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장편소설)

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장편소설)

$17.80
Description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 법이라면?
법이 제대로 했어야 할 그 일을 법 대신 누군가가 하고 있는 거라면?
가장 섬세한 언어로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근거를 성찰해온 정용준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너에게 묻는다》가 출간되었다. 한 인간의 고유한 상처, 그 이해 불가능한 영역을 헤아리려고 애쓰는 마음이 고스란히 감각적인 문장으로 드러날 뿐 아니라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어루만지는 방식으로 삶의 비참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온 작가는 이번 작품 《너에게 묻는다》를 통해 절망의 끝에 선 인간을 둘러싼 사적이고도 내밀한 폭력과 공적이면서 거대한 폭력을 모두 직시하며 한 사람의 품을 수 있는 극한의 슬픔과 사랑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영유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한 인간에게 어떻게 새겨지고 평생의 삶에 기여하는가를 응시하며 여리고 약한 당사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결코 누군가의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한 인간 존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그 악랄한 폭력을 사랑으로 덮어 감추고 이해하려는 각인된 폭력이 이끄는 삶의 행방은 소설 이후에도 염려의 대상이 되지만 그 슬픔을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구제하고 돕기 위한 작가의 이 기도는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지키게 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사랑이 차올랐다가 사라진 자리. 그 무게와 부피만큼 움푹 팬 기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처음엔 정리된 나의 대답을 들려주려 했지만 나중엔 너에게 묻고 있었다. 사람이 무엇이냐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 기도일 수도 있고, 항변일 수도 있고, 일기와 편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짝에도 쑬모없는 혼잣말일 수도 있는 이 길고 긴 중얼거림이 어떤 이에게는 대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정용준

저자:정용준
2009년《현대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가나》,《우리는혈육이아니냐》,《선릉산책》,중편소설《유령》,《세계의호수》,장편소설《바벨》,《프롬토니오》,《내가말하고있잖아》등이있다.젊은작가상,황순원문학상,문지문학상,한무숙문학상,소나기마을문학상,오영수문학상,젊은예술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_불꽃과얼음_7
2부_함정_141
3부_질문들_255

작가의말_346

출판사 서평

몸속에서불꽃이일어스스로불탄사람이있다지
지독한감정에장기가녹아죽음에이른사람도있다지

화기를안고살아가는사람들이있다.내재화된고통,상처,슬픔을꺼뜨리지못하고살아가는사람들.자신을가장잘아는사람으로부터행해진폭력으로인해씻어낼수없는고통을안고살아가는사람들은자신을덮고있는상흔을버겁게그러안고간신히살아내더라도그화기가더큰불길로번지는순간,너무나연약한존재들이폭력에노출되어참을수없는고통에스러지는모습을보는순간,타인의고통을목도하는바로그순간다시한번폭력에노출된다.그리하여어떤삶은타인을위해자신의삶을걸게되고또누군가는결국삶을포기하기도한다.“증오는사라지지않고마음벽에조용히맺혀”있기에단죄하지않고는생을지속하기가어려운것이다.스스로가해자가되어죄인을단죄하는집행관이되거나혹은“죽을것같은불안과공포를느끼”며“팔과다리가저릴정도로두려움에떨”게될때“이유를모르겠는희열”을느끼며“편해지지않”고잠들지못하며“한순간도안락을누리지못”한채“매순간죽음곁을배회하는”삶을택할수밖에없는것이다.하지만어느한쪽도조금이라도더편한삶이아니기에두인물을만나는동안독자들은이들의고통을함께앓게되고이들의이후의삶을걱정하지않을수없게된다.폭력을폭력으로인지하지못하는사이그폭력은누구에게도가능한것이되어그몸집을부풀릴수있다.그리하여폭력을폭력으로똑바로직시하는일이바로그폭력을멈출수있는시작점이될수있다.그어렵고묵직한발걸음이시작이이소설과함께조금은수월해질수있기를작가는조심스럽게제안하고있다.

