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간여행 (박남희 시집)

어쩌다 시간여행 (박남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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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토포스, 혹은 무위의 시학
박남희 시인의 시집 『어쩌면 시간여행』이 시인수첩 시인선 78번째로 출간되었다. 박남희 시인은 96년 경인일보, 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지금까지 『폐차장 근처』 외 3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이번 시집은 그의 5번째 시집이 되는 셈이다. 저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는 마흔이 넘어 등단하였고, 문단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는 중견 시인이다.
시는 세상을 향한 일종의 시그널일 수 있다. 시인의 눈으로 신호화된 시그널은 독자의 감성으로 받아들여져 감동과 울림을 준다. 또한 시는 수많은 타자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먼 여정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은 우리 주변에 놓여있는 무수히 많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것들의 표정을 읽고 그들의 숨소리를 듣고 그들과 더불어 잠들어 있는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일에 할애되었다.” 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작품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가는 여정은 ‘장소 없는 유목민의 플라뇌르적 시 쓰기’라 할 수 있다.
박남희 시인의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자유로움’이다. 또한 어떤 한정된 주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를 꿈꾸는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시집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저자

박남희

경기고양출생.고려대일반대학원국문과박사과정졸업(문학박사).1996년경인일보,1997년서울신문신춘문예시당선.시집으로『폐차장근처』,『이불속의쥐』,『고장난아침』,『아득한사랑의거리였을까』,『어쩌다시간여행』이있으며,평론집으로『존재와거울의시학』이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기린의법칙·15
어쩌다시간여행·16
룩북·18
광주와의게임·20
야채의시간·22
죽은새를바라보는여름·24
낮달·25
생일·28
저녁에게는·30
묵은수수께끼를풀듯·32
루주와인주사이·34
덩굴손·36
양식·37
왜그랬을까·40
모지랑이·42

2부

꽃둥지·47
저녁의맛·48
봄을늙게하는법·50
비만이웃는다·52
마음의거리·54
잉크·56
밀서·58
극지의말·60
어름사니·62
유리창의심리학·64
다이빙·66
고이고드나들다·68
버스킹·70
허공다이어트·72
그림자놀이·74

3부

감정의대륙·79
실패잔치·82
버뮤다는범유다·84
점심(點心)·87
아도니스의정원·90
불멍·92
불멍이후·94
절경이된다는것·96
갈대가붓을들어·98
혼자만의약속·100
꼬리로말하기·102
저지레·104
형용사처럼·106
촉의발달사·107
언캐니밸리·110

4부

못대가리가되어잠시·115
색의거짓말·116
시리야!·118
집현전은없다·120
시인할수없는것들·122
내안의새·124
오로라·126
물이짖을때·128
얼음의연대기·130
머나먼꼭짓점·132
끈의사춘기·134
호더스증후군·136
온전한반쪽·138
안녕,눈사람·140
천국보다낯선·141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
아토포스,혹은무위의시학·143

출판사 서평

⬛시인과의미니인터뷰

⬕시집에서담고자했던주제와내용은어떤것인가?

나는40이넘어늦깎이로등단했지만등단하기전의습작과정을포함하면시를쓴지어언50년이된다.반백년이라는짧지않은시간동안나는어떤곳을거쳐서어떤길을걸어왔을까를생각해보면,노마드(nomad)나아토포스(atopos)라는단어가떠오른다.
시인으로서의내가방랑자의뜻을함유한노마드라면,내가지향했던문학은‘장소없음’을뜻하는아토포스라고말할수있다.지금도나는장소도없는곳에서미래를알수없는언어의유목민이되어어디론가떠돌고있다.나는그만큼자유롭지만그만큼정처없기도하다.

장소없는곳에서는날마다무수히새로운것들이탄생하고소멸한다.그것들중에는어쩌다우연히나를찾아온시들도있다.세상에는무수한발명품들이있지만나를찾아온시들을내발명품의테두리속에함부로가둬둘수는없다.시가하나의발명품이라면그것은어떤개인의발명품이아니라그시를둘러싸고있는수많은콘텍스트와더불어공유되어야할성질의것이다.

요즘내가나의시작과정을돌아보면서새롭게관심을갖게된시적화두는플라뇌르(flâneur)라는시적산책자로서의시쓰기이다.발터벤야민의확장된개념으로서의플라뇌르를현대시학에적용하면시인은‘시라는메타버스(가상우주)를산책하는창의적플라뇌르’로정의할수있다.

