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엔드

힐 엔드

$12.25
Type: 현대시
SKU: 9791192651446
Categories: ALL BOOKS
Description
시드니에서 전하는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시인수첩에서 김인옥 시인의 신작 시집 『힐 엔드』 (시인수첩 시인선 103번째)가 출간되었다. 총 4부 58편의 구성으로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쓰인 이 시집은 이주민의 삶과 정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부의 ‘해 질 녘의 당신과 불행하고 슬픈 모든 어둠’으로 시작해 4부 ‘아웃백 일기’로 마무리되는 시집은 시인의 내적 여정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어로 호주라는 공간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울루루」, 「호지어 레인」 등에서는 호주의 구체적 장소들이 시적 사유의 무대가 되며 「이다키마니」(땅을 읽는다), 「뱀장어가 누워 있는 땅」 등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역사와 식민의 상처를 정면으로 다룬다.
특히 주목할 작품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한국계 입양아의 시선으로 쓰인 이 시는 “한글학교에서 또박또박 younghee를 쓰고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따라 불러도 / 또래의 박자에서 밀려나는 입양아”라는 구절로 정체성의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안녕, 홀로그램 연인들」, 「스플래시다운」 등에서는 공상적 상상력을 동원해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을 그려낸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적 세계를 구축한다. 이 두 시는 경계가 흐려진 세계에서 사랑과 죽음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디지털 시대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하거나, 침몰의 이미지를 통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형상화한다.
호주 내륙 사막을 횡단하며 쓴 연작 ‘아웃백 일기’는 압축된 언어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 “지평선위로길게이글거리는물빛에끌려 / 사륜구동한빛깔로아물거리는이승의시간”(「아웃백 일기8 -신기루」)처럼 띄어쓰기마저 생략한 급박한 호흡은 광활한 사막에서 느끼는 실존적 고독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시집 곳곳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하얗게 핀 파파베라」에서는 “스무 살 엄마는 문맹이었다”로 시작해 전쟁과 이산의 역사를 개인사로 풀어낸다. 4부의 마지막 시 「언큐어드」에서는 “몸져누운 엄마가 시 한가운데 들어왔다”라며 질병과 죽음, 그리고 시 쓰기의 의미를 성찰하며 시집의 내적 의미를 풍성하게 한다.
『힐 엔드』는 이주민의 향수와 정체성 혼란이라는 전통적 주제를 넘어, 호주 땅이 품은 역사적 층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시인은 원주민과 이주민의 상처가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며 식민과 이주의 복잡한 역사를 섬세하게 직조한다. 이는 단순한 이분법적 갈등을 초월하여 공간 자체의 복합적 서사를 드러내는 독창적 시각이다. 또한 『힐 엔드』는 관광객의 표면적 인상을 거부한다. 대신 그곳에 뿌리내린 이주민의 깊은 응시로 공간을 해석하면서도 한국어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디아스포라 문학이 향수의 틀을 벗어나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문학적 지형을 개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21세기 한국인의 삶은 더 이상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포착해 한국 문학의 지평을 확장한 시집 『힐 엔드』는 이주와 정착, 모국어와 외국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찾는 모든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저자

김인옥

목차

시인의말·5

1부|해질녘의당신과불행하고슬픈모든어둠

생존벙커에서의사랑·13
울루루·16
호지어레인·18
제인도·20
그리고그때부터는또한손을잡기가더쉬워지지않는
그런날이계속되었다·22
심판·24
아일랜드고스트·26
전시된당신·28
제국의열차·30
너무취한아버지는죽어도싸지·32
끝과시작의곁에서·34
스텔라씨만모르는·36
잘려나간귀·38

2부|그때나는스스로를깨지않기로결심했습니다

안녕,홀로그램연인들·43
부활절날뒤집힌가족·46
성냥팔이소녀와저물녘을절뚝거리는길고양이·50
어느날낯선병이지구를덮고
모든것이변하기시작했다·52
스플래시다운·54
I’mmadefrom12plasticbottles·56
타임라인·58
비트앤스윗과0과1·60
디스커넥티드·62
한쪽날개는불에타고다른한쪽은절며·64
스카이스크레이퍼·66
아무도원치않았던이야기·68
유리,아이러니·70
이리스의방·73

