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사

한국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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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새로 보는 한국음악사」

한국문화는 한반도에서 홀로 발전해 왔을까? 아니다. 끊임없이 외래 문화와 교류하며 혼융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한국음악이다.
고구려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서역음악(중앙 아시아)과 교류하였고, 신라는 당악을, 고려는 송의 대성아악을, 조선은 예약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현대에는 서양음악을 수용하였다.
오늘날 한국음악계의 K-classic과 K-pop이 세계를 휘어잡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교류와 혼융의 결과이다. 고구려는 중앙아시아의 장구를, 신라는 당의 비파를 수용하였다. 고려는 대성아악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이 탄생하였다
현대에는 서양음악을 수용하여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세계를 흔드는 BTS를 출현시켰다. 필자가 새롭게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음악계의 교류와 혼융의 역사이다.
이 도서는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한국음악사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하여 밖에서 보는 한국음악사를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이런 점은 기존 학설이나 기존 개론서와 메으 달라서 불편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제 필자가 2000년에 발행한 「새로운 한국음악사」를 증보 수정하여 「새로 보는 한국음악사」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 수정 증보편에서는 필자가 전에 설정한 근대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근대를 근세와 근대 둘로 나누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역사서 저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대 구분인데, 이 개정 작업으로 독자들이 더욱 선명하게 한국음악사 전개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4년 전 발간한 이 〈새로 보는 한국음악사〉(2000)는 그동안 이혜구 장사훈 송방송 황준연 백대웅 송혜진 전지영 등의 시각과 매우 다르다. 이러한 다름은 상호 보완 작업을 하여 한국음악사의 흐름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 주리라 생각한다.
저자

전인평

(Dr.CHUNInpyong)

저자전인평은난데없이국악계에들어선비가비이다.늘호구로살아오면서도화도내지못하고속으로삭이는성품이다.오죽하면자전적에세이를쓰면서“쓸개와간은선반에얹어두고”라는제목을달았다.이렇게어려운일을겪으면서도늘삶을긍정하고승화시키려노력하며살아왔다.그는항상자신을객관화하려노력하며고난을발전의동력으로삼고살아온작곡가이며음악학자이다.

저자는서울대음대와동대학원을졸업(1970)하고델리간다르바마하비디알라야에서수학(1986)한후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문학박사를취득(1999)하였다.중앙대국악대학장을역임하였고,현재는중앙대명예교수,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한국음악저작권협회평의원으로

저자는인도음악을접한후완전히인생이바뀌었다.그래서인도음악이‘나의눈에서비늘을벗겨주었다.’라고생각한다.인도음악을접한후,한국음악을바라보는시각,한국음악과이웃나라의교섭과융합,한국음악의다양성에대한미학적이해가깊어졌다.덕택에연구방향도바뀌고작품도새로운감각으로작업을할수있었다.가장중요한것은인도음악연구과정에서새로운인적네트워크를갖게되어UNESCO주최의WorldIntangibleHeritage(세계무형문화유산)심사위원으로도참여하였다.또한한국음악의연구성과를영어권학자들에게전하기위하여아시아음악학회(CouncilforAsianMusicology)를조직하고2002년부터영문국제학술지AsianMusicology를발행하고있다.
 
동아음악콩클심사위원,중앙음악연구소소장,문화재청전문위원,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심사위원등을역임하였다.아시아음악학회회장으로영문음악학술지AsianMusicology발행인이다다.대한민국작곡상(1981),KBS국악대상(1998),난계음악학대상(2003),기독교문화대상(2004),한국음악협회한국음악상(2015),한국음악평론가협회서울음악대상(2018)을수상하였다.
 
중앙대교수(학장),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국립극장자문위원,UNESCOworldculturalheritage(세계문화유산)심사위원을역임하였다.현재는영문학술지AsianMusicology발행인,한국음악평론가협회회장,한국국민악회명예회장,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으로활동하고있다.
 
