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나무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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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4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철의 시대 이야기』를 발간한 남상진 시인이, 독자들을 호젓한 숲갈로 초대했다. 바로 『나무라 불러도괜찮습니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시집을 통해서다.

시인은 인터뷰에서, "이미 숲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한 채의 집 안에서 또 다른 어설픈 집을 짓고 있는 나의 시는 아둔하기 짝이 없다."며 수줍게 고백하는데 "살아가는 일이 미완의 집 한 채 짓다 돌아가는 일이라면 시는 그 집의 서까래거나 대문이거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건강보조식품쯤 될까?"라는 겸손에서 출발한다.
저자

남상진

2014년《애지》로등단하여시집으로『현관문은블랙홀이다』,『철의시대이야기』가있다.제11회〈리얼리스트민들레문학상〉,제7회〈애지작품상〉을수상했다.시산맥회원,영남시동인.

목차

시인의말

[1부]
용서하면물이된다·13
검은숲·14
우울한침대·16
거울에비친생각·18
내가읽은나무·20
노숙의날들·22
숲속의풍경·24
소리의방향·26
오늘의표정·28
나무는나무끼리슬픔은슬픔끼리·30
시끄러운책·32
어둠에스민물처럼·34
터널·36
지느러미를벗은물고기·38

[2부]
도하(渡河)·43
직박구리는날고나는바라본다·46
스테노카라·48
황태·50
핼러윈데이·52
물의밧줄·54
처제가사라졌다·56
오래된규칙·58
통과의례·60
모래비·62
향나무에갇힌새처럼·64
파도에밑줄을긋고·66
아직도낯선·68
맹그로브·70
지나가는나무·72
빙하·74

[3부]
새벽의고백·79
나무의내막·82
어둠의행간·84
그림자의채널·86
혼자비를만났습니다·88
물끄러미·89
새를열다·90
침향처럼·92
데린쿠유에서온여자·94
리모델링·96
멸치의꿈·98
독백·100
환승·102
가면무도회·104

[4부]
인큐버스·109
팬데믹·112
비의둥지·114
오늘은없다·116
엔드그레인도마·118
유배지에서·120
어머니의출입증·122
물의방향·124
고장난피아노·126
적출(摘出)·128
참회·130
팽이의방정식·132



[해설]전소영(문학평론가)
“비가내리고나무가자라는쪽으로돌아누우면,보이는마음”

출판사 서평

호젓한숲길로의초대


2014년《애지》로등단하여시집으로『현관문은블랙홀이다』,『철의시대이야기』를발간한남상진시인이,독자들을호젓한숲갈로초대했다.바로『나무라불러도괜찮습니다』라는,특이한제목의시집을통해서다.

시인은인터뷰에서,"이미숲이란이름으로지어진한채의집안에서또다른어설픈집을짓고있는나의시는아둔하기짝이없다."며수줍게고백하는데"살아가는일이미완의집한채짓다돌아가는일이라면시는그집의서까래거나대문이거나식탁위에나뒹구는건강보조식품쯤될까?"라는겸손에서출발한다.

이시집을천천히읽으면서그가초대한숲길의냄새와색깔,온도와간절한충만함에대해생각해본다,그리고농도짙은바람은이어디쯤일까,그바람의결을어루만지며상상해본다.

시인은제11회〈리얼리스트민들레문학상〉,제7회〈애지작품상〉을수상한바있다.


★★

◨다음은시집에관하여시인과나눈짧은인터뷰내용이다.

[Q]주제와이야기의방향은?
[A]풀잎에,풀잎에맺힌이슬에,이슬방울에갇힌나뭇잎에,나뭇가지에매달린갈색대벌레의눈동자에그눈동자에반사되어존재하는무수한세계를나는다알지못한다.숲을걸어가는동안만나는풀,나비,바람에일렁이는나뭇잎,귓등을타고내리는개울물이흐르며만나는일련의아픔을쓰고싶었다,안개에묶였다풀려난여명의햇살한자락을따라가는아침그림자처럼나는수시로있다가없다가숲을걸어가기도한다.바닥에서공중에서으슥한나무둥치뒤에서능소화담장너머로목을빼문골목에서시시각각존재하는,감촉할수있는모든것들에경의를표하는마음을전하고싶었다.살아있어서같이공유하는공기와별빛과온갖향기를생각하면나는점점작아지거나낮아진다.아주작거나혹은아주낮은곳의이야기를하고싶었지만아직말주변이모자라는것은좀더바닥에엎드려야할여지가있는것같아외롭고도즐겁다.


