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모빌리티로 읽는 조선, 조선인
‘전통시대의 이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세조 이후로 온천을 사랑한 왕으로 꼽히는 현종 온천을 자주 찾아 ‘온천 마니아’, ‘온천 왕’으로 불린다. ‘유배’는 조선시대 양반 신분에게 특화된 형벌이자 이동이었다. 조선시대의 홍어 장수인 문순득은 두 번이나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모두 돌아보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누렸을까? 변변한 이동 수단이 없는 일반 백성들은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이용할 수 있었던 양반들은 자유롭게 여행했을까? 신분제의 정점에 있었던 왕은?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제도와 생활을 들여다본 이색적인 책이다. 조선시대의 각 계층은 법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이동에 제한을 받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웠다. 하물며 사람이 아닌 재물과 재산으로 취급된 노비의 이동은 불가능했고, 중앙정부에서 부과한 부역을 도맡아 하는 천민의 이동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 이동, 즉 모빌리티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까? 불가피한 이동이 많고, 자발적이지 않은 뜻하지 않은 이동이 대부분이었다. 드물게 이동 욕구가 발현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분명한 명분과 이유 없이는 모빌리티가 발생하기 어려웠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동은 신분제 사회구조와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통치 이념의 영향을 받아 신분별로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며, 각자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사적·공적 방법을 동원하면서 특징적 이동 양상이 형성되었다. 이 책은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천민 계급을 제외한 국왕, 양반, 일반 백성의 신분별 모빌리티 양태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모빌리티에 대한 인식과 시각, 활용의 특성 등을 확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동의 자유가 큰 계층은 양반-왕-일반 백성 순이지만, 이동의 욕구는 왕-일반 백성-양반 순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능행과 유배, 표류 등 ‘제한적 이동’ 양태들
전통 시대의 이동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자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변화가 거의 없는 농경사회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이동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충격과 변화상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외부 세력의 유입은 새로운 문물의 전달자 역할을 하거나 갑작스러운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는 자극제 역할을 하였다. 때문에 전통 시대의 이동은 근대사회 이후의 이동보다 횟수는 적지만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 사람들의 모빌리티 양상과 효과를 파악하려면 ‘제한적 이동’이라는 기본 조건과 함께,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사회구조로서 본관제, 조선의 통치 이념인 숭유억불과 농본억말, 지방 호족 중심의 지방분권제에서 중앙집권적 통치 질서로의 변화, 해상무역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정책과 중국을 천자국으로 섬기고 이웃 국가를 교화한다는 사대교린의 외교정책 등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이동 원인과 신분별 이동의 변화상, 이동으로 생기는 효과와 역사적 의미 등을 짚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동 양상과 변화상을 보면, 그들 역시 현대인 못지않은 이동 욕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조 이후로 온천을 사랑한 왕으로 꼽히는 현종 온천을 자주 찾아 ‘온천 마니아’, ‘온천 왕’으로 불린다. ‘유배’는 조선시대 양반 신분에게 특화된 형벌이자 이동이었다. 조선시대의 홍어 장수인 문순득은 두 번이나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모두 돌아보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누렸을까? 변변한 이동 수단이 없는 일반 백성들은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이용할 수 있었던 양반들은 자유롭게 여행했을까? 신분제의 정점에 있었던 왕은?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제도와 생활을 들여다본 이색적인 책이다. 조선시대의 각 계층은 법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이동에 제한을 받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웠다. 하물며 사람이 아닌 재물과 재산으로 취급된 노비의 이동은 불가능했고, 중앙정부에서 부과한 부역을 도맡아 하는 천민의 이동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 이동, 즉 모빌리티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까? 불가피한 이동이 많고, 자발적이지 않은 뜻하지 않은 이동이 대부분이었다. 드물게 이동 욕구가 발현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분명한 명분과 이유 없이는 모빌리티가 발생하기 어려웠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동은 신분제 사회구조와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통치 이념의 영향을 받아 신분별로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며, 각자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사적·공적 방법을 동원하면서 특징적 이동 양상이 형성되었다. 이 책은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천민 계급을 제외한 국왕, 양반, 일반 백성의 신분별 모빌리티 양태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모빌리티에 대한 인식과 시각, 활용의 특성 등을 확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동의 자유가 큰 계층은 양반-왕-일반 백성 순이지만, 이동의 욕구는 왕-일반 백성-양반 순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능행과 유배, 표류 등 ‘제한적 이동’ 양태들
전통 시대의 이동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자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변화가 거의 없는 농경사회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이동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충격과 변화상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외부 세력의 유입은 새로운 문물의 전달자 역할을 하거나 갑작스러운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는 자극제 역할을 하였다. 때문에 전통 시대의 이동은 근대사회 이후의 이동보다 횟수는 적지만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 사람들의 모빌리티 양상과 효과를 파악하려면 ‘제한적 이동’이라는 기본 조건과 함께,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사회구조로서 본관제, 조선의 통치 이념인 숭유억불과 농본억말, 지방 호족 중심의 지방분권제에서 중앙집권적 통치 질서로의 변화, 해상무역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정책과 중국을 천자국으로 섬기고 이웃 국가를 교화한다는 사대교린의 외교정책 등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이동 원인과 신분별 이동의 변화상, 이동으로 생기는 효과와 역사적 의미 등을 짚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동 양상과 변화상을 보면, 그들 역시 현대인 못지않은 이동 욕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빌리티(큰글자책)
$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