〈주요저서〉
아시아음악의아름다움(아시아음악학회,2008공저),한국음악의멋열가지(현대음악,2010),동북아시아음악사(아시아음악학회,2012),국악작곡길잡이(현대음악,2013),국악관현악법(아시아음악학회,2014),아시아음악오디세이(아시아음악학회,2015),한국음악선구자들의삶과음악(아시아음악학회,2019).한국음악장단의역사(아시아음악학회,201)._한국음악창작음악사(아시아문화,2022),아시아음악의역사(아시아문화,2023)
 
〈주요작품〉
국악관현악〈고구려송가〉(KBS국악관현악단위촉,2000).
국악관현악곡〈바이칼환상곡〉(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위촉,2008)
국악관현악곡〈반구대환상곡〉(국립국악관현악단위촉,2009).
실내악〈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이수은위촉,2017)
실내악〈인간은어디에서어디로가는가?〉신악회위촉,2018)
가곡〈남북을잇는아리랑〉(한국국민악회위촉,2020)
실내악〈파르시와까르마〉(한국국민악회위촉,2023)

목차

서장/무엇을새로볼것인가?/21

1.한국음악사시대나눔어떻게할것인가? 21
2.「새로보는한국음악사」시대나눔의기준 22
3.「새로보는한국음악사」시대나눔 24

제2장원고음악-한국음악의여명기(-357)/28

1.원고-원고의시대적배경 28
2.천손신화와난생신화 29
2.1.천손신화(天孫神話)의주인공(29)
2.2.난생신화(卵生神話)의주인공(30)
2.3.천손신화와난생신화의분포(31)
3.원고음악에관한문헌 35
4.원고대의악기 37
4.1.굴포리뼈피리(37)
4.2.신창동출토현악기(39)

제3장고대음악-서역음악수용시대(357-1116)/42

1.고대의시대적배경 42
2.고대음악전기:서역악기수용시대(357-780) 44
2.1.문화적배경(48)
2.2.고구려음악(49)
2.2.1.안악3호분,정가갑5호분그리고봉태자분의주악도비교(60)
2.3.백제음악(71)
2.4.열국시대의신라음악(87)
2.5.가야음악(92)
3.고대음악후기:서역악조수용시대(780-1116) 99
3.1.남북국시대의시대적배경(100)
3.2.통일신라의음악(102)
3.2.1.밖에서본최치원향악잡영오수의속독(114)
3.3.발해음악(127)
3.4.고대음악후기의악조(131)
3.4.1.밖에서본반섭조(한중일의반섭조)(135)


제4장중세음악시대-궁중음악발전시대(1116-1610)/138

1.중세음악전기:대성아악수용시대(1116-1447) 139
1.1.문화적배경(140)
1.2.대성아악의수입(141)
1.3.송나라사악(詞樂)의수입(146)
1.4.고취악장구형과사악장구형(147)
1.5.중세전기중앙아시아음악의영향(154)
1.6.중세전기의음악(156)
1.7.중세전기의기보법(178)
1.8.중세전기음악의악조(182)
2.중세음악후기:유량악보시대(1447-1610) 188
2.1.세종대왕의정간보창안(188)
2.2.조선초기의노래제정(193)
2.3.박연의아악정리와예악사상에의한악조개혁(194)
2.4.세종시대음악의빠르기(199)
2.5.세종실록〈치화평〉장구리듬과현행굿음악장단리듬비교(207)
2.6.중세후기음악의장단(214)
2.7.「악학궤범」의편찬(236)
2.8.중세후기의음악(239)
2.9.중세후기의악보(262)

제5장근세음악시대;문인음악시대(1610-1754)/269

1.근세문화적배경 272
2.문인음악 273
2.1.중인과문인(274)
2.2.문인음악의장르(277)
2.3.문인음악의발달(278)
3.세악수(細樂手)의활동 284
4.근세의음악양식 286
4.1.역안법의정착(287)
4.2.거문고의고정궁연주법과이동궁연주법(288)
4.3.당악의향악화(289)
4.4.성악곡의기악화(290)
4.5.변주곡의등장과사상적배경(292)
4.6.음악의속도가빨라지는경향(296)
4.7.음이높아지는경향(297)
4.8.근세음악의장단;영산회상장단의형성(298)
4.9.밖에서본한국음악의세틀형식(305)
4.9.1.인도음악의세틀형식(305)
4.9.2.태국음악의세틀형식(307)
4.9.3.중국남부강남사죽의세틀형식(307)
4.9.4.한국음악의세틀형식(308)
4.9.5.밖에서본영산회상(312)

