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낙낙

해낙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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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국가가 인정한 미남 시인,
청춘을 바쳐 오월을 지킨
조성국 시의 결정판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학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실형까지 살았던 조성국은 1990년에 수배 당시의 이야기를 「수배일기」라는 연작시로 써서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당시 수배 전단의 인상착의 문안에 “일견 미남형”이란 문구를 보고, 1980년대 분단문학을 이끌던 송기숙 선생이 ‘국가가 인정한 미남’이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세상이 바뀌어 받게 된 민주화운동 보상금도 거부하고, 징역 이력 때문에 취직을 할 수가 없었던 그는, 지역 문화 일꾼으로서의 삶을 당당히 살아왔다.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사무국장을 하고, 대안학교인 광주지혜학교의 행정실장을 하고, 조태일문학상운영위원회의 사무국장을 하고, 이번 『해낙낙』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의 수배생활과 징역이라는 ‘악몽’으로 곧잘 가위눌린다 한다.

그는 오로지 시로 세월의 무상함과 여러 생명 존재를 위로하며 자기 삶을 곧추세운다.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그의 시에는 집과 가족 이야기만 가득하다. 요양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손녀 먹일 젖을 곰국인 양 생각하고 마신 아버지, 천형 같은 간질을 앓는 형, 암에 걸려서 각종 보험을 타게 되니 빚을 털게 되었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누나가 그의 가족이다. 그리고 아내와 딸애, 형수와 이웃의 모습도 시집에 그대로 녹아있다.

시인은 인생길에서의 방황과 고투를 가족과 고향의 자연으로 맞서며 버텨낸다. 그래서 그의 시적 가치는 구태의연하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삶의 근본성 회복 등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다. 요즘의 시선으로는 뒤처지고 낡고 무효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인은 이것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가치로 여긴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와 애정, 평화에 대한 간곡한 마음을 시로 갈고 닦고 빛내며, 스스로의 생명줄에 여기에 건다. 그에게 시는 시대로 인해 훼손되고 황폐해진 자신의 삶을 되살리는 간절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조성국

전라도광주염주마을에서태어났다.
1990년『창작과비평』봄호에「수배일기」연작6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지은책으로는시집『슬그머니』『둥근진동』『나만멀쩡해서미안해』『귀기울여들어줘서고맙다』,동시집『구멍집』,평전『돌아오지않는열사청년이철규』등이있다

목차

1부씨익,한번웃게하는
……해낙낙하니웃었다/도둑제발저리듯/뒤끝/헌금/접문(接吻)
/별게아닌데하고나면기분좋아졌다/신문/불쾌한목례/은화/불로동회억
/좀벌레슨외투와같이/경로우대석/✕✕정보산업학교
/암환자가될거라는큰누나의믿음은/백반증/요양원/부의/만년필
/남자의뿌리/우스갯소리/반성/낮술/출장/만추

2부꿈속같고전생의어느한때와같은
저녁의여러말/집/분가/가장/이종양반/아버지의농사/아버지의잠/곰국
/호루라기/매병/본가/와병/합창/푸닥거리/간격/운조루/독숙(獨宿)
/고함/전기밥솥/미운정/매/마수/제비집/들고양이/강아질가지러갔더니
/맨드라미/어미개/암내/끼니/그곳/목어/간질/역정
/물비늘피는함허정에들러접은생각이있었다/스무고개/파묘

3부길속이트였다
식생복원중입니다/내몸에서흙내가나기시작했다/한참이나물끄러미쳐다본다
/뒤란/처녀보살/사주(蛇酒)/우뚝솟은끄트머리가둥글뭉툭꼴린듯해서
/목탁집/딱,한마디로이랬다/주말농장/파일/물새한쌍/용연향/돌마늘
/길속이트였다/솔밑재/그산/금강내산도/산이푸르다는것은
/대평리반곡마을/홍예다리/새비연못/강물위에쓴시/궁리끝에/육추
/외가/홍매/서쪽빛비치는마애불을친견하다/전율/호박꽃/어치
/압장(壓葬)/백내장/박새와살구나무/곰솔-벗들에게1

해설조성국과그의‘얼뚱아기’적말들|고재종(시인)

출판사 서평

인간과자연에대한,
평화와사랑에대한간곡한마음

시「스무고개」처럼인생이란,인생길이란정녕스무고개와같은것이다.스무고개를다넘고넘지만사실정답이없는인생길은근본적으로권태와황홀,환멸과광채로변주되며세월속으로수렴된다.세월이라는생애동안많은길을거치며‘나’라는주체가가뭇없이사라지게되는이허무와고통때문에“걱정마,모든게잘될거야”라고아이를토닥이는어머니,그리고그것과오버랩되며거친물살을헤치고필사적으로삶의근원으로회귀하는연어떼의풍경!이라는,영화의강렬한시퀀스를누구도잊지못하는것이다.그래서조성국이‘본가’라는,이제는추억이된공간을그리워하는데죄는없다.

조성국의집의시편다음엔자연시들이있다.그는왜도시아파트에살면서도이토록많은자연시를읊어댈까.자연은‘무주공산’이아니며누구나마음놓고즐기거나귀의할곳이아닌데도말이다.낸시프레이저,『좌파의길』에서“우선자연오염과제국주의적수탈의내적연계부터살펴보자.무주공산이라는주장과는반대로,자본이전유하는자연의막대한부분은실은늘어떤인간집단의생활조건,즉생활터전,의미충만한사회적상호작용의장소,생계수단,사회적재생산의물적기초다.”그런자연이기에명산명소에는이곳저곳셀수도없이골프장이생기고,강가호숫가엔러브호텔이생기고,벼농사잘짓던전답에는가든음식점이즐비하게들어서서이제는포화상태에이른것아닌가.나는오래전에이런자연을‘골프군러브호텔면가든리’라고명명한적이있다.그런측면에서보자면조성국의자연은무척전근대적인자연이라고할수있다.

시에나타난표현만보면참으로아름다운,어쩌면거의신화적인시다.“생강나무꽃과벚꽃이속삭”이는소리를듣고,“월색이/이마머리에다문신처럼푸르게새기는것을가만내버려두기도하고”,“은비늘반짝이며하늘로튀어올라가듯/밤바람거스르는엽어의꼬리지느러미소리를알아듣기도하였다”고하는시인은어떤접신의경지에든것같다.어쩌면이런접신의경지를표현하려고해서인지그의시에는많은방언이활개를친다.위시는의외로방언이나잃어버린말들이거의사용되지않고있지만,“이제는분내풍기는여자도사람으로만보는,귓바퀴순해진사내의내가/인간의말을점점잃어가며/얼뚱아기인양사계절말들을따라배우듯옹알거렸다”는표현에서보듯,어쩌면그의방언들은합리적이고표준적이고,중앙집권적인문명의말이전에자연과땅과살붙이들과하나되어조화롭게살던어떤지역,어떤사람들의얼뚱아기적·본래적·자연적인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