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라일락 - 시인의일요일시집 13

그래, 라일락 - 시인의일요일시집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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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의 말만 잘 듣는
왼손잡이 시인의 서늘한 응시

외가는 무당이 줄줄이 나는 집안이고, 친가는 좌파 연좌제의 붉은 호적 집안이어서, 시를 안 쓰면 살 수가 없었다는 석민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엄마 말도 잘 듣지 않던 고집불통의 시인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시의 말만 잘 들어요. 시를 읽고 쓰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었지요” 라고.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하동에 살고 있는 시인은, 오는 3월 〈양보책방〉(하동군 양보면)을 연다. 지난가을과 겨울 내내 땅을 다지고 그 위에 책방을 올렸다. 그는 마흔일곱 살이던 작년에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과 생활을 문학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 투지와 행보가 만만치 않다.

첫 시집이 세상에 대한 소심한 반란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한층 격렬하고 깊어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죽음에 대한 선명한 자의식은 “죽음은 변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유를 낳게 하고, 가족 관계에 대한 서늘한 응시는 “부모를 고를 수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라는 시행을 만들어낸다.
모나고 투박한 세상살이 혹은 공고한 혈연 공동체의 우악스러운 숙명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시인은 오히려 물의 유연함과 같은 사유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집 곳곳에서는, 어른에 대한 불신과 불만, 분노와 항의로 어른들의 가증스러운 권위에 당당하게 도전한다. 마치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 마체라트처럼.

그의 이번 시집을 읽다 보면, 단순한 자기 연민이나 자기반성에 그치지 않고 시를 통해 자신을 세우려 안간힘을 쓰는 시인의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를 읽는 나의 모습이 비친다.
저자

석민재

1975년경상남도부산에서태어나하동에서살고있다.2015년[시와사상],2017년[세계일보]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시집『엄마는나를또낳았다』를썼고,『시골시인-K』를함께썼다.

목차

1부이인삼각
저글링을하다13
석류와석류14
울고싶은대로울었다17
동:백이20
어떤춤을추면될까22
아케이로포이에토26
대한大寒28
비의삼등분29
수락폭포32
우리집에성한귀가없다35
밥이나겨우먹고삽니다38
신경神經40
구월41

2부물수제비
마가렛혹은둘째45
입동46
그러니,같이48
화심51
나비를보다52
우리모두포유류니까56
이도시엔균형이있다59
해칠의도가없습니다60
이월62
약사암63
말할때꼭착하게굴필요는없어요66
가가可呵는가가可呵69
모란70
파반느72
조문74

3부제3자
우후죽순77
호적수79
내시경80
쓰다듬으면가만히있네요82
모종의일85
알고리즘89
回92
오뚝이에게94
ㅃ96
민다리97
하평28100
넝쿨103
어떤경우라도나쁠것이무엇이겠습니까104

4부날개
복면109
능소화가피었다112
그래,라일락115
피자두118
모나미153120
내가전혀수박잊고있을때122
뭐,예술은모르겠고흥행이나합시다124
꽹과리가걸려있네126
화환128
파문130
훨훨134
달의표정136

해설137
슬픈혀가하얗게날아오르다|전성욱(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한곳에오래머물면발이간질거립니다
무리에어울리는요령이없이그저시를씁니다”

석민재시인에게는시를쓴다는것이그런중심버리기와서식지바꾸기가아닐까.그래서「모나미153」에서는“만보는걸음이아니라자기반성”이라고했고,“걷는다는말이쓴다는말과비슷하지않냐고내가말했다”고항변하였으며,“방랑기질이쓰고방황으로걷는다”고했다.그에게있어시를쓴다는것은,붉음에상처받았던자기를연민하지않고,그렇게자기의자리를떨쳐일어나하얀의욕으로방황의길을걸어가는것이다.그러므로이시집은방황에다름없는방랑을기록한두서없는여행기로읽혀도좋으리라

이시집의도처에서어른들에대한불신과불만을마주하게된다.“어른이실수하면그냥넘어가고//애들은잘못안해도매부터들었잖아”(「피자두」)“어디갔다가/안돌아오는어른들은어찌된걸까요?”(「입동」)“자장가부른다고어른이라면/알은흩어지고/조생아들이줄줄이”(「쓰다듬으면가만히있네요」)“보금자리라는말이쓸쓸해진도시에굶주림이라는가장서글픈단어가실시간떠올라도눈썹을밀어버린어른들은읽고말하고과거의두루마리를풀어매일베껴씁니다”(「넝쿨」)이처럼뻔뻔하고무책임한어른들을고발하고있는이시어들속에는,짙은분노와함께그들을향한강력한항의가배어있다.

부처와같이자유자재한노마드,자기를넘어선사람인초인은한곳에정주하며안락을도모하지않는다.“한곳에오래있으면발이간질거립니다무리에어울리는요령이없는내게사건을순리대로적는습관을기르라고합니다바람은제가불고싶은대로부는것같아도힘을다하고정성을다하고있습니다”(「화심」)‘무리’에동화됨으로써안정을바라는익명의‘대중’을넘어선자리에하얀배꽃이천지를축복한다.그‘흰색’은난폭한혈연의동맹을가리켰던붉은색과는정반대의함의로읽힌다.“문턱에있던/흰실한가닥이/생각났다”고했고,“무명으로지은베개에머리얹고자면/아픈데가없어진다고믿었다”(「울고싶은대로울었다」)고했다.“후드득/피는꽃/속옷벗는흰나비”(「어떤춤을추면될까」)를포착하기도했다.하얀나비가훨훨난다.어떤구애됨이없이밝고환하게난다.그것이바로시인이진심을다하여바라는삶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