다들어떻게견디고어떻게살아내는지,묻고싶었다

작가는고통에처한인물들을형상화하며사람을사람으로만드는일도사람아닌것으로만드는일도결코쉽지않았음을고한다.뜨거운사랑,사람의몸에상흔을남기는사랑이대체무엇이냐고묻는다.기뻐도웃지못하고슬퍼도울지못하는아픈사람들은자력으로살아남기어렵다.인간이세상에살아남는방식은서로가서로를지키고제도와기관을동원해야하지만지금우리의시스템은‘이래되되는것인지’묻지않을수없는상황이다.
작가는모든전쟁이정의의이름으로,모든폭력이사랑의이름으로행해진다는것이이상하기만했던것이다.사랑하기때문에,라는이유를그만듣고싶기에,좀더근원적인해결책을찾고싶기에이어나가기쉽지않은이야기를시작하지않을수없었다.사람이무엇인지,사랑이무엇인지묻고답하는일.어쩌면너무당연해서시도해보지않은이질문을스스로에게그리고폭력을폭력인지도모르는채휘두르는어리석은사람들에게끊임없이던져보아야할것이다.이어려운질문을가장먼저스스로에게던지며작가는어떻게견뎌내고,어떻게살아내는지묻고답하는가운데우리가처한위험한순간들을모두가함께버텨내주기를간절히바라고있다.이소설은이러한마음을지켜내기위한첫물음이자,갖은폭력이도사리는우리시대를견뎌나가기위한기도문이되어줄것이다.

책속에서

“시청자를자극해서분노를일으키는대본은많이봤는데토기장이에피소드는달랐어요.뭐랄까,분노는분노인데보편적이고사회적인분노가아닌사적인것으로다가왔달까.격한감정에휩싸여있지만그래도평정심을잃지않고차분하고논리적으로말하려꾹꾹누르는게느껴지더군요.불꽃을감싸고있는얼음이랄까.표현하기가쉽지않은데…….아무튼좋았습니다.”(24쪽)

생물을억지로삼킨것처럼토할것같은심정.약하고부드러운무언가를해한것같은모종의죄책감.그끔찍함.가만히있다가는큰일이날것같았다.몸속에서불꽃이일어스스로불탄사람이있다지.지독한감정에장기가녹아죽음에이른사람도있다지.이느낌을견딜수없어사랑하는이에게상처주고화를쏟아붓는사람이있다지.유희진은몸속에서정말화기를느꼈다.(55쪽)

“우리가신뢰하고있는법이라는것.정의라는것이막연하게생각했을땐권위있고공정해보이지만실제로는기껏박준수같은사람이이판례저판례뒤지며내리는판단에불과합니다.법은법이아닙니다.사람일뿐이죠.경찰의발과변호사의입.검사의손과판사의머리.그렇게조립된인간이정의롭고공정하다고생각하지않아요.현명하고인간적이라고생각하지도않아요.불기소와불구속.들어갈땐떠들썩해도결국집행유예로조용히풀려나는죄인.아무도모르게보석으로풀려나집으로돌아가는악인.무수히봤습니다.법이라는이름의인간은인간에대해몰라요.관심도없고요.그런데그가판단한것이정의라고요?그가곧법이니까?”(90~91쪽)

유희진은불을끄고침대에걸터앉아컴컴한어둠의한점을바라봤다.암막커튼이창을가리고있어빛하나들어오지않았다.유희진은그막막함이좋았다.죽을것같은불안과공포를느끼는것.팔과다리가저릴정도로두려움에떨고죄책감으로마음이움츠러들때마다이유를모르겠는희열을느꼈다.편해지지않는것.쉽게잠들지않는것.한순간도안락을누리지못하는것.그렇게매순간죽음곁을배회하는것.그것은역설적이게도유희진을살게하는유일한자극이었다.(139~140쪽)

길을벗어나나무와나무사이로들어갔다.낙엽이쌓여바닥이짐작되지않는다.푹푹발은잠겼고보이지않는나뭇가지와튀어나온뿌리가발목을잡아챘다.넘어지고구르기도했지만계속나아갔다.숨과함께하얗게피어나는하얀입김.심장은터질듯뛰었고종아리는욱신거렸다.나무몸통을밀고부러진나뭇가지를잡아날카로운침엽수낙엽을헤치고얼음처럼차가운돌멩이와바위를손과발로짚고기어가는동안손바닥은찢어지고팔목엔핏물이맺혔다.그림자속을헤매는그림자.숲에어둠이내리면나무와동물과사물과풍경은모두어둠이된다.그때까지최대한멀리달아나자.멀어지는것보다중요한건보이지않는것.어디선가박기정이자신을바라보고있는것같았다.(3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