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심었습니다

새를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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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안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부터 세 번째 시집 『립스틱 발달사』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는 ‘의미의 난개발’을 막고 거기에 ‘사랑’이라는 천막을 지은 채 유목하는 아토포스적 미학을 보여주었다.
문명의 잔혹함 앞에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떨림의 시를 보여준 그녀에 대해 이재복 평론가는 “세계 내에 자리한 문장을 발견해 내는 고도의 시적 성찰로서의 사랑”을 시인이 보여주었다고 평했으며, 임지연 평론가는 “당신이라는 영원한 타인에게 보내는 비범한 사랑을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단독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문명이라는 허구의 풍경 너머에 있는 ‘당신’을 끊임없이 호명해온 시인은 이번에 펴낸 네 번째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를 통해 그동안 마주쳐온 비문명의 이미지들을 ‘고요’라는 그릇에 담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

서안나

1990년《문학과비평》등단.시집『푸른수첩을찢다』『플롯속의그녀들』『립스틱발달사』,평론집『현대시와속도의사유』,연구서『현대시의상상력과감각』,편저『정의홍선집2』『전숙희수필선집』,동시집『엄마는외계인』이있음.
〈불교문예작품상〉수상.〈서쪽〉동인.

목차

시인의말·5

1부

손톱의서정·15
분홍의서사·17
진폐(塵肺)·18
명랑용어사전·20
새를심었습니다·22
모래의시간·24
보라에대하여·26
저녁의양치식물·28
오늘의사과·30
소년들의세계사·32
나비의밀도·34
첫사랑1·35
동백전언·36
소년들·38
소년들의세계사2·40
소년들의세계사3·42
반고흐·44

2부

첫사랑2·49
백톤의질문·50
파(波)·52
앨리스의사물들·54
먼지인간·56
피아노·58
도서관활용법·60
애월1·62
애월2·64
애월24·66
애월29·68
사과·70
애월30·72
애월32·73
깊어지는사과·74
애월34·76

3부

슬픔의좌표·79
웃는돼지·80
침대시위-Bed-inForPeace·82
오후의사물연습·84
통조림·88
새벽4시까지나는·90
궁민교육헌장·92
생각하는사물들·94
아를에서의일기·96
나는물을이렇게고쳐쓴다·98
진흙연습·100
새라는통증·102
프라하,스타일·104

4부

불량사막·109
독쇼(DogShow)·110
마스크·112
아침의방향·114
미란다원칙-와병의계절·116
진흙나무·118
사월의질문법·120
그늘의질량·122
효자동,국경·123
새를깨닫다2·124
소년A·126
소년B·127
청소년·128
방탈출·130

해설|육호수(시인·문학평론가)
육체의비실감과영혼의실감·133

출판사 서평

모든얼굴들의뒤편에서고요를만나는순간을담다

서안나시인의네번째시집『새를심었습니다』가출간되었다.1990년《문학과비평》으로등단한시인은첫시집『푸른수첩을찢다』부터세번째시집『립스틱발달사』에이르기까지,현실세계에서이뤄지는‘의미의난개발’을막고거기에‘사랑’이라는천막을지은채유목하는아토포스적미학을보여주었다.문명의잔혹함앞에서서정성을바탕으로한섬세한떨림의시를보여준그녀에대해이재복평론가는“세계내에자리한문장을발견해내는고도의시적성찰로서의사랑”을시인이보여주었다고평했으며,임지연평론가는“당신이라는영원한타인에게보내는비범한사랑을끊임없이밀어붙이는단독자”라고평하기도했다.문명이라는허구의풍경너머에있는‘당신’을끊임없이호명해온시인은이번에펴낸네번째시집『새를심었습니다』를통해그동안마주쳐온비문명의이미지들을‘고요’라는그릇에담는과정을보여준다.
“내가만난수많은사물들의얼굴과그얼굴뒤편에있는고요를만나기도한다.그고요의내부에불타는눈동자를만나기도한다”고시인은시집출간에앞서한매체에서밝힌적있다.그녀가사랑해온타자는문명과자연을화해시키는게아니라서로대립시킨다.하지만반문명의에너지를지닌듯한그‘불타는눈동자’는궁극적으로는‘평소에잘나타나지않는세계의숨겨진얼굴을들추어내는’힘을담고있다.즉문명이우리에게뒤집어씌운거짓풍경을지워내고그위에진실한생명의씨앗을뿌리려는내적열망으로서의‘결기’를담고있다는뜻이다.‘소멸’이아니라‘창조’를꿈꾸는그러한열정을시인은타자에대한새로운사랑의질감으로서이번시집에서표현해낸다.『새를심었습니다』에서시인이보여준결기를통해독자들은시인이발견한또다른사랑안에머물며우리모두가그리워해왔던근원적인‘당신’과마주하게될것이다.


