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봉쇄된 도시의 비극 1941~44

레닌그라드: 봉쇄된 도시의 비극 1941~44

$25.00
Description
레닌그라드, 인간 존엄의 마지막 빛
- 『레닌그라드: 봉쇄된 도시의 비극, 1941-1944』
겨울의 공기는 칼날 같고 침묵은 무겁다. 도시가 얼어붙는 동안 사람들은 걸음을 낮추고 마음의 온기를 서로에게서 빌려 쓴다. ‘봉쇄’라는 말은 한 줄의 역사 용어로 끝날 수 있지만, 애나 리드의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단어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굶주림의 무게, 빵 냄새의 기억, 낡은 일기의 누런 종이까지 손끝으로 더듬게 된다. 『레닌그라드』는 전쟁을 숫자와 지도로 환원하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의 고독과 연대, 비굴과 용기, 신념과 피로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복원시킨다. 그 목소리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극한의 시절에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켰는가’라는 질문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우리에게 곧장 다가오기 때문이다.

레닌그라드 봉쇄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872일간 계속되었다. 독일군은 점령이 아니라 고사(枯死)를 택했고, 시민들은 얼어붙은 라도가호를 건너는 ‘생명의 길’에 의존했다. 봉쇄 기간에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굶주림과 혹한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역사가의 건조한 문장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왔지만, 리드는 이를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되돌린다. 그녀의 책은 일기·회고록·구술 증언의 결을 따라 흘러간다. 그리하여 독자는 역사적 사실과 동시에 ‘사람’의 체온을 읽는다.

이 책의 미덕은 두 가지 결을 정교하게 직조했다는 데 있다. 하나는 사료적 엄밀함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적 감각이다. 저자는 군사기록 같은 공식 자료에 더해, 도시 안팎의 개인 일기와 가족 서한, 생존자 인터뷰를 촘촘히 엮는다. 편집의 리듬은 단단하고, 문장은 담백하다. 블룸즈버리는 이 책을 “봉쇄된 도시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서사의 중심축으로 삼은, 몰입감 있는 역사서”라고 소개한다. 이 소개는 과장이 아니다. 독자는 ‘사건’이 아니라 ‘하루’를 지난다. 한 장, 또 한 장을 넘길수록 도시는 계절을 잃고, 사람들은 체온을 잃고, 그 사이에서 공동체의 존엄이 어떤 얼굴을 띠는지 선명해진다.

『레닌그라드』가 중요한 까닭은, 이 책이 사건을 환기시키는 방식 때문이다. 따뜻한 물 한 잔의 값어치가 달라지고, 낡은 모직 코트의 털 방향이 보이고, 빵 쿠폰의 질감이 두꺼워진다. 그것은 단지 재현의 기술이 아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 ‘인간다움’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빈 껍데기가 되어가는지, 또는 마지막까지 어떤 방식으로 지켜지는지를 묻는 윤리의 형식이다. 리드가 겨냥하는 지점은 영웅담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존엄, 아름다움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눈앞의 도시에 빠져들면서도 반복해서 현재를 떠올리게 된다. 생필품의 공급망은 얼마나 취약한가, 한파와 단전은 누구에게 더 가혹한가, 문화는 절망 속에서 어떤 방패가 되는가. 이 질문들은 결코 과거형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리드의 서술은 ‘신화 걷어내기’를 시도하면서 봉쇄의 영웅서사와 선전의 과장을 차분히 추적한다. 봉쇄가 ‘국가의 승리’라는 거대한 서사로 포장될 때 사라지는 개인의 고통, 정책 실패가 은폐하는 고통을 기록의 언어로 되찾는다.

이제, 한국 독자를 향한 질문으로 시선을 돌릴 차례이다. 왜 지금 이 책인가. 첫째, 『레닌그라드』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낱말을 인간적 얼굴로 바꿔 놓는다. 재난과 전쟁, 팬데믹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도시와 공동체가 무엇으로 버티는지, 행정과 시민의 연대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상시킨다. 둘째, 이 책은 기억의 정치에 개입한다. 누구의 목소리가 역사의 본문을 차지하고 누구의 목소리가 각주로 밀려나는지, 어떤 고통이 기념비로 남고 어떤 고통이 사라지는지를 묻는다. 셋째,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의 윤리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내 몫의 빵을 나누었는가”라는 질문은 한 시대의 윤리경제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문장일지 모른다.

