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정원 - 시인의일요일시집 14

가설정원 - 시인의일요일시집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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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남쪽 모더니스트가 보내는 SOS
‘가설정원’에서 헤매는 ‘수습사원’의 정체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이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첫 시집부터 이번 시집까지 공간에 대한 관찰과 집착을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 시집에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걸으며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나머지 풍경’을 낯선 언어로 그려 보였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장소의 부재’를 상징하는 ‘가설공원’에서 실감하는, 위태로운 삶의 난해와 난감을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인 ‘가설정원’을 지극히 단순하게 풀어내자면, ‘임시로 설치한 꽃밭’이다. 이때 ‘가설’이 갖는 임시적 속성을 바탕으로 시인은 어떤 문제를 예측하는 진술이자 변수로서 우리 삶의 진실을 추정하려고 의도한다. 이를테면 「채광창」 「새들이 짓는 집」 「미지의 땅」 「100층 옥탑방」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집으로 은유되는 안식처는 존재의 자기 증명을 가능케 하는 장소지만, 김예강 시인에게는 부재의 사실을 상기시키며 좌절의 고통만이 가중될 뿐이다. 오히려 존재의 결여에 대한 은유이다.

시인에게 ‘장소’는 인간이 물리적 기반 위에 체험으로써 역사를 뿌리내리는 곳이자 오감(五感)으로 체득되는 공간이다. 우리의 총체적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소가 정서적 공간으로 확정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재마저 위태로워진다.
모든 존재는 안락한 삶의 장소를 원하듯이, 시인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집’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김예강 시인은 벼랑과 국경의 경계를 통해 불안정한 주체를 새롭게 인식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위무의 기능으로 시를 써내고 있다.

존재로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삶의 진실에 닿기 위한 노력이 김예강 시인의 시쓰기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임시의 미완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소망하는 동시에 ‘지금’의 불행한 현실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다. 안주할 곳을 잃고 떠도는 자의 비애, 상실을 내면화한 존재의 위태로움을 김예강 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저자

김예강

경남창원에서태어나,2005년[시와사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고양이의잠』이있다.

목차

1부

수습사원재단사K/새들이짓는집/채광창/언니/발가락깁스에목발로바다로갔어요/우리가고르는정장슈트/가족/지저귀는새/못의대화/트랙멀리/흰죽/오늘/피노키오의기도/명동

2부

드로잉/눈물/도마/수국정원/잘모르는사이인당신노래를듣는밤/안개/그녀가울고있다/생일/물발자국/뛰노는아이들/구름의표정/바게트먹기─겨울산행/얼음위식사/물방울/지구만한시계/에코백/종이처럼

3부

작은별이해변에서/기도/서책의첫페이지/햇살이라불리는장미를사다/자가격리/달팽이/우리집이사트럭/그녀의날개/미지의땅/껍질/쪽파/초콜릿/실론/선잠/손

4부

셀프주유─감정들/100층옥탑방/12살마태오의해변─감정들/라임나무를심다─꿈/단한가지망고/잠속의비/7시25분시티지나기/자정/스윙인흰여울─이전개업/스윙인흰여울─나는당신이됩니다/스윙인흰여울─창을열다/가설정원

해설가설정원에서의삶,그너머|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슬픔의책을사들고집으로간사람들

대다수우리가생활을영위하는공간은‘가설정원’으로서의‘도시’이다.그곳에서우리는정주하지못한삶을살아가고있다.“혹자가유목정원이라고했”듯이마치‘수습사원’처럼소속감없이우연성에휩쓸리며스스로취약한처지로내몰고있는지도모른다.그런이유로“가설한행복”이아닌“씨앗”의가치가발아할수있는곳으로떠나야하는지도모를일이다.물론삶의진실이무언가를완성해내는데있는것은아닐수도있다.“가을정원이라는간판을떼어넣고/가축을몰고초원을찾아떠”나는행위자체,그수행성이야말로존재를주체로자리매김하는사건일수있기때문이다.그러나이는저외부에서구해야할무엇은아닐것이다.인위적인공간안에서‘집’을구축하여사회적역할과사회적관계를통해일상적인삶을느낌으로써안정과위안의정주지,즉장소를마련할수도있다.주체의시원은저불분명한공간에서자신의장소를만들어타자와주체를마주하게하고이를통해실제를경험하는일로부터비롯되는것인지도모른다.

‘집’은일종의메타적공간으로시인이쓰는시의장소로읽을수있다.시인에게‘집’은불완전한주체의타자성을감각하는곳이면서이를돌파할방안으로구축될새로운세계의가능성을상상케하기때문이다.현실적고통으로부터벗어나다른무엇이될가능성을지닌‘집’을상상하며주체로서의자신을찾으려는반복적수행이야말로일종의제의적자학과견딤의언어적실천이자시인의원체험을가능케하는시적인삶의승화라고도할수있다.

「수습사원재단사K」의원룸창가에놓인식물은수생식물이었다.물속에서성장하는식물의총칭으로서의수생식물은K자신이식물이되는환상성과결합하여협소한존재의기원을톺아보는기제로작용하기도한다.이는여타의시편에나오는‘바다’가의미하는바와같이존재가돌아가야할,혹은시적주체가가닿기를바라는시원적장소를갈구하는것으로볼수있다.이와같은‘물’의이미지는존재의원체험이각인된장소를상징하면서시적주체에게결여된것을깨닫게하여불안의원인으로작용하기도한다.그럼에도끊임없이시안에서현시되는이유는‘눈물’의카타르시스처럼존재로하여금불안으로인해타자화되지않고스스로를주체로밀어올릴계기를마련하기때문일것이다.

■시인의말

세상의모든
정원사에게

책속에서

구두를벗어말린다
생은여기까지라던12월

기둥없이떠있는방
너는매일건축을생각했다
열어둔서랍인듯
햇빛드는집이건축된다고
너는말했다
야트막한언덕집은
강의서랍처럼
입구에새가와서앉는다
---「채광창」중에서

언니는망치를안고잠을잘것이다여름정원에서
밭을살리려고꽃을엎는정원사처럼
사나운그늘도부수고뜯어낼것이다

혹,자전거가늪에빠져악어이빨이자라난다면
혹,들판에서염소뿔에들이받힌다면
염소똥같은덩굴손은동그랗게매어주며
어떻게할까밤을지샐것이다

나는언니와같은비를맞고같은우산을들고
언니와같은장화를신고
나팔꽃섶을짓는다
흔들리는집을흔들리지않을집을지을것이다
---「언니」중에서

잘모르는사이인당신이노래를한다
잘아는사이인당신이노래를한다
내몸에서무슨음악이라도들리는지
바짝귀를붙이고흠칫뒷걸음을친다
저달이
두려움없이기쁨없이
---「잘모르는사이인당신노래를듣는밤」중에서

너는멀리까지흘러가있으므로
그림자는저녁에도착했고
나는너의표정에게다음날아침에안부를전한다
우기속에서우리는우산을접고표정을
숨긴다내가나에게건네는유리창내가나에게
건네는의자흘러간다안부가되지못한표정이
우리의얼굴에서지고있다
떨어지는장미의표정으로
구름에서빠져나온구름
같은계절이반복된다
나는마지막표정을반복한다
커다란우산속에서얼굴이없다
---「구름의표정」중에서

도시는딱딱하고
싱싱한꽃이피었다
망망초원이고
게르이고
검고작은씨앗이고
누구의배꼽

도시는싱싱한꽃을팔았다
가설했다도시는향기를가설하고
가을을가설하고
가설한행복을심었다
---「가설정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