영혼이태어나고,버려지고,돌아오는장소로서의시를복원하다

손톱은내가처음버린영혼
손톱은영혼이
타원형이다

손톱은
죽어서산다
끊임없이나를밀어낸다

손톱을오래들여다보면
나무뿌리가뻗어나오고
진흙으로두눈을바른아이가
더러운귀를씻고있다

손톱을깎으면
죽은기차들이나를통과해가고
늙은쥐가손톱을먹고있다

늘바깥인
손톱의밤은
얼마나캄캄한가
사랑은개연성따위는필요없다

멀리날아간손톱은
가끔얼굴이되기도한다
-「손톱의서정」전문(본문15~16쪽)

‘손톱’은나로부터자라나는육체이다.손톱은이미죽은세포이지만,식물과같이끊임없이자라나나의말단이되고,결국엔잘려나의바깥이된다.끊임없이자라나고,끊임없이버려진다.손톱을들여다보며,손톱을깎으며내게찾아오는몇이미지들을지나,시인은이손톱의영혼을,나의바깥의영혼에찾아오는밤을떠올리게된다.죽은채로자라나고,결국버려짐으로나의바깥이되는‘영혼의세계’와육체적인고통없이영혼이잘려나가는‘비실감의세계’는분리된다.‘손톱의서정’이라는시의제목을곰곰이생각해보면,이‘서정’은세계의자아화라는오랜명제에기인했기보다는,오히려이서정을다시명명하려는시도로보인다.“멀리날아간손톱”이얼굴이되는이비현실적상황에빠져있는(없는)“개연성”을이어주는“사랑”이곧서정이되는것이다.어째서“멀리날아간손톱”은“가끔얼굴이되”어시에현현하는가?단지손톱의영혼이타원형이기때문에?나로부터멀어졌기때문에?손톱이라는기표가얼굴이라는기표로대체되는과정일까?시라는공간에서기표(손톱)가됨으로영혼을획득한육체가다른기표(얼굴)로자리바꿈함으로화자에게의미화되는과정인가?이런손톱이만들어내는시적장소앞에서독자들은잠시걸음을멈출수도있겠다.해석이잠시멈추는지점이기때문이다.다만,그흐릿한공간에몸을밀어넣고어둠을체험하는일이한권의시집을읽어가는일이고한명의시인을알아가는일일것이다.개연성이필요없는이필연의세계에서안나의서정이있다.나로부터“끊임없이나를밀어”내는척력과“멀리날아”가얼굴이라는이미지로내게돌아오는인력.그곳에서안나의‘서정적필연’이있다.이필연이“죽어서산다는”역설,육체의비실감과영혼의실감이라는역설을가능하게한다.밀물과썰물의세계가있고,애월바다가있다.끊임없이몸을바꾸며“생각하는사물들”(「생각하는사물들」)과,세계와자아의경계면에서“채집되지않”(「방탈출」)는미성년화자들이있다.

