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우리는 우리

$13.66
Description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와 세계에 던지는
은유로 가득 찬 경고장
이종섶 시인의 시집 『우리는 우리』가 시인수첩 시인선 84번째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독특한 화법과 어조로 우리 사회가 짊어진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시적 형상화로 기록한다. 여기엔 희망과 낙관의 비전이 삭제된다. 줄곧 다루어 온 사회현상에 접근하는 시인만의 독특한 접근법은 독자로 하여금, 그 사태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시각의 단순성을 겨냥하고 있다. 매번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생각이 하나로 수렴되고, 수렴된 사회적 의식을 제어하고 통제하여 일반화된 목소리로 치장하는 기관과 위정자의 처신을 생각한다.

이런 세계에서 시가 맡을 수 있는 기능 가운데 하나가 ‘비틀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볼 때 시인은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하고 있는 곳을 응시한다. 사람들이 현명한 문제 해결 방법이라며 묘안을 제시할 때 시인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시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언어의 희롱이자 의미의 해체이기도 하다.

이종섶 시집 『우리는 우리』에 실린 시편들을 넘기면 출구가 봉쇄된 거대한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희망을 저당 잡힌 채로 살아가는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 인간은 개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이나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지구 사회와 온 우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이 어두운 존재들의 양태에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질병과 테크놀로지가 서로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이미지들이 활개를 친다. 우리가 오래전 분명 어둡고 침침한 눈과 목소리로 세계를 논했던 장면들이었다고 생각이 들곤 하는 풍경들이 격자처럼 펼쳐지기도 하면서, 때때로 비(非) 시적인 종결어미와 술어가 주는 건조한 문장으로 하여금 마치 투명한 진공 유리 벽에 갇힌 모음처럼 떨리는 기분을 느낀다. 폐허가 되어 버린 세계에서 그나마 가까스로 되찾은 생명의 터전에서 힘겹게 피어 올리는 풀꽃을 보듯 어떤 가능성이 다가오다가도 천천히 몸과 마음을 죄는 불가항력의 검은 그림자에 가위눌림을 당하기라도 하는 듯 숨이 막히기도 한다.

이런 정조를 만든 시인에게 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물론 시인의 눈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시각이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암울한 미래 영화를 보듯 더 이상 유토피아의 둘레에도 접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태에 매몰되고 흡수되어, 다만 하루하루를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상태에서 그동안의 인류가 쌓아온 온갖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 출구를 가늠해 보기만 하는 답답한 상황에 갇혀 있지는 않을까.
저자

이종섶

경남하동에서태어나2008년《대전일보》신춘문예시,2016년《광남일보》신춘문예평론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물결무늬손뼈화석』『바람의구문론』『수선공K씨의구두학구술』등이있다.〈수주문학상〉〈시흥문학상〉〈문경문학상〉등을수상.
mybach@naver.com

목차

시인의말

[1부]

대폭발·15
고등어고등법원·17
우주위험위기경보·20
우리는우리·22
MissaSolemnis·24
남북전쟁·28
탄저균·30
킬러그램·32
오픈핑거글러브·34
오르간오르가즘·36
멜라닌멜랑꼴리·37
팬데믹·40
코호트격리·42
따뜻한북극·44
눈사람·46

[2부]

타임머신올림픽·51
4인칭·52
올드랭사인·54
트랜스포머유모차·56
감정손해보험·58
인간식물·60
리프팅·62
몬스테라몬스터·64
치킨게임·66
트래쉬토크·68
피처링·70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72
항중력근·74
토킹스틱·76
리플리증후군·78

[3부]

십리벚꽃심리학·83
가면무도회·86
신데렐라는·88
슬프지도않은노래의후렴에·90
네일아트·92
녹턴·95
윌리엄스증후군·98
페이스오프·99
새장에갇힌혀·100
그리운수용소·102
정조준·104
우산-샤갈의쥬라기마을엔비가내리고·106
백악기공룡이빙하기에도살아남는법·108
지도를완성하는날·110
바람을먹고사는짐승·112

[4부]

세탁기·117
냉장고·118
나는옷의영혼·119
사막여우·120
금·122
못·124
어디선가흐느끼는·126
풀의지문·128
빈집·130
줄이가장나중에썩는이유·132
꼬리를자르다·134
흙의리콜·135
그림자·136

출판사 서평

◨다음은시집에관하여나눈이어진시인과의짧은인터뷰내용이다.

