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지 : 교감 역주

사군지 : 교감 역주

$38.00
저자

유득공

저자:유득공
1748(영조24)~1807(순조7).조선후기의학자이자시인.본관은문화,자는혜보,호는영재·고운당등이다.1774년(영조50)생원시에합격하여생원이되었으며1779년(정조3)에는시문에대한뛰어난자질을인정받아규장각검서관에제수되어이후여러관찬사업에참여하였다.포천현감,양근군수,광흥창주부,가평군수등을거쳤으며말년에는정조가그의공을높이사영원히검서직을겸하도록명하기도했다.박제가,이덕무,서이수와함께‘4검서’로불렸고규장각인사들을비롯한실학자들,청나라문인들과활발히교유하며당대지식조류에영향을미쳤다.시에뛰어났으며역사,지리,풍속,언어등에특히열정을쏟았다.저작으로《발해고》《경도잡지》《이십일도회고시》《사군지》등이있다.

역자:한국역사연구회습속연구반
해제-서영대
인하대학교명예교수.『순창의성황대신사적과단오난장』(공저,2024),『추석秋夕』(공저,2023),『무당내력류그림톺아읽기』(공저,2021),『조선무속고』(역주,2018)

역주
고현아-가톨릭대학교강사.「신라의옥대설화와그정치적의미」(『역사문화연구』84,2022),「신라사연구에사용하는용어의문제」(『학림』40,2017),「신라중고기의왕실계보와불교이념-『석가보』의수용을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83,2016)

김경화-인하대학교강사.「인천-김포지역분구묘와마한」(『한국학연구』65,2022),「사군지사실조를통해본유득공의한국고대사인식」(『역사와현실』124,2022)

김성현-서울대학교조교수.「백암박은식의고조선사인식과『단조사고(檀祖事攷)』」(『백산학보』133,2025),「위만조선의등장과고구려의성립」(『고조선단군학』58,2025),「『사군지』「건치연혁(建置沿革)」조에나타난한사군위치비정의특징」(『역사와현실』124,2022)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박사.『역주한원(공저)』(2018),「한국학계의고구려와모용선비관련연구동향」(『소장학자들이본고구려사』,2018),「고구려의혼속-한씨미녀설화를중심으로」(『역사와현실』106,2017)

박미선-명지대학교객원교수.「공공역사로서의대학교양한국사」(『동방학지』213,2025),「신라·고려관음신앙에보이는성(聖)과속(俗)의통섭양상과그의미」(『학림』55,2025),「『사군지(四郡志)』「명환(名宦)」·「인물」조의특징과편찬의도」(『역사와실학』79,2022)

윤성재-광운대학교강사.「고려후기음주문화와금주령」(『역사와실학』82,2023),「『사군지』「토산(土産)」과유득공의북방인식」(『역사와실학』79,2022),「『어의촬요』로본고려시대의의료」(『백산학보』120,2021

목차


감사의글

사군지』해제
I.머리말
II.유득공의생애와저술
III.『사군지』의전래본(傳來本)
IV.『사군지』의저술
V.『사군지』의구성과내용
VI.『사군지』의한사군인식
VII.『사군지』의독자성
VIII.『사군지』평가

『사군지』역주
사군지목록(四郡志目錄)
사군표(四郡表)
사군지서문(四郡志序)
건치연혁(建置沿革)
산천(山川)
사실(事實)
명환(名宦)
인물(人物)적사를덧붙여기록하다(謫徙附)>
봉작(封爵)
방언(方言)
토산(土産)
고적(古蹟)
제영(題詠)

사군지원문

부록
①고려대육당문고본『사군지』의두주(頭注)
②수록인물목록
③연호목록

출판사 서평

유득공만년학문의최후결산이자사학사의마지막퍼즐복원

《사군지》는《발해고》와함께유득공의고대사인식을이루는핵심문헌임에도불구하고그간대중과학계에온전히소개될기회가적었다.발해사를한국사의범주로개척한《발해고》가학계와대중의큰주목을받아왔던데비해,《사군지》는한반도고대사의미지영역인한사군을다루었다는이유로상대적으로소홀하게취급되어왔던것이사실이다.
유득공은고조선이후한반도고대사연구에서오랫동안미지의영역이자논쟁의중심이었던'한사군'의지리적위치와역사적변천을규명하기위해,중국의정사와야사,조선의방대한문헌을종횡무진넘나들며왜곡되거나단절되었던고대사전개과정을객관적이고주체적인시각으로재구성했다.유득공은요동벌판을직접눈으로보고스스로가졌던의문을해소하는과정에서깨달은사실을정리하며“한(漢)이후의산과바다가크게변하지않았다면나의설(說)은진실로믿을만할것이다”라고자신감을내비쳤다.또한《발해고》는역사서의모습을갖추지못해‘고(考)’라하였으나《사군지》는‘지(志)’를붙여역사서로서의당당함을드러냈다.
《사군지》완역본출간은한국고대사에서다루기까다로운공백의영역으로남아있던한사군문제를다룸으로써단절된고대사전개의맥락을짚어내고,조선실학자들이치열하게고민했던우리역사의강역(疆域)의식을오늘날에다시되새기는중대한이정표가될것이다.