또한 이 책은 ‘문학적으로 읽는 역사’의 모범을 제시한다. 전쟁사는 종종 전술과 병력, 지휘관의 결단으로 요약되지만, 『레닌그라드』는 이를 생활사의 결로 뒤집는다. 난방이 끊긴 집에서의 밤, 외투 단추를 꿰매는 손가락, 누군가의 장례식이 사라진 도시에서 애도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러한 장면들이 역사의 줄기를 다시 쓴다. 읽는 동안 독자는 역사서 한 권을 ‘체험’한다. 그 체험은 통계표보다 오래 간다.

한국 독자에게 『레닌그라드』는 몇 겹의 필독 이유를 제공한다. 첫째, 도시와 시민을 보는 관점이 바뀐다. 시민은 보호의 대상이자 주체이며, 그 주체성은 일상의 언어(일기, 쪽지, 메모)에서 태어난다. 둘째, 윤리적 상상력이 확장된다. 재난 시기 ‘공정’과 ‘분배’는 표어가 아니라 빵 조각의 실물에 가깝다. 셋째, 문화의 힘을 재발견한다. 낭독과 음악, 신앙과 교육이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와 생활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넷째, 기억의 언어를 배운다. 고통을 소비하지 않고 기리는 방법, 누군가의 상처를 나의 윤리로 환대하는 태도 등.

마지막으로, 번역 출간의 시의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몇 해 동안 재난과 불확실성의 언어를 과하게 배웠다. 그 언어는 때로 피로를 낳고, 때로 냉소를 부른다. 『레닌그라드』는 그 언어를 인간의 얼굴로 되돌린다. 불안과 공포의 숫자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바꾸고, 공동체의 존엄을 손에 잡히는 감각으로 보여 준다. 출간의 순간은 독서의 초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절망의 한복판에서 존엄이 어떻게 빛을 잃지 않는지를 배운다. 그 배움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저자

애나리드

저자:애나리드(AnnaReid)
옥스퍼드대학교에서법학을전공하고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러시아사로석사학위를받았다.1993년부터1995년까지「이코노미스트」와「데일리텔레그래프」의우크라이나통신원으로종사했으며,현재는저널리스트이자작가로활동중이다.첫저서로는『국경:우크라이나역사기행』(1997년)이있으며,특히2011년런던블룸즈버리에서출판한『레닌그라드』로격찬을받았다.1941년부터1944년까지독일군이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를포위공격한내용을담은이책은공성전당시개인이남긴일기를활용해서현장의목소리를제대로반영했다.그리하여평단의찬사를받으며그녀의대표작으로자리매김했다.

역자:육연정
대전에서태어나고자랐다.국립충남대학교에서영문학을전공했다.학생들에게영어를가르치고그림을그리며수영을하며지낸다.세마리고양이집사노릇도하고있다.로버트바틀렛의『중세와영화』와슈방기스와루프의『그리움의위도』를번역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영어판서문

제1부Part1

1.1941년6월22일
2.바르바로사
3.우리는이기고있지만독일군은진격하고있다.
4.오폴체니예(인민민병대)
5.쥐덫에걸린

제2부Part2

6.무감각
7.우리의마지막심장박동까지
8.125그램
9.깔대기아래로떨어지다

제3부Part3

10.아이스로드
11.썰매와번데기(고치)
12.우리는돌과같았다
13.스뱌지(인맥)
14.로빈슨크루소는행운아였다
15.시체취식과인육취식
16.안톤이바노비치는화가났다.
17.빅하우스

제4부Part4

18.먀스노이보르
19.살고숨쉬는잔잔한기쁨
20.레닌그라드교향곡
21.마지막해

제5부Part5

22.집으로
23.기억의저장고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겨울의공기는칼날같고침묵은무겁다.도시가얼어붙는동안사람들은걸음을낮추고마음의온기를서로에게서빌려쓴다.‘봉쇄’라는말은한줄의역사용어로끝날수있지만,애나리드의이책을읽고나면그단어는구체적인이미지를얻는다.굶주림의무게,빵냄새의기억,낡은일기의누런종이까지손끝으로더듬게된다.『레닌그라드』는전쟁을숫자와지도로환원하지않는다.도시한복판의고독과연대,비굴과용기,신념과피로를,살아있는사람들의목소리로복원시킨다.그목소리는오늘의독자에게도낯설지않다.극한의시절에‘어떻게인간다움을지켰는가’라는질문은시대와국경을넘어우리에게곧장다가오기때문이다.

레닌그라드봉쇄는1941년부터1944년까지872일간계속되었다.독일군은점령이아니라고사(枯死)를택했고,시민들은얼어붙은라도가호를건너는‘생명의길’에의존했다.봉쇄기간에수십만명의민간인이굶주림과혹한으로죽었다는사실은역사가의건조한문장속에서수차례반복되어왔지만,리드는이를다시사람의이야기로되돌린다.그녀의책은일기·회고록·구술증언의결을따라흘러간다.그리하여독자는역사적사실과동시에‘사람’의체온을읽는다.

