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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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상의 슬픔을 필사하는 시인
불행을 넘어 삶의 예술로 가는 시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신경림, 정호승, 정일근 시인은 박송이 시인의 시에 대해 “애매모호함을 극복하는 선명성도 좋았다 …… 가능성이 높았다”며 만장일치의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송이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에서 그의 시적 특장인 선명성과 더불어 슬픔의 연대 의지를 보여준다. 눈밝은 심사위원들의 기대를 꽃피운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어쩌면 뻔뻔하거나, 부적절한 반응이거나,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며 이제 “타인의 고통은 연민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박송이 역시 아픔과 상실의 고통에 침잠하지 않고 그것을 품고 가는 더 넓은 삶을 갖고, 이웃과 연대하는 시쓰기를 시도한다. 그는 시가 결국 삶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새 체득한 모양새다.

이 시집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축은 시쓰기의 의미 발견과 슬픔에 대한 연대이다. 시 쓰기에 관한 다수의 시편들을 통해 박송이 시인은 시가 자신의 존재이며 삶 그 자체라는 통찰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타자의 아픔과 슬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생명,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본원적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박송이 시인은 소멸되지 않는 삶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우리와 그 믿음을 나누려 한다.

돌아가신 엄마의 스웨터를 장롱에서 꺼내며 그 온기를 확인하는 「보풀」이나 죽은 송아지를 구덩이에 묻으며 송아지가 밤나무 감나무 쑥부쟁이 곁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 「겨울이사」 시 쓰는 일은 과거의 슬픔과 대면해 그 엉킴을 푸는 일이라고 깨닫는 「시창작교실」 등의 시는 박송이 시인의 시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자기 성찰을 통해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

박송이

1981년출생,한남대국문과및동대학원을졸업했다.
201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
시집『조용한심장』과동시집『낙엽뽀뽀』가있다.
대산창작기금과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다.

목차

1부
나는입버릇처럼가게문을닫고열어요
나의시는나의육체를지배하지못하고
소심한책방
비명
점박이느와르
메롱나무밤까시팃검불
필사
쯧쯧의기원

2부
겨울이사
청소
살구들
육아살이
플립시계
육아가계부
그물녘
수리남두꺼비
나무항구1
나무항구2
나무항구3
별명이라는고향1
별명이라는고향2

3부
끼니
생각하는모자
도서관식당
인공수정
개미
드로잉
닭닭닭
오래핀것들
수혈닭숲
가족사진
이명
독백
대화행
바나나

4부
미끄럼틀
나비바늘꽃1
나비바늘꽃2
곤히
장날
양말
태안
유전
감기
블루빌
목포
미처다살지못한오늘을펼치고
오줌길
고요한밤거룩한밤
증보기도

부록
공치는날
다슬기
바다낚시꾼
보풀
도토리
징글쟁글
시창작교실
오동도
부르고스
축구

해설
불행너머의시/김주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똑똑문을열면낱말들이몰려와
슬픔이무사하다는생각

첫시집으로자신만의세계를갖게된시인들에게두번째시집은어떤의미가있을까.박송이시인의이번시집이자기세계의확장이라면슬픔이다지나가버렸다고말하기는어렵다.시인은새로움을원한다.“무슨소용으로누추해질것인가/어떤용기로써먹은꽃을/재탕할셈인가”에는관심이없으므로“꽃을증오”(「나비바늘꽃2」)한다.써먹은꽃을또피우게할수는없는일이다.“해독할수없는시처럼/폼나게떠들어대”는것도할수없고“폭죽이터지는시/그런건없”(「육아살이」)다는것도안다.하지만그의시는슬픔에침잠하지않으면서그것을품고가는더넓은삶을갖게되었다.“첫시집을내고예술가라기보다는/생활인에가까워졌다는생각”(「소심한책방」)때문일까.시쓰기에관한시들이눈에띄는것은시가결국삶을쓰는일과다르지않다는것을체득한시인이있어서이다.시인에게시쓰기는일상의시간이고자신을들여다보는거울이다.

무엇이시를쓰게하는가를질문한다면박송이시의화자들은불행과슬픔이그렇게한다고답할것이다.시는어디에서오는가.번뜩이는영감이나상상력이필요할때마다찾아오는것도아니고창조의샘이늘흘러넘치는건아닐것이다.박송이시의불행한의식은모든좋은시인들이갖추고있는시적재능이라고해도틀리지않다.생을지배하는불행한의식으로그들은절실해지는것이다.“쓴다는건엉킨나를푸는일/엉킴을확인하는일/놔둔채로며칠을/묵혀두는일”(「시창작교실」)이고보면시는삶의밑바닥에묵직하게자리잡은과거의슬픔과대면해그엉킴을푸는일이다.박송이의시에서눈여겨볼점은불행한의식을놓지않되그불행에고착되지않는다는점이다.‘엉킨나를푸는일’이절실해서그의시는유년시절과양계장과아버지에관한기억을들춘다.하지만불행한의식으로그의화자는다른이의슬픔을바라볼수있다.

박송이의시는사회의불행이자신과연루되어있다고느낀다.불행한의식은개인의차원을넘어선다.그의시가남달리생명의식이나생태주의를표현해서그런것은아니다.박송이의시가생명의식을보여주고있다면그것은어떤개념을알고있어서가아니라불행한의식이다른불행을민감하게포착한것으로보는편이타당할것이다.슬픔은그의세계를넓힌다.“손이있다는게/손의감각이있다는게/정서단어상상이있다는게”(「시창작교실」)연결되는이유는시가다른세계를감지하는능력을뜻하기때문이다.‘정서’,‘단어’,‘상상’은시에서중요하다.하지만더중요한것은“마음열고서야/손가락만으로/나눠가질이야기/씀으로복있는나”(「시창작교실」)가가능하다는점이다.슬픔을겪은사람이다른슬픔을이해할수있고,아픈사람이다른이의아픔을잘보는것처럼.

좋은문학은우리에게삶에대한근본적인긍정을느끼게한다.같은의미에서좋은시는외부의상황과조건이아무리힘들고비참해도한인간에게잃어버릴수없는가치를선사한다.소멸되지않는삶의힘이있다는것을믿게한다.박송이시의불행한의식은시에관한의미를되살려놓는다.세상만물이서로연결되어있고삶은그것과교감하는일이라는것말이다.잘익은밥알들처럼내리는눈을‘시밥’이라고부르는시인에게시는세상을눈부시고따뜻하게만드는것이다.박송이의시는불행을넘어삶의예술로가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