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김겸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김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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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영원한 찰나’를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들을 엮어내다
김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출간되었다. 평론가·소설가로도 활동하는 시인은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서 쉽게 ‘익숙한 것’으로 변해 버리는 풍경과 감정들을 ‘낯선 것’, 즉 가공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것으로 보존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는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통해 특정한 형태 안에 갇혀 있는 말들을 일상적인 공간에 풀어주고, 그것이 우리 모두와 만나게 해 주었다. 이번에 펴내는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에서도 시인은 그러한 언어적 자유로 구성된 풍경들을 담았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인 ‘슬픔’은 우리를 쉽게 울게 하거나 감상에 빠지게 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하지만 우리 곁에 늘 함께 존재하는 무한한 시공간과 평범한 일상 사이에 생긴 균열을 의미한다. 시인이 ‘슬픔’이라고 명명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가 가장 낯설게 여겼던,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우리 자신의 감정과 사유들이 거기에 있다. 그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슬픔’은 한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성찰의 열쇠와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시는 분명 고통의 언어다. 이렇게 자신의 재앙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라고 시인은 시집 출간 전에 한 지면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를 통해 독자들도 일상의 매끄러운 감정을 걷어내고 자기 자신의 온전한 내면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겸

2002년《현대문학》평론.2007년《매일신문》소설.2021년《강원일보》시등단.
장편소설『여행의기술-Hommagetoroute7』,평론집『비평의오쿨루스』등이있음.

목차

시인의말·5

1부-구름의경전

귀로·15
낮달·16
설원(雪原)·18
번역가의고독·20
Thereal·22
섬·24
이응·26
구름의경전·28
숨은신·30
변신·32

2부-수선화

늙은마을버스의노래·37
불망(不忘)·40
수선화·42
극적인조우·44
말달리자·46
숨·48
춘설(春雪)·50
prayer·52
나의사료·54
개화·56
연어에게·58

3부-심야우중

레퀴엠·61
소주달력처럼·64
호모메모리즈·66
파르마콘-시간·68
숲에들다·70
심야우중·72
것이,·74

다른시간,다른곳에·77
돌본다는것·80
숲의전언·82
누이생각·84

4부-마음의지평선

악수·89
시계에관한명상·90
끝물·92
피안·94
오전의식당·96
탈은폐·98
워커홀릭·100
수취인불명·102
밤바다·105
마음의지평선·108
증명불가·110

5부-뒷모습

루틴·115
비린내·118
소멸에대하여·119
언제나해가지는쪽으로·122
병(病)·124
뼈대에대하여·126
잎새들의행간·128
척,·130
속죄의형식·132
뒷모습·135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
삶이라는이름의형벌을넘어서·137

출판사 서평

삶이라는이름의형벌을넘어서

여기,한사내가있다.사내는100년전프라하의카프카가그러했듯이낮에는생계를위해몸부림치고,밤이되면“책상에앉아”(「낮달」)어둠과고독속에서“하루종일차오른슬픔”(「나의사료」)을되새기면서글을쓴다.빛을두려워하는심해어처럼그는“다시시작될내일이두려워/쏟아지는졸음을애써쫓으며밤을/연장해”(「병(病)」)나가면서밤마다언어의‘집’을짓는다.어둠이실존의배후가되는오직그짧은시간동안에만사내는빛을발하는존재가된다.“홀로환해지는것”(「낮달」),그것은휘황찬란한‘낮’의세계를채우고있는빛과는근본적으로다른,‘낮’의세계에서는쓸모를인정받지못한것들이드러내는존재의빛,즉어둠의빛을의미한다.사내는“반백년”(「루틴」)을살아왔으나한번도자신이‘살다’의주체로,그러니까자신의의지대로산적이있다고생각하지않는다.“살다의숙명으로/살아온나”(「레퀴엠」)라는진술처럼그는보이지않는숙명의힘에떠밀려이곳에도달했으니,그에게삶이란“버티는생”(「구름의경전」)이거나기껏해야“살아냄”(「변신」)일따름이다.그에게삶은‘사는것’이아니라‘살아지는것’이다.
사내에게는돌아갈곳은있으나마음을누일곳,즉실존의거소(居巢)가존재하지않는다.그는자신을“주소도없는/무허가건물”(「수취인불명」)에비유한다.무허가건물이란현존함에도불구하고존재자체가부정되는,존재감이없는상태를의미한다.‘무허가건물’로서의삶은부재로서의삶,즉삶이되지못하는삶이다.그가밤마다짓는‘언어의집’은,따라서현실에서확인되지않는존재감,요컨대실존적‘결핍’을보상받으려는심리적산물이라고말할수있다.그것은현실에서실감하지못하는존재감을언어의세계를통해확인받으려는시도일것이다.하지만‘글’을통해실존의부재를보상받으려는사내의노력은실패의운명을피하지못한다.사내는시집전체에걸쳐반복적으로,특히시간과공간의형식을빌려존재감의부재,그부재를보상받으려는노력이실패로귀결되는좌절의고통에대해호소하고있다.이실패로인해김겸의시는삶과운명,아니운명적인삶을향한처절한‘모질음’(「prayer」)이된다.


