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돌리며 왔다 (이현정 시집)

지구를 돌리며 왔다 (이현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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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김없이 뜨겁게”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2019년 《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현정 시인의 첫 시집, 『지구를 돌리며 왔다』가 시인수첩 시인선 93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무엇보다 그동안 반성하고 성찰해 온 생(生)에 대한 시인의 직관적 태도가 녹아 있으며 이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어로 직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이 시집의 큰 방향성은 결국 ‘삶’입니다. 삶의 여정과 소멸, 사랑과 이별, 아픔과 위로 등의 주제가 상상과 현실 속의 대상과 만나 시로 태어났습니다”라며 인터뷰에서 고백한 것처럼 이 시집은 생활과 실존에 파묻힐 수 있는 삶의 본원적 그리움이다.
더욱이 시인이 늘 시선을 두는 곳은 우리가 ‘주류’가 아닌 ‘변두리’다. 소위 주류라 불리는 공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심지어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구속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자유를 만끽할 시간조차 타인들에 의해 제어되며 그리하여 주체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변두리’는 다르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그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이 낼 수 있으며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른바 ‘상상하기 좋은 곳’이라 시인이 명명한, 은밀한 다락방과 같은 ‘헤테로토피아’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모서리’에서 ‘죽도록 간절한’ 삶의 의지를 읽어내고, ‘오답’에도 빛을 찾아내며, 아무도 그 존재를 주목하지 않던 일본의 귀신 ‘가오나시’에서 맹렬한 사랑을 발견한다. 이러한 감각과 사유의 집중은 ‘혀의 돌기’가 ‘뿔’로 변하는 순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고요했던 순물질
비등점에
닿는 순간

최선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으로

뿔, 뿔, 뿔
들끓어 오르지
맹렬해진
심장의 서슬

차오르던 역한 기운
포화점을
넘는 찰나

한 모금 혼돈주로도
솟구치는 혀의 돌기

이맛전
짓이겨져도
치받아버리지



- 「뿔, 뿔, 뿔」 전문

‘말’을 멈추는 이유는 많다. 상대방과의 부드러운 대화를 이끌고자 할 때, 상대방의 고압적인 말투나 태도 혹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할 때 등이 그것이다. 물론 내가 스스로 말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그러한 사태가 지속될수록 ‘나’의 내면에는 ‘나’를 수복할 반전을 준비하게 된다. ‘혀의 돌기’가 “짓이겨져도 / 치받아버리”는 ‘뿔’로 변신하는 것이다. 물론 ‘뿔’은 시인의 의지로서, 어떠한 난관이 닥쳐와도 밀고 나가겠다는 행위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반전’은 이 시집의 대부분에서 발견되는바, “남아 있는 날 선 것은 치아밖에 없는 여인, / 집게 다리 하나 잘린 꽃게를 먹고 있다 / 모서리, 모서리끼리 입속에서 부딪혔다”(「뜨겁게 2」), “밤낮이 찌는 듯 / 한잠도 잘 수 없고 // 먼 산의 속울음조차 / 내 것인 양 메아리치던 // 그렇게 / 호흡도 타버릴 // 더운 밤이 다 있었다”(「열대야」), “어쩌면 냄비 받침이 될 / 시를 쓰고 모은다 / 누군가의 라면 냄비를 받치고 있다가 / 불현 듯 / 또 누군가에게 / 뜨겁게 읽힐 수 있다면”(「뜨겁게 5」)과 같은 문장으로 압축된다.
저자

이현정

2018년《중앙신인문학상》,2019년《매일신문》신춘문예를통해등단하였다.2024년서울문화재단첫책발간지원사업에선정되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뜨겁게,남김없이뜨겁게
뜨겁게·1-좌우명·13
뿔,뿔,뿔·14
뜨겁게·2-모서리와모서리가·16
새벽에잡은소·18
베텔게우스에게·19
오답의매력도·20
뜨겁게·3-가오나시를만나다·21
자상(刺傷)·22
토르소혹은절규-어느얼굴없는조각상에관한소문·24
뜨겁게·4- 슬쩍·26
수문을열다·27
열대야·28
적란운·30
뜨겁게·5-냄비받침의시·31