제6장근대음악:서민음악부흥시대(1754~1900)/315

1.근대문화적배경 315
2.판소리의발달 316
2.1.판소리의기원(316)
2.2.판소리문헌(318)
2.3.18세기의판소리(320)
2.4.19세기의판소리(321)
2.5.판소리의유파(324)
3.근대음악의장단;판소리와산조장단의형성 326
3.1.3박자장단이고악보에없는이유(340)
4.서양음악이론의소개 341
5.근대후기의악보 343

제7장현대음악시대:민족음악모색시대(1900~현재)/347

1.현대음악1기:서양음악수용시대(1900-1954) 349
1.1.문화적배경(349)
1.3.기독교음악의수입(354)
1.4.창가(368)
1.5.뽕짝의유래와뽕짝논쟁(369)
1.6.유성기음악(373)
1.7.창극운동(384)
1.8.판소리와산조(388)
1.9.국악단체(397)
1.10.국악학의발전(404)
1.11.20세기초의국악교육(408)
1.12.국립국악원의개원(415)
2.현대음악2기:창작국악시대(1954-1988) 416
2.1.문화적배경(416)
2.2.창작국악의전개와대학국악과설치(417)
2.2.1.창작국악의전개;태동기(1939-1961)(418)
2.2.1.1.〈황화만년지곡〉의작곡연주경위(420)
2.2.1.2.서울대학교의국악과창설(421)
2.2.1.3.태동기의창작국악(422)
2.2.2.창작국악의실험기(1962-1987)(428)
2.2.2.1.시대문화적배경(428)
2.2.2.2.신국악예술인회의창립(431)
2.2.2.3.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창단(433)
2.2.2.4.서양음악작곡가의국악창작활동(436)
2.2.2.5.국립국악원의한국창작국악발표회(437)
2.2.2.6.창작국악단체의탄생과활동(446)
2.2.3.창작국악의발전기(1988-2000)(447)
2.2.3.1.시대문화적배경;88서울올림픽(447)
2.2.3.2.1991년지방자치의부활과국악관현악운동(448)
2.2.3.3.창작국악의평균율화경향(451)
2.2.3.4.개량국악기의등장과국악계의변화(451)
2.2.3.5.북한가야고쇼크(1994)(458)
2.2.3.6.오케스트라아시아창단(474)
2.2.3.7.국립국악관현악단의창단(474)
2.2.3.8.실내악단의활동(476)
2.2.3.9.발전기의창작국악(479)
2.2.4.창작국악의대중화및월드뮤직진출기(2001-2011)(482)
2.2.4.1.시대문화적배경(482)
2.2.4.2.국악방송국의개국(485)
2.2.4.3.국악관현악단의확산과실험(488)
2.2.4.4.소규모실내악단의활성화와퓨전음악의유행(490)
2.2.4.5.작곡층의다변화(502)
2.2.4.6.종교계의적극적국악수용(503)
2.2.5.창작국악의국악양악융합기(2012이후)(504)
2.2.5.1.시대문화적배경(504)
2.2.5.2.창작국악연주계의새로운경향(505)
2.2.5.3.ARKO한국창작국악제(508)
2.2.5.4.서양음악바탕작곡가와지휘자의참여(516)
2.3.사물놀이의등장(517)
2.4.국악학의발전(519)
2.5.종교계의반성과국악종교음악(523)
2.6.아시아음악학의대두와아시아악단의출현(526)
2.6.1.국악의해외소개와교류및한국음악인의해외진출(529)
2.7.북한의음악(536)
2.7.1.북한음악의성격(537)
2.7.2.북한음악의변천(541)
2.7.3.북한의음악교육(543)
2.7.4.북한의악기개량사업(544)
2.7.5.북한의음악학(545)
2.7.6.남북의음악교류(550)
2.7.7.북한의배합관현악(553)
2.7.7.1.서양악기를복종시켜라!(555)
2.7.7.2.오직북한에서만연주할수있는혁명가극(558)
2.7.7.3.1980년북한식대중문화등장(559)
2.8.현대음악2기의서양음악계의형편(560)
2.8.1.작곡계의전개(562)
2.8.2.성악계의전개(566)
2.8.3.피아노계의전개(659)
2.8.4.현악계의전개(571)
2.8.5.평론계의전개;한국음악평론의효시김관(573)
3.현대음악3기;한국음악의국제화시기(1988-)(576)
3.1.88올림픽이문화계에미친영향(576)
3.2.88올림픽이후창작오페라현황(590)
3.3.88올림픽이후창작국악계의전개양상(596)
3.4.한국인의국제콩쿠르입상(607)
3.5.한국클라식의수수께끼:RTBF방송국의다큐멘타리(608)
3.6.세계로진출하는한국음악계(609)