[Q]주제와이야기의방향은?
주제라고하니과연주제가있었나싶다.특정주제를가지고시를쓴것이아니기때문이다.그러나반면에주제가없는것은아니다.주제는분명있다.시인으로서살아가면서시인으로서시를쓰고시집을내는한시인의내면에,존재적이고당위적으로흐르고있는의식의꺼지지않는것들이다.그것들이한편의시가되어나오고그시들이묶여한권의시집이되었다.
주제와이야기의방향은현재가나아가는미래다.그러나희망이아닌불안과혼돈의미래다.관심의시선또한지구적이고우주적이다.그렇다면과연불안한미래는어떻게될것인가?미래의불안은또어떻게될것인가?한개인으로서의인간과그인간이점점이포화상태로허물어져가는지구는또어떻게될것인가?이러한것들이내의식의흐름이흘러가고있는방향이다.
아마도내가시를동안은형태가달라질수는있어도이의식은달라지지않을것이다.내안에자리잡고있는이절대의식은그각각의내용과대상에따라서발성과색채가상이할수는있어도그기저에자리잡고있는의식의발현은더심화되었으면심화되었지결코약해지지는않을것이다.

[Q]이번시집의특징은?
그림으로설명하면좋겠다.실제로시집을준비하면서피카소를많이생각했다.그리고시인의말에피카소를쓸까말까많이망설이기도했다.생각에서는피카소를언급하고싶었는데흐름에관계없이튀는것같아서가슴속에서통통튀는그피카소라는이름을드러내지않았다.
피카소는구상과추상의중간쯤에있는화가라고생각한다.구상의요소도있고추상의요소도있다.구상으로보면그구상을비틀거나단순화하면서구상을해체하거나정리한다.추상으로보면그추상의의미망을구상적인도형과선과면으로눈앞에조형한다.내시는말하자면그런의미에서피카소적인시다.피카소의시가아닌피카소적인시라는말이다.
피카소는입체파또는입체주의라고한다.미술에서말하는입체파를문학에서언어로구현할수있는가에대한질문보다는그런의미와시각까지를함께생각하면서즉입체주의라는개념을생각의저변에깔고시작업을했다는말이다.언어와글자로그리고그것들이풀어내고모으고하면서언술해내는입체적의미망의파장이과연피카소의그것과어느정도상응할지또는피카소의그것을시라는이름으로조금이나마해내고있는지나자신부터궁금하다.
이런결과물에대한반응여부에따라서앞으로의행보가더욱깊어질지아니면시들시들해질지아니면또다른세계로눈을돌리게될지나는모른다.나는결국피카소가아니니까.피카소가되지못했으니까.피카소조차도피카소가되지못했으면피카소일수없었을거라고그렇게생각하기도하니까.