[Q]이번시집의특징은?
[A]이미숲이란이름으로지어진한채의집안에서또다른어설픈집을짓고있는나의시는아둔하기짝이없다.살아가는일이미완의집한채짓다돌아가는일이라면시는그집의서까래거나대문이거나식탁위에나뒹구는건강보조식품쯤될까?손잡이가없는문처럼,삐뚤삐뚤한글씨체로써내려간좌우명이거나뭇시선들피해고개돌려몰래만져보았던욕심나던세속의물건같은,이숲의무수한만남과이별,그어느것하나간절하고특별하지않을까부지불식간에지나친무심도죄라면지은죄훌훌벗어수북한빨랫감처럼세탁기에넣고세제섞어돌리면말끔하게씻겨질까?간절히속죄하는마음으로숲속을걸어가는새벽의나무가되고싶었다.


[Q]나는어떤시인인가?
[A]시를쓰려고사주에도없는사업을해서여섯번을실패했다.3년을목표로한생업이20년넘게걸렸다.지금도완성하지못한채생업과시업결국두개의채널을지닐수밖에없었다. 
이름없는나무,그늘이작아도,눈에띄는꽃을피우지못해도,약간의향기와그저먹을만한열매몇개달고몇마리의새들이깃들수있다면,머리를조아리며숲을걸어가고있을것같은한그루나무,수없이많은풀들과구름과쉼없이움직이는숲의모든세계들에게다투지않고제자리에존재하는방법과나와다른종들이군락을이루는비탈진산자락에서연신미끄러지면서도숲의일부가되는감사함이나살아있음의기쁨을어설픈말주변으로이야기하고싶은,손때묻은노트몇권으로나이테를대신하는나무,어설픈한줄문장으로도가슴으로설레며잠에들수있는순진하고특별하지않은,차가운계절에꽃피우는키작은한그루은목서를꿈꾸는사람이고싶다.
-「저자와의인터뷰」중에서


◨해설들여다보기

“마음의고요함으로가는길”


여기한사람이있다.보편적인성공의기준에맞춰인간의삶을재단해야만한다면그는실패한자에가까울지모른다.살아가는내내자신이태어난시골의경계를넘지않았고생의많은시간을고독속에서소요하며보냈다.이웃들은그런그를괴팍한은둔자라고불렀다.그자신도스스로를가정교사,측량사,정원사,농부,그리고엉터리시인이라고평가하였다.
다만그가세상을떠난지십년후,사람들은흔적으로만남은그의집터에돌탑을쌓으며뒤늦게그를추억하기시작했다.그로부터더긴시간이흐른2020년대의초입에서는그사람에관한이런이야기가많은이의외로운마음안에서포개어졌다.

“우리는소로가창안한‘건설적인고독’으로부터많은것을배울수있다(AndwecanlearnalotfromwhatThoreaucreatedfromit:constructivesolitude).”

2020년봄《뉴욕타임즈》에는‘그사람’,바로헨리데이비드소로(HenryDavidThoreau)의삶과태도를재발견할필요가있다는취지의글이실렸다.그글의필자는거기에‘건설적인고독’이라는표현을남겨두었는데,당시이말에공감을표시하는이가많았던이유는그때의우리가격리가일상이자미덕이된감염병시대의주민이었기때문일것이다.그후로시간은다시금한참을흘러오늘에도착했지만우리는여전히소로를읽고그의고독을돌이킨다.
매사추세츠주콩코드마을근처의월든호숫가.그땅을빌려통나무집을짓고홀로사는동안소로는생존을위한활동을최소한으로줄였다.대신자기에관한사유에대부분의시간을할애하기로했다.어떻게살지,가치있는삶이란무엇인지찾기위해의도적으로자신을유폐하였던것이다.그리하여그는종종은둔자나염세주의자로오인되기도하지만사실그의고립은주변과의철저한단절을위한것이아니었다.
오히려그는그기간동안사람과자연에대해끊임없이생각했다.물질,편의,발전등의단어로점철된문명속에서도리어본질을잃어가는자신과이웃을아프게떠올렸고,인간이상실한것을되찾기위해사위의자연을섬세하게바라보았다.계절의변화와함께높아지고낮아지는호수의수심이나수다한새들과곤충들,그들을키워내는나무같은것을말이다.
그런연후에그가도착한결론이이와같았다.자연은사람이망각한본성을지니고있기에우리는그를가까이해야하며,그와닮기위해애쓰다보면잃어버린소중한것들을되찾게되리라는것.소로의고독이건설적이었던까닭은,문명을이탈하여자연속으로들어간그가이처럼인공의삶안에서희미해져가는중요한진리를새삼붙들었기때문이다.
남상진시인의세번째시집이바로이러한소로의사색을떠올리게한다.시집에누벼진화자들은자신을비롯한인간의삶을성찰하기위해자발적으로건설적인고독안에거주한다.이숙고의과정에서돋을새김되는것이물,비,나무,숲등의이미지인데이는단순히화자외부에놓인환경을지시하는것이아니다.이때의자연은문명화된인간의반대편에놓인것,그리하여인간이회복해야하는가치가무엇인지를기꺼이알려주는인도자에가까워보인다.언젠가의소로를깨운그빛나는월든의호숫가처럼말이다.