방한구석에세워진옷걸이엔
낡은점퍼나무릎나온바지가
걸려있기마련이지요

아버지의낡은외투도
불행과우울의
독한담뱃진이눌어붙은채
항상거기에
목을매달고있었지요

견고한시간의벽을
가볍게뛰어넘어
아버지처럼
어느날옷걸이가
그렇게서있는거예요
얼떨결에인사를했지뭐예요
아버지여기서뭐하세요

너의불운을날마다
지켜보느라여기서있단다
옷걸이에매달린옷깃
속에서우렁우렁한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변신」부분(본문32~34페이지)

사내의일생은“어떡하지,어떡하지,가나를허물고다시세워여기까지데리고”(「귀로」)왔다.“어떡하지”라는말은자신에게들이닥친운명적삶에대해그가취할수있는유일한반응이었던듯하다.그운명의무게가힘겹게느껴질때마다사내는음울한목소리로“어디서부터잘못된것일까”(「낮달」)라고되묻는다.김겸의시에서한개인의삶은‘시간’과‘공간’으로이루어진세계이다.이는그의시가한편으로는‘시간’의계열을,다른한편으로는‘공간’의계열을중심으로실존의부재에대해진술한다는의미이기도하다.인용시「변신」은‘시간’의층위에서사내의질문에응답하고있다.요컨대“아버지의낡은외투도/불행과우울의/독한담뱃진이눌어붙은채/항상거기에/목을매달고있었지요”라는진술은사내의불행이가계(家系)를따라이어진것임을암시한다.그것은“초독(楚毒)의연대기”와“능욕의유전자”를통해사내에게상속되었다.그리고과거에“낡은점퍼나무릎나온바지”로살았던아버지가“견고한시간의벽”을뛰어넘어지금아들,즉사내의‘불운’을지켜보고있다.이것은사내가경험하고있는결핍감이과거에대한상상,그러니까시인백석이유년의아름다웠던원형적시간을회상하면서불행한현재를견뎠던것과같은방식으로해결될수없다는것을의미한다.「파르마콘-시간」은사내의이러한실존적시간감각을분명하게보여준다.“과거는먹이가되고/미래는그물이되네”나“어제아래오늘/최악아래최악”이라는진술처럼‘시간’은결코사내의편이아니다.특히그가겪고있는불행이세대를거듭하며반복된것이라는사실은현재는물론이고미래에도불행할운명임을의미한다.이러한절망감은사내를‘죽음’의세계로끌어당기고있으니,그의실존은삶과죽음사이의어딘가에위태롭게매달려있다고말해도과장이아니다.

미확인물체같다,
지금껏살아온나라는것이
그어떤것도나를증명해주지못한다

누군가는나에게오에겐자부로(大江健三郞)를얘기했지만
그것은가당찮은위로이상도이하도아니었다

미확인물체같다,
나라는피조물은

“전믿어요.천사가필요해서데려가셨다고요.”
자식을잃은부모가자신이믿는신과맺은타협
이말을들은자식을잃은또다른부모의반론
“천사가필요하면천사를만들면되죠.”

한번도이렇게일갈해보지못한
충성스러운신민

수많은비극은나를한번도거른적없고
갈곳없는행운마저나를피해가는필사적광경

신은사디스트라고말하고싶어도
스스로메저키스트임을자처하며침묵했던시간들
거기서피어난버섯같은비극들

날마다슬픔의밥을먹고도
아무런증명도얻지못한다

미확인물체같다
나라는존재는

아무도모르는
떠돌이별
그위에올라탄
내가만든나의천사
내가만든우주만큼큰우주
-「증명불가」전문(본문110~112페이지)