[Q]나는어떤시인인가?
나는좋게말하면새로운것을좋아하고평범하게말하면실증을잘내는시인이다.그래서내스스로가하는일에물리거나식상해하는성향이남들보다많다고생각하는시인이다.그래서관심분야도참많았고하고싶은일도아주많았다.오죽했으면한우물만파야하는데여러우물을파다가망한사람이라고나자신을그렇게농담조로소개했을까.
나는백남준을닮았다고생각하는시인이다.백남준의성공을닮은게아니라성향을닮았다는말이다.음악을전공했으나비디오아트라는완전히새로운장르의예술을탄생시킨백남준…….윤이상은될수없어도백남준은될수있다고저밑바닥의생각한켠에남아있는바로그백남준.
그래서나는이것저것딴궁리를많이하는편이다.조금도공개하지않은작업도있고만일나에게어떤기회가주어진다면완전히새로운퍼포먼스를해보고싶은꿍꿍이도마그마처럼가지고있는시인이다.때로는그것에시달리기도하지만적절하게그것을다스릴줄도알아서그냥저냥살아가는시인의처지를받아들일줄도아는시인이다.그러다가도가끔은주목을받고싶은마음이들기도하지만그것조차도사치인것같아서주섬주섬다시본래의자리로돌아갈줄아는시인이다.
-「저자와의인터뷰」중에서
◨해설들여다보기

“디스토피아의사막에서길어올리는칸타타”


시가문명의앞날을예측하기는쉽지만,그러한시적예감은언제나시인이지니고있는예술적인감각과현실비판의눈을저버리지않은상태에서가능하다고할때이종섶의시는이런의미에서우리에게특별한인식을제공한다.그의시는과학적이면서도시적인상상력을동원한우리시대의‘일기예보’처럼보이기도한다.그는인간이행한온갖기술적응용과사회문화적아비투스가맞이하게될종국적인표정에예리한시적언어를들이댄다.그형식은알레고리나상징,혹은언어유희등이다.이런시적방법은그동안세계를조망하고비판의식을거두지않으면서시인이획득하게된새로운형식이다.무덤덤한어조로시적세계에놓인사태를그리는풍경은,절체절명의위기에처한우리사회와세계에던지는은유로가득찬경고장이다.그래서그의시들이전달하는암울하고,어둡고,축축한디스토피아적풍경에서우리는마음과몸을짓누르는묵직한질량을느끼게되는것이다.

개인의이익보다집단의이익
부분은바로전체이며,전체와동일
금속함량비를가진태양의권력은
마지막순간중심에블랙홀을남긴다
빛도빠져나올수없는전체주의
진리는천체라는깃발아래결집된다
초기질량이태양이하인행성들이
산업사회를과격하게배척할때
정복을독점하는전체가폭발한다
절대군주의업적은인공천체의조직화
전개과정을반납한일부가
통제의전체성으로확보한진리
전체로만천체에포함되는기원이다
-「대폭발」부분

시「대폭발」은이번시집에실린첫번째시편이다.마치서시처럼다가오는듯한시다.단어를꾸미는형용어나수식어가없이건조한구절들로만구성되어있다.이메마른문장구조가품은어떤암울한징조는‘우주적’창조와질서및배열을진술하는속에차차증대되어어딘가희망을탈취당한시공간에우리인간이덩그러니내동댕이쳐져있다는기분을불러일으킨다.“통제의전체성으로확보한진리/전체로만천체에포함되는기원이다”라는구절에서느낄수있듯이,‘통제’나‘전체’가야기하는전체주의적인이미지에사로잡히는시적정조다.시인이위시에서그려보이는우주적인기원의내용들은,그것이진실이든상상이든오래전부터인간이불안하게점쳐왔던어떤이데올로기의형성과이에발맞춘인간군중의형상을쉽게떠올리게된다.개개의자유의지조차전체의기획에포섭되고마는‘우주질서’에서인간의의미와가치는아무리긍정적으로판단한다고하더라도결국어떤‘통제’나‘전체’의방향으로수렴될수밖에없겠다는생각이들지않을수없다.물론시인이독자들에게존재의암울한기원과전개과정을보여줌으로써비극적인세계관을피력하려고했던것은아닐것이다.이런시가창작된이면에놓인우리사회의지성과사회적방향에대한물음이중요하다.시인은‘존재’의기원에대한상상을시적으로재구성함으로써현대사회가만들어내는온갖부조리와불합리,그리고이해할수없는방향이불러일으킬어두운징후를선취하고자하는것이다.

