찾아가자고하지만봉래산기슭에남겨두고홀로스승을찾아간다.홀로남겨진백아는허기와외로움과두려움에떨며바닷물소리와새들의구슬픈울음만을들으며지쳐간다.그러나이내스승의가르침이무엇인지를깨닫고비파를켜고노래를부른다.그리고마침내세상에서가장위대한음악가가된다.마레와백아가스승으로부터배운것은애초에전수불가능한‘음악을찾는일’이며그것은자신들의곡에영혼을불어넣는일이었다.변성이라는남성의비극적사건이,고대그리스인들이자신을변신시키는비극의한장면으로이어지는일련의에피소드들은다시한편의거장의세계를만드는‘마지막음악수업’을완성하게된다.다시태어나기,그것은가장아름다운것에다가서려는예술가-인간의존재론적방식을잘보여주고있다.

책속에서

여자들은소프라노목소리를유지하다가그상태로죽는다.그목소리는군림한다.그야말로지지않는태양이다.하지만남자들은어린아이의목소리를잃는다.그들은두목소리-이중창을부르는범주의두목소리-를지닌존재이다.즉사춘기이후에목소리가마치허물처럼떨어져나간인간으로규정될수있다.그들에게유년기,말못하는non-langage시기,실재lereel,이런것은뱀의허물이다.(33쪽)

1726년,1727년,1728년3년동안그는거의말을하지않았다.죽음을정당화하기위해,점점더긴박하고점점더두렵게다가오는종말을견디기위해,원치않아도떠나야할세상을미워할수천가지이유를수북하게쌓아올리는노인들처럼그는이렇게주장했다.자신은더이상얼굴에있지않은귀들에노래를속삭였노라고.그리고이유는모르지만,하룻밤사이에사람들을죽음으로몰아넣었을언어로시를쓰는시인과자신이흡사하다고믿었다.대중의관심이이미그에게서멀어졌을때그는자신의비올연주기량이최고조에달했다고믿었다.자신이물위에기보했노라고믿었다.흐름을거슬러,다시근원을향해부단히나아가는불가능한움직임으로.(46쪽)

우리는이모든가능성을아주최근에‘문학’이라명명했다.이단어는매우유성적有聲的이다.우리는문자와책에대한사랑을거론했다.문자와책에대한사랑,혹은문학,이것들역시사라진목소리와관련있다.변성된자들을다루는변성된자들이다.아름다움에다소관심을가지고책을집필하는작가들은자신들이소리내어발성할수없는목소리의유령을불러들인다.그것이그들의유일한안내자이다.그들은스스로의침묵을잘못이해한다.그들은심지어책의침묵에서도앞선목소리-대개는죽은,늘지나치게유의미한목소리-를목메어부르려고한다.마치언제나더살아있는,즉더무의미한,더유아적인,더기질적인목소리-변성이전의목소리-를목메어부르다가결국기악이나작곡의길로들어선음악가들과흡사하다.심지어글을쓰기전에도,침묵의목소리는글이허용한무음의목소리보다먼저였다.구전되는예술작품도,그것이노래,리라,플루트,춤과관련이있으므로침묵의목소리와관련있었다.(58~59쪽)

루소의말이다.“마레자신과젊은앙투안포르크레가아니라면,프랑스에서누가그곡들을연주할수있었겠는가?”이렇게말해야하리라.‘인간목소리의전음역에필적하려는의도로서극도로벼려진마랭마레의기교는악기의쇠퇴와고통의망각을초래했다고.(72쪽)

문득르누비에의죽음이생각난다.방다의말에따르면,르누비에는죽기몇시간전에한학생에게흄의학설에관한주석을받아쓰게하다가불현듯이렇게외쳤다고한다.“아!생각하는게이렇게좋구나.내가곧죽는다는걸잊게되니까.”(101쪽)

“자네는여기있게.내가스승님을찾아뵈러가겠네.”
말을마치고,그는장대로배를밀며떠났다.열흘이지나도여전히돌아오지않았다.백아는허기와외로움,두려움에시달리며주변을둘러보았다.아무도없었다.단지모래사장으로밀려드는바닷물소리와새들의구슬픈울음소리만들렸다.그러자몸이많이쇠약해졌음을느꼈다.한숨을내쉬며말했다.“이것이내스승의스승께서주시는가르침이로구나!”그는비파를켜며노래를부르기시작했고,조용히눈물을흘렸다.노랫소리가입술에서잦아들무렵성련의모습이슬며시물위에나타났다.백아는성련이장대로미는배에올라탔다.백아는세상에서가장위대한음악가가되었다.(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