이책의미덕은두가지결을정교하게직조했다는데있다.하나는사료적엄밀함이고,다른하나는문학적감각이다.저자는군사기록같은공식자료에더해,도시안팎의개인일기와가족서한,생존자인터뷰를촘촘히엮는다.편집의리듬은단단하고,문장은담백하다.블룸즈버리는이책을“봉쇄된도시의생활을기록한일기를서사의중심축으로삼은,몰입감있는역사서”라고소개한다.이소개는과장이아니다.독자는‘사건’이아니라‘하루’를지난다.한장,또한장을넘길수록도시는계절을잃고,사람들은체온을잃고,그사이에서공동체의존엄이어떤얼굴을띠는지선명해진다.

『레닌그라드』가중요한까닭은,이책이사건을환기시키는방식때문이다.따뜻한물한잔의값어치가달라지고,낡은모직코트의털방향이보이고,빵쿠폰의질감이두꺼워진다.그것은단지재현의기술이아니다.공동체가무너지는순간,‘인간다움’이라는단어가어떻게빈껍데기가되어가는지,또는마지막까지어떤방식으로지켜지는지를묻는윤리의형식이다.리드가겨냥하는지점은영웅담이아니다.평범한시민들의존엄,아름다움이있다면바로그것이다.그래서독자는눈앞의도시에빠져들면서도반복해서현재를떠올리게된다.생필품의공급망은얼마나취약한가,한파와단전은누구에게더가혹한가,문화는절망속에서어떤방패가되는가.이질문들은결코과거형으로만머물지않는다.

리드의서술은‘신화걷어내기’를시도하면서봉쇄의영웅서사와선전의과장을차분히추적한다.봉쇄가‘국가의승리’라는거대한서사로포장될때사라지는개인의고통,정책실패가은폐하는고통을기록의언어로되찾는다.

이제,한국독자를향한질문으로시선을돌릴차례이다.왜지금이책인가.첫째,『레닌그라드』는‘회복탄력성’이라는낱말을인간적얼굴로바꿔놓는다.재난과전쟁,팬데믹과기후위기의시대에도시와공동체가무엇으로버티는지,행정과시민의연대가어떻게맞물려야하는지를상시킨다.둘째,이책은기억의정치에개입한다.누구의목소리가역사의본문을차지하고누구의목소리가각주로밀려나는지,어떤고통이기념비로남고어떤고통이사라지는지를묻는다.셋째,개인의양심과공동체의윤리가어떤지점에서만나는지를보여준다.“나는내몫의빵을나누었는가”라는질문은한시대의윤리경제를가장정확히드러내는문장일지모른다.

또한이책은‘문학적으로읽는역사’의모범을제시한다.전쟁사는종종전술과병력,지휘관의결단으로요약되지만,『레닌그라드』는이를생활사의결로뒤집는다.난방이끊긴집에서의밤,외투단추를꿰매는손가락,누군가의장례식이사라진도시에서애도의방식이어떻게바뀌는지,그러한장면들이역사의줄기를다시쓴다.읽는동안독자는역사서한권을‘체험’한다.그체험은통계표보다오래간다.

한국독자에게『레닌그라드』는몇겹의필독이유를제공한다.첫째,도시와시민을보는관점이바뀐다.시민은보호의대상이자주체이며,그주체성은일상의언어(일기,쪽지,메모)에서태어난다.둘째,윤리적상상력이확장된다.재난시기‘공정’과‘분배’는표어가아니라빵조각의실물에가깝다.셋째,문화의힘을재발견한다.낭독과음악,신앙과교육이인간다움을지켜주는최후의보루가되는순간들을통해우리는우리사회의문화인프라와생활예술의의미를다시생각하게된다.넷째,기억의언어를배운다.고통을소비하지않고기리는방법,누군가의상처를나의윤리로환대하는태도등.

마지막으로,번역출간의시의성에대해말하고싶다.우리는지난몇해동안재난과불확실성의언어를과하게배웠다.그언어는때로피로를낳고,때로냉소를부른다.『레닌그라드』는그언어를인간의얼굴로되돌린다.불안과공포의숫자를사람과사람의관계로바꾸고,공동체의존엄을손에잡히는감각으로보여준다.출간의순간은독서의초대이기도하다.우리는이책을통해,절망의한복판에서존엄이어떻게빛을잃지않는지를배운다.그배움이야말로미래를대비하는가장고전적인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