종장-한국음악의미래를위하여/610

1.종장-작곡가들이여,강을건너고나면뗏목을버리시오 610
2.미래를위한전략;융합과교류 612

출판사 서평

무엇을새로볼것인가?

이책의이름이2000년발행의「새로운한국음악사」에서2024년「새로보는한국음악사」로바뀐사연은다음과같다.
우선필자가평생연구하였던아시아음악연구,실크로드음악연구,한국음악의장단연구등을더적극적으로보완하였고현대음악편을새로보완하였다.또한초판에서근대를전기(중인음악부흥시대)와후기(서민음악부흥시대)로묶여있던것을,근세(중인음악부흥시대)와근대(서민음악부흥시대)로분장하였다.그리고안악3호분과다른외국고분과의관련성,최치원의향악잡영오수의외부적시각으로본재고찰,다른나라에서볼수있는세틀형식의양상,그리고세틀형식과중국대곡형식과의관련성등,「세종실록」치화평의장국리듬과굿음악장단덩더궁이와의관련성등,이러한점은다른국악사개론서와다른점이라고생각한다.또한필자가평생연구해온창작국악관련생각도대폭보강되었다.

필자가우리나라의외래음악영향에대하여연구하면서여러번질문을받았다.“전교수!전교수연구열심히하는것잘알겠는데---,외국에서한국으로들어온것말고우리나라에서외국으로나간것----그런걸좀찾아봐.”
개인이나단체또는민족모두는서로영향을주고받으며산다.나도친구의행동을보면서나자신을다듬는다.이것처럼문화도마찬가지이다.다른나라의문화수준이높으면낮은나라는저절로배우게된다.그리고문화수준이높아지면,저절로다른나라사람이우리를배운다.이렇게역사는교류와혼융의결과로나타난다.
그동안우리나라기술수준이다른나라보다낮아서열심히미국일본의기술을배워왔다.그러나이제상황이바뀌었다.우리스마트폰과반도체기술수준은세계최고수준이어서다른나라들이한국을배우려고애쓰고있다.그동안우리나라에는유럽의음악이나미국의팝송이대유행을하였다.이제는한국의K-pop이다나라에서크게유행하고한국젊은이들이다른나라유수한음악콩쿠르를휩쓸면서임윤찬등의K-classic이세계음악계를선도하고있다.이것이어떻게이루어진것인가?다른나라의좋은점을배우려는야심을갖고있었기에,열심히해외문화계와교류하고이것을토대로혼융의문화를만들어낸것이다.

필자가1978년서울대한만영교수의도움으로JonathanCondit의정간보시가부정론를연구한이래고악보에흠뻑빠져지냈다.정간보시가문제를보면서장단연구를해왔고,우리나라장구가인도에영향을받은것이라는것을알게되었다.악기는수입되면악기만들어오는것이아니고음악을끌고들어온다.마치피아노가들어오면서피아노소나타음악을받아들이는것과같다.
이후인도2세기의문헌「나띠야사스트라」연구하면서우리나라장단(長短)의원리를깨닫게되었다.‘장단’이란말이나타내듯이장단즉,‘긴음과짧은음’의조합원리가인도의딸라와한국장단의공통현상이라는것을알게되면서〈세종실록〉악보의리듬을이해할수있는기초를깨닫게되었다.그래서우리나라굿음악에서사용하는덩더궁이장단의리듬이「세종실록」악보봉래의에〈치화평〉리듬과관계있음을알게되었다.오늘날사용하는굿음악리듬이500년조선조궁궐에서연주되고있었다는사실에전율을금치못하였다.

