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겨울을 혼자 썼다 (장정욱 시집)

넓은 겨울을 혼자 썼다 (장정욱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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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을 시에 아로새기다
장정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넓은 겨울을 혼자 썼다』가 출간되었다. ‘기억’이라는 씨실과 ‘상처’라는 날실을 섬세하게 직조해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서정의 풍경을 만들어나가는 시인은 2015년 《시로여는세상》을 통해 등단했다. 데뷔작 「열두 개의 밤이 지나고 있다」외 4편의 작품으로 시인은 ‘관계의 단절’과 같은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인간을 향한 사랑의 의지까지 드러냈다. 그리고 2018년 제20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빨랫줄 저편」을 통해 자신의 시 세계를 우리 모두의 내면에 박힌 아픔의 기억들을 치유하는 ‘초혼제’의 현장으로 승화시켰다. 첫 시집 『여름 달력엔 종종 눈이 내렸다』를 포함해 그간의 작품에서 상처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독이는 과정을 꾸준하게 수행해온 시인은 이번에 출간하는 두 번째 시집 『넓은 겨울을 혼자 썼다』에서 상처의 기원에 대해 반추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이어 나간다.
시인의 기억은 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감각’들로 이뤄져 있다. ‘비에 얽혔던 어떤 날의 냄새’ ‘(엄마를 기다리며 바라본) 낡은 담의 균열’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몸짓’ 같은 것들은 모두 이야기가 아니라 고유한 감각들의 형태로 시간 저편에서 피어오른다. 그것은 따뜻하기만 한 감각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버려진 공터처럼 신산한 감각을 품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감각들을 통해 외갓집을 떠올리고, 아버지를 떠올리고, 유년기의 한순간을 떠올린다. 시인에게 있어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고통의 감각들은 현실에 대한 분노나 무력감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자각통이며, 또한 자신의 기원에 대해 떠올려보는 성찰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편안하게만 보이는 일상에서 상처를 찾아내고 그것을 인간의 온기로 돌보는 일. 시인이 감각을 반추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한국적 서정의 태도를 이어 나가는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시인의 감각을 통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장정욱

출간작으로『넓은겨울을혼자썼다』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노래는흘러나오고·15
죄송합니다올해는휴업합니다·16
다정한기분을만났다·18
먼곳의날씨·20
피가돌지않는골목·22
산후풍·24
분명나를보았는데·26
혼자풍경·28
유리잠·30
먹구름과OST·32
자주헤어지다·34
먹지가되어버린밤·36
수면제·38

2부

장마의가족·43
12월테라스·44
바람거울·46
동피랑·48
환승카페·50
성곽의오후·52
자개달빛·54
교복·56
비의밤·58
어느날보라·60
신발주머니·62
깍두기한알·64
꽃다발·66
소래포구·68
7월·70

3부

구름의아다지에토·75
얼어버린봄·76
비린뒤꼍·77
얼음연못·78
당신의손을짜는밤·79
제부도·80
호텔여관·82
독쟁이고개·84
눈사람·86
달의종점·88
빛좋은조감도·90
여름이불렀다·92
건너는사람·94
얼음의맥박·96
물의기척·98

4부

물방울잠·101
고무통하나·102
우기·104
안대·106
폭염·108
얼굴을주워들고·110
어둠을조금만줄여봐·112
벽속에서흘러나온노래·114
한걸음·116
장마를건너다·118
여름길목·120
하품·122
마주보는장마·123
파라솔·124

해설|김겸(시인·문학평론가)
부재를견디는두겹의노래·127

출판사 서평

부재를견디는두겹의노래

‘사라지다’,‘빠져나가다’,‘없다’와같은부재혹은상실을의미하는시어들이즐비하다.서둘러아픔을말해버리는것을용서해준다면,나는이미그고통을“무지개가늘어지지않도록”(「빨랫줄저편」)바지랑대를높이세운빨랫줄의저편에서이미읽었다고말할수밖에없다.그리하여그“질긴죄목”이여기까지더질긴그림자를드리우고있는것을본다.아니그보다전,“내일이없는서로의하루를어떤방식으로보내줄까”절망하던「달의옆모습」에서도나는보았다.그러나우리의삶에있어유재는부재없이있을수없고부재역시유재없이있을수없다.이는음악에서휴지(pause)가단지소리없음을뜻하지않고멜로디와똑같은악곡전개의한중요한요소인것과같은이치다.장정욱시집에는이러한부재의요소를담아낸작품들이많이담겨있다.