말하는자기와듣는우주의물질단위는인칭이다
집이나공간의둘레에인칭대명사가별이되고
천개이상모여은하계라는소우주를형성한다
막기위하여축조한건조물을가리키는일인칭소우주는
1천억개담을관측하는대우주밖을모른다
우리가나아갈길은밖에서안을보호하면서
3인칭복수의침입을막는문법을정비하는것
말하는자의안이보이지않는초기모델은지구중심설
높지않은사람의공간을다른성격으로구분한다
갈릴레오가망원경을이용해천체의울타리를만들면서
지구중심설에비인칭이제기되었다
자기를포함한담을언제부터쌓았는지밝히기어려워
코페르니쿠스는정밀한천문법으로태양중심설을가미하였다
여러사람을가리키는일인칭대명사
뉴턴이만유인력의존칭을발견하면서
성읍국가시대의고전역학에우주론이접목되었다
행랑마당과사랑마당을구분해놓은담은
두공간사이친밀한관계를나타낸다
우리먼저나간다수고해라
지배집단과피지배집단사이에주거차이가발생하면서
말과언어의관측기술이고도로발전되었고
존귀한인류는하나밖에없는태양이우주에서
수천억개은하중하나라는사실을깨닫게되었다
말하는방향으로균일하게분포된우주는
가장자리도아랫목도중심도없다
신분에따른위엄을자손만대잇기위하여
낮은사람을상대하는극성에군림한다
거대한공백에서소용돌이치는거품을먹고산다
담과같은구조물로추정되는20세기초의발견
우주가시작되었고
우주가팽창하고있다
-「우리는우리」전문

시집의표제작인시다.‘인칭대명사’를사람뿐만아니라행성을포함한우주범위로까지확대했다.여기에는지구중심설이니태양중심설이니하는근대우주관에서부터시작하여뉴턴의만유인력의법칙을지나“지배집단과피지배집단사이”의“주거차이”발생을지적하고,“신분에따른위엄”같은신분제도적인측면까지짚으면서앞서「대폭발」과같은우주론을논한다.필자는독특한시적전개방법을사용하는시인의의도가무엇이었는지보다는,이런시적형상화를통해환기하는이미지에서어떤의미를건져낼수있는가가더욱절실해보였다.그러니까시인은이러한일련의‘우주론’을사회·역사적이고풍속적인내용을가미한독특한시형식을통해독자들에게전하려는메시지가무엇인지궁금하지않을수없는것이다.하지만그런의문은시적형상화를통해촉발된의식인만큼그해답의유무또한큰의미는없다.독자는시를읽고저마다각자가지니고있는사고방식과감성으로걸러내기마련이다.수용미학에서말하는독자의반응이시를읽는가장중요한포인트라면,위시는현대를살아가는우리들에게존재방식과실존의반성을끄집어낸다.‘우주’까지확대되는사고의팽창은독자들에게‘두통’을일으키지만,이러한감각적인반응이야말로시가만들어내는효과인셈이다.“행랑마당과사랑마당을구분해놓은담은/두공간사이친밀한관계를나타낸다/우리먼저나간다수고해라”같은진술이위시에서‘이질적인’느낌을불러일으키는까닭도,어쨌든시인의현재의식이우주로까지확대하는과정에서어쩔수없이데리고온‘시적요소’일것이다.‘담’은주체와타자를갈라놓는경계이면서한편으로는‘나’와‘우리’,그리고‘공동체’나‘집단’의결속을공고하게하는구조물이기도하다.그담을경계로해서문화가생겨난다.이러한문화는지속과유전의원천이되기도하지만,더러분별과구분의방편이나수단이되기도한다.‘우리’라고말할때전해지는따뜻하고다정한동류의식이알게모르게그뒤편에칼날을품고있다는사실을깨닫게되는아이러니함을어떻게해야할까.
-정훈문학평론가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