101살에돌아가신이혜구(李惠求.1909∼2010)교수와1990년대박사학위수업을받으면서선생님이필자의이론에대하여불편해하시던두가지일이생각난다.그는초지일관세종실록정간보의시가긍정론을펴고있었는데,필자가1981년시가부정론을전개한“정간보에관한연구”를발표하였다.이이론에대하여2017년국악원논문집“정간보시가논쟁40년의점검”에서필자의실수를고백한적이있다.다른하나는〈영산회상〉에서어떤곡이원곡이냐는논쟁이었다.그는평생〈영산회상〉고악보를연구해온분이어서〈상영산〉이원곡이라는논리를폈다.여기에대하여필자는다른나라의세틀형식과비교하여〈가락덜이〉가원곡일수있다는생각을갖게되었다.이내용은“밖에서본한국의세틀형식”에서정리한바있다.

몇년전에출판사에서연락이왔다.2004년200부발행한필자의한국음악장단의역사와논리가다팔려재고가없다는것이었다.20년만에200부가팔린것이다.이처럼나의연구는이해가어려운난해한내용이었고또한학계의관심을끌지못하였다.그래서그동안더진행된장단연구관련논문을모아한국음악장단의역사(아시아문화;2018)를발간하였다.

본격적인한국음악사개설서는1975년장사훈의저술한한국음악사(정음사)이다.이후송방송은1984년한국음악통사(일조각)을발간하였고,대한민국예술원에서한국음악사를장사훈은1986년자신의한국음악사를증보한증보한국음악사(1986)를발간하였다.2000년에는필자의새로운한국음악사(현대음악,2000)가나오고송방송은2007년한국음악통사를증보한증보한국음악통사(민속원)를발간하였다.또한송혜진은「청소년을위한한국음악사」(두리미디어,2007)를전지영은다시보는조선후기음악사(북코리아,2008)을발간하였다.이로보면,1975년이후2008년까지8종의음악사개설서가발행또는증보발간되었다.
그런데아쉽게도2008년이후로새로운한국음악사개설서의발간증보작업이이루어지지않고있다.그동안국악계는석박사논문만해도한해에100여편이쏟아지고있고,연구자또한급증하였다.이러한사정을감안해보면,이러한공백은매우아쉬운일이다.

나이팔십에이렇게24년전출간한책을증보할수있게되어감개무량하다.시간이흐름에따라에너지가소진되고있음을실감하고있다.지난2년동안이도서증보작업에매달려살았다.쓰다보니640쪽의책이되었다.전자책은두꺼워도문제가적다.그러나이렇게두꺼운벽돌책은독자에게부담감을준다.축약본종이책은더시간을두고매만지기로하고우선전자책을발간하게되었다.그동안연구를지속할수있도록건강이유지된것에대하여하나님께감사한다.
2024년(4357년)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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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탄기차여행
-어쩌다국악계에들어선비가비이야기-

“잘못탄기차가목적지에데려다준다.”
엉뚱한차를탔는데도책해보니목적지였다는삶의또다른섭리를알려주는인도의속담이다.
Sometimeseventhewrongtraincantakeyoutotherightdestination.
-FromtheInianfilm,'LunchBox'(2014)-

