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아쿠타가와 수상 소설집)

벽 (아쿠타가와 수상 소설집)

$20.00
Description
아베 코보의 출세작을 새롭게 복간하다.
25년 전에 소량 출판되어 희귀본이 된 책!
제2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집‘벽’
“사막에는 혹은 사막적인 것에는 언제나 뭐랄까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일본에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난 반(半) 사막적인 만주에서 유ㆍ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지금에 와선 향수라고 설명해 버릴 수도 있지만, 난 그 절반은 사막적인 풍토에서조차도 더욱 사막을 동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숨이 막힐 것 같은 황사가 부는 날, 건조해진 눈꺼풀을 닦아도 닦아도 완전히 닦아 낼 수 없는 모래가 들어가곤 했는데, 그 초조한 기분 뒤에는 불쾌감뿐만 아니라 동시에 언제나 일종의 들뜬 기대가 담겨져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아베 코보의 모든 작품을 관철하고 있는 창작 모티프로서 『모래의 여자』 같은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초기 단편『마법의 분필』이래, 아니 더 초기의 시집인『무명시집(無名詩集)』때부터 일관되게 그려져 변하지 않는 모티프임에 틀림이 없다.

아베 코보의 경우 이 사막은 동시에 벽으로 바꿔 말할 수가 있다. 사막과 벽. 그것은 마치 만리장성을 쌓아 올리는 벽돌이 몽고사막의 흙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말하자면 동질의 소재로 구성된 동질의 존재인 것이다. 머나먼 지평선 이외엔 시야를 경제 짓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사막은 동시에 우리 눈앞에 나타나 우리의 시야를 차단하는 벽과 같은 것이다. 이 벽은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벽을 경계로 생긴 내부공간과 벽 밖에 펼쳐지는 외부공간은 동질의 소재로 구성된 동질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집은 아베 코보의 1951년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지난 2000년에 한국어판으로 처음 나왔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으므로 국내의 아베 코보 팬들은 이 책의 복간을 간절히 원했고 마침내 재발간이 결정되었다. 역자는 이번 복간에서 사소한 오류를 바로잡았는데, 화자의 말투를 오리지널 원서에 가깝게 존대로 환원시켰다.
저자

아베코보

저자:아베코보
1924년도쿄기타토시마군에서태어났다.만주봉천에서유년시절을보내고일본으로돌아와도쿄제국대학에서의학을공부했다.이시절아버지의죽음과일본의패전을경험하고다시금만주를돌아왔고1947년릴케와하이데거의영향을받은첫시집『무명시집』을자비출판했다.1948년『길끝난곳의이정표에』로본격적인문학활동을시작했다.1951년「벽-S.카르마씨의범죄」로제25회아쿠타가와상을받았다.이무렵전위예술운동에적극적으로가담하며일본공산당에가입하지만,1961년당을비판하는글을쓰고제명당했다.1962년『모래의여자』를발표하여이듬해요미우리문학상을받았다.이작품은세계30여개국에번역되고프랑스최우수외국문학상을받으며국제적인명성을얻었다.그후로도도시인의고독,타자와의소통가능성을주제로『상자인간』『밀회』등실험정신이돋보이는작품들을발표했다.『불타버린지도』는『타인의얼굴』『모래의여자』와함께‘실종3부작’이라불리며영화화되었다.
1973년극단‘아베코보스튜디오’를만들어국내외에서큰성공을거두었고,사진작가로도활동하여개성넘치는작품들을많이남겼다.소설뿐아니라시,희곡,시나리오,평론,영화등다양한분야에서탁월한예술적능력을발휘한그는각종장르를아우르는미디어아트의선구자로도평가받았다.1993년급성심부전으로사망하기전까지유력한노벨문학상후보로여러차례거론되었다.

역자:이정희
일본쓰쿠바대학에서아베코보연구로석사,박사과정을밟았다.한국에서는최초로아베코보연구로박사학위를취득한진정한아베코보연구자다.대표저서로는『일본현대문학의기수아베코보연구』(2009년도대한민국학술원기초학문육성우수학술도서에선정)가있고,공저로는『그녀들은자유로운영혼을사랑했다-불꽃처럼살다간12인의여성작가들』(2012년대한출판문화협회올해의청소년도서에선정)등이있다.이밖에아베코보의장편소설을번역한『타인의얼굴』등이있다.현재위덕대학교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로있다.

목차

『S.카르마씨의범죄』
『붉은누에고치』
『홍수』
『마법의분필』
『바벨탑의너구리』
『사업』
《부록》일본현대문학의기수,아베코보의문학세계
옳긴이말-나와아베코보

출판사 서평

『벽』의주인공은어느날아침갑자기자기이름이도망친것을알게된다.이건마치작가고고리의주인공이어느날아침갑자기코가없어져버린것을깨닫는것과비슷하다.이순간부터그는관습으로포장된현실세계에서존재권을상실하게된다.존재권을상실한인간,그것은현실세계에선범죄자가아니면미치광이외에는없다.

주인공은당연히읽는독자들의시선에따라세상으로부터그존재를모두강탈하려고하는흉악범죄자로비칠수도있고,또다른사람눈에는미치광이로비칠것이다.그리고존재권을상실하여어디에도귀속할만한장소를갖지않는주인공의눈에는현실세계가더없이기상천외하고부조리한덩어리로비치고만다.자신과타인이서로각각또하나의자신또하나타인으로변신을하고만다.현실세계속에서살고있는자신은자신의명함으로만존재하게되고사랑하는소녀는마네킹인형으로변신한다.이것은카프카이상으로카프카적인그로테스크한세계다.

그럼에도불구하고,아베코보는카프카의아류는되지않았다.아마도카프카에의해현대라고하는세계의근원적인허무에눈을떴을것임이분명하다.아베코보의독창성이어디에있고,어떤자질을갖추고있는가를알기위해선,독자는꼭카프카와아베코보를비교하여그본질적인차이가어디에있는가를확인할필요가있다.그러나명백한것은아베코보와카프카는그작품의무거움과가벼움,또명암의차이는분명하다.한마디로말하면카프카에비해아베코보의작품은훨씬가볍고밝은인상을준다.

그리고여기서더나아가이인상이주는원천을깊숙이탐색해간다면,우리는그곳에인간이존재권을상실한세계에대한작가자신의서로다른태도를발견할수있을것이다.즉,아베코보에있어서보여지는가벼움내지밝음은그의주인공이현실세계에의존재권을상실해도그다지심각하게고민하지않는다는것이다.그리고상실한것에대한향수를조금도느끼지않았다는것이다.

사람들은우연한계기를맞아저마다벽의세계로들어간다.그곳은인간의생활과우주의법칙이교차되는장소로,이렇게말하는순간어느새벽은존재하지않는다.벽은존재하며그리고또한존재하지않는다.아니,벽은역시존재한다.아베코보의분필이그곳에서절망적으로그림을그리기때문에세상에는벽이존재하는것이다.

바로창문을열면벽위에펼쳐진아베코보의세계가있다.즉여러분의운명이그곳에있는것이다.부디여러분은자신의손으로직접창문을열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