2부|우주가되는공식
우주가되는공식·35
공전·1-조각달에게·36
공전·2-망(望),망(朢)·37
화조도·38
관심·39
지구를돌리며왔다·1·40
흔한이름·41
공전·3-상현의낯·42
공전·4-그믐을바라·43
야상곡·44
종이를찢다가·45
묵음(默音)·46
지구를돌리며왔다·2·47
유성우·48

3부|그갸륵함에대하여
미역,그갸륵함에대하여·51
거꾸로강을거슬러오르는저힘찬피라미처럼·52
호두에게바치는·53
식구-함께밥을먹는사람들·54
세신사·56
토룡을아시나요·57
곰팡이·58

뒤로나는새는없다·59
방짜를닦으며·60
게를위한헌사·61
장독대·62
잡상(雜像)·63
덕장에서·64
미나리로부터·65

4부|을(乙)의기록
을의기록·69
저나무가우는법·70
선고·72
곡(哭)·73
크레이터- 달을위로함·74
숨- 1호선을오르며·75
동백·76
거울앞에서·78
다른이름으로저장·79
진주,그오랜병상·80
원의작도·81
사랑은귀찮고사랑시나쓴다·82
북·84
집밥·85

5부|새가새를잡아먹은이야기
클리셰·1-새가새를잡아먹은이야기·89
메트로프리즘·90
수묵·91
달항아리-김환기에부쳐·92
여름·1-지리산·93
여름·2-소화·94
풍경·96
쇠소깍연가·97
여름·3-장마,그후·98
악몽·99
여름·4-매미를위한변명·100
과민성대장증후군·101
탄산수·102
클리셰·2-새가새를잡아먹었다는이야기·103


산문|이현정시인
‘ㅅ’·

출판사 서평

◨다음은시집에관하여시인과나눈짧은인터뷰내용이다.

[Q]주제와이야기의방향은? 

[A]다양한주제와이야기가섞여있지만,이시집의큰방향성은결국‘삶’입니다.삶의여정과소멸,사랑과이별,아픔과위로등의주제가상상과현실속의대상과만나시로태어났습니다.때로는격렬함으로,때로는설렘으로,때로는갸륵함으로,때로는아픔으로,때로는허무함으로.이시집은결국나와당신,우리주변의이야기입니다.생과사,그리고희로애락이담긴절실한노래입니다.이렇게담긴이야기들이늦게도착할지라도위로가,통쾌함이,사색이,따뜻함이필요한곳에잘흘러가닿기를소망합니다.


[Q]이번시집의특징은? 

[A]비슷한시상과시의언어를중심으로시집의각부를묶었습니다.1부‘뜨겁게,남김없이뜨겁게’는뜨겁고강렬한감정을담은시가주를이룹니다.2부‘우주가되는공식’은영원한문학의주제인‘사랑과이별’을노래하고,3부‘그갸륵함에대하여’는오늘도소리없이세상을굴리는갸륵하고기특한생에대한헌사를담았습니다.4부‘을의기록’은삶의애잔함과아픔을,5장‘새가새를잡아먹은이야기’는관조와허무의시선을담고자했습니다.각부마다집약적으로느껴지는감정선을따라가며시에온전히마음을맡기고읽어보시면좋겠습니다.


[Q]나는어떤시인인가? 

[A]등단이후6년이지났습니다.그리많지않은필력이라,스스로어떤시인인지를정의하기가참어렵습니다.다만늘새로운눈으로바라보고새롭게쓰는사람,마음의통점이깨어있는사람이고싶습니다.그래서지금은‘내가어떤시인’이라기보다,‘어떤시인’이되고싶은‘사람’정도로말할수있겠습니다.무엇보다이제제손을떠난,저의시를읽는분들이제가‘어떤시인’인지,‘어떤시를쓰는사람’인지각자의답을해주실것이라생각합니다.그답신이기다려집니다.
-「저자와의인터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