개의목줄을놓아버리면개는새가될까
여름에는멍청한벌레를그릴거야
-「명랑용어사전」부분(본문20~21쪽)


취한손으로천마리새를쓰다듬었다
새를만지면온몸이가려웠다
-「소년들의세계사2」부분(본문40~41쪽)

갓배달된1년생새를심었어요.무채색의새는눈이어둡습니다.검은것들은어둠을치는기분입니다.새는나쁜계절쪽으로한뼘씩자라고.종이인형처럼잘찢어집니다.
-「새를심었습니다」부분(본문22~23쪽)

젖은침대속으로뱀들이지나간다
생레미정원의해바라기가
개처럼짖는다,새가외국어로
울고간다
-「반고흐」부분(본문44~45쪽)

새는내눈에만보이는통증

누가죽은새를내머리속에넣었나
나는늘길을잃었다
-「새라는통증」부분(본문102~103쪽)

이새들은무엇인가?각각의시에서등장하는새들은같은새인가?날개가있을까?각각의울음소리는어떨까?이새를‘이미지’라고,시의‘질료’라고,‘시어’,‘대상’,‘주체’라고말해보아도충분치않다.‘감각’,‘관념’,혹은‘실체’,‘실체화된관념’,‘관념화된감각’이라고말해보아도역시충분치않다.‘보조관념’이나‘상징’이라고말한다면오답에더욱가까워지는것같다.이것이‘새’이기때문이다.이시집에서새는때론쓰다듬을수있는대상(「소년들의세계사2」)이기도하고,뿌리와씨앗을가진식물(「새를심었습니다」)이되어자라나기도한다.“내게만보이는통증”의이미지이기도하고,누군가에게“도착하는감정”이기도하다.새는시적화자의외부가아닌내부에서발견되기도한다.(「새라는통증」)죽은채로내머릿속에있기도하고(「새라는통증」),기침을하면내게서튀어나오기도한다.(「새를깨닫다2」)각각의시편에서조차,행간에서조차직전의새가지닌속성과의미를벗어난다.앞서멀리날아간손톱이얼굴이되었듯그형태와존재방식을바꾼다.그러나“새가아니라고말해도새”가되고마는이새는모양과속성을떠나결국새이다.이새는어떤시에서는“비정규직”“감정노동자”의불안으로부터비롯된것으로(「새를심었습니다」)읽을수도,미성년화자들의혼돈이나쓰는존재로서의시인의혼란의표상이라고도읽을수있겠으나,본질적으로이새는벗어남그자체,날아가고미끄러짐자체라고볼수있겠다.자신의존재로부터낯설게되기를끊임없이갱신하고있는,그럼으로새가되는존재이다.이새를자아가외부를낯설게포착하여얻어낸것이라거나,낯설지않은것을낯설게한것이라는기성의시론을대입해서는충분치않다.스스로스스로에게서부터낯설어지는어떤동력그자체로보아야한다.새로부터벗어날때새는새로회귀한다는역설이여러시편을통해변주되어나타난다.그리하여“새의어둠속으로뛰어드는/부서진새”는세상의모서리를흩어지게하는동력이된다.분류와배제의논리를통해무언가를규정함으로만들어지는세상의모서리,즉경계는세상의중심과주변을나누고,주체와대상(때론시인과언어…언어와시인인가?)사이에는위계가생기게된다.그러나이런경계에포착되지않는새는이모서리를교란하는존재이다.“구겨져도펼쳐지는새는”세계의모서리를교란하며깨어지고,화살에맞기도한다.구겨지고깨어짐으로언어를회복한다.이새를시인이라고말해보아도좋을것이다.“도착하지못하는여행인”“앨리스의사물”이나,‘쓰기’혹은‘기도’라고말해보아도될것이다.때론거짓말같은세계의미달태인“종이인형”,“종이꽃”,“종이코끼리”처럼보일때도있을것이다.그러나,이새가마침내이종이마저벗어나이시집을읽은당신에게도달할지도.도달하기를.미달태로도달하기를.
이처럼언어의제약에저항하고자하는의지는위에서와같이바깥으로벗어남의방향(척력)으로뿐만아니라,동일성속으로재귀하는방향(인력)으로나타나기도한다.
사과에서사과를빼앗고
빨강에서빨강을빼앗고
사과는쉽게죽지않으며
흙과물의계절로돌아간다
-「사과」부분(본문70~71쪽)