‘달’은‘밤’의종족이다.그것은어둠을배경으로빛나는존재이다.이논리에따르면‘낮달’은계절을잘못찾아온존재라는설명이가능할듯하다.시인은현실에서실존의근거를찾지못한,그리하여현실을“유형의시간”(「마음의지평선」)으로경험하는자신의운명을‘낮달’(「낮달」)에비유한다.‘밤’의종족인달은‘낮’의세계에서시민권이없는존재이다.그것은‘빛’의세계에‘어둠’의자리가없는것과같은이치이다.시민권이없다는것,그것은“있지만소용에닿지못하는것”이거나“쓸모없음을열심으로증거하는것”처럼슬프고안타까운것이다.시인은자신이존재한다는사실을확인받기위해전심전력을다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존재감을확인받지못하는,존재하고있다는사실자체가부정되는상황을‘낮달’이라는사물을통해환기하고있다.물론,이불합리한상황을“때를잘못만났다”라고,그러니까“밤이오면광명할것”이라고합리화할수도있을것이다.하지만김겸의시에서그가능성은사실상없다.
시인은이처럼존재자체가부정되는자신의유령적삶을가리켜“미확인물체”(「증명불가」)라고주장한다.우리는자신의존재자체를증명해야하는것이얼마나어처구니없는상황인지알지못한다.존재가송두리째부정된다는것은말을해도그것이말이되지못하고,삶과죽음이라는영역모두에서추방된상태,그리하여한인간이무(無)가된다는의미이다.그상태에서개인이할수있는유일한일은“상처를핥으며/내피를내가마시며/그렇게만든/꿈의카타콤,/내전장의참호,씀”(「것이,」)이라는진술처럼글을쓰는것이전부이다.왜이런상황이생긴것일까?이와관련하여인용시에‘아이’와관련한두가지에피소드가삽입되어있다는사실에주목하자.먼저,“누군가는나에게오에겐자부로(大江建三郞)를얘기했지만”이라는문장.알다시피일본의소설가오에겐자부로에게는어려서부터자폐증을앓고있는히카리라는아들이있다.자신의감정조차제대로표현하지못하던히카리가소리에예민하게반응하는것을본오에겐자부로가음악선생님을초빙하여아들에게피아노와기보법을가르쳤고,그결과중증장애인이었던히카리가음악을통해세상과소통하게되었다는것은널리알려진이야기이다.다음으로영화〈래빗홀〉에나오는대사(“천사가필요하면천사를만들면되죠.”).〈래빗홀〉은교통사고로어린아들을잃은한부부가서로다른방식으로상실의슬픔을극복해나가는과정을그린영화이다.그런데이들두사례앞에서시인은자신을가리켜“한번도이렇게일갈해보지못한/충성스러운신민”이라고규정한다.누적된좌절과절망으로인해세상에맞서는법을상실한시인이선택한것은오에겐자부로와〈래빗홀〉의경우와달리스스로를‘메저키스트’의자리에위치시키는것이다.

다시돌아가기에너무늦었다는생각이
백미러에어른거릴때마다
수고와헛수고는정거장으로
사이좋게이어져
시커먼연기를뿜으며
비탈을오른다

패배를자인하는것은쉽지만
재귀되는비난은
느리게느리게
끝없이이어지는골목길처럼
불행을재생한다

도로에난데없이나타난강아지처럼
서로의만남이재앙의시발이었던
비운의시간표
매번늦고매번헐떡이게하는
최악의노선도

뙤약볕내리쬐는책망의정거장지나
비바람몰아치는비난의정거장향해오른다
당신이휘두르는혀의채찍에
노새처럼기어오르는
불쌍한피학기계

이제는더오르지못할것같다고
모질음낼때
불타는노을이
조금만더참으면
이한살이도끝이보인다고
바알간빛을던져
엉덩이를밀어올린다

악다구니의생에갇혀
홀로버둥대는
기억되지못할
저외진안간힘

-「늙은마을버스의노래」전분(본문37~39페이지)

사내에게삶은‘속죄의형식’으로경험된다.그에게삶은“이보다더나빠질수는없어,/할때마다통제할수없는지점이열”리는불행,그리고그럴때마다“자동인형처럼복창했던/인내와기망의약속”(「속죄의형식」)을반복하는일이다.앞에서우리는사내에게‘시간’이“과거는먹이가되고/미래는그물이되네”(「파르마콘-시간」)처럼진퇴양난의“구원없는생”(「누이생각」)으로인식되며,그속에서그가“근거없는호사(好事)를바라기보다/어김없는다마(多魔)를믿”(「극적인조우」)으며살아왔음을확인했다.“세상에언제나뒤처지는/나”(「오전의식당」)로서의운명에서벗어나지못한그에게삶은“조락하는생”(「연어에게」)의과정이었던듯하다.사내는종종이러한자신의실존적내면을‘메저키스트’라고명명하는데,이로인해사내와세상은“가학과피학의사슬”(「속죄의형식」)관계를형성한다.
김겸의시는이러한유령적삶의슬픔과고독을다양한사물을통해변주한다.앞에서살펴본“미확인물체”(「증명불가」)나“무허가건물”(「수취인불명」)이대표적이다.그리고인용시「늙은마을버스의노래」에서시인은‘늙은마을버스’라는객관적상관물을통해다시한번세상의가장자리로내밀리며살아온자신의불행한삶을드러낸다.시인은모질음을내면서“끝없이이어지는골목길”사이를느리게흘러가는낡은마을버스에서자신의모습을발견한다.시커먼연기를내뿜으며힘겹게비탈을오르는모습은“기억되지못할/저외진안간힘”으로살아온자신의생애를닮았고,“다시돌아가기에너무늦었다는생각”과“이제는더오르지못할것같다”라는회한과힘겨움에는지난시간을되돌아보는자신의모습이중첩된다.또한“매번늦고매번헐떡이게하는/최악의노선도”는‘치욕’과‘굴욕’을“견디고견디면”(「나의사료」)서살아온시인의일생을닮았다.
내상(內傷)을껴안고살아가는존재들은이세계의사물과풍경에서자신의상처를발견한다.김겸의시는삶의부재라는질병으로세계를검게물들이는과정이라고말할수있다.달리말하면그의시가보여주는다양한증상들은그의삶이하나의질병,즉삶/존재의부재라는단일한문제를중심으로회전하고있다는것을의미한다.가령「이응」에서화자는‘첫소리이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