그런데시라는메타버스는마냥풍요로운곳이아니다.이곳은오히려결핍과불안정성이상상력의대지에풀처럼돋아나있는곳이다.시인은이곳에서새로운사유와직관의시간여행을한다.여기서시라는메타버스를산책하는시인은무한으로뻗어있는상상력의대지에서‘모든것을말하는자(parresiastes)’가된다.

여기서파레시아스트(parresiastes)라는용어는그리스어로‘모든것을말하기’라는의미를가지고있는파레시아(parrhesia)에서파생된말이다.파레시아는,‘모든것’을의미하는‘pan’과‘말해진바’를의미하는어근‘rema의합성어이다.파레시아스트로서의시인은모든것을말하고아무것도숨기지않으며자신의마음과정신을타인에게활짝열어보이는자라고할수있다.

시를쓸때시인이즐겨활용하는은유나환유는물론이고,문학의한극단을지향하는해체적상상력조차도일상이라는시공간적한계를넘어서서시인이말하고싶은것들을모든것을말하려는시적발화의과정이다.이번시집을통해서나는내시가계획하지않았던새로운길을찾아가는플라뇌르로서의산책을지속해나갈예정이다.

-「저자와의인터뷰」중에서

⬛시집해설요약
시간여행,아토포스

시인은지금이동/여행중이다.이것은여름철의휴가같은일상적여행이아니라시인의세계전체를이끌고움직이는존재론적인여행이다.그는어디로가고있는것일까?이질문에대한시인의대답이바로‘아토포스(atopos)이다.아토포스는‘장소’를뜻하는그리스어토포스(topos)에‘부정’을의미하는접두사a가붙어서만들어진단어이다.

프랑스의철학자롤랑바르트는『사랑의단상』에서아토포스를“사랑하는사람은사랑의대상을‘아토포스’(소크라테스의대화자들이소크라테스에게부여한명칭)로인지한다.이말은예측할수없는,끊임없는독창성으로인해분류될수없다는뜻이다.”라고설명했다.이설명에따르면누군가를사랑하는사람에게사랑의대상은‘아토포스’이고,이때그것은예측할수없는것,독창성으로인해분류할수없는것을의미한다.요컨대아토포스는특정한장소에고정되지않고,고정되지않으므로정체를파악할수없는것이다.

통상적으로여행은되돌아옴을약속하고시작되며,거기에는이미-항상일정한방향(장소)이전제된다.통상적으로우리는방향(장소)이없는여행을‘여행’이라고말하지않는다.불가능성으로서의여행은이와반대이다.그것은되돌아온다는약속없이시작되는여행이고,이미-항상일정한방향을전제하지않고떠나는여행이다.이불가능성으로서의여행은우연성을긍정하는것,나아가우발성에자신을개방하는행위이다.이우연성의사건안에서‘a’는결핍이아니라가능성의기호이다.

화자는이러한가능성을“도처에길이너무많다”라고표현한다.가능성안에서많다는것은없다는것과동일한의미이다.그것은사전에정해진방향(장소)을벗어난다는점에서‘많음’을의미할수있지만,기존의질서에반(反)하여새롭게개척해야한다는점에서‘적음’을의미할수도있다.박남희의시에서아토포스는이처럼‘장소’에서벗어나‘비(非)장소’를향해나아가려는,그럼으로써우연을긍정하고미지의세상을향해자신을개방하려는결단의산물이다.

“본래땅위에는길이없었다.걸어가는사람이많아지면그게곧길이되는것이다.”라는루쉰의말처럼정해진길이없다는것은모든것이길이될수있다는의미이기도하다.리좀(Rhizome)이라는철학적개념이가리키는방향도이것이다.이경우‘아토포스’는기존의분할에얽매이지않고그경계를횡단하는생성운동이고,이운동안에서고정된것,즉정체성의논리는
비판된다.따라서아토포스에대한긍정적해석은결국기존의경계와분할에서벗어남으로써새로운가능성을모색하는사유라고말할수있으며,이러한탈(脫)정체지향이야말로박남희의이번시집이새롭게보여주는시적특징이다.

-고봉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