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해설 중에서 |
있음과 없음, 혹은 존재의 근거와 양상
월간 〈심상〉으로 등단하여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한 이정란 시인은 ‘현상에서 촉발된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작시술과 결별하고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시인이다. 또한 의미와 메시지의 시가 아니라 무질서한 세계의 풍경이라든가, 시적 주체에 의해 통제되는 어떤 코스모스의 정연한 세계가 아니라 카오스가 형성하는 어떤 무늬라든가 경향성 등을 시화한다.
특히 이정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를테면 빗방울」(문예중앙, 2017) 이후 6년 만의 시집이자 통산 다섯 번째로, 황치복 평론가는 1999년 월간 〈심상〉의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이정란 시인의 시작 과정을 살펴보면 경이롭다고 평가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인 「어둠·흑백주가 있는 카페」와 「나무의 기억력」은 전통적인 시적 문법에 의지해서 외부의 사물과 풍경이 촉발하는 정동과 인식의 변화를 그렸다고 한다면 세 번째 시집인 「눈사람 라라」에서부터 어느 평론가의 명명대로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와 같은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의미의 세계에서 일탈해 콜라주와 몽타주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날카로운 충돌과 카오스의 질서를 향한 바 있다. 현상에서 촉발된 시인의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적 작시술과 결별하고 반리얼리즘의 작시술로 향해서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한 셈이다.
이번 시집과 관련해서는 “시인이 몰두하던 시적 현실, 즉 시적 공간이 창출하는 환영의 세계에서 실제의 외부 현실을 끌어들여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적 진전을 향하고 있다“면서 새로움을 강조한다. 요컨대, 이번 시집의 변모는 작시술을 향한 방법론적 고민에서 벗어나 어떤 전언과 주제를 심화시키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변증법적 지양(Aufhebung)의 과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곧 감각의 새로움의 세계에서 사유의 심연을 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나는 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Sein)의 양상과 그 근거들에 대한 시적 사유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정란 시인은 오랜 시간 묵히고 삭히고 발효시킨 시적 사유를 날카로운 이미지로써 함축한다. 다시 말해 시인은 기존의 정동을 산출하는 이미지의 충격적 결합을 이어가면서 거기에 세계와 자아의 실재에 대한 탐색을 담아내는 형국을 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탐색의 주제는 존재와 부재의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없다’는 것의 실재(the real)는 무엇인지,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이유와 존재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자못 철학적인 사유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있음과 관련된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문제이다. “영원을 사는 신의 이야기”, 그리고 “미지의 불 한덩이”, “미래의 옆구리에서 떨어진 내 몸”, “시간의 톱니바퀴”, “나는 지금 수십억 년 동안 나를 빠져나가는 중”, “튀는 시간에 휘청이며” 등의 무수한 표현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나은 자식이 크로노스(Chronos, 시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존재의 발생 사건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있음과 없음, 혹은 존재의 근거와 양상
월간 〈심상〉으로 등단하여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한 이정란 시인은 ‘현상에서 촉발된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작시술과 결별하고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시인이다. 또한 의미와 메시지의 시가 아니라 무질서한 세계의 풍경이라든가, 시적 주체에 의해 통제되는 어떤 코스모스의 정연한 세계가 아니라 카오스가 형성하는 어떤 무늬라든가 경향성 등을 시화한다.
특히 이정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를테면 빗방울」(문예중앙, 2017) 이후 6년 만의 시집이자 통산 다섯 번째로, 황치복 평론가는 1999년 월간 〈심상〉의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이정란 시인의 시작 과정을 살펴보면 경이롭다고 평가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인 「어둠·흑백주가 있는 카페」와 「나무의 기억력」은 전통적인 시적 문법에 의지해서 외부의 사물과 풍경이 촉발하는 정동과 인식의 변화를 그렸다고 한다면 세 번째 시집인 「눈사람 라라」에서부터 어느 평론가의 명명대로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와 같은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의미의 세계에서 일탈해 콜라주와 몽타주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날카로운 충돌과 카오스의 질서를 향한 바 있다. 현상에서 촉발된 시인의 내적 정동의 세계를 그리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적 작시술과 결별하고 반리얼리즘의 작시술로 향해서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의 충돌과 기표의 물질적 효과에 주목하면서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로서의 미학적 현대성을 추구한 셈이다.
이번 시집과 관련해서는 “시인이 몰두하던 시적 현실, 즉 시적 공간이 창출하는 환영의 세계에서 실제의 외부 현실을 끌어들여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적 진전을 향하고 있다“면서 새로움을 강조한다. 요컨대, 이번 시집의 변모는 작시술을 향한 방법론적 고민에서 벗어나 어떤 전언과 주제를 심화시키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변증법적 지양(Aufhebung)의 과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곧 감각의 새로움의 세계에서 사유의 심연을 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나는 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Sein)의 양상과 그 근거들에 대한 시적 사유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정란 시인은 오랜 시간 묵히고 삭히고 발효시킨 시적 사유를 날카로운 이미지로써 함축한다. 다시 말해 시인은 기존의 정동을 산출하는 이미지의 충격적 결합을 이어가면서 거기에 세계와 자아의 실재에 대한 탐색을 담아내는 형국을 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탐색의 주제는 존재와 부재의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없다’는 것의 실재(the real)는 무엇인지,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이유와 존재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자못 철학적인 사유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있음과 관련된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문제이다. “영원을 사는 신의 이야기”, 그리고 “미지의 불 한덩이”, “미래의 옆구리에서 떨어진 내 몸”, “시간의 톱니바퀴”, “나는 지금 수십억 년 동안 나를 빠져나가는 중”, “튀는 시간에 휘청이며” 등의 무수한 표현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나은 자식이 크로노스(Chronos, 시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존재의 발생 사건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있다 (이정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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