라디오를켰다
찻잔을빠져나간온기처럼
나는사라져버렸다
늙은의자만남아
창밖시끄러운눈발을들었다
가끔굽은등을삐걱거리며
아무의미도없는노래를중얼거렸다
푹패인오후는이미편안해졌다
전화벨소리가들려왔지만
그것은어제의일,
거울속에서계절이한꺼번에지나갔다
꽃이피더니이내눈이내리고
아이가뛰어가더니
절룩거리는그림자로되돌아왔다
아무도돌아보지않지만
아직은향기로운숨에기대어
나는나를기다리는중이다
오늘의노래는더아득해졌다
-「노래는흘러나오고」전문(본문15페이지)

이시에서라디오를켬과동시에화자는사라져버리고“늙은의자만남아/창밖시끄러운눈발을들”이고있다.이어화자는라디오에서흘러나오는노래를아무의미도없이중얼거린다.그러다가거울속에는“계절이한꺼번에지나”가는데,“꽃이피더니이내눈이내리고/아이가뛰어가더니/절룩거리는그림자로되돌아”온다.이렇게거울안의시간은거울밖의현실세계와는다른상대적시간속에존재하는데,이것은화자의무의식에가라앉은도저한삶의무상성과부조리를가리킨다.여기서화자는“나는나를기다리는중”이라고말한다.이것은결핍에서벗어나또다른가능성의나를향해자신을내어던지는것을의미한다.이내어던짐이란것이나로부터의벗어나(ex-)서있기(-sist)를기도하는것(exist)이기에오늘의노래는아득해질수밖에없는것이다.

(전략)
언니는사흘이면온다고했지만
나는사흘이진력났다

간간이빗물을받아먹으며
혼자늙은버드나무는웃어본적이없다

그날언니는초록색약을들고어디로갔던것일까

삐죽솟아난슬픔을밟지않으려
매일철길위침목을세며걸었다
손엔작은보자기를들었을뿐인데

저기휘어진기찻길만지나면
손을놓친달빛을만날수있을것같았다

두갈래철길은어디쯤에서서로의손을맞잡을까
(후략)
-「혼자풍경」부분(본문28~29페이지)

이혼자의풍경속에서화자에게맡겨진사흘이라는시간은주관적이다.언니는초록색약을들고집을나가사흘이면온다고했지만화자에게사흘은진력이날만큼지루한“수만겹의사흘”이다.화자는애써“슬픔을밟지않으려/매일철길위침목을세며”버티지만,두갈래로갈라진철길처럼서로가손을맞잡는일은요원하기만하다.이슬이내리자화자의기다림은축축하고무겁기만하고,이윽고잠이밀려든다.
여기서돌아온다는약속으로만존재하는언니가화자의또다른자아이자분신이라면그것은기다림으로만존재할수밖에없다.이는즉자와대자가일치할수가없는것과같은이치인데,화자가결핍을견디며또다른나를찾아철길의침목을하나둘세어걷는행위,그자체가함의하는운동성만이가능성을품은대자존재를현시하기때문이다.