분홍속엔분홍이없다
-「분홍의서사」부분(본문17쪽)

고통이고통을구원할것이다
-「아를에서의일기」부분(본문96~97쪽)
나는
나에게운반되는중이다
-「먼지인간」부분(본문56~57쪽)

나는원래없었다
나는내가어렵다
-「소년들의세계사」부분(본문32~33쪽)

나는사라지는중입니다
당신은이미검정을지나치고있습니다
사라졌다고사라졌다는것을증명해보세요
사막은사막을견뎌냅니다
-「불량사막」부분(본문109~111쪽)

“사과에서사과를빼앗고빨강에서빨강을빼앗”는다는구절에서“부처를만나면부처를죽이고,조사를만나면조사를죽이고,나한을만나면나한을죽이”라는불교선승임제의말을떠올리게된다.이말은이렇게이어진다.“부모를만나면부모를죽이고,친척을만나면친척을죽여야비로소해탈할수있다.일체사물에걸리는바없이철저한해탈자재의경지를얻는것이다”이구절에대한해석은제각각이다.스님들은각스님대로해설하고철학자들은철학자대로해석한다.다만이‘죽임’이말그대로목숨을빼앗으라는말이아니라는것,그리고그결론이“사물에걸리는바없는”상태로나아간다는것만은그들이공통적으로동의할것이다.그렇다면시에서는어떤가?시인은사과에게서사과를빼앗아온다.그리고빨강에서빨강을빼앗아온다.그럼에도“사과는쉽게죽지않으며”,“흙과물의계절”로돌아간다.‘사과’라는동일성으로부터동일성의속성을제거한다.그래도사과는죽지않는다.다만사과의이전으로돌아갈뿐이다.스스로를밀어내며생동하던새와달리사과의세계는정물의세계이고스스로깊어지는고요와침묵의세계이다.“분홍에분홍이없다”는말은분홍이라는색을지닌사물은사실분홍을밀어내기(반사하기)때문에분홍이라는실재론적인식이라도볼수있겠지만,불상에는부처가없다는지성론적인식으로볼수도있을것이다.(그둘을동시에품고있는문장이라는점에서더욱의미심장하다.)그러니(고흐를모티프로한)화자가“실패란어떤색깔인가?”라고물을때(「아를에서의일기」)이는색(色)을통해공(空)을재현하고자하는의지가된다.이처럼,주체/객체,인식/대상의이분법을벗어나고자사물연습을하는시인에게이사물은“당신과나의침묵을감당할수있”는신이다.그러므로사물연습은참선(參禪)의과정이라고도볼수있을것이다.참선이그러하듯,외부의움직임을멈추고돌멩이처럼있다고하더라도나는돌멩이가되지않는다.시인은사물이아니고,신이아니기때문이다.때문에이사물연습은나의내부로향하는동력이자“도착하지못하는여행”이된다.“나는원래없었다/나는내가어렵다”(「소년들의세계사」)는고백도“나는나에게운반되는중이다”(「먼지인간」)라는진술도나의내부로향하는인력이작용한문장들일것이다.
그렇다면이‘새’와‘사과’는그저언어와시의차원에서만벌어지는일인가?시인개인의사유실험에그치는가?그렇다고볼수없다.시인은하나의단어가가지고있는묵은때를씻기고,언어가가진굴레를풀어주는존재이다.언어라는매개를통해시를제시하고전달할수밖에없는운명을타고났지만,그렇다고하여언어를맹신하지않는다.오히려기존의언어를의심하고,교란하며해방한다.그럼으로비로소시인은시와함께할자격을얻게된다.그리고말하자면,이과정은이글의첫시작에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