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라 불러서 미안해 - 시인의 일요일 시집 19

밤이라 불러서 미안해 - 시인의 일요일 시집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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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별’이 아니라 ‘별자리’를 읽는 시인
첫 시집 『태양중독자』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은림 시인이 돌아왔다. 이전의 시들이 차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만질만질한 감수성으로 빛났다면, 이번 시집은 더욱 깊어진 정서와 따뜻한 교감으로 한층 성숙해진 시세계를 선보인다.
시인은 일상의 경계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마주침을 시적 사건으로 발견해낸다. 이러한 시적 여정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는가도 짐작할 수 있다.

이은림 시의 주요 소재는 꽃과 새, 고양이, 새, 고래, 펭귄, 공룡, 악어, 얼룩말 같은 동물, 그리고 사과, 토마토, 구름, 달 같은 자연적 대상이다. 그는 그것들을 제대로 안다. 그것들의 고유한 성질이나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하고 많은 ‘인용’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뉴스, 영화, 그림책, 신화, 시, 그림, 노래 등 인용되는 텍스트의 종류나 장르도 무척 다양하다. 이것들 또한 시인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가 시로 끌어안는 특징적인 요소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별’이나 ‘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달’이 매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고, ‘별’을 하나의 개별적 대상이 아니라 관계, 즉 ‘별자리’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런데 이은림 시인은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적 대상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고 있으며, 그림책, 영화, 애니메이션, 시 같은 다양한 텍스트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마주침의 순간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긍정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

이은림

경남양산에서태어났다.
1997년《영남일보》신춘문예,2001년《작가세계》로등단하였고,
시집『태양중독자』『그림자보관함』이있다

목차

1부
크고깊은서랍

2부
사이/프리다/월하정인/8월의고래/이야기모자이야기/루시/뿔/1945
/이토록차가운이야기/나는괴물이아니다/여름의규칙/개복치클럽

3부
나는새를봅니다/피사체/때로는새/꿈에아빠와꽃꽂이를했어요/납작한이야기
/이름/난데없는이야기/잊을뻔한이야기/의미심장한이야기/우키시마호/피노키오
/오늘이/사라질수밖에없는이야기/새는아직도죽어가고있어/4월,그리고안녕
/하찮은슬픔/첫눈/안부

4부
아추증후군/춤/얼룩말행진곡/너무긴일요일/라일락통신/우리집에고래가있다
여름옆에서/진정사과가맞습니까/어쩌면토마토/기억할만한이야기/생일아침
경계/뜻밖의기념일

5부
오늘은해파리/우리같이스카이다이빙할까?/절대지식/펭귄의날/벗고개에서만나요
정오의희망곡/당신도알만한이야기/괜찮아요/만우절/시계탑앞에서만나자
/소마트로프

해설
시는어떻게오는가-이은림의시세계|고봉준(경희대교수?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구름감상협회회원처럼‘차이’를발견하는시인

이은림에게시적대상과마주치는사건은‘풍경’을내면화하는과정이다.하지만이것이대상을‘나’의세계로환원하는완전한주관화를의미하는것은아니다.앞에서설명한내용을반복하자면이은림에게시적대상을마주하는일은‘서랍’속을들여다보는행위로서그것을닦달하여강제로개방하는것과다르다.따라서‘풍경’을먹는다는것은정보가입력되는과정을표현한것일뿐포식한다는의미가아니다.게다가우리의경험이증명하듯이이때의정보가항상의식의층위에머무는것도아니다.“생각하는것이아니라생각나는거야/기억하는것이아니라기억나는거야”(「정오의희망곡」)라는진술처럼‘생각’과‘기억’은우리의의지와무관하게떠오르기때문에특별한의미가있는것이다.어떤기억은망각에대해저항하면서의식의손길이미치지않는곳에머물고있다가특정한조건이되면우리의의지와상관없이떠오른다.시적상상력은바로이러한비자발적기억이특정한시적대상과만나구체적인이미지를획득하는과정이라고말할수있다.따라서이러한기억은나중에떠오르기위해서라도먼저내면화되어쌓여야한다.그러므로여기에서먹는다는것은받아들인다는것,외부를향해‘나’의감각을개방한다는의미로이해되어야한다.

구름감상협회(CloudAppreciationSociety)라는단체가있다.2005년개빈프레터피니라는영국인이만든이단체에는현재120개국6만여명의회원이가입해매일구름사진을공유하면서활동하고있다고한다.개빈프레터비니의『구름관찰자를위한가이드』에는흘러가는구름을가만히바라보는행복감부터구름의다양하고도극적인모습에서발견한숭고하고도덧없는아름다움까지가빼곡히기록되어있는데,그것은‘구름’에서차이를읽어내는능력의산물이라고말할수있다.이처럼어떤것에대해안다는것은그것만의고유한성질,그리고같은것처럼보이는것들에서‘차이’를발견해내는능력이다는것이다.요컨대‘꽃’이나‘나무’같은개념어로모든식물을지시하는,따라서‘차이’를읽어내지못하는우리는그것들에대해알지못하는셈이다.반면“만발했던봄꽃들이/뉘엿뉘엿저물때긴하지”(「4월,그리고안녕」)나“명료했던4월30일의작약은/조금은모호하고느슨해진채/5월1일에닿는다”(「경계」)처럼꽃의모습에서시간의변화를감지해내는시인은‘꽃’에대해서제대로알고있다고말할수있다.“꽃농사”(「꿈에아빠와꽃꽂이를했어요」)를짓는집안의딸로태어나서그런것일까?그녀의시에는싱고니움,라일락,장미,튤립,작약같은꽃들이자주등장한다.이것은‘꽃’에대한시인의감각이남다르다는의미이기도하다

■시인의말

아무리애를써도떠날것은떠난다.
나의의지와는무관하게놓쳐버린숱한시간,사람,기회들.
하지만신기하게도어떤것은기어이돌아온다.
어디를다녀왔는지알수없지만이제는끝이구나싶을때반짝,눈을뜬다.
오늘,죽은줄알았던화분에서연둣빛싹을보았다.버려질뻔했던화분은다시제자리를찾았다.그리고나는오래된수첩속낡은메모를뒤적이다가몇편의시를썼다.

너무나오랜만에펴내는세번째시집을그리운아빠께바친다.
유달리아름다웠던8년전봄,내생일날돌아가신아빠,
그때는슬펐지만,이제는아빠와생일을함께하게되어기뻐요.
오래오래시쓰며행복할게요.

2023년9월
해바라기의계절에