3부|먼지를지나면별은영원히빛나려합니다

이다키마니·79
청춘의덫·82
빌렌도르프의비너스와미친각주들·84
패잔병의깃발·87
알래스카·90
거진·92
플루메리아의초상·93
스타벅스·96
스무살·97
일주일·98
나는미술관이다·100
출구없음·103
벌거숭이임금님·106
지옥에서피어나는별·108
통화·110
볕·112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114

4부|아웃백일기

아웃백일기2- 버크에 가도 되겠습니까·119
아웃백일기5- 크레이그 오두막·122
아웃백일기6- 몇백 년은 외로웠을 처녀가·124
아웃백일기7- 힐 엔드·126
아웃백일기8- 신기루·128
아웃백일기9- 언브로큰·129
뱀장어가누워있는땅·131
검트리숲에서보내는편지·134
1박- 문학 행사 전야·136
타운홀·138
하얗게핀파파베라·140
삼월·142
너는항상주석을달더라·144
언큐어드·146

해설|조동범(시인·문학평론가)
디아스포라,길항하는두세계와시적여정·149

출판사 서평

디아스포라,길항하는두세계와시적여정
조동범(시인·문학평론가)

디아스포라,너머의언어
디아스포라의언어를떠올린다.하나의세계로부터또다른세계로이어진이산(離散)의여정을따라간다.일반적으로디아스포라는고통과상처,슬픔과결핍을상정한다.또한디아스포라문학역시그러한것들을재현하며부정의상상력을드러낸다.김인옥의시적여정은바로이와같은디아스포라를통해이어지고완성된다.그에게디아스포라는숙명과도같은문학적영토다.독자들은그의시집『힐엔드』를따라가며디아스포라의복합적이고다층적인세계와마주하게된다.김인옥시에나타난디아스포라는시인의섬세한시선을통해우리가미처알지못했던사유의힘을부려놓는다.
디아스포라는크게정치적·사회적디아스포라와개인적디아스포라로구분한다.우리는일제강점기한인이주로대표되는정치적·사회적디아스포라를경험했으며이것은지금까지상처와고통의기억으로남아있다.또한개인의이주가활발해진이후에는개인적디아스포라가더욱활발하게이루어지고있다.김인옥의시는이가운데개인적디아스포라를기반으로한다.하지만그의시속디아스포라는단순한개인사적사건에머물지않는다.시인은개인적디아스포라라는실제삶의가운데서도신화와전설,역사와이주사,현실과정치를적극적으로작품에수용하며자신의시적의지와사유를개진한다.


여성스러운건몰라도
순전히신여성이되고싶었습니다
동경자체가출발선이었는지도요
사진한장이혼인서류였고
플래시한번에증조할머니는신부가되었지요

살굿빛으로걸어보고싶었지요
미래의미래까지닿을줄알았지요

닷지트럭이흙먼지를날리며떠난부두엔덜컹이며흔들
린사진한장남았습니다
잠깐마주본옆모습은아주까리기름을발랐는가했는데
굽은어깨와돌아선등이저만치거리를벌리고있었습니다

하얀것이꽃인지벗겨진고무신인지
허리까지차오른사탕수수밭에서방울방울맺힌땀
아침은저녁으로저녁은밤으로넘어갔고
빛조차닿지않는교회에서는나이스무해차이를이불
처럼덮고살라했지요

…(중략)…

다만,꽃의비밀을지켜주기위해
그이름을부르지못했을뿐이죠
-「플루메리아의초상」부분

어쩌면김인옥의시는하와이로떠난한인디아스포라의비극과고통으로부터비롯되었는지도모른다.그의시가한인디아스포라를비롯하여디아스포라전반에대해깊은관심을기울이고있기때문이다.그의시는떠나온고국과지금살고있는호주를근간으로삼고있다.그가디아스포라의정처없음이라는본질을집요하게탐문하고있다는점에서한인디아스포라의상징적사건인하와이이주사를시의바탕에깔고있음을짐작할수있다.하와이디아스포라는근대초기한인디아스포라의출발점이자슬픈역사다.
이민과같은개인적디아스포라의경우,정치적·사회적디아스포라와다른양상을띠지만고국의상실과결핍을전제로한다는점은같다.근대를관통하며나타난뿌리뽑힌삶의정처없음은그것이정치적·사회적인것이든개인적인것이든친연성을갖기마련이다.양상과강도가다르다고하더라도비극적근대라는공통분모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그런가운데김인옥의시는떠나온자의시선속에내부자와외부자의경험이혼재되어나타난다.그리고그것들의간극을통해시적정서와의지를길어올리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