(전략)
헌그리움을보내는일
물결의뒷모습으로살겠다고다짐하는일
기도문은입김안에서자꾸빠져나가려했다

아이들은얼음십자가위에올라가신발로깨며놀고있다

웃음과울음이섞인다
남들은웃는거냐우는거냐묻지만
오래전부터같은감정이라생각했다
(후략)
-「다정한기분을만났다」부분(본문18~19페이지)

그리하여이러한대자존재로서의실존은“헌그리움을보내는일/물결의뒷모습으로살겠다고다짐하는일”과통한다.앞서화자는“이름을잊어버렸다”고말하는데이는자신을거대한‘텅빔’(무)으로인식하는것을의미한다.이에화자는즉자이자대자일수있는유일한존재인신을향해기도를올리지만그것은기억을뒤척이는일일뿐이어서,결국화자는기억속의자신을보내고그물결의뒷모습으로살겠다고말한다.물결을앞질러갈수는없다.그한계를알기에화자는영원한결여의상태로흘러갈뿐이다.
이에타자들은“웃는거냐우는거냐묻”는데,이때타인과관계맺고있는대타존재(Being-for-Others)로서의화자는“오래전부터같은감정”임을말하며웃음과울음어느한쪽에동화되기를거부한다.생이란이양가감정속에존재하는것이며어느하나를강요한다는것은곧타자라는시선의폭력이기때문이다.그리하여“산과하늘의경계선에서/아득한소실점으로들어가버린새한마리”가“수면엔아무런얼굴도”(「먹지가되어버린밤」)남기지않은것처럼,“오래전당신의독백”이라는아물지않은상처에머물러있지말라고말하는것이다.

지금-여기의부재의기원은과거-저기에뿌리를두고있다.그것은가족이라는이름속에서경험해야만했던지워지지않는상처와아픔으로제시된다.이“가족이라는이름의병”(下重暁子)은단란해야만한다는가족의환상을산산조각내며,그병이한개인에게미치는정신적트라우마가얼마나지독할수있는가를보여준다.그것은부모-자식-형제라는운명적이고도근원적인자리에서발생하는것이므로차라리치명적인것에가깝다.

아버지가먹구름을끌고왔다어제와내일의비가모두오늘의비로내리고있었다종기처럼부어오르던저녁,빗물이스며들기시작한아궁이엔소소한온기마저사라지고없었다말수가적은그의손이,빗물속으로엄마의화장품을모두던져버렸지만,빨간입술만은지워지지않았다밤새알아들을수없는기도문이떠다녔다우물속그림자들이하나둘출렁이며사라졌다전염병처럼침묵이퍼져나갔다잠을자려양말을벗으면,내발목엔빗물의나이테가새겨져있어닦아도닦아도지워지지않았다우리는영원히줄어들지않는구름을그림자처럼매달고있었다
-「장마의가족」전문(본문43페이지)

이장마속가족의풍경을보라.아버지가먹구름을끌고집으로오자집안엔비가내리고소소한온기마저사라져버리고만다.그는“엄마의화장품을모두던져”버리는폭력을행하고집안엔“알아들을수없는기도문이”떠다니다마침내“전염병처럼침묵이퍼져”나간다.화자는억지로잠을청하려하지만발목엔“빗물의나이테”로상징되는고통이켜를이루어지워지지않는다.이렇게“영원히줄어들지않는구름”이라는아버지로부터비롯된가정사의암운(暗雲)은어두운그림자처럼오래오래이들을짓누른다.이근원적인트라우마는오늘에끊임없이개입해그아픔은과거완료형의시제를부여받지못한다.

알아들을수없는겨울이흘러들었다
귀마개를두른그림자가
자주눈밑을오갔다

바람거울을들여다볼때면
울음을그치지못한영혼들이서있는듯했다

입김으로얼굴을지우려하면
하얗게쏟아지는골목

그중하나는신발을끌면서걷는데
반걸음늦는소리가동생같았다

뒤축이닳아버린저녁
기울어진눈발

딱딱한목에
흰목도리를두른인형이자주꿈속에나타났다

캄캄한몸은어디에서환해질는지
거울은휘청거릴뿐아무것도알려주지않았다

엄마는골목의문을잠갔고
나는밤새불켜진십자가에마음을다주었다
-「바람거울」전문(본문46~47페이지)