돌아보는얼굴은
모두
내가
지나온채널

눈감으면
팔이긴나무가나를데려간다

나는숲에서논다

울면서웃으면서
그늘은흘리기도한다

기억나지않는
새,나무,얼굴들

어둠으로버무려진숲은
맨처음방처럼아늑하다

서러운행간을
침묵으로견디면
유효기간은금세지나간다

날아오른밤새의
먹이가되고남은별들은
키가작은나무가되기도한다

혼자일때
거울을들여다보면
검은얼굴의나무한그루
긴팔을내두르며걸어간다

꿈속에서잃어버린
내뒷모습
한토막인지도모른다
-「검은숲」전문

시집의진입로에서「검은숲」을먼저꺼내드는것이좋겠다.이시가,시집전체에가로놓인자연의함의를생각하게하는까닭이다.첫연에서화자는어떤반추의순간에놓여있다.“돌아보는얼굴”과“모두”,“내가”,“지나온채널”사이에가로놓인깊고도넓은행간이,지나온세월을회한속에서천천히돌아다보는화자의모습을그려보게한다.그회고의여정끝에서화자가문득눈을감았을때“팔이긴나무”는그를숲으로데려간다.
여기서‘나’를감싸숲으로데려가는나무는,그를내면깊은곳으로인도하는다감한안내자처럼보인다.그러고보면그럴때가있다.비탈진일상위을허정허정걷다지쳐버린마음을말리기위해,우리는한갓진숲의복판이나강의기슭,적막한바다의모래를찾아헤매기도하는것이다.팔이긴나무의이미지는그러한순간을환기하는데,자연은이처럼인간의외면보다는내면과접속하는장소-내면으로난비밀스러운문을열어주는매개가되곤한다.
이시의‘나’가나무를따라도착한숲또한자신의내면이어서그는“어둠으로버무려진숲”에서도두려움보다는아늑함을느끼며논다.다만그의놀이에는웃음뿐아니라울음도동반되는데숲에‘나’의비애가고여있기때문이다.바쁘게흘러가는생활은우리에게서슬픔을토로할기회조차앗아가곤하지만,그렇게삼켜진슬픔은사라지는대신우리의마음에고여“서러운행간”으로남기마련이다.
그러나나무가‘나’를내면의설움과직면하게하는이유는,화자가고통에잠식당하기를바라서가아닌것이다.심연의아픔과괴로움을마주하고감내할용기를지닌이에게그것의유효기간은그다지길지않거니와,그견딤의경험이삶에이롭게남아미래의자신을위한동력이되어주는까닭이다.이를테면어둠속에서‘나’를다시금날아오르게도(“밤새의/먹이가되고”)‘나’를겸허하게,단단하게살아가게할수도있겠다(“키가작은나무가되기도한다”).

비가오는밤은울기에좋다

오늘의짐을내려놓고
어둠속에서면
빗물이나를안고흘러간다

살아서는벗어날수없는오늘과
처음부터물이었을모든빗방울의과거와
어둠이걷히면발각될팅팅불은슬픔과
먹구름이물러간잠깐동안

키가큰종족처럼
허리를굽혀
혓바닥으로
발등을핥을수있었다면
나는이미
물이되어있을것이다
-「혼자비를만났습니다」전문

「검은숲」에서‘나’를내면의숲으로이끄는나무의이미지는「혼자비를만났습니다」에이르러내리는비의형상으로변주된다.옮긴시의‘나’는비가내리는날을골라혼자울기로한다.비와눈물이같은성질의것이어서앞의것이뒤의것을부르는까닭이다.“모든빗방울”은처음에는어디든지흘러갈수있는자유로운물이었겠다.그러나비는지상에내린물,지상의중력이라는운명에따라수직하강해야하는물이다.인간또한그와다르지않아서“살아서는벗어날수없는오늘”의중력이‘나’를생활안에정박시킬때고단하고외로운‘나’는속절없이눈물을흘린다.
다만비내리는날은‘나’가“오늘의짐을내려놓고”울면서“어둠이걷히면발각될팅팅불은슬픔”에장악된내면깊숙이발을들이는날이기도하다.그리고거듭하지만인간이자신의내부세계와깊이조우할수있을때,“먹구름이물러간잠깐동안”일지라도자신의고통에직면할수있을때,그경험은제주인을성숙하게만들어줄수있는것이다.
이시의화자가마지막연에이르러“키가큰종족”이되는상상력속에자신을두는이유가여기에있다.‘나’는희망한다.키가커질수록,즉성장한다고해서하늘을향해고개를드는오만한자가아니라,갈수록겸허해진끝에“허리를굽혀”가장낮은곳의“발등을핥는”자가될수있기를
-전소영문학평론가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