철저한원전대교(對校)

《사군지》는현재고려대육당문고본,미국버클리대본,단국대본,수경실(개인소장)본등총4종의필사본과1종의인쇄본(조선군서대계본)이전해지고있다.인쇄본인조선군서대계본은한사군영역을표시한핵심지도(‘사군도’및‘이군도’)가누락되어있고일부오자가존재하는등한계가있었다.이책은유득공의자필서문이유일하게수록되고이건초의소장흔적이남은고려대육당문고본을중심으로이본들을철저히대교(對校)하여유득공이기획했던원형을가장완벽하게되살려냈다.

공동강독과연구를통한상세한역주(譯註)

고대인의행동양식을통해고대사회의관습과문화를심도있게연구해온‘한국역사연구회습속연구반’은60여개가넘는《사군지》의인용문헌및참고문헌,유득공의독창적고증이담긴20여개의‘안설(按說)’을꼼꼼히살피고,수십차례의강독과번역을통해《사군지》에대한문제의식을공유하였으며,이를바탕으로학술대회를개최하여이해를심화시켰다.5년동안여러학자들이교차검토와수정·보완작업을거친끝에비로소정확한현대적역주(譯註)를완성하였다.아울러한국고대사연구의거장서영대교수가집필한100페이지가넘는해제는유득공의생애부터《사군지》의집필배경,구성과내용,독자성과의의,한계와평가를상세하게담고있어,일반독자도조선후기실학자의역사의식을쉽게이해할수있도록문턱을낮췄다.

책속에서

유득공은『사군지』에서관련사료나논거를제시할때그출전을밝히고있다.이를세어보면참고문헌이60종이상에달한다.이처럼다양하고많은사료를참고할수있었던것은가장(家藏)도서가많았거나지인에게빌려보았기때문일수도있지만,전후10년에가까운기간동안규장각의검서관으로재직하면서규장각의방대한자료를이용할수있었다는사실을간과할수없다.『발해고』서문에서유득공이규장각소장의비서(秘書)를많이읽었으므로이책의저술이가능할수있었다고했는데,이점은『사군지』의경우에도그대로해당한다고하겠다.-32쪽

『사군지』는한사군의역사지리문제만다룬것은아니고,가능한한한사군의여러측면을종합적으로정리하고자한것이다.곧,『사군지』는역사지리에대한관심에서출발하여한사군문제전반을정리함으로써,한사군관련사료를집성하고후대의연구에이정표를제시하려는목적으로저술한것이라할수있겠다.-53쪽

유득공은『사군지』를통해한사군의실상을밝히는데주안점을두었다.이를위해그는가능한한많은사료를섭렵한바탕위에서귀납적방법으로한사군의실상을구명하고자했다.논지를뒷받침하는근거사료를제시한다음,일일이그출전을제시한것에서이를확인할수있다.-68쪽

사료는사실과그사실을기록한시기가가까울수록가치가크다고할때,한사군사료로서는중국사료가한국의그것에비해상대적으로가치가크다.다시말해중국사료는한사군이존재하던시기에나온것들인데비해,한국사료는한사군소멸후상당기간이경과한후나온것들이란점에서,유득공의사료에대한관점은기본적으로옳다고할수있다.유득공이인정한사료는지금도한사군연구의기본사료로서정평이있는것들이란점이이러한사실을반영한다.따라서『사군지』는사료의실증적·고증적연구를통해사실(史實)을구명…하는역사관련저술로서본연의역할을다했다고할수있다.-71쪽

『사군지』는유득공만년의저술로,어쩌면최후의저술일지도모른다.그래서『사군지』에는기왕의자신의생각을수정한부분들이있다.예컨대『삼한시기』에서받아들였던이부설을부정한것이라든지(「건치연혁」,按1),『발해고』「지리고」에서발해의남해부를요대의해성남해부(현재의요녕성海城市)라했던것을함흥으로수정한사실(「사실」,간주)등이그것이다.따라서『사군지』는유득공학문에있어일종의결산서라할수있다.-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