이렇게상처어린눈으로세상을바라보면온통슬픔뿐이어서,화자에게겨울은해독불가능의상태로다가오고,“바람거울”속에는“울음을그치지못한영혼들이서있는듯”하다.하얀입김이쏟아지는골목엔“반걸음늦는”동생의신발끄는소리가들리고,화자에게이는뒤축이닳아버린저녁의풍경이된다.“캄캄한몸”으로상징되는짙은어둠은환해질줄모르고바람거울은아무것도알려주지않는다.이겨울속우울한가족의풍경속에서오로지엄마만이골목의문을닫는행위를통해최소한의울타리가되어주지만,화자에게엄마는넉넉히기댈수있는그런존재가아니다.화자는오로지“불켜진십자가”에마음을다주며외로운마음을견딘다.이기도의행위는‘빎’의내용보다는그형식에의미가있는것으로이는곧단독자적인내의표지라할수있다.

마당에걸어둔국수가
소나기에다젖었다

자주끊기는국수를말아먹으며
아버지는나에게아무것도가르친것이없다
나는아무것도배운것이없다

그해여름
국수공장은삐거덕거렸고
국수가락은펄럭이지않았다

우리에게남겨진것은
휘어진침묵이거나
끊어진노래

비가내린다
국숫발처럼

돌아보면흰골목
아버지의먼눈빛

불어터진빗줄기는추억보다길다
-「7월」전문(본문70~71페이지)

화자의여름의풍경은어떠한가.먹구름을끌고들어왔던아버지라는존재는화자에게“아무것도가르친것이없”으며,화자역시“아무것도배운것이없”는단절과거부의대상으로제시된다.마당에걸어둔국수가소나기를맞아자주끊기는국수를말아먹을수밖에없었던불행의전조(前兆)처럼그해여름아버지의국수공장은위기를맞는다.그리하여가족들에게남겨진것은국수처럼“휘어진침묵”혹은“끊어진노래”뿐이다.
그러나성장기에겪은가족사에절망은지금도짙은그늘을드리우고있다.그해7월처럼국숫발같은비가내리는것이다.비오는골목은국숫발이내걸리던흰골목처럼,아버지의먼눈빛처럼느껴진다.그리하여화자에게“불어터진빗줄기”로상징되는국수공장의몰락기는추억보다길고도질기게화자의기억을옭아맨다.

그리하여화자에게성장기가족사의고통은“연못이얼면그속을헤엄치던시간”(「얼음연못」)이정지되는것처럼얼음연못속에갇혀버린듯하다.그아픔은너무도견고해서안부를물어도그속에는“이미닫혀버린귀”만이존재할뿐이다.그러나얼어붙은연못속에갇혀,닫혀버린귀는분명겨울을살지만,이귀는“봄쪽으로뻗은소리를안고”있다.하여,평자인나는이시집을‘두겹의노래’라고명명한것이다.

물결이들어오다
그만얼어버렸다

나의맥박은잎맥도없이
긴잠에갇혔다

금간풍경은
몇개의길이되어겨울끝을이어∨붙였다

간간이나뭇잎빠져나간자리엔
돌들의숨소리가들려왔다

심장이녹아내려
몇겹의어둠이젖어들었다

새로운얼음이덧대어지고
오후가되면물컹,너의입김이언자리를녹였다

나뭇잎하나가
지느러미도없이얼음속을헤매고있었다
-「얼음의맥박」전문(본문96~97페이지)

이얼음속풍경은또어떠한가.얼음이얼자나의맥박도“긴잠에갇”혀버렸다.금∨간풍경은“겨울끝을이어∨붙”이고,끊임없이“새로운얼음이덧대어지”는엄동의시간이다.그러나“오후가되면물컹,너의입김이언자리를녹”인다.여기서물컹다가온입김이란얼음을녹이는물결로서이는얼음의긴잠을깨우는존재로제시된다.물결은얼어붙어얼음이되지만오후의따뜻한물결은얼음을녹인다.그러자나뭇잎하나가“지느러미도없이”얼음속에서움직이기시작한다.기형도가자신의시「위험한가계1969」에서“썰매를타다보면빙판밑으로는푸른물이흐르는게보였다.얼음장∨위에서도종이가다탈때까지네모반듯한불들은꺼지지않았다.”라고읊조렸듯이,얼음의맥박은굳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