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 본연의 회귀: 인간중심주의에서 ‘자연중심주의’로
한영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카멜(camel)이 바늘귀를 통과한 까닭』이 시인수첩 시인선 83번째로 출간되었다.
등단작부터 비유의 독특한 효과나 상상의 참신함으로 우리 시대의 소외와 결핍을 주목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세계를 우리에게 펼치고 있다. 요컨대, 씨감자를 매개로 ‘심신이 황폐해진 노숙자들의 엄혹한 정황’을 표현한 시인은, 첫 시집 『푸른 눈』에서 자연중심주의를 압축한 ‘자유’로 확장되었고, 이번 시집에서는 이를 세밀하게 그리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한영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오랜 시간 시에 대해 사유하고, 시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시로부터 삶에 대해 성찰해 온 시간이 가득 녹아 있는 작품집이다. 그가 이 시집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나’라는 가장 작은 세계로부터 나를 둘러싼 외부의 자극들을 향해, 더 큰 세상 속으로 한 걸음을 딛는 일이고, 그로부터 다시 바깥의 세계를 향해 한 걸음을 더 나아가보는 일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며 그 속에 새겨진 상흔을 어루만지는 것에서 시작해, 한 사회에 가득 찬 신음에 대해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가 행하는 시적 여정은 사람의 마음을 아우른다는 문학의 본령에 무척이나 충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여정은 단지 자신의 고통이라는 한 사람의 관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거대하고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시도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단지 아름답다고도, 혹은 비참하다고도 말할 수 없을 지상의 풍경은 이처럼 지하와 천상의 대비와 어우러짐 속에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분명 지상을 수식하는 시어들로 인해, 슬프고도 외로운 심사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에도 지상의 풍경은 이를 뒤덮는 하늘에서 내려진 눈으로 인해 외려 고고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심미적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자동차”, “아파트”와 같은 시어들은 그 속세의 이미지로 인해 “돌멩이”와 같은 무채색의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눈이 자아내는 순백의 이미지는 그러한 풍경을 푹신하게 끌어안음으로써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독특한 미감이 있기에 시의 말미에 새겨진 화자의 존재론적 침몰은 지상의 세계를 감싸는 희고도 슬픈 메아리가 되어 오래도록 맴도는 여운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한영숙의 시는 시를 직조함에 있어 공간의 대비와 색채의 대비를 중심으로 자신의 의도를 입체적인 형태로 묘사한다. 때문에 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도, 그것의 무대가 되는 지상의 공간도 평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이분법적 대비와 그 여분을 통해 보다 정교한 형태로 구체화된다. 한 사람의 감정조차 언어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슬픔이나 기쁨조차 그 단어의 부피를 뛰어넘는 여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이러한 대비를 통해 복잡한 감정과 심경을 구사해내는 것은 세계의 리얼리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인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인의 시선은 아래의 시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시인은 인간들의 사회 속 의복의 풍경을 바라보며,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고 생명마저 수탈당한 비인간 존재의 생애를 읽어낸다. 잔인한 사육 환경 속에서 살다가 끝내는 “날 선 면도날에 슥슥 벗겨”지고, “아무렇게나 방치된 벌건 육신”으로 대지 위에 내버려진, 자연의 모습을 읽어낸다(「사육」).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사치와 같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자연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을 가차 없이 희생시키는 이기심이며, 오직 자신의 욕망이 세계의 전부라 믿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기 자신의 통증으로부터 자기 내면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통증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동시에 인간을 비롯한 존재 일반에 대한 사유이며 동시에 ‘생’이라는 본래적 관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등단작부터 비유의 독특한 효과나 상상의 참신함으로 우리 시대의 소외와 결핍을 주목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세계를 우리에게 펼치고 있다. 요컨대, 씨감자를 매개로 ‘심신이 황폐해진 노숙자들의 엄혹한 정황’을 표현한 시인은, 첫 시집 『푸른 눈』에서 자연중심주의를 압축한 ‘자유’로 확장되었고, 이번 시집에서는 이를 세밀하게 그리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한영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오랜 시간 시에 대해 사유하고, 시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시로부터 삶에 대해 성찰해 온 시간이 가득 녹아 있는 작품집이다. 그가 이 시집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나’라는 가장 작은 세계로부터 나를 둘러싼 외부의 자극들을 향해, 더 큰 세상 속으로 한 걸음을 딛는 일이고, 그로부터 다시 바깥의 세계를 향해 한 걸음을 더 나아가보는 일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며 그 속에 새겨진 상흔을 어루만지는 것에서 시작해, 한 사회에 가득 찬 신음에 대해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가 행하는 시적 여정은 사람의 마음을 아우른다는 문학의 본령에 무척이나 충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여정은 단지 자신의 고통이라는 한 사람의 관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거대하고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시도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단지 아름답다고도, 혹은 비참하다고도 말할 수 없을 지상의 풍경은 이처럼 지하와 천상의 대비와 어우러짐 속에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분명 지상을 수식하는 시어들로 인해, 슬프고도 외로운 심사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에도 지상의 풍경은 이를 뒤덮는 하늘에서 내려진 눈으로 인해 외려 고고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심미적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자동차”, “아파트”와 같은 시어들은 그 속세의 이미지로 인해 “돌멩이”와 같은 무채색의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눈이 자아내는 순백의 이미지는 그러한 풍경을 푹신하게 끌어안음으로써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독특한 미감이 있기에 시의 말미에 새겨진 화자의 존재론적 침몰은 지상의 세계를 감싸는 희고도 슬픈 메아리가 되어 오래도록 맴도는 여운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한영숙의 시는 시를 직조함에 있어 공간의 대비와 색채의 대비를 중심으로 자신의 의도를 입체적인 형태로 묘사한다. 때문에 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도, 그것의 무대가 되는 지상의 공간도 평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이분법적 대비와 그 여분을 통해 보다 정교한 형태로 구체화된다. 한 사람의 감정조차 언어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슬픔이나 기쁨조차 그 단어의 부피를 뛰어넘는 여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이러한 대비를 통해 복잡한 감정과 심경을 구사해내는 것은 세계의 리얼리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인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인의 시선은 아래의 시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시인은 인간들의 사회 속 의복의 풍경을 바라보며,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고 생명마저 수탈당한 비인간 존재의 생애를 읽어낸다. 잔인한 사육 환경 속에서 살다가 끝내는 “날 선 면도날에 슥슥 벗겨”지고, “아무렇게나 방치된 벌건 육신”으로 대지 위에 내버려진, 자연의 모습을 읽어낸다(「사육」).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사치와 같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자연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을 가차 없이 희생시키는 이기심이며, 오직 자신의 욕망이 세계의 전부라 믿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기 자신의 통증으로부터 자기 내면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통증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동시에 인간을 비롯한 존재 일반에 대한 사유이며 동시에 ‘생’이라는 본래적 관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멜이 바늘귀를 통과한 까닭 (한영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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