나의음악인생은잘못탄기차여행으로시작되었다.이제한평생을지내고보니잘못탄기차가평생대학교수로생활하며100여곡을작곡하고30권의책을쓸수있도록나를안내하였다.이것은내가노력한결과가아니고궁둥이가무거운성품을전해준부모님의은덕과알량한신앙심을인정해준하나님의은혜이다.
내음악인생은초등학교선생을할때,우연히쓴〈연못〉이라는동요가실마리가되었다.이동요를본분이‘선율은참좋은데,반주가엉망이다.이론공부를더하면좋은곡을쓸수있겠다.’라는평을해준것이다.그래서더공부하려고음악대학작곡과시험을보았다.당시의음악대학입시는오늘날생각해보면세상이뒤집어질만큼묘했다.음대진학을하려면희망하는대학의교수에게개인지도를받지않으면합격하기힘든그런제도였다.1960년대서울음대작곡과입학정원이15명인데,네명의전임교수가있었다.작곡과4명교수가각각3~4명씩고교입시생을개인지도한다.그리고교수자신들이이렇게입시생을지도하면서스스로문제내고채점까지하는것이다.그러나당시는이런일이통하던그런시대였다.
그래서서울음대입시를보려는학생은미리서울음대교수제자에게지도를받는다.이들이소위‘새끼선생’이다.이렇게얼마동안지도받다가어느수준에이르면새끼선생이교수에게소개해준다.이렇게목표대학의교수에게입시지도를받는것자체가엄청난특혜이다.그러니기를쓰고‘새끼선생’에게줄을대려고온갖방법을다했다.당시서울대국악과에는제2지망제도를두어작곡과에서낙방한사람중에국악과에합격시키는제도가있었다.그래서내가작곡과는낙방하고제2지망으로서울대학교국악과학생이되었다.
잘못탄기차를내리고보니나는비가비라고불리고있었다.국악계에는비가비또는비개비라고부르는사람이있다.나와같은인문계고등학교출신은비가비그룹에서벗어나려면광야에서홀로고군분투해야한다.오늘날초등학교학생성적은‘수우미양가’로평가하지만,일제강점기에는‘갑을병정무’(甲乙丙丁戊)로평가하였다.비가비는“비갑(非甲)이즉,갑이아닌사람.즉‘출중하지못하다.모자라는사람’이라는뜻인데,그중에좀더모자라는사람을‘찰비개비’라고부른다.그래서나는‘철비개비’에속했다.정말나는찰비개비였다.대학입시문제에나온중모리를외워서는적었는데,막상중모리를들으면몰랐다.왜냐하면중모리를악보에적힌대로치는것이아니고음악을들어가며변화를주기때문이다.
대학에취직하기전,한번은이런일이있었다.교수몇명이공동연구를한다고교육부에서연구비를받았다.그런데공동연구원한분이약속날짜를못지키고,논문을완성하지못한채외국에나가버렸다.연구비를따내면마감일을지켜야하고못지키면다음연구비수혜에큰영향을미치게된다.모두들걱정하고있었는데,한만영교수가‘그거전인평에게부탁해.’라고제안하였다.그래서날자를넘기기는하였지만논문제출을할수있었다.서울대학교의강사준교수도몇번나에게작품을위촉하였다.‘전선생에게부탁하면마음이놓여--,작곡을위촉하면마감날짜를딱지켜주니--.이렇게비가비출신인필자는살아남으려고정말열심히살았다.간과쓸개는선반에얹어두고---.
집사람이내생활을보면서‘지금같으면대학강사자리도못얻었을것’이라고이야기하곤한다.눈치라고는약에쓸래도없고순발력이없는데다가말솜씨또한어눌하기짝이없고,특히사람사귀기어려워하기때문이다.나는민첩하지못하여굼뜬성격이다.그래서미리미리준비하지않으면불안하다.그래서해야할일을철저히메모한다.자면서도머리맡에메모지가없으면잠이안온다.그리고메모한종이를수시로보면서처리한일은지운다.그리고나머지일을언제까지해야하나하고챙긴다.나는원고청탁이나작곡을부탁받으면부지런히준비하여약속시간을꼭지킨다.그렇게지내다보니음악계에서원고를부탁하면마감날짜를잘지키는사람으로인정받게되었다.말하자면내모자라는능력이나를살려준셈이다.
나는늘호구로살아오면서도화도내지못하고속으로삭이는성품이다.오죽하면자전적에세이를쓰면서“쓸개와간은선반에얹어두고”라는제목을달았다.이렇게어려운일을겪으면서도늘삶을긍정하고승화시키려노력하며살아왔다.나는항상자신을객관화하려노력하며고난을발전의동력으로삼고살아왔다.평생을지내고보니감사할분들이많다.부족한작품을연주해준연주자들그리고방학마다해외현장연구를하도록도와준집사람,이들이1등공신이다.이만큼작업을할수있도록건강이버텨준것은순전히하나님의은혜이다.
2024(4357)년4월15일
돌물전인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