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다 (이정란 시집)

나는 있다 (이정란 시집)

$12.00
Description
| 해설 중에서 |
있음과 없음, 혹은 존재의 근거와 양상

월간 〈심상〉으로 등단하여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한 이정란 시인은 ‘현상에서 촉발된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작시술과 결별하고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시인이다. 또한 의미와 메시지의 시가 아니라 무질서한 세계의 풍경이라든가, 시적 주체에 의해 통제되는 어떤 코스모스의 정연한 세계가 아니라 카오스가 형성하는 어떤 무늬라든가 경향성 등을 시화한다.
특히 이정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를테면 빗방울」(문예중앙, 2017) 이후 6년 만의 시집이자 통산 다섯 번째로, 황치복 평론가는 1999년 월간 〈심상〉의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이정란 시인의 시작 과정을 살펴보면 경이롭다고 평가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인 「어둠·흑백주가 있는 카페」와 「나무의 기억력」은 전통적인 시적 문법에 의지해서 외부의 사물과 풍경이 촉발하는 정동과 인식의 변화를 그렸다고 한다면 세 번째 시집인 「눈사람 라라」에서부터 어느 평론가의 명명대로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와 같은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의미의 세계에서 일탈해 콜라주와 몽타주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날카로운 충돌과 카오스의 질서를 향한 바 있다. 현상에서 촉발된 시인의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적 작시술과 결별하고 반리얼리즘의 작시술로 향해서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한 셈이다.
이번 시집과 관련해서는 “시인이 몰두하던 시적 현실, 즉 시적 공간이 창출하는 환영의 세계에서 실제의 외부 현실을 끌어들여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적 진전을 향하고 있다“면서 새로움을 강조한다. 요컨대, 이번 시집의 변모는 작시술을 향한 방법론적 고민에서 벗어나 어떤 전언과 주제를 심화시키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변증법적 지양(Aufhebung)의 과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곧 감각의 새로움의 세계에서 사유의 심연을 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나는 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Sein)의 양상과 그 근거들에 대한 시적 사유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정란 시인은 오랜 시간 묵히고 삭히고 발효시킨 시적 사유를 날카로운 이미지로써 함축한다. 다시 말해 시인은 기존의 정동을 산출하는 이미지의 충격적 결합을 이어가면서 거기에 세계와 자아의 실재에 대한 탐색을 담아내는 형국을 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탐색의 주제는 존재와 부재의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없다’는 것의 실재(the real)는 무엇인지,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이유와 존재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자못 철학적인 사유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있음과 관련된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문제이다. “영원을 사는 신의 이야기”, 그리고 “미지의 불 한덩이”, “미래의 옆구리에서 떨어진 내 몸”, “시간의 톱니바퀴”, “나는 지금 수십억 년 동안 나를 빠져나가는 중”, “튀는 시간에 휘청이며” 등의 무수한 표현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나은 자식이 크로노스(Chronos, 시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존재의 발생 사건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

이정란

1999년《심상》으로등단했다.
시집으로「어둠·흑맥주가있는카페」,「나무의기억력」,「이를테면빗방울」,
「눈사람라라」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

[1부]
일회용라이터·14
무무·16
어쩌면손잡이·18
나는있다·20
얼룩말은어떻게웃지·22
오이·24
감자·26
거울·28
고양이눈속의시간·30
면포위의오렌지·32
백로·34
빈접시·36
가파른가을·38
하지의태양혈·40

[2부]
젖은가방·44
부재중·46
블록게임·48
아홉장달의꽃잎·50
던져진책부서진의자·52
공전하는알약·54
고독한산책자의개구리·56
고독한산책자의프레임·58
블릿의블랙홀·60
유리잔·62
쪼르륵샛강·64
내가아는나와내가모르는나·66
온종일돌이기만한돌·68
고양이는모르는삼각형의공식·70
부테스·72
음악은넘치고국자는뒤집어져·74
[3부]
어린이방인·78
투명종·80
관찰자·82
초저녁잠·84
어둠·86
빛·88
은총곤충그리고닙·90
나무와의삼각편대·92
새벽의새벽·94
난쟁이멀리던지기·97
랩·100
천공·102
개의꼬리를물고·104
사슴벌레·106
신발귀신·108
간지러운독·110

[4부]
이토록다정한·114
긴그림자에침을섞어·116
센티멘털윈도·118
그러니까·120
안데스의바람·122
달빛스카프·125
반신반의·128
구름의숟가락·130
다같이어는걸로·132
동시독서·134
물의나이테·136
말을아끼는수다쟁이·138
배시시옳다는거·140
황금주발쨍그랑·142
햇볕냄새·144
마음·146
달빛주의보·148
잠자며새끼를분만하는공주입·150
해설|황치복(문학평론가)
“있음과없음,혹은존재의근거와양상”

출판사 서평

|시인인터뷰|


[Q]주제와이야기의방향은?

[A]타자나어떤객체와의관계보다는내면의소리를많이담고있다.관계의시학이라기보다는존재론적시학에가깝고경험보다는인식에기대있다.잠자는환자를조심스럽게깨워숨소리좀들어봐도괜찮을까요,묻는주치의처럼내면에서삐걱거리는수많은나를건져내들여다본다.그래서나는시를,수많은‘나’를깨워듣는낯선숨소리라생각한다.낯선숨소리는많을수록,어긋날수록풍성해진다.논리없이중심없이흩어질나를꺼내놓는일이그의시쓰기이며,수많은‘내’가바깥의객체들을만나는순간무한하고낯선세계에접속된다.

[Q]독특한특징에대해

[A]이번시집은기존의정동을산출하는이미지의충격적결합을이어가면서거기에세계와자아의실재에대한탐색을담아내려고했다.이과정에서내게주어진가장중요한관찰과탐색은‘존재’와‘부재’의이율배반적인실재였다.그러니까‘있다’는것은무엇이고,‘없다’는것의실재(thereal)는무엇인지,또한어떤실체가있다고한다면그것의이유와존재근거는무엇인지……물론그것은일종의‘울림’이자‘공명’이다.나는이에대해끝없이질문하고,내시는적극적으로대답했다.

[Q]독자에게하고싶은말은

[A]너무만지면물러지거나뻗대다그만부러지기도하고낯선이미지를따라가다아무런전류도일으키지못하는방전지대에매몰될때가있다.그러나나는,그길이아무리멀더라도반드시돌아왔다.가끔숲을걷다보면낙엽을고요하게버티는도토리를볼때가있다.새똥을털고주머니에넣었지만,도토리는분명내것은아니다.나는눈에잘띄는곳에도토리를내려놓는다.내게시가